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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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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빈네 형인 니콜라이의 죽음 파트


개인적으로 <죄와 벌>의 '스비드리가일로프 파트'를 좋아하는데, 장편이랑 별개로 그 파트만 오롯이 독자적인 힘을 지니고 있기 때문

'니콜라이의 죽음 파트'도 <안나 카레니나>라는 거대 서사 속의 한 죽음을 다루지만, 실상은 마치 <이반 일리치의 죽음> 이본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듦


일단 이 파트는 전조부터 심상치 않음

<안나 카레니나>는 의외로 인생의 섬뜩한 부분을 많이 건드는데, 이 파트 전반부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채(뭔가 과장된 표현을 빌리자면 죽음이란 게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처럼) 레빈한테 어린이 무도회 이야기를 꺼냄

그런데 니콜라이의 이변을 눈치 챈 키티가 말을 멈추고, 니콜라이가 형이 죽어가고 있음을 알리면서 분위기가 반전됨

거기에서 갑자기 이런 문장이 툭 불거짐


'키티의 얼굴빛도 갑자기 변했다. 후작 부인으로 분장한 타냐와 돌리에 대한 생각이 모두 사라져버렸다.'


죽음이 끼어드는 순간, 어린이 무도회 같은 생의 발랄한 요소들은 '순진'한 걸로 변해서 증발해버림

개인적으로 이 문장이 너무 섬뜩했음


이후 레빈과 키티가 함께 니콜라이가 머물 곳으로 이동하면서 레빈 파트의 주를 이루고 있던 신혼의 어려움, 결혼이란 것에서 오는 흔한 불화, 그리고 화해와 그럭저럭 이어지는 삶 등의 주제가 완전히 반전되어 죽음과 삶속으로 뛰어들어감


앞서 말했듯 이 파트는 전체적으로 <이반 일리치의 죽음>의 이본처럼 느껴짐

일단 전체적인 분위기, 이 파트는 초반부터 니콜라이가 유지하고 있던 괴팍함, 하류 인생, 허무, 절망, 삶에의 비틀린 의지 등이 계속해서 이어져옴

니콜라이와 레빈의 이전 만남에서처럼 니콜라이는 레빈에게 죽음을 상기시키는 살아있는 사신 같은 존재임

그래서 레빈은 니콜라이를 볼 때마다 삶에 서린 죽음과 마주하지 않으면 안됨

기본적으로 레빈과 니콜라이의 만남은 충만한 생으로 약동하는 농촌 사람 레빈과 늘 바닥과 가까이 지내는 니콜라이의 충돌로 묘사되어왔음

그런데 이 구도에 키티를 넣으면서 톨스토이는 아주 재밌는 구도를 만들어냄


일단 레빈 파트는 보통 레빈 시점에서 많이 진행되고, 레빈은 전체적으로 맹하기도 하지만, 아주 사색적이며 한편으론 아집도 쎈 주인 느낌으로 그려짐

결혼 파트 초반부 '신랑' 레빈은 자신의 생각에 대한 아집 때문에 키티하고 사사로운 부분에서 충돌함

니콜라이와 레빈이 만나는 게 생과 죽음의 충돌이라면 결혼은 두 삶이 포개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음

그래서 결혼, 삶과 삶이 포개지는 과정 이후에 니콜라이의 죽음이 들이닥치는 건 레빈 입장에서 아주 상징적인 일임


레빈에게는 이런 상징적인 일에 키티가 있는 게 매우 부자연스럽게 느껴졌을 것임

그러나 우리는 키티가 이미 한 번 니콜라이와 만난 적이 있다는 걸 알고, 또한 요양하면서 어떤 일을 거쳤는지 알고 있음

그렇게 키티는 니콜라이와 레빈네의 충돌을 완전히 상반된 길로 이끌어주게 되는 것임


'그러나 키티는 전혀 다르게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했다. ...... 그녀의 연민은 그녀의 남편에게서 나타났던 두려움이나 혐오감과는 전혀 다른, 환자의 상태를 자세히 알고 그에게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의욕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그녀의 마음속에 그를 도와야만 한다는 것과 그 가능성에 대해 추호의 의심도 없었기 때문에 그녀는 당장 일을 시작했다. 그 가능성에 대해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레빈을 두렵게 만들었던 그 모든 세세한 일들은 곧 그녀의 주의를 끌었다.'


전반적으로 이 파트에서는 죽음을 다루는 레빈과 키티의 상반된 태도가 두드러짐

레빈 입장에서는 니콜라이의 일은 오래전부터 마주해야했고 마땅히 자신이 처리할 일이지만, 죽음의 상기에 의해 마치 마비된 것처럼 잘 행동하지 못함

레빈이 키티보다 니콜라이라는 죽음에 친숙하고 숙달되어 있을 게 분명한데도, 오히려 니콜라이의 죽음을 능숙하게 다루는 것은 키티쪽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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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아이들과 무지한 자들에게는 드러내셨도다.'

레빈이 성경의 잠언에 대해 생각한 것은, 자기 스스로 지혜로운 자라고 생각해서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지혜롭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아내나 아가피야 미하일로브나보다 더 현명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고 죽음에 대해서도 온 마음을 다해 깊이 생각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또 지성을 갖춘 많은 남자들이 죽음에 관한 생각을 적은 책을 읽었는데, 지금 자기 아내나 아가피야 미하일로브나가 알고 있는 것의 백분의 일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그녀들은 지금 레빈에게 제시된 질문에 대한 해답은커녕 그 질문 자체도 이해하지 못했지만, 현실 속에서의 삶과 죽음이 무엇인지는 분명히 이해하고 있었다. ...... 그 증거로 그녀들은 죽어가는 사람에 대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알 수 있었고,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죽음이 무엇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레빈이나 다른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 많은 말들은 할 수 있었지만 분명히 알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면서 사람들이 죽어갈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확실히 몰랐기 때문이다.그는 다만 공포의 눈으로 형을 바라보면서 공포심만 끌어안고 기다릴 뿐 그 이상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죽음을 다루는 상반된 태도의 중심에 니콜라이가 있음

니콜라이는 이반 일리치의 안티테제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이반 일리치는 중산층으로 살아가며 자신의 생이 어떻게 무너져내리고 있는지 전혀 깨닫지 못했지만, 니콜라이는 한껏 무너져내리는 생에 대해서 늘 괴팍하게 구는 쪽이었음

마지막에 몸종 게라심의 헌신적 삶에 감동하고, '지금까지 인생이 잘못되었다는 섬뜩한 사실'에 도달한 이반 일리치와는 반대로, 니콜라이는 키티의 헌신에 감동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끝에 가서는 끈질기게 생을 붙잡으려는 태도를 보이고, 자신의 죽음을 끝까지 인정하지 않았음

그의 유언도 무려 돌아가셨다는 의사에 말에 응하는 '아직은... 곧.'


키티의 헌신으로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 달한 것 같던 니콜라이는 결국 '죽음의 불가해함과 동시에 죽음의 임박함과 불가피함에 대한 공포심' 자체로서 레빈에게 각인되어 죽게 됨

그런데 이러한 죽음을 겪어낸 뒤, '이반 일리치'로, 정확히는 '죽음 이후의 이반 일리치'로 거듭난 건 놀랍게도 레빈네임


초반에 어린이 무도회라는 순진한 생이 니콜라이의 죽음에 의해 순식간에 사라졌듯, 이젠 반대로 니콜라이의 죽음이 사라지고 레빈은 살아가고 사랑해야만 한다는 순결한 느낌만을 받게 됨. 그리고 다름아닌 니콜라이의 죽음을 고한 의사가 동일하게 키티의 임신 사실을 고함


(더 정확히는 신혼 이야기로 시작하긴 했지만) 아이 이야기로 시작해서 아이 이야기로 끝나는 이 파트는 순전한 삶과 죽음, 그리고 다시 삶으로의 회귀를 보여주며 이후 톨스토이가 쓸 <이반 일리치>의 구도와 주제의식을 선행하고 있다고 봄


레빈과 키티의 로맨스 파트로부터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안나 카레니나>를 보다 풍성한 작품으로 만들어주면서도, 내적 완결성 자체도 탄탄한 파트라 정말 인상 깊었기에 글 하나 남겨봤음


똘이는 신이 맞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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