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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려서부터 생명과학자가 되고 싶었다. 세포 속의 소기관들이 서로 소통하고 작용을 조절하는 것이 정말 신기했다. 몸속에 있는 세포라는 우주의 원리를 알고 싶었다. 대학에 와서 재능의 부족을 뼈저리게 느꼈다. 연구도 내가 상상하던 것과는 너무 형태가 다른 노동이었으며, 연구를 통해 생계를 유지하기도 열악했다. 나는 꿈과 현실의 교착 상태에 부딪혔기에 전역 후에도 생명과학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 꺼려져 휴학 중이다. 복학하고도 어디로 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할 것 같다. 그런 상황에 놓인 나에게 「초록의 하인리히」가 다가왔다.
주인공인 하인리히는 어려서부터 험난한 생을 보냈다. 하인리히가 워낙 강한 주관을 타고난 탓이다. 유년의 하인리히에게 신은 학교에서 선생들이 벌을 내릴 때 드는 근거일 뿐이었고, 실제 삶을 도와주지는 않았다. 결국 하인리히는 학교생활에 어울리지 못하는 대신 자연의 아름다움을 깨닫고, 하얀 캔버스 위에 자연의 섭리를 그대로 반영하여 세계를 새로 창조하는 풍경화가를 꿈꾼다. 그러는 와중에 연애도 경험한다. 하지만 모든 길이 다 제대로 풀리지 못했다. 하인리히의 그림은 주관에 비해 매력은 없어서 팔리지 않았고, 연애도 다 운명의 장난으로 좋지 않게 끝났다. 자유와 방종을 구분하지 못하는 동료 화가들에게도 실망한다. 하인리히는 방황하다가 마침내 꿈을 접고 관리가 되기로 결심하지만, 이미 방황하는 동안 어머니가 방치돼있다가 고통스레 세상을 떠났다.
하인리히의 이야기는 '성장 소설'이라는 장르가 무색하게 암울하다. 하인리히에게 교훈을 주는 사람이나 사건은 정말 많았다. 하지만 그 교훈이 하인리히의 내면에 완전히 배어들지는 못했다. 마치 자기개발서를 읽고서 '내일부터 이렇게 살아야지!'라고 결심했던 것이 책을 덮음과 동시에 사라지는 것처럼 된 셈이다. 사람은 인생을 통째로 뒤흔드는 사건이나 만남을 겪지 않고서야 근본이 통째로 변할 수는 없다. 하인리히의 방황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하지만 방황 중에 하인리히가 배우는 것이 있었다. 신에 대한 믿음을 잃어가던 대신 자신의 의지에 대한 믿음이 강해진 것이다. 분명 세상은 하인리히가 원하는 그대로 풀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하인리히는 끝없이 어떤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매달린다. 화가의 꿈을 포기한 것은 물론 아쉬운 일이다. 대신 하인리히는 여러 사람들과 부대끼며 인간사에 대한 관심을 가졌고, 이 새로운 관심이 새로운 꿈이 되었다. 하인리히는 재능이 실제로 부족했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자신의 분야에서 도망친 것은 아니다. 하인리히는 자신의 관심이 그림에 있는 동안에는 끝까지 그림을 그렸다. 그러다 나중에 인간사에 눈을 뜨며 관리라는 새로운 목표를 찾았을 뿐이다. 작중에서 하인리히를 격려하는 말로 이런 말이 나온다. "단념도 우리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해야 하오. 여우가 포도를 단념하는 식은 안 된단 말이외다!" 하인리히는 자신의 의지를 처음에 꿈꾸던 분야에 쓰지 못하므로 덜 행복하다. 이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자신이 새로 선택한 길에 부끄러움은 없으리라 본다.
하인리히는 처음의 것보다 훨씬 작은 새로운 꿈을 이루며 막다른 길로 접어드는 듯했다. 하지만 임지에서 운명의 장난처럼 옛 연인을 만난다. 둘은 이전의 행복했던 모습과 슬픈 이별을 고스란히 기억하면서도, 지금까지의 길보다 앞으로 걸을 길을 바라보기로 결심한다. 하인리히의 연인 유디트는 신의 제단 앞에서 이렇게 맹세한다. "지금 우리도 여기 신의 제단에서 세상에서 흔히 행복이라고 부르는 그런 행복을 받을 수 있어. 남편과 아내가 될 수 있을지도 몰라! 하지만 우리 왕관을 받지 않기로 해. 우리 그런 왕관은 포기해. 그 대신 지금 이 순간에 우리에게 넘쳐흐르는 이 행복을 확실하게 붙잡기로 해. 내가 느끼기에는 당신은 지금도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것 같아!" 비록 처음 생각한 것과 다르더라도, 자신의 의지가 지금 향하는 곳으로 발걸음이 향하고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행복한 것이다. 하인리히가 그간 견습 화가로 걸었던 길은 헛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길을 자기 의지로 걸었고, 지금 걷는 길도 자기 의지로 걷고 있다. 하인리히의 의지는 끊기지 않았으니 그것만으로 충분히 의의가 있으며, 박수받을 만하다. 지금까지 사랑했던 것들과는 가슴 아픈 결별을 겪더라도, 지금 내 마음이 이끄는 곳으로 최선을 향해 달리면 당장은 행복할 수 있다. 그렇게 길을 걷다 보면, 인생을 돌아볼 때 굴곡이 다소 있더라도 행복했노라고 말할 수 있으리라.
나는 「초록의 하인리히」를 읽는 동안 하인리히와 한마음이 됐다. 하인리히가 좌절할 때는 함께 좌절했고, 하인리히가 실낱같은 희망을 붙잡을 때는 나도 함께 기뻤다. 하인리히가 화가의 꿈을 체념할 때는 정말 참담한 심정이 됐다. 나는 하인리히로부터 내심 역경을 딛고 꿈을 이기는 주인공의 모습을 기대했지만, 결국 하인리히도 나처럼 평범한 인간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점까지 나와 닮았기에 하인리히의 심정에 더욱 공감할 수 있었다.
하인리히는 예전의 꿈이 아니라 지금의 꿈에 충실하기로 다짐한다. 나도 어쩌면 생명과학에 부질없는 미련을 품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인리히는 끝까지 미술을 사랑했으며, 나도 여전히 생명과학을 사랑한다. 분명 내가 꿈꾸는 그대로 살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꿈과 현실 사이에 내가 발견하지 못한 샛길이 있을 것이다. 하인리히에게 그 샛길은 인간과 자연을 두루 관조할 수 있는 관료의 삶이었다. 나의 샛길은 무엇일까? 아직은 모르겠다. 하지만 생명에 대한 나의 사랑을 품고 다른 길로 갈 수 있다는 점을 배울 수 있었다. 나는 「초록의 하인리히」 덕분에 새로운 길을 탐색할 의지를 얻었다. 만약에 새로운 길이 내가 꿈꾸던 생명과학자의 길과 아예 방향이 다를지라도, 지금 내 마음이 그곳으로 이끈다면 나는 기꺼이 따르겠다. 미련이 된 옛 꿈이 아니라, 충실한 삶을 위한 나의 의지를 따르고 싶다. 어느 곳에서든 최선을 다한다면, 비록 눈에 띄는 성공은 얻지 못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행복을 느끼리라 믿는다.
마지막으로 작가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다. 사실 하인리히는 가상 인물이 아니다. 「초록의 하인리히」은 작가 고트프리트 켈러가 하인리히라는 가명으로 낸 자서전이라고 볼 수도 있다. 켈러도 실제로 어려서 반항아 기질을 보이다 퇴학당했고, 화가를 꿈꿨지만 미술계에서 성공하지 못해 관료로 지냈다. 인생의 황혼기에 그는 회고록처럼 「초록의 하인리히」를 낸 것이다. 「초록의 하인리히」는 분명 놓친 것들에 대한 암울한 심정이 묘사돼있지만, 그 틈새에 조그마한 행복들이 있다. 그 행복들이 켈러가 삶을 완주하게 만든 동력원이었다. 켈러는 풍경화 자체 대신 풍경화처럼 아름다운 문장으로 독자에게 시각적 심상을 일으킨다. 그는 끝까지 예술가였다. 나도 앞으로 내가 어떤 길을 걸을지 알 수 없다. 켈러도 자신이 관료의 길을 걷다가 말년에 소설로 '스위스의 괴테'라는 칭호를 얻으리라 예상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당장 필요한 것을 취하며 당장 갈 수 있는 길을 자기 의지로 걷다 보니 훌륭한 사람이 됐다. 그의 행로를 존경한다.
작중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문제는 마음의 평안을 잃지 않는 권리인데, 이것은 명상과 연구의 결과일 수도 있소. 게다가 인간은 날마다 새로운 지식을 습득한다오. 그러니 어느 누구도 인생의 황혼에 무엇을 믿게 될지 확실하게 예언할 수 없소. 그런 이유에서 우리는 모든 방면에서 양심의 절대적 자유를 요구하는 거외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미지의 자연법칙이나 하늘의 새 별을 발견할 때와 똑같은 편안하고 안정된 마음으로, 다시 말하면 무슨 일에 직면해도 태연자약하게 늘 변함없는 태도로 정신생활의 발전과정과 결과까지도 받아들이고 관찰해야 하오. 그럴 때는 인류 전체가 태양빛 속에 서서 '나 여기에 있노라'라고 말할 수 있소. 세계는 이런 경지까지 도달해야 한다오." 무명 화가였던 켈러는 만년에 그림 대신 「초록의 하인리히」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나도 이 문장의 가르침을 받아들여, 내 자유의지를 믿고 내가 당장 갈 수 있고 내가 당장 가고 싶은 곳을 찾아 모험을 해보아야겠다. 내가 나중에 무엇이 돼있을지는 도무지 알 수 없지만, 일단 내 발로 되는대로 걸어보리라.
...... 1848~50년 스위스의 정부 장학금으로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공부했으며, 여기서 철학자 포이어바흐의 영향을 깊이 받았다. ...... 포이어바흐의 영향이라면 어떤걸 들 수 있을까 몰라. 검색해 본 것이고 전에서부터 왜 어떤 면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건지 궁금했는데
`유년의 하인리히에게 신은 학교에서 선생들이 벌을 내릴 때 드는 근거일 뿐이었고, 실제 삶을 도와주지는 않았다. 결국 하인리히는 학교생활에 어울리지 못하는 대신 자연의 아름다움을 깨닫고, 하얀 캔버스 위에 자연의 섭리를 그대로 반영하여 세계를 새로 창조하는 풍경화가를 꿈꾼다.' 저렇게 나와 있긴 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