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나는 박솔뫼의 글을 좋아한다.
소설, 수필이라고 말하기보다 ‘글’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가장 정확하겠다.
박솔뫼의 글에서는 너른 개방감이 느껴진다. 맑게 갠 날 공원에서의 산책 같기도 하고, 거대한 통유리 너머 활주로가 보이는 공항 대합실 같기도 하고, 한적한 시골에 자리 잡은 새하얗고 현대적인 디자인의 카페 같기도 하다. 아마 그런 개방감이 나로 하여금 계속 읽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특히나 이런 숨막히는 여름에는 더더욱.
그리고 이런 개방감은 그녀 특유의 문체(구두점 생략, 개조식 문체, 잔뜩 늘인 문장, 갑작스런 구어체 등등)로 인해 생긴다. 취향에 따라 별로인 사람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정말 좋아서…아무튼 이렇게 취향만 맞다면 박솔뫼의 글은 선선한 산책과 같은 것이 돼버린다. 그런 점이 참 좋다.
이 책은 박솔뫼가 읽은 책을 기록한 독서 에세이이다. 여기서 언급되는 책들은 독붕이들도 쉽게 알 법한 것들이다. ‘미시마 유키오 대(對) 동경대 전공투 1969~2000’, ‘청소부 매뉴얼’, ‘모래의 여자’, ‘불타버린 지도’, ‘상자 인간’, ‘인간 실격’, ‘회색인’, ‘광장/구운몽’, ‘빅 슬립’, ‘기나긴 이별’, ‘아수라 걸’,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이중 작가 초롱’, ‘습지 장례법’, ‘개 신랑 들이기’, ‘그로테스크’, ‘녹스’, 다수의 다카하시 겐이치로 저서, 그리고 다수의 로베르토 볼라뉴 저서.
여러 책들을 읽고 난 뒤, 박솔뫼는 소개한다기보다는 스스로 되새긴다는 느낌으로 글을 써나간다. 그 되새김질이 깊이 있다거나 통찰력이 상당하다던가 그런 성질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에세이 속 표현을 잠시 빌리자면 ‘선풍기 미풍 세 시간 같은 느낌으로’ 바람을 쐬는 듯한 성질의 것이다. 가벼울 수는 있으나 묘하게 안정감이 있고 쉽사리 물리지 않는다. 어쩐지 오랫동안 흘러가는 글이다.
뭐…딱히 내용을 파고들어 분석하면서 감상을 올릴 책은 아니었기에 특별히 덧붙일 말이 없으니,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구절을 올리면서 마무리함.
"작년에는 일본에 내 단편집이 번역되었다.
도쿄의 진보초 헌책방 거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하쿠스이샤라는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는데 이 출판사는 볼라뇨 컬렉션도 출간했고 볼라뇨 하면 떠오르는 대부분의 책들이 이곳에서 번역 출간되었다. 내 책은 하쿠스이샤의 엑스리브리스EXLIBRIS라는 세계문학 시리즈 중 한 권인데 이 시리즈에는 볼라뇨의 소설 『야만스러운 탐정들』이 포함되어 있다. 강력하고 우습고 뜨겁고 힘이 센 것이 내 앞 어딘가에 있다. 내 앞의 몇십 권의 책들을 지나면 볼라뇨의 야탐이 있고 그건 마치 버스 뒷자리에 앉아 앞자리에 앉은 볼라뇨의 뒤통수를 보는 기분과 비슷한 것 같다. 우리는 같이 내려서 함께 여행을 하지는 않겠지만 창으로 비친 얼굴을 보면서 가고 있다. 나는 먼저 내리거나 나중에 내리거나 혹은 그때 언제 내렸더라 생각하다 볼라뇨를 떠올릴 것이다."
ps. 병렬독…나름 괜찮을지도?
마지막 뽕 지리네 ㄷㄷ 볼라뇨랑 같은 시리즈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