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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감상문은 처음이네.
만화의 가치는 무엇인가? 과거부터 어린이용이라는 인식이 박힌 코믹스를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그래픽 노블이라는 이상한 이름까지 붙여가며 노력했던 만화 작가들이 나타내고자 하던 가치는 무엇인가?
<왓치맨 디럭스 에디션>을 텀블벅 사이트에서 처음 마주쳤을 때부터 시작하여 마지막 장을 덮고 감상문을 지금까지 나는 이 만화라는 매체를 소설과 다른 어떤 시각으로 바라봐야 할지 고민이다. 만화는 소설과 같은가? 그러기엔 표현 양식이 너무나도 다르다. 하지만 완벽히 다르다고 하기엔 소설의 본질과 크게 차이가 나 보이지는 않지 않은가? 현재로서의 나의 결론을 말하자면 직관적인 정신의 감흥을 주는 미술과 시대의 본질을 담는 소설의 중간에 위치하는, 미술적인 표현과 소설적인 내용이 합쳐진 예술 매체가 아닐까 한다.
만화의 가치 정의가 무엇이 되었든 <왓치맨>이라는 작품은 앞서 언급한 미술적인 면에서나 소설적인 면에서나 상당히 높은 수준을 갖춘 만화라는 것은 틀림없다. 우리가 평소에 보는 점프 만화, 네이버 웹툰 등의 대중적인 작품들과 다르게(물론 그런 플랫폼의 만화들에도 예술적이라 불릴 만한 작품들이 존재하나) <왓치맨>은 단순히 대사로 이야기를 진행시키고 그림으로 묘사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삽화의 연출을 자유자재로 구사하여 미술적인 면모를 끌어올림과 동시에 소설로서의 기능도 착실히 수행해낸다. 기존의 소설이 문장 속으로 독자를 침잠시키며 시대의 이면을 보여준다면 <왓치맨>은 그림이 그 역할을 수행한다. 뒤틀린 냉전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며 말이다.
내용적인 면모를 때어놓고 봐도 <왓치맨>의 연출은 칭찬할 수밖에 없다. 작가가 만화라는 매체에 대해 가지는 이해와 응용 능력은 작품을 읽는 내내 감탄할 수밖에 없는 요소이다. <왓치맨>에서 그림은 앞서 언급했듯이 상황 설명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림 자체의 스토리텔링 능력을 드러낸다.
만화는 서로 다른 시간대를 번갈아 보여주며 작품 내의 긴장을 끌어올리는가 하면 공통점을 가진 두 물체를 교차시키며 장면 전환을 매끄럽게 일어난다. 조나단의 아버지가 바닥에 떨어뜨린 시계의 부품들은 화성에서의 닥터 맨하탄과 오버랩되며 그가 가진 시간의 동시성 능력을 간접적으로 설명한다. 나이트 아울의 고글을 통해 보여주는 대니얼 드라이버그의 모습은 히어로로서의 그리고 평범한 시민으로서의 삶을 추가적인 설명 없이도 대조시킨다. 화성에서 로리가 향수병을 던지는 순간은 그 장 내내 팽창되어 만화 내의 일반적인 시간대와 같이 흘러간다. 만화 내의 또 다른 만화가 등장하고 이 둘은 유기적으로 엮이며 작품을 진행시켜나간다.
이전 칸에서 등장한 단어는 다음 칸에서의 단어와 연결되고 영화에서의 카메라 전환 같은 역할을 수행한다. 하나의 그림을 여러 칸에 동시에 배열하고 말풍선의 변화만 보여주어 정적인 연출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림 하나하나를 뜯어보면 <왓치맨>을 만화로서, 소설과는 다른 매체로서의 특징을 구현하기 위해 세심하게 고민한 흔적이 느껴진다.
이렇게 <왓치맨>은 미술적인 면에서 탁월함을 드러내며 다른 만화들과 궤를 달리한다. 그러나 여기서 끝난다면 <왓치맨>은 그저 스토리 있는 미술품에 불과하리라. 만화의 소설적인 면모는 <왓치맨>을 만화로서 기능하게 한다.
<왓치맨>은 소설적인 면모에서도 그 끈을 놓치지 않는다. <왓치맨>은 가상의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기본적인 골자는 양차 대전 이후의 냉전 시대이나 그 속의 세부 내용들을 살펴보면 우리가 사는 세계와는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가상의 시대에서 우리는 터무니없는 우스꽝스러워 보이기도 한 장면들을 만난다. 움직이는 마스크를 쓴 무서운 남성부터 시작하여 촌스러운 쫄쫄이를 입고 자경단 활동을 하는 사람들, 둥근 올빼미 모양의 비행선이 하늘을 나는 모습, 거대 기업의 회장이 이집트 복식을 하는 장면 등 현실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괴상한 장면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장면들을 두고 이상함을 느끼지 않는다. 물론 이는 작품 자체가 픽션에 히어로물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독서를 하기에 그렇기도 하지만 저런 설정들을 어색함 없이 받아들이게 하는 것은 바로 냉전 시대라는 배경이다.
인류의 역사는 자신들의 정신을 뒤흔드는 시기를 여러 차례 겪어왔다. 문명의 탄생이 그러했고 신화의 탄생이 그러했으며 제국이 탄생이 그러했다. 그중 현대의 우리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사건은 양 차대 전이다. 양차 대전 이후 인류는 자신들이 지키던 가치들이 무너지는 것을 목격했고 스스로의 정신이 거대한 현실 속에 내던져진 것을 감지했다. 그러나 세계대전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인류는 또 다른, 자신들의 정신을 뒤흔드는 사건을 맞이한다. 바로 냉전이다.
냉전 시대는 모순의 시대였다. 표면적으로는 과학이 발전하고 평화가 유지되었으나 그 실상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굶고 전쟁 위기가 심화되던 시기였다. <왓치맨>의 배경이 되는 이 냉전 시대는 만화 속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사람들은 쉴 새 없이 시위를 해대고 자경단이라는 이름하에 코스튬을 입은 성인들이 공권력을 대체한다. 과학의 발전은 닥터 맨하탄이라는 소름 끼치는 존재를 만들어냈으며 로어셰크와 오지만 디아스라는 사회가 낳은 정의로운 괴물이 존재하기도 한다. 사회 전반이 모순으로 가득하다.
그렇기에 <왓치맨>의 내용은 계속해서 모순과 충돌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모순이 가장 극대화되는 지점이 바로 엔딩 직전, 오지만 디아스가 자신의 계획을 실행하고 뉴욕의 인간들 절반이 사라지는 장면이다. 가장 말도 안 돼 보이는 터무니없는 작전에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했으나 그 결과는 인류의 평화가 되었다. 그저 한편의 코미디이지 않은가? 최고의 농담꾼인 코미디언조차도 질려버릴 정도의 모순 가득한 유머가 냉전 시대의 이면이었다. 코미디언은 진실을 깨닫고 공포에 질렸으나 이는 또 다른 코미디였을 뿐이다. 평화를 위해 필요했던 것은 러브 앤 피스가 아니라 커다란 한방이었다. 전 세계인들의 등골을 서늘하게 할만한.
작품의 끝에 가서도 이 <왓치맨>의 모순적인 행보는 끝나지 않는다. 진실을 알리려던 작은 괴물(로어셰크)는 전능한 신(닥터 맨하탄)에게 저지당한다. 그러나 그렇게 묻힌 진실은 작품 내에서 가장 어리바리한 존재의 우연에 의해 알려지고 이것은 둠스데이 클락으로 연결된다(물론 둠스데이 클락은 외전과 같기 때문에 진지하게 보지 않아도 된다. 다만 역시 열린 결말임에도 진실이 알려졌을 것 같다.). <왓치맨>은 냉전 시대 인간들의 모순적인 실존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왓치맨>은 뛰어나다. 이 한마디로 정리가 가능하다. 만화라는 매체의 미술과 소설의 특성을 동시에 가지는 성질을 적절히 이용하여 각 특성에서 최고의 수준을 보여주는, 훌륭한 만화의 정석과도 같다. 독자는 <왓치맨>의 그림에서 미술관 미술품을 보는 감흥을 얻음과 동시에 그 내용에서 냉전 시대의 이면을 읽어낼 수 있다. 만화의 가치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나는 주저 없이 이 작품을 꺼내들겠다. <왓치맨>이 이룩한 성과는 만화가 독자적으로 가지는 가치의 수준을 증명해냈고, 예술의 한 분야를 새롭게 확장시켰다고 나는 평가하고 싶다.
훌륭한 작품이지. 다만 그래픽노블은 역동성이 부족해서 왓치맨을 읽는 내내 불편하더라. 장면과 장면의 연결이 하나의 박자가 있는게 아니라 무슨 미술품을 병치시킨 느낌이라서...ㅜ
난 그 역동성 부족이 더 좋더라. 냉전 시대와 맞물려서 건조하고 차가운 느낌을 줘서
이번판도 번역 구리다고해서 살려했는데 거를려고
저번보단 낫지만 그래도 썩 좋지는 않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