될 수 있는 한 우리가 사고를 하는 언어로 친한 친구에게 편지를 쓰듯이 자신의 생각을 써내야만 한다. 어
떤 식으로든 자신의 생각을 감춰서는 안 된다. 극 중 인물의 삶이 그들의 말에 힘을 부여하듯 삶은 생각에
힘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중략)
그때부터 나는 쭉, 삶에서 닥치는 감정들을 더 아름답게 만들려고 변화시키는 일 없이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가지고 글을 쓰려고 노력했다. -135
나는 일반화를 아주 많이 했고 그것을 부끄러워했다. (중략) 나는 책 읽기를 거부했고, 심지어는 일반화를 부추기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거부했지만, 모두 소용이 없었다. 나는 어린 시절처럼 기도했다. (중략) 어떻게든 나의 상상
력이 추상성에서 벗어나기를, 초서의 상상력이 그랬듯이 삶에 몰두하게 되기를 기도하기 시작한 것이다. -248
-예이츠<자서전>, 이철 역.
예이츠 자서전에서 메모한 것. 시론으로 삼기에 좋을 것 같다.
누구나 시를 쓸 수 있다. 시를 전혀 모르는 이도 한 번쯤은 시를 쓸려는 강렬한 유혹을 받는다. 뛰어난 것은 드물다.
망망한 바다 같은 시 세계에서 쓸만한 것을 건지기는 쉽지 않다. 오죽하면 옛 철학자가 "당대에 시인은 한 명이면
족하다' 라고 했을 까. 니체는 <비극의 탄생>에서 쓰기를 천재적 시인은 '자연적'이라고 했다. 반면 평범한 이들은 추상적
표현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조롱한다. 평범함이 넘치는 세계에서 뛰어난 것은 저 높이 솟은 롯데타워처럼 사방에서 보이기
마련이건만 좀체 눈에 띄지 않는 것은 그만큼 시라는 세계가 넓고, 또한 독자로 하여금 그것을 가려낼 안목을 시험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예이츠가 쓸만한 관점을 제시했다. 작품에서 일반성을 추출하려는 성급한 태도를 버리고 작품 속에 드러나는 한
개인을 전적으로 바라보라는 것이다. 그러면 작가의 삶에 따라서 작품의 질과 경향도 달라진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솔직한 감상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위대한 작가도 똥을 싼다. 헤밍웨이나 도스토예프스키, 셰익스피어, 괴테같은 문호들도
진부한 작품들을 썼고, 어떤 것은 너절하다. 결코 선입견이나 외평에 현혹되서는 안 되며, 자기의 눈으로 보고 느끼고 솔직해져야
뛰어난 것들을 체득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예이츠 눈빛이 게이 같다고 하면 실례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