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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신편」은 중국의 고사를 근대 소설식 서술로 새롭게 풀어나간 작품들의 모음집이다. 사실 나는 중국의 고사에 그리 밝지 않아서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들도 더러 있었지만, 배경지식이 없어도 재미는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이전 작품들에서 보여주었던 루쉰의 날카로운 풍자는 「고사신편」을 통해 더욱 은밀해져서, 동화를 읽는 기분이 들면서도 반성을 하게 만드는 기이한 분위기가 완성됐다.


고사들이 참신하게 재해석된 것을 느끼는 묘미가 있었다. 예를 들어 백이와 숙제는 충의를 상징하는 인물로 주로 해석되었다. 하지만 주왕의 학정이 중국을 괴롭히고 있었으니, 그들의 충성은 어떻게 보면 상당히 편향적이다. 「고사신편」에 수록된 「고사리를 캐는 사람」에서 이들은 우스꽝스럽게 그려진다. 나름대로 도리를 좇아 어려운 선택을 하기는 했으나, 그 어려운 선택을 고스란히 실천하지는 못해 타협을 반복하게 되는 것이다. 캘 고사리가 없어서 산을 배회하다가 구경꾼이 되는 장면, '결국 고사리도 주나라에서 자라는 식물인데 고사리는 왜 허용되냐'라는 지적에 결국 굶어죽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루쉰은 옛 인물들을 비판하기를 서슴지 않는데, 특히 사상이 다분히 추상적인 노자와 장자에 대한 비판이 기억에 남는다. 루쉰은 그들을 뜬구름 잡는 소리만 하지만 그 소리 덕분에 권위가 있어서 허황된 움직임을 일으키는 인물들로 묘사한다. 반면 현실에 실질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구체적인 사상에 대해서는 높이 평하는데, 겸애설을 주창한 묵자가 특히 멋지게 나온다. 묵자는 「전쟁 반대」라는 소설에서 배싸움에 쓰는 무기 구거(鉤拒, 갈고리 구에 막을 거)를 상대가 자랑하자 이렇게 응수한다. "나는 사랑으로써 당기고(鉤), 공손함으로써 막아(拒)냅니다. 사랑으로써 당기지 않으면 서로 친해질 수 없으며, 공손함으로써 막아내지 않으면 교활해집니다. 서로 친하지 않고 교활해지면 흩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서로 사랑하고 서로 공경하게 되면 서로에게 똑같이 이익이 됩니다. 지금 당신이 쇠고리(鉤)로써 다른 사람을 낚아챈다면 다른 사람도 쇠고리로써 당신을 낚아챌 것이며, 당신이 거(拒)로써 다른 사람을 막는다면 다른 사람도 거로써 당신을 막을 것입니다. 서로가 낚아채고 서로가 막는다면, 서로에게 똑같이 해가 됩니다. 그러므로 나의 의라는 구거는 당신의 그 배싸움의 구거보다 훌륭하다는 것입니다." 전쟁은 한쪽이 이익을 독점하기 위해 벌어지지만 실상은 양쪽 모두에게 해롭다. 계속된 긴장 속에서 사람은 평안을 얻을 수 없으며, 오직 사랑을 실천하는 것으로 평안을 약속받을 수 있다. 이 점을 깨닫게 해주는 좋은 구절이었다.


가장 탁월한 소설은 「치수」였다. 여기서 루쉰은 쓸모없는 지식으로 권위만 누릴 뿐인 지식인들을 풍자한다. 나라에 물난리가 났는데 관료들은 형식적인 절차에 매달리느라 문제 해결은 뒷전이고, 학자들은 문제의 본질을 살피지 않고 겉치레에 집착한다. 그들은 시대와 민족에 어울리지 않는 영어를 씀으로써 스스로를 민중과 고립시킨다. 또 민중들도 의전을 중시해서 자신들이 겪는 문제를 솔직히 말하지 않고 그나마 있는 것 중 가장 좋은 것을 거저 바친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는 것은 실용적이고 계몽적인 영웅, 우다. 우는 직접 현장을 돌아다니며 상태를 살피고, 물난리의 원흉을 부수기 위해 '소통시키기' 전략을 사용한다. 각 계층이 꽉 막혀서 서로 고립될 뿐인 상황을 뒤엎고 위에서 아래, 아래에서 위로 소통하며 문제점을 해결할 방법을 민중과 함께 찾는 것이다. 오늘날에도 우와 같은 리더가 필요하다. 행정 체계의 고착화, 형식주의, 관료주의, 계층 의식은 지금까지도 나라를 가리지 않고 문제가 되고 있다. 민중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민중과 함께 하며 행동을 통해 세상을 실질적으로 바꿀 수 있는 리더가 필요하다. 루쉰은 마뜩잖은 현실과 우리에게 필요한 영웅을 「치수」를 통해 보여주었으니, 우리는 우를 기다리든지 우리가 우가 되든지 해야 마땅할 것이다.


이제 「루쉰 소설 전집」을 다 읽었다. 100년 전의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루쉰의 작품을 보면 그가 엄청난 선각자였음을 느낀다. 시대에 도태된 권위주의와 쓸데없는 엘리트 의식이 갈등하던 시절에 실리를 챙길 수 있는 길을 알리기 위해 외로운 싸움을 벌인 루쉰을 존경한다. 그는 어디에도 얽매이는 법이 없었으며, 그가 가리키는 길에는 늘 훌륭한 미래가 있었다. 우리 세대가 그가 가리킨 방향으로 제대로 따라가지는 못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가 훌륭한 지침서를 소설로 남겨두었으니, 우리는 언젠가 루쉰의 이상향에 이를 수 있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