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돌이킬 수 있어요


나아질 수 있어요


함께할 수 있어요


당신이 살아있다면!


한 줄 요약

하지만 작가는 혼자라서 못하죠?




문목하의 이 작품을 읽게 된 이유는 이 작품에 대한 평가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무조건 끝까지 봐라' '사랑 없이 사랑을 표현한 작품' '반전이 얼얼하다' 등등의 예사롭지 않은 평가, 출판사도 역주행한다고 좋아서 홍보에 열심이고, 실제로 리디 셀렉에 등록되자마자 한국소설 인기순 1위를 찍어서(지금은 밀렸지만) 흥미가 동했다. 물론 이 흥미는 고전 읽을 때의 기대감과 전혀 다른 종류이긴 했다.


리디 셀렉트에는 아예 소개 만화가 그려졌는데(요즘 네웹에 프롤로그랑 별개로 소개만화가 따로 그려진 거랑 비슷하다) 그것도 보고, 여기에 리뷰 딱 하나 있는 것도 참고해서 큰 기대 없이 적당한 방향만 잡고 읽었었다. 근데 리디 셀렉으로 749페이지라서 예상치 못하게 내가 여태 읽은 국내 작가 소설 중 가장 긴 분량의 소설이 되어버렸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독갤에 독중감을 그래서 역대급으로 자주 남겼음... 마음 같아선 며칠 안에 호로록 읽어버리면 그만인데 그러면 내 뇌에 과부하가 걸리는지라.


어쨌든 소설을 다 읽은 시점에서 말하면 그렇게까지 욕할 작품은 아니면서도, 동시에 그렇게까지 칭찬할 작품도 아니다. 겉절이 장르소설 중에선 서사도 나름 뚜렷한 편이고(중반까진 없는 거나 다름없긴 했어도), 반전도 자주 나오는 데다가 허투루 쓴 건 하나도 없는 점에서 상당히 호평할 만하다. 괜히 "무조건 끝까지 봐라"라는 말이 있는 건 아니었다. 전반부가 답답하긴 해도, 후반부에 전부 풀어준다는 점에서 작가가 이야기를 꽉 쥐고 있다는 인상은 확실히 강하다.


다만 문제라면 허투루 쓰지 않았다고 해서 잘 쓴 건 아니라는 점이다. 사실 허투루 쓴 것도 좀 있음. 가장 문제되는 게 횃불 묘사고...... 허투루 쓰지 않은 건 어디까지나 서사와 전개, 반전 등 큰 줄기에서 잔가지들까지 잘 챙겼다는 의미지, 세부 묘사에서까지 꼼꼼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큰 줄기를 구성하는 문단, 문장 단위로 살피면 허투루 쓰지 않은 수준이 아니라 쓸 것도 안 쓴 것 같다는 인상마저 강하다. 이건 반전 활용에서 진짜 비판 받을 지점이기도 하다.


이 작품의 장단점+호불호를 정리하면 대충 이렇게 볼 수 있을 듯하다.


장점

1. 짜임새 있는 서사와 구조, 그리고 반전

1-1. 을 긴 분량에 걸쳐서 놓치지 않고 무너뜨리지도 않음.

2. 감정 과잉(신파)을 막는 문장(문체)

3. 작중 인물의 심리나 설정 등이 '대부분' 설명이 됨


단점

1. 전반부, 곧 분량의 절반을 빌드업에 소모

2. 너무 늦게 나오는 작품의 방향성과 주인공의 목적

3. 떡밥, 암시가 거의 없이 툭 튀어나오는 반전과 수습하듯 후술되는 설명과 개연성

3-1. 작가편의주의적 전개와 설정

4. 비논리적, 비과학적인 묘사

4-1. 시간과 관련한 비직관적인 묘사

5. 삼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빌런 조형

6. 성급한 결말


호불호

1. 웹소 많이 봤으면 기시감이 많이 들 수 있음

2. SF 좋아하면 화딱지 많이 날 수 있음

3. 트위터 감성이랑 잘 맞음(실제로 트위터 인기 픽임)



뭐 이정도?


장점에 대해서 먼저 얘기하자면, 내가 아직 겉절이 장르작가를 많이 읽지 않아서 뭐라 말할 수 없긴 함. 그래도 정세랑, 김초엽, 천선란 같은 작가가 쓴 장르소설에 비하면 확실히 '짜임새 있게 쓰고' '허투루 쓴 게 없다'는 다른 작가랑 차별되는 좋은 지점이라고 생각함. 전반부 빌드업 구간만 넘기면 후반부에는 반전이 계속 터지고 주인공의 목적도 나오고 서사의 방향성도 확실히 잡혀서 이야기가 클라이막스를 향해 간다는 느낌을 줌. 마지막까지 놓치는 것 없이 다루는 점에서 작가가 이야기를 꽉 쥐고 놓지 않는다는 인상도 들고.


인물들도 저마다의 이야기를 부여해 개성을 가지게 하고, 그 인물들 역시 저마다의 이유로 움직이고 있다는 인상을 받게 한 것 역시 좋았음. 겉절이에서 인물은 작가의 대변인이거나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을 위해 쓰이는 장기말이란 인상이 있는데, 이 작품에선 작가의 얼굴이 딱 한 번 드러난 거 빼면 거의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음. 물론 그와 별개의 이유로 작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서술은 있지만(단점에서 언급할 예정...), 어쨌든 서사랑 큰 줄기만 놓고 볼 때 나쁘게 평가할 만한 부분은 잘 없긴 함.


무엇보다 전반부에 작위적으로 느껴지거나 부족하다고 느낀 것들이 후반에 다 반전을 통해 설정이 풀리거나 설명이 된다는 점이 호평이라면 호평. 이건 단점이기도 한데, 나중에 다루기로 하고, 또 다른 장점은 간결체 문장인데, 폼 잡지 않으려는 게 핵심임. 서사가 서사라 자칫하면 감정 과잉으로 갈 수 있는데, 그런 일 없이 꾸준히 작품 내의 페이스를 유지함. 물론 이 문장(문체) 역시도 단점이기도 해서 나중에 다룸...


중요한 건 웬만한 설정과 인물, 전개에는 '이유'가 있다는 것이고, 그게 작중에 다 드러나서 너무 한 장면에 매달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7챕터 이해하려고 몇 번 돌려봤는데 10챕터에서 깔끔하게 설명하는 거 보고 살짝 허무해지긴 하더라.


이런 장점들은 분명 겉절이에선 좀체 볼 수 없던 것들이라 호평할 만하지만...... 동시에 그렇기에 더욱 두드러지는 단점들도 있었음.


대표적인 게 전반부의 지루함. 분량의 절반을 반전을 터트리기 위한 빌드업에 쌓는데, 이 빌드업 과정은 자칫 보기에 작위적이기도 하고 이해하기 힘들거니와, 반전에 대한 눈곱만큼의 떡밥도 암시도 없이 전개된다. 거기에 설정이 무엇 하나 제대로 풀리질 않고, 370페이지의 분량 속에서 설정 푼 페이지는 10페이지도 안 될 만큼 적음. 제일 큰 문제는 370페이지 내내 주인공 윤서리의 목적이 정확히 뭔지 제대로 나온 게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난 전반부 읽는 내내 이게 뭘 위한 이야기인지 갈피를 못 잡았음.


물론 이런 문제는 후반으로 넘어가면 반전이 풀리기 시작하면서 해소된다. 다만 반전이 한두 개가 아니라 꾸준히 정보가 풀리는데, 이 모든 걸 두괄식으로 풀어버린다. 일단 정보(반전)부터 풀어버리고, 그게 왜 나와야 하는지를 나중에 푸는 식이다. 전반부 끝자락에 등장하는 반전도 사실 전반부 읽던 입장에선 "이게 왜 지금 나와야 하는 반전이지?"라고 의아했다. 요컨대 이 작품의 기본 골자가 "일단 끝까지 읽어."를 강요하는 꼴이다.


솔직히 몇 반전은 그 앞선 장면에서 몇 줄만 추가해줘도 독자가 단순히 작위적이거나 이상하다고만 느끼지 않고 "뭔가 있구나"하고 기대를 품게 할 수도 있는데, 그런 거 없이 뜬금없이 반전을 제시한 뒤 "사실은 이렇습니다"를 풀어버린다. 순진하게 읽으면 작가가 반전을 터트릴 때마다 "헉! 난 그런 줄도 모르고ㅠㅠ"겠지만, 지루함에 몰입할 수 없던 나로선 반전이 무슨 앞선 전개를 수습하듯 나오고, 그 반전을 수습하기 위해 이래저래 설명을 또 덧붙이는 구조처럼 보였다.


사실 서사 자체도 "주인공이 자기가 벌인 일 수습하려고 똥!꼬쇼함"이라고 요약해도 돼서 어찌 보면 서사와 일맥상통하는 구조...겠지만? 두 번 읽고 감탄할 만큼의 역량은 못 돼서 좋게 평가할 일은 없을 듯. 그리고 '수습하듯' 반전과 설명이 튀어나오기 때문에 몇 설정과 전개는 그냥 작가가 '내 세계는 이래!'라고 먼저 외쳐버리고 진행하는 것 같단 인상마저 든다. 작가가 그렇다고 해버리니 태클 걸 마음도 거의 없지만(안 걸 수 없는 건 빼고), 그게 재미를 보장해주지는......


그리고 또 서형우가 섹션의 수장이 된 과거는 솔직히 진짜 편의주의 전개의 끝판왕이라고 생각했지만, 이건 각자 받아들이기 나름이니......


서형우 얘기한 김에 말하면 인물 묘사도 결국 겉절이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게 아쉬웠다. 겉절이 장르소설은 빌런, 안타고니스트, 대립역, 반동인물들을 너무 형편없게 설정하는 경향이 짙다. 내가 겉절이 장르소설을 다 읽은 건 아니니 확정해서 말하진 않아도, "매력있는 악당"은 겉절이 장르소설에 없다고 말해도 반박할 만한 작품이 얼마나 나올까? 일단 내 머릿속엔 김필산의 책이 된 남자 말고는 딱히...... 작중에 나온 최주상조차 악당조차 아니게 되는 유사 세탁기 돌아가던데...... 남는 악당 서형우는 거의 전형적인 겉절이식 삼류 악당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특히 이 작품은 세력 구도가 나오고 세력의 수장들이 어떻게 관계 맺는지도 중요한 만큼 주인공과 대립하는 빌런의 중요성은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뭐...... 겉절이 특유의 빌런 퇴치 서사인 상대해주기도 아까운 놈에서 그렇게 크게 벗어나지도 않았다. 정여준이 서형우의 시간을 정지시키고 자기 죽기 전에 원없이 떠들어보자고 하는데, 바꿔말하면 지 죽기 전까진 거들떠도 보지 않겠다는 뜻이기도 하니(...)


그래서 이 작품은 인물 조형이 제대로 된 건 사실 주연 중에선 윤서리와 정여준 말고 없고, 조연 중에선 이찬이 말투 빼고 괜찮다. 그 외에 김현이, 라땅(얘는 그냥 불쌍하다), 차세욱, 차세연 등등의 조연들은 조형이라고 말할 것도 별로 없으니 패스. 주연인 최주상은 전반부와 후반부가 같은 사람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사람이 달라져서 설정으로는 납득하는데 솔직히 그게 매력이 있다고 말하기엔 좀...... 뭐랄까, 꾸준히 최주상이란 인물에 대해 설명은 많이 해놔서 머리로는 이해되지만 매력은 안 느껴졌다.


각 인물들이 가진 목적이 전부 나오는 건 좋게 보지만, 문제는 이 목적 중 제일 주요하게 다뤄질 윤서리와 정여준의 목적은 사실상 이루기 위한 전초단계만 완료하고 작품이 끝나버려서 뭐라 말할 수가 없게 됐다. 그러니까 사실 이 작품은 용사가 마왕을 제거하려고 동료를 다 모은 후에 "우리들의 모험은 이제부터야!"라고 말하며 끝나버린 거랑 똑같다.


에필로그에 적어도 '윤서리와 정여준은 섹션의 윗선, 곧 초능력자의 존재를 세상에 밝히고 이들을 괴물과 테러리스트로 몰고 가는 세상의 악의에 맞서 열심히 생존과 화합, 공존을 위해 투쟁하고 있다'라고 말해주면 좀 날림 결말 같아도 그럭저럭 열린 결말로 받아들일 수 있었지만...... 그것도 아니라 주인공의 궁극적 목적은 이뤄지지 않고 작품이 끝나버렸다. 물론 혹자는 주인공의 목적은 정여준이 사는 미래를 만들어내는 거라고 할 수 있고, 그게 이뤄졌으니 작품도 끝이 난 거라고 할 수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윤서리가 서형우에게 분노한 건 정여준의 죽음과는 거의 무관하며(관련이 아예 없진 않지만), 정여준을 살리고자 하는 것 역시 단순히 정여준에게 반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리고 서형우 역시 흔한 클리셰처럼 '거대한 악의 일부'라는 것이 드러나고 그 '거대한 악'이 윤서리와 정여준 무리를 제거하기 위해 움직이려 한다는 서술까지 등장시킨 이상...... 그걸 좀 결말에 다루면 어디 덧나나? 싶다.


바꿔말하면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라는 식의 결말을 내기엔 신혼집에 시한폭탄이 멀쩡히 작동하고 있는 격이다. 그걸 제거하든지, 제거하려고 한다는지 묘사는 넣어줘야 안심하고 결말의 기쁨을 누릴 수 있을 텐데, 그런 거 없이 그냥 휙 끝내버리니 이야기가 너무 빨리 끝나버렸단 인상만 남는다.


사실 이런 문제들은 장점과 호불호의 영역에서 얼마든지 커버할 수 있다. 쉽게 말하면 애정으로 좋게 봐줄 수 있는 영역들이다. 나도 그래서 다 읽고 나니까 엄청 심하게 깔 마음은 들지 않았다. 딱 하나 빼고.


이 작품이 SF로 분류되는 문제는 차치하고서, 이 작품이 가지는 가장 큰 문제는 설정과 설정을 묘사하는 데 있어서 간단한 사고실험조차 안 하고 설정에 대한 이해 역시 떨어지는 묘사다. 전자는 작중에서 계속 활용된 '불꽃 정지'를 이용한 횃불 활용의 문제고, 후자는 '시간 정지'와 관련된 비직관적인 묘사와 작가편의주의적 설정의 문제다.


이 문제만 없었으면 이 작품은 그냥 호불호 좀 갈리는 무난한, 겉절이 중에선 ㅅㅌㅊ인 소설로 남았을지 모르지만...... 차라리 판타지였으면...... 아니, 사실 이 문제는 '분류의 문제'로 넘어갈 게 아니다. 이 작품이 SF가 아니라 판타지라고 했다면 비판의 강도를 살짝 낮출 수 있어도 비판 자체를 없애지 못한다. 작가가 사물과 현상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갖추지 못했다는 건 판타지로 넘어간다고 해결되는 수준이 아니다.


대표적인 불꽃 정지는 작가가 '창의적인 능력 활용'이라 생각해서 자주 넣은 건지 몰라도 꾸준히 등장하는데...... 대충 원리가 이렇다.


1. 파쇄자(부수기만 하는 초능력자)가 공중에서 불꽃을 일으킨다.

2. 정지자(멈추기만 하는 초능력자)가 불꽃을 공중에 정지시킨다.

3. 정지된 불꽃의 빛이 등불처럼 활용된다(?)


1번과 2번은 사실 초능력자들이 하는 일이니까 태클 걸 구석은 없다. 물론 이 초능력도 미지의 물질이 일으킨 미지의 현상이라고 말하는데, 슈퍼 거미에게 물려서 거미줄 쏘는 것보다 설득력 떨어지는 설정이니까 무시해도 된다. 어차피 작중에서 진지하게 다뤄지지도 않고 뭐 하나 제대로 밝혀진 것도 없는 무의미한 설정이다. 중요한 건 1번과 2번의 결과물인 3번이다. 3번은 초능력이 개입하지 않은 현상인데...... 왜 가능하지???


불꽃을 정지시켰다. 에너지 현상을 정지시켰다.....에서부터 이미 많은 태클을 걸어야 할 것 같지만, 아묻따 초능력이니까 일단 정지했다고 하자. 근데 작가는 불꽃을 무슨 물질로 생각한 건지, 불꽃을 정지시켜도 빛이 나온다! 내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묘사라 처음엔 넘겼는데, 다시 보니까 이게 무슨 해괴한 서술인가 싶어서 여러 번 돌려봐도 마찬가지다. 불꽃을 정지시켜서 횃불을 만들어 주위를 비추는 묘사다.


이건 SF가 아니라 판타지여도 욕 먹는 묘사다... 문목하의 우주는 불꽃이 정지해도 빛을 내뿜는...... 그러니까 영구동력을 완성시켰다는 말인가...? 사실 복원자(날아든 물체를 원상태로 돌리는데 묘사를 보면 엔트로피 역전이 아니라 그냥 궤적을 역주행시키는 새로운 운동이다) 설정도 그렇고 작가가 이걸 정말 'SF'라고 생각해서 썼는지 의심스럽기 그지없는 묘사들이 한가득이다.


불꽃을 정지해서 등불로 써먹는다...... 차라리 공중에 불꽃을 일으키는 초능력이라고 하면 태클 걸 것도 없다. 그냥 초능력이 그런 거니까. 하지만 이건 굳이 굳이 굳이 현대 물리법칙을 교묘하게 이용해먹는 '척'을 했다. 그럼 적어도 초능력의 명제(사물, 에너지를 부수거나 멈추거나 돌려놓음)를 제외하면 나머지 현상은 현대 물리법칙 안에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이 문제는 초능력 설정 문제에서 더욱 심각해지는데, 처음에 초능력 기원을 설명할 땐 뭔가 미지의 물질이... 미지의 물질을 합치려다가 사고로... 뭔가 미지의 힘이... 하면서 어떠한 원리가 있는 듯하더니, 나중에 가면 그냥 대놓고 '살아있는 사람은 못 건드림' '시간도 정지시킬 수 있음' '시간도 정지시킬 수 있으면 부술 수도 있음' '시간도 복원시킬 수 있는데 내 정신은 그대로 옮겨감' 등 그냥 판타지 설정집이다. 초능력 설정들은 과학적인 설명을 하려는 시도조차 없다. 그래서 중반부터 SF라고 생각하지 않고 읽었다.


특히 윤서리의 회귀 능력과 회귀해서 정여준이 사는 미래를 만들어내려는 똥@꼬쇼 서사는 루프물 특유의 서사랑 너무 닮았고, 회귀 자체도 웹소에선 줄기차게 우려먹는 거라 전혀 특별하지도 않은 게 문제라면 문제. 차라리 이런 루프를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써먹는 건 네이버 완결 웹툰인 '수요웹툰의 나강림'이 비교가 실례일 정도로 뛰어나다.


정여준이 가진 시간 정지에 관한 묘사도 그냥 작가편의주의적인 설정의 끝판왕이다. 사실 여느 시간 정지 능력자 묘사들은 엄밀히 따지면 과학적 고증이 안 된 거고, 이 소설도 그를 착실히 따라간다고 할 수 있다. 어쩔 수 없는 편의적 설정이라고 넘어가도 된다. 그걸 감안해도 '자기 시간만 정지하고 외부 시간은 풀어줌' '특정 대상의 시간만 정지' 같은 건...... 시공간이라는 단어를 쓰는 작가가 쓸 설정인가? 아, 물론 시공간에 대한 개념도 그냥 '시간과 공간'이라는 의미로 썼을 수 있다. 그래보이기도 하고.


굳이 초능력 하나 쓰자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공부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윤서리의 시간 복원(사실 회귀)은 그냥 루프물이니까 넘길 수 있어도 정여준의 시간 정지나 나중 가면 최주상은 시간 파괴(정지된 시간에서 움직일 수 있음)는 물론이고 나중가면 평행세계도 파괴해서 통로를 만들어 드나들기까지 한다. 여기서 잠깐 이게 판타지였단 걸 까먹고 뇌정지가 왔었다.


초능력을 사용하는 묘사를 보면 작가가 얼마나 '사실적'으로 묘사하기보다 '개념적'으로 묘사하려는지 알 수 있다. 시간 관련 묘사는 비직관의 끝판왕이라 나중에 설명해주길 믿고 넘겨야지 무턱대고 이해하려면 뇌정지 온다. 이게 절대 SF일 수 없는 이유기도 하다. 판타지여도 사실 욕 먹는 메리수/편의주의적 설정이 남발되는데 이게 하필 또 분류가 SF라서ㅎㅎ


이 작품의 장르가 짬뽕탕인 건 좀만 읽어도 알 수 있지만, 적어도 SF만큼은 절대 아니다. 분류는 SF지만 이걸 왜 SF로 분류해야 하는지 나는 도저히 납득을 못하겠다. SF에 초능력이 나와서 SF가 아니라고 하는 게 아니라, 기초적인 현상조차 제대로 기술하지 못하고 설정에 과학적인 설명 하나조차 붙이지 못하는 소설이 어떻게 SF인지 모르겠다는 입장이다. 초능력? 있을 수 있다. 하인라인 소설만 보더라도 초능력은 잘만 나오고, 아시모프도 로봇 주제에 거의 초능력에 가까운 능력을 지닌 게 아이, 로봇에서 나온다.


문제는 그걸 논리적이고 과학적으로 풀어내느냐다. 이 작품은 그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초능력의 기원을 그럴싸하게 풀어내기라도 했나? 미지의 물질이 미지의 현상으로 미지 미지 미지... 초능력으로 인한 현상을 과학적으로 다루기라도 했나? 불.꽃.정.지. 초능력에 대한 설정이라도 논리적인가? 아무튼 살아있는 사람 상대로는 적용이 안 됨. 시간을 복원(회귀)하지만 내 정신은 과거로 돌아가지 않음.


이런 점에서 이 작품은 차라리 이런 판타지적인 설정을 싹 걷어내고 현대스릴러로 썼다면 얼마나 호평받았을까 궁금하다. 괜히 판타지적인 설정 끼워넣어서 평가를 깎아먹다니...... 하지만 또 서사는 이런 판타지적 설정을 활용한 서사라......


그래도 감성은 트위터 감성 확실히 잡는 쪽이라 이런 설정의 정합성을 따지지 않거나 가볍게 여기는 사람들은 이런 문제가 대두되지 않으니 앞서 말한 대로 장점과 호불호로 단점을 상쇄하고도 남을 것이다. 그러니 잘 팔리고 인기도 좋고 역주행도 달릴 저력이 있는 것이겠지.


하지만 내 취향은 아니었다. 솔직히 특별한 반전도 없었고, 기시감으로 가득한 서사와 설정, 그 기시감조차 부끄럽게 만들 처참한 모순과 오류, 갑툭튀 반전과 수습하는 전개, 조악한 빌런 조형과 열악한 대사 센스(길게 말할수록 수준이 떡락한다) 등등...... 좋게 말해준 것도 겉절이니까 겉절이 내에서 좋게 말해준 거지, 이걸 재밌게 읽었냐고 하냐면 당연히 X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