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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식자』는 parasite라는 단어가 가지는 다의성에 주목하고 구심점으로 삼음: 식객, 기식자, 기생생물, 잡음, 기식음, 소음⋯

세르의 논의를 거칠게 구분해보면 다음과 같음

a. 기생/소음의 침입으로 야기되는 기식 관계의 연쇄는 시스템 내부에서 일어나는 미세한 변화를 통해 종국에는 자가붕괴를 초래함

b. 기생/소음의 침입으로 정보와 자원의 의미가 변형되어 새로운 질서와 구조가 태어나며, 전체 시스템의 동적 균형을 유지하는 기제로 작동함



세르는 기생/소음을 종래의 직선적 흐름을 방해하는 오류로 바라보는 대신, 그 자체로 비선형적 흐름을 야기하는 창조적인 측면에 주목함

기생자가 시스템에 침입해 자원을 빼앗는 행위는 처음에는 소규모의 변화로 보일 수 있지만, 피드백 루프를 통해 증폭되어 일종의 나비효과를 일으키기도 함

네트워크 이론의 개념을 이용해보자면, 특정 노드에서 발생한 변화가 단순 그 노드에 머물지 않고, 연결된 다른 노드들로 확산되는데, 이 과정에서 정보나 자원의 흐름이 '역류'하며 정보의 전파는 물론 네트워크의 구조까지 변화시킬 수도 있다는 것



이를 세르는 정합적인 논증을 통해 명료한 결론을 내리는 대신 '보다 고전적인' 수법을 사용함

마치 플라톤이 이데아를 설화로, 루크레티우스가 원자론을 시로, 몽테뉴가 내적 성찰을 수필로, 디드로가 유물론을 대화체 소설로 풀어내듯

세르는 라 퐁텐의 우화, 루소의 일화, 몰리에르의 희곡, 플라톤의 문헌, 유베날리스의 풍자시 등을 통해 산개된 개념과 이미지를 계열로 엮어내고 에워쌈

(닫힌 체계, 주인, 쓰여진 텍스트, 반복, 포함, 신 // 침입, 기식자, 행간, 기생, 소음, 교란, 창조, 목소리, 성령, 배제, 악)



세르는 위대한 시는 기하학적 정합성을 지니고, 위대한 수학 공식은 시적 아름다움을 품었다고 주장하며 '사이'의 사유를 강조함

그러면서 자신을 혼혈, 혼합, 그리고 모호함(floue) 등으로 표현함 - 모호함이라는 표현이 책의 핵심이 아닐까 생각함

『기식자』의 구절들을 가져와보면:


악마인가, 하느님인가? 배제인가, 포함인가? 테제〔정〕인가, 안티테제〔반〕인가? 대답은 하나의 스펙트럼이고, 무리이고, 연속체이다. 우리는 소속의 질문들에 대해 더 이상 긍정이나 부정으로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안쪽인가, 바깥쪽인가? 긍정과 부정 사이에, 0와 1 사이에 무수한 값들이 나타나고, 따라서 무수한 대답들이 나타난다. 수학자들은 이러한 새로운 엄격성을 모호하다(floue; fuzzy)라고 명명한다. 모호한
〔퍼지〕 부분 집합들, 모호한〔퍼지〕 위1상(位相) 같은 것 말이다. 그들에게 감사해야 한다. 우리는 수천 년 전부터 이러한 모호함이 필요했다. 우리는 그것을 기다리면서, 우리의 경직된 논리와 거친 개념들을 가지고 권투 글러브를 끼고 피아노를 치는 느낌이 들었다. 마침내 우리의 수단들은 세련되고 다양화되고 있다. 이제부터 나의 책은 엄격하게 모호하다. 기하학은 정밀함과 화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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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제3자 자체이다. 그것은 둘 사이에 있는 3자이다. 정확히 그는 포함된 제3자이다. 그것은 언제나 지식과 무지 사이에 있는 중간이다. 그것은 빈곤에도 풍요에도 있지 않고, 죽음에도 불멸에도 있지 않다. 그것은 모호함의 논리가 지닌 법칙들 속에 불명료하면서도 엄밀하게 놓여 있다. 그것은 거처가 없이, 문 가까이 문턱의 모호함 속에 거주하고 있다. 그것은 제3자이고, 배제되면서도 포함된 세번째 인간이다.



세르가 기식자의 계열에 가중치를 두고 있지만, 악마라는 상징에서 알 수 있듯 마냥 기생/소음에 무한한 찬사를 보내는 건 아님

분쟁이 있고, 살육이 벌어지고, 전염병이 퍼지고, 배반과 협잡이 침식하고 있으며, 비참이 배회하고, 허풍선이들이 호의호식하는 역사와 지금 매 순간을 의식함.

세르가 여러 차례 사상적 친밀성을 표한 들뢰즈의 문구를 빌려보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의 매끈한 공간만으로도 충분하다고는 절대로 믿지 말아라"


『기식자』는 한술 더 떠서 책의 최종장에 가장 나쁜 정의(La définition la pire)라는 이름을 붙이고, 마지막 단락에서 『기식자』를 악의 책으로 규정함:


지옥의 범람이고, 역사의 넘침이다. 따라서 그것은 악마이다. 아니다, 나는 악마를 기다리지 않았다. 악마가 오자, 이 책은 불에 타버린 것처럼 끝이 난다. 나는 이 책이 돌이킬 수 없이 악의 책이라는 점을 알지 못했다. 역사의 책, 악의 책 말이다. 그 악은 소리의 악이고, 지옥으로부터 찌렁찌렁하게 들리는 소리의 악이다. 그것은 굶주림, 질병, 고통의 악이다. 그것은 동물의 탈을 썼지만, 지금은 옷을 벗어 버린 인간 나체의 모습을 한 악이다. 그저 단순히 말해서 심술 사나운 악이다.



그렇지만 세르는 곧장 우울과 염세로 빠지지 않음

세르가 강조하는 바와 같이, 변화는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시스템 전체에 퍼져나가고, 그 결과는 처음 의도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형태로 나타날 수 있음

악이 도래하고 비참이 흘러넘쳐남

그렇지만, 아니 바로 그렇기에 세계는 계속됨


이를 암시하듯 세르는 이어서 마지막을 써내려감:


그는 마침내 나로부터 분리된다. 그렇게 5월의 어느 날 아침, 베네치아에서 그 끔찍한 곤충은 거슬리는 소리를 내면서 문을 통해 나의 방으로부터 천천히 나갔다.

무언가가 시작되었다.

고요하고, 차분하게, 불안 없이. 먼 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