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고 읽어주시면 ㄱ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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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종말여행>의 내용은 정말로 단순하다. 두 소녀 치토와 유리가 낡은 궤도차량을 타고 여행을 떠나는 내용, 그러한 여행 도중 치토와 유리는 다양한 것들과 조우한다. 자신이 갔던 곳의 지도를 그리는 카나자와, 멸망한 도시를 탈출하기 위해 비행기를 만드는 이시이, 마지막 한 마리 남은 물고기를 지키는 수조 관리 로봇… 그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그들의 상황이 썩 좋지 않다는 것이다. 카니자와는 자신의 영혼처럼 아끼던 지도 뭉치를 잃어버렸고, 이시이는 설계한 비행기가 추락해 탈출에 실패하였으며, 수조 관리 로봇은 어류 생산시설에 물고기가 한 마리를 제외하고는 모두 죽어버린 상황이었다. 하지만 만화는 그들의 상황을 그리 부정적으로 그리지 않는다. 어짜피 망한 세상인데 아무렴 어때. 라는 식으로 작품은 읽는 나에게 하여금 그러한 일들이 가벼운 것이라고 착각하게 만들었다. 

작품 속 치토와 유리의 모습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을 현실적인 시선에서 본다면 제대로 된 밥을 지어 먹을 수 없는 채로 고체 식량 하나에만 의존해 살아가는 피난민과도 같은 삶을 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목적지에 올라야 할 이유조차 모른 채 그냥 사람이 있을 법한 곳을 찾아 떠나는 우유부단한 여행을 떠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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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런 그들의 여정 또한 보는 입장에서 전혀 무겁게 느껴지지 않았다. 둘은 서로를 의지하고 있었다. 유리는 치토에게 든든한 기둥이 되었고 치토는 유리에게 여행에 있어 나침반 같은 존재가 되었다. 아무리 삐걱거리는 쇠파이프 위를 건너는 위험한 고행일지라도 그들은 서로에게 끈을 묶어 동시에 떨어지면 살 수 있다는 그런 단순한 생각들을 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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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들은 끝끝내 그들 여행의 종착지, 탑의 꼭대기에 도착하게 된다. 
하지만 탑의 꼭대기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두껍게 쌓인 눈과 검은 돌멩이들만이 있었을 뿐 어떤 이상적인 세계도 펼쳐져있지 않았다. 허허벌판뿐인 주변을 둘러본 치토는 후회한다. “빨리 되돌아 갔다면 우리는 살 수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들은 끝끝내 자신들을 긍정한다. 동심으로 돌아가 단순히 눈싸움을 하며 현실을 낙관한다.

비록 이 세계에 우리 둘만 남았어도
살 수 있었던 더 좋은 방법이 있었더라도
지금 우리에게는 더 이상의 삶이 없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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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토와 유리에게 살아가는 것은 최고였다.



이 장면은 작품이 전하려는 메세지를 가장 잘 나타낸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에게는 분명 좋은 일이 생기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들이 행복한 이유는 서로가 이미 서로의 삶 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평소에 나는 백합이라는 장르를 별로 선호하지 않았다. 동성애에 대한 편견적 시선을 버리지 못해, 어떤 백합물을 보더라도 그것을 사랑이라고 느낄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치토와 유리의 이야기는 달랐다. 내가 작품에서 느낀 사랑은 오히려 이성 간에도 이루어 내기 힘든 진정한 사랑이었다. 한참이나 그 이유를 생각하던 나는 이러한 결론을 내렸다. 그들의 관계가 완벽하게 보이는 건 아마 역설적이게도 그들의 상황이 절망적이었기 때문이었으리라. 작품을 읽으며 철근과 콘크리트 숲 속 삭막한 잿빛 거리를 떠도는 두 소녀의 마음이 오히려 무척이나 인간적으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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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생명에는 끝이 있다. 그들이 목격한 로봇의 끝을 보며 치토는 ‘우리에게도 끝이 있을 것이다’ 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끝이 있다는 사실은 그들의 인생을 딱히 비극적으로 만들지 않는다. 죽을 위기에 처한 그들은 자신의 인생을 다 살아낸 것에 만족한다. 그리고 서로를 껴안으며 마지막 잠에 든다.
카뮈의 <시지프 신화>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산의 정상을 향한 투쟁 그 자체가 인간의 마음을 가득 채우기에 충분하다. 행복한 시지프를 마음속에 그려보지 않으면 안 된다.‘

치토와 유리의 사랑을 아름답게 한 것은 산 정상에서의 대단한 성공이 아니라, 무거운 돌을 굴리는 도중에도 빛을 바래지 않았던 그들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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