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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루쉰의 소설들을 재미있게 읽었다. 루쉰에 대해 알아보다가 루쉰이라는 필명이 「루진」이라는 소설 속의 인물에서 이름을 따온 것임을 알게 됐다. 호기심이 일어서 「루진」을 즉시 읽었다. 작품 속 루진은 여러 사상들이 등장하며 급변하는 정세 속에서 이론에는 밝지만 실천에는 어두워 아무 변화도 일으키지 못하는 연약한 지식인의 표본이었다. 루쉰의 소설 속에서 느낀 고뇌와 똑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루진은 작중에서 처음 등장하며 허무주의자 피가소프를 완벽하게 짓밟는다. 피가소프는 모든 지식과 학문과 믿음을 공격하지만, 실상은 자신의 참담한 과거를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기 위해 객기를 부리는 것에 가깝다. 루진은 피가소프에게 동정이 섞인 반격을 퍼붓는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체계, 일반론 등에 대한 이 모든 공격은 체계와 함께 지식 일반, 학문, 학문에 대한 믿음 그리고 자기 자신과 자신의 힘에 대한 믿음까지도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특히 유감스럽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는 이 믿음이 필요합니다. 사람들은 인상만으론 살 수 없어요. 사람들이 사상을 두려워하고, 믿지 않는 것은 잘못입니다. 회의주의는 항상 무익함과 무력함이 그 특징이었습니다." 나는 루진의 지적이 정확하다고 본다. 모든 것이 헛되이 느껴진다고 해서 모든 것이 실제로 헛되다고 믿으면, 인생은 아무런 결실이 없다. 허무주의는 처참한 상황을 지각해도 바꾸는 것을 스스로 포기하는 셈이다. 믿음이 없는 삶은 일종의 이기주의다. 루진은 말한다. "인간은 자기완성을 향한 자존심이 스스로 제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도록 자신의 집요한 이기주의를 꺾어야 합니다." 불행한 상황에 스스로를 방치하지 않고 자신과 세계를 완성시키자는 루쥔의 진취적인 말에 나는 큰 감동을 느꼈다.
그런데 얼마 안 가 루진도 피가소프보다 크게 나을 것 없는 인간이라는 점이 드러나고 만다. 루진은 진취적인 사상을 갖고 있지만, 논쟁 외에는 실질적으로 하는 일이 없다. 무릇 사상을 꽃피우려면 사상을 실천해야 한다. 사상을 교육하여 주변 사람들을 감화시키든지, 아니면 사람들을 움직여 정치 운동을 펼치든지 해야 한다. 루진은 그런 단계의 실천은 전혀 하지 못한다. 루진의 행동들은 지나치게 소극적이다. 분명 그에게는 무언가를 실천하려는 의지가 있고, 그걸 해낼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루진은 자신의 열기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믿는 말이 부과하는 의무감에 의해 움직인다. 자신이 논쟁에서 주장한 사상에 어울리도록 인위적으로 행동할 뿐이다. 루진은 나탈리야에게 고백했지만 나탈리야의 어머니 다리야의 반대에 부딪힌다. 만약 루진의 고백이 마음의 불꽃에 의해 일어난 일이라면 그런 반대에 감수하고 싸웠어야 마땅하다. 실제로 나탈리야만 해도 어머니의 반대에도 항전을 택했으며, 루진에게도 그런 태도를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루진은 이 결정적인 기로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후퇴를 선언한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요? 물론 순종해야지요." 자유주의자의 말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맥없는 패주다. 루진의 패배는 루진의 특징을 알고 그를 적대시하던 레쥐뇨프가 적극적인 고백으로 사랑을 이루는 점과 비교되어 더욱 초라해진다.
루진은 무엇이 두려웠던 것일까? 가장 먼저 실패가 두려웠을 것이다. 말로는 주변의 변화를 요구하면서도, 자신이 지금 안주하고 있는 것들을 버리자니 아까웠던 것이다. 그는 다리야의 집에서 명망 있는 식객의 자리를 지키려 했다. 그러나 나탈리야와의 스캔들로 명예는 물론 입지까지 불안정해지자 그는 평소의 언변과는 달리 한없이 비겁해진다. 둘째로 그는 자신의 말과 자신의 행동이 불일치하는 것을 극도로 꺼렸다. 사상을 표현하기 위해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말에 맞추기 위해 행동을 하는 격이었다. 말이 앞서고 행동이 뒤따르니 루진은 자연히 불필요한 압박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부자연스러운 행동이 그를 파국으로 몰고 갔다.
루진은 이렇게 안타까운 단점들을 갖고 있어, 어떻게 보면 거꾸로 뒤집힌 피가소프와 다를 바가 없다. 이런 루진을 보고 나는 큰 교훈을 얻었다. 지키지 못할 말을 내뱉으면 스스로에게 굴레를 씌우는 것과 다름없다는 것을 배웠다. 또 실천이 따르지 못하면 아무리 멋진 사상이라도 빈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점을 다시 한 번 되새길 수 있었다. 루진은 마지막에 나탈리야와 결별하며 편지에 이런 말을 남긴다. "얼마를 살든지 간에 항상 당신의 마음이 불러일으키는 것을 따르십시오. 자신만의 생각에 갇히거나 남의 견해를 따르지 마십시오. 인생이 흘러가는 범위는 단순할수록, 좁을수록 더 좋습니다. 중요한 것은 인생에서 새로운 측면을 찾아내는 게 아니라 인생의 모든 변화가 제때 이루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나는 이 말을 나에게 하는 말로 받아들이며 「루진」을 덮어야겠다.
한편 루진이라는 인물이 이렇게 부정적으로 묘사되고 있지만, 투르게네프는 이 세상의 루진들에게 연민을 느끼며 그들의 희망도 묘사하려고 애썼다. 에필로그에서 루진은 다양한 실패를 경험하다가 최종적으로 혁명의 현장에 직접 뛰어들어가 전사한다. 결과에 무게를 두면, 루진은 끝까지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가 사상과 자신을 합치시키기 위해 보였던 소극적인 노력들이 아예 세상사에 영향이 없었다고 볼 수는 없다. 루진은 소위 '잉여인간'이지만, 가능성이 전무한 '비인간'보다는 훨씬 낫다. 그들은 분명 개인으로는 무력하다. 하지만 그들이 모여서 목소리를 크게 낼 수 있다면 무언가 긍정적인 작용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루진은 적어도 개인이 아니라 혁명의 일원으로서 죽었으니, 나는 루진의 최후만큼은 좋게 평하고 싶다.
글을 슬슬 마무리하려 한다. 내 삶도 돌이켜보면 혁명가의 삶보다는 루진의 삶에 더 가까운 것 같다. 주변에 불만을 느끼면서도 순응해왔고, 그렇게 지금까지 불쾌한 마음으로 잘 살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확신하건대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루진처럼 살고 있을 것이다. 나를 포함한 이 세상의 수많은 루진들에게 이 글을 바친다. 우리는 변화를 일으킬 수 없지만 변화의 싹을 가지고 있으니, 언젠가 우리가 목소리를 모을 날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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