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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교육」은 이전부터 정말 읽고 싶었던 소설이었다. 같은 작가의 전작 「마담 보바리」를 읽고 시각적 심상을 극대화한 문체에 깊은 감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감정 교육」을 향한 프루스트와 카프카의 극찬이 지금까지 홍보 문구로 전해져 오는 것도 한몫했다. 그래서 2021년에 한 번 읽으려 시도했는데, 그때는 읽다가 중도에 포기하고 말았다. 줄거리가 생각 이상으로 복잡한데다 주인공의 모험이랄 것이 없어서 지루했던 것이다. 그 후 3년이 지나서 조금이나마 심미안이 자라 「감정 교육」을 끝까지 읽을 수 있게 됐다. 정말 훌륭한 소설이었고, 정말 의미 있는 체험이었다. 「감정 교육」을 당대 대중은 혹평했고 몇몇 선각자들만 호평했다고 전해지는데, 호평의 이유를 충분히 납득할 수 있었다.


「감정 교육」에서도 이전에 「마담 보바리」에서 집요하게 쓰였던 시각적 심상의 향연이 똑같이 벌어진다. 그래서 소설을 '읽는 느낌'보다는 '보는 느낌'이 든다. 프레데릭의 눈으로 파리의 화려한 기물들과 시골의 순박하고 단조로운 풍경을 똑같이 보며, 종종 아르누 부인의 매력에 함께 빨려 들어가고 마는 것이다. 그런데 「감정 교육」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역사와 융화한다. 나폴레옹의 몰락 이후 혁명은 초심을 잃은 폭력이 된다. 그 속에서 사람들은 갈피를 잡지 못해 단결조차 하지 못한다. 이 혼란스러운 시대 속에서 여러 사건들이 일어났고, 실제로 일어난 사건들이 「감정 교육」에 고스란히 반영돼있다. 등장인물들은 실화들의 영향을 받아 이리저리 휩쓸려 다니고, 그 속에서 나름대로의 태도를 취하며 저항해 보기도 한다. 정말 「감정 교육」은 역사와 하나가 된 소설이며, 당대 속에 공존하는 가상의 세계인 것이다. 플로베르는 「감정 교육」을 통해 세계를 비추는 또 다른 세계를 완성했으니, 나는 「감정 교육」을 「마담 보바리」보다도 높게 평가한다.


「감정 교육」은 구체적으로 어떤 소설일까? 프레데릭이 자리를 잡는 이야기니 교양 소설로도 볼 수도 있을 것이고, 앞서 말했듯이 역사 혹은 정치 소설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연애 소설'로 보는 것이 가장 적절할 듯하다. 「감정 교육」에는 플로베르 본인이 이전에 겪었던 유부녀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자전적으로 반영돼있다. 플로베르의 분신인 프레데릭은 여러 곳을 왕래하며 입지를 바꾸지만 그의 진정한 목표는 늘 아르누 부인이었다. 프레데릭이 아르누 부인을 처음 만날 때 이런 문장이 나온다. "세계가 갑자기 커졌다. 그녀는 만물이 수렴하는 빛의 중심이었다." 첫만남부터 프레데릭은 아르누 부인에게 운명적으로 끌렸다. 아르누 부인을 만나 확장된 세계를 감당하기 위해 그는 성공을 꿈꾸게 된다.


하지만 프레데릭이 사랑을 이루기 위해 뛰어든 세계는 깨끗한 세계가 아니었다. 한때 프랑스는 혁명을 통해 자유를 쟁취하고 이를 전 세계에 퍼뜨리던 상징적인 국가였다. 그러나 나폴레옹의 말발굽이 멈춘 뒤에 프랑스에 남은 것은 과거뿐인 영광과 당장의 생계 문제였다. 생계 문제가 모든 것에 앞서며 혁명기에 꽃 폈던 문화들이 순수함을 잃어가기 시작한다. 아르누는 산업 예술을 추구하며 그림의 미적 가치보다 돈을 생각하는 세속적인 남자다. 그리고 화상(畵商) 일의 가치가 떨어지자 그는 즉시 다른 사업들을 시작하며 여러 곳에 검은 돈을 빌려 스스로 몰락한다. 펠르랭은 그에 반해 미술의 진정한 목표를 기억하는 사람이다. "외적 진실에 대해 신경 쓰는 것은 현대의 천박함을 드러냅니다. 당신들이 아무리 잔꾀를 부려 작업을 한다손 쳐도 그런 소품들 가지고서는, 예술의 목표, 그래요, 우리에게 비개성적인 열광을 이야기하는 예술의 그 목표에 도달하지 못할 거예요." 하지만 그런 신념만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다. 펠르랭도 결국 이 문제 앞에 굴복하고 현실과 타협하고 만다. 펠르랭은 걸작을 그리기를 꿈꿨지만 작품 내내 그가 독자에게 각인시킨 작업물은 프레데릭의 정부 로자네트의 초상화 뿐이며, 이는 존재 자체가 부끄러운 작품이기 때문에 작중 내내 미적으로 다뤄지지 못한다. 결국 「감정 교육」의 시대는 예술이 타락했거나 소외당하던 시대였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다루어지지도 않는 논제였다.


한편 왕정 복고 자체가 처음 혁명의 열풍이 멎었음을 의미했다. 이전의 공화정을 그리며 혁명을 다시 벌이는 세력들이 있었고, 권력자들은 이전보다 치밀하고 졸렬한 방식으로 공격을 막아냈다. 그 공방전 속에서 한목소리로 자유를 외치던 사람들도 분열하고 있었다. 더 극단적으로 변한 사상가들은 예술조차도 대중의 윤리화를 위해야 한다며 모든 것을 혁명의 기치 아래에 놓으려 들었다. 반면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면서도 극단화를 경계하며 질서 유지를 선호하는 쪽도 있었다. 이렇게 조각난 세상 속에서 프레데릭은 어느 곳에도 명확히 발을 담그지 못한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며 혁명가들의 승리가 가까워지자 모든 혁명가들의 야욕이 드러난다. 그들이 자유와 평등을 외쳤지만 속으로는 부를 원했다. 만인의 평등은 부수적인 문제였다. 기득권의 것을 빼앗아 얻은 부로써 사람들 위에 자신들이 새로이 오르는 것이 꿈이었다. 그래서 혁명이 심화하며 당초의 정신은 점차 사라지고, 약탈이 혁명의 중심 활동이 된다. 물론 부르주아들이 부와 재산을 독점하기에 마땅한 인물들은 아니었다. 그들은 공공보다 자신들 각자의 안위만 챙기기 바빴으며, 위계질서에 취해 사람들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고 실수를 연발하고 있으면서 반성도 하지 못하는 처지였다. 재산이 낳는 부조리는 분명 어떻게든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그자들은 벽난로에 땔 장작도 있고, 식탁에는 송로버섯도 올리고, 좋은 침대에, 서가에, 마차에, 온갖 편의는 다 누리고 있지! 하지만 어떤 사람은 슬레이트 지붕 아래 오들오들 떨며, 20수에 저녁 식사를 하고, 강제노역자처럼 일하면서 가난에 질질 매어 있어! 그게 그들 잘못인가?" 하지만 혁명가들은 얻을 생각만 할 뿐, 다스릴 생각은 하지 않았다. 지팡이에 박힌 보석을 취하기 위해 지팡이를 파괴한 민중은 제 발로 걸어 다니지 못하는 처지가 된 줄도 모르고 보석을 보며 기뻐하는 꼴이었다. 이런 현실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 나온다. "세 가지 집단이 있는데, 가진 자, 이제는 가지고 있지 않은 자, 그리고 가지려고 애쓰는 자들이 있다는 거야. 하지만 모두 다 멍청하게 권력을 절대 숭배한다는 점에서는 똑같아!"


자유를 꿈꾼다고 말하지만 부를 꿈꾸던 시대, 혁명적인 관점을 서로 강요하면서도 모두가 동상이몽을 꾸던 시대였다. 프레데릭은 천운이 따라 형편이 부유한 까닭에 세속적인 성공을 꿈꿀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프레데릭은 그래봐야 미숙한 청년이었고, 아르누 부인의 마음을 확실히 사기를 원했다. 프레데릭은 성공해서 아르누 부인을 도와 마음을 사려 들기도 하며, 또 돈으로 로자네트라는 정부를 사서 부인의 질투를 일으켜 마음을 얻으려 계획하기도 한다. 정직한 마음을 이루기 위해 당대의 타락한 문화를 배우고 만 것이다.


플로베르는 그렇게 성장해가는 프레데릭에게 아무것도 선물하지 않는다. 작가 자신이 끝내 사랑을 이루지 못했다는 것을 반영한 것일까? 결말에 이르기까지 극적인 성공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삶이 결단 날 정도로 실패하지도 않는다. 프레데릭은 사실 아르누 부인을 향한 불타는 열정 외에는 특출난 것이 없는 인물이다. 그는 적극적으로 무언가에 앞장서지 않으며, 주변 사람들의 동태를 보고 괜찮은 기회를 감지하면 편승하여 이익을 뽑아내는 자였다. 주인공이라기에는 수동적이고 멋이 없는 인물이다. 시대나 사건을 이끄는 중심인물이 아니다. 그는 영웅이 아니라 플로베르 자신이자,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인간상의 거울이었던 것이다. 어찌 보면 그가 아무것도 이룩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주변 사람들이 성공을 이룬다. 혁명가들은 더 노골적으로 변한다. 민중들은 소유권을 제외한 모든 권력에 도전하며 증오를 불태운다. 그렇게 그들은 소원하던 평등을 이루어낸다. 물론 "그 평등은 남들을 피 흘리게 만드는 비열함과 똑같은 수준의 난폭한 짐승들의 평등이었다." 그렇게 목표를 이루자 평등이라는 말뿐인 목표를 넘어 로베스피에르의 정치를 재현하려는 혁명가도 등장한다. 급변하는 정세에 맞춰 부르주아 몇 명은 카멜레온처럼 태도를 바꾸어 마치 처음부터 공화주의자였던 것처럼 살아간다. "그들은 재산을 보전하거나 병폐나 곤경을 피하기 위해, 아니면 그저 단순히 비굴해서 권력을 본능적으로 숭배하기 때문에, 하고자 한다면 프랑스나 인류 전체를 팔아먹을 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게도 물론 자존심이 있다. 혁명이라는 명목으로 갑자기 자신이 애써 얻은 재산을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하는 시대에 분노하지만, 살기 위해서 그런 선택을 내린 것이다. 급변하는 정세에서 행동으로써 적응하는 사람만이, 융통성을 빙자하여 박쥐처럼 사는 사람이 승리를 쟁취한다. 모든 것을 순수하게 볼 수 있는 사람만이 이 시대를 꿰뚫어 본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당대의 바보 취급을 받고 몰락할 운명에 처해 있다. 누구보다 혁명의 가치를 잘 이해하고 있으며 누구보다 열성적이던 뒤사르디에의 마지막 탄식이 기억에 남는다. "혁명이 일어났을 때 난 사람들이 행복해질 것이라 믿었어요. 그때가 얼마나 좋았던지, 얼마나 여유가 있었던지! 하지만 지금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나쁜 상태로 떨어지고 말았어요. 지금 저들은 우리 공화국을 죽이고 있어요! 그래도 노력이나 한다면! 선의를 가지기라도 한다면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 텐데! 하지만 아니죠! 노동자들도 부르주아들보다 더 나을 것이 없으니까 말이지요! 이젠 어쩔 도리가 없어요! 치유책도 없고! 모두들 우리를 적대시해요!"


프레데릭은 앞서 말했듯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다. 이룬 것이 없어 타락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그의 여정도 소득 없이 끝난다. 아르누 부인과 마음을 맺는 것까지는 성공했다. 하지만 아르누 부인은 죄의식을 극복하지 못했고, 프레데릭도 온갖 술수를 쓰다가 일이 죄다 꼬이는 바람에 앞으로 나갈 여력이 없었다. 프레데릭은 한때 화려한 사교계에 입문하여 맛을 들였고, 그 맛을 잊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겪을 일은 모조리 겪은 뒤에도 계속 갈망한 것은 오직 순수한 사랑뿐이었다. 인간에 대한 사랑, 특히 아르누 부인을 향한 탐욕 없는 사랑을 원했다. "아! 난 돈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아요! 가장 아름답고, 사랑스러우며, 가장 매혹적인, 인간의 형태를 한 일종의 낙원을 원했었고, 마침내 그것, 그 이상을 발견하여, 그 모습이 다른 모든 것을 가려 보이지 않게 하였는데……" 그러나 환상은 환상으로 남았고, 둘은 각자의 길을 가는 수밖에 없었다. 프레데릭이 앞으로 할 수 있는 것은 꿈에서 환상을 보는 일, 그리고 추억을 되짚는 일 밖에 없을 것이다. 프레데릭은 오랜 친구이자 프레데릭과 마찬가지로 야욕을 이루는 일에 실패한 데로리에와 함께 과거를 회상한다. 아무것도 모르지만 마음만은 티 없이 순수하던 시절, 프레데릭은 당돌하게 용기를 내어 한 여자에게 꽃을 바치고는 뒷일이 두려워 도망쳤다. 이 장난 같은 일은 아무런 여파도 남기지 않았으나, 그때의 순수함은 프레데릭과 데로리에에게 깊은 추억이 됐다. "그때가 제일 좋았지!" "그래, 좋았던가? 그때가 제일 좋았어!" 이 허심탄회하고 씁쓸한 인정과 함께 「감정 교육」이 끝난다.


「감정 교육」의 시대를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순수 결핍 시대'였다. 사상은 그 본분을 다하지 않고 이익을 포장하는 도구로 쓰여서, 민중의 결집이 아니라 분열을 야기했다. 사람들은 야욕을 갖고 있으면서 솔직하지도 못해서 관계들은 위선과 음모로 점철돼있었다. 이 안에서 평범한 사람은 사상을 위해 목숨을 바치지 못하며, 자신의 목표를 포기해가며 이상으로 향하지 못한다. 프레데릭은 미지근해 보이지만, 이 몰개성함이 오히려 일반적인 독자를 대변한다.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자신의 의지를 관철할 수 있는 사람은 몇 없다. 대개 선두에 서기보다 후미에 서서 천천히 적응해가기를 택할 것이다. 결국 인간은 대개 '그저 그런' 존재인 셈이다. 순수가 핍박당하는 시대에서 인간은 몸에 묻은 흙탕물을 분칠처럼 생각하고 순응하며 살아야 하는 셈이다. 시대의 도덕적 해이가 당연한 것이라면, 그 시대를 만들고 참여하는 인간의 도덕적 무미건조함 또한 당연하다.


오늘날의 시대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더 이상 국왕은 없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편을 나누어 싸운다. 당과 권력을 보전하기 위해 불의를 불의라 말하지 못한다. 순수한 마음으로 진보나 보수를 자처할 수 있는 사람은 이제 거의 남지 않았다. 민중들은 그 속에서 소신을 가지고 선택을 하지 못한다. 당장 이로워 보이는 곳으로 떼를 지어 이동할 뿐이다. 그 집단의 물결 속에 개인의 소신은 노골적으로 무시당하며, 소수가 아무렇지도 않게 혐오를 겪는 시대이다. 어쩌면 자유가 없던 시절이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 선택과 표현의 자유가 있는 지금 우리 사회의 논의는 이전의 것에 비해 수준이 높지도 않으며, 오히려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발언권이 주어진 탓에 가끔은 말도 안 되는 소리에도 억지로 고개를 끄덕여야 한다.


그래서 나는 순수를 열망한다. 이해타산이 아니라 마음이 우선시되는 관계를 원하고, 모두가 도덕적으로 한마음이 되는 사회를 열망한다. 결국 개인이 욕심을 버릴 수 없다면 차라리 모두가 솔직히 욕망을 털어놓는 세상을 바란다. 서로 속이지 않고, 그래서 복잡할 게 생각할 일이 없는 그런 세상을 바란다. 어디까지나 바람일 뿐, 이런 세상이 오지 않으리라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내가 아무런 의심 없이 모두를 믿던 시절, 모든 사랑이 진실하다고 믿었던 시절을 달콤하게 기억하고 있기에, 나도 프레데릭과 똑같은 꿈을 꾸게 된다.


나 또한 다른 시대와 다른 국적의 프레데릭으로서 이 세상을 바꿀 능력이나 의지는 없다. 나는 잃어버린 순수를 되찾기보다 오히려 순수를 잃어버리는 일에 익숙해지는 쪽을 택하게 될 것이다. 성장은 곧 체념과 타협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위선으로 범벅이 된 세상에서 내가 나로서 살아가려면 오히려 나도 교활해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프레데릭이 내내 아르누 부인을 향한 순수한 사랑을 간직했듯이, 나도 순수함에 대한 열망을 간직할 것 같다. 순수함의 시대를 개척할 영웅이 나타나리라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런 영웅이 만일 정말로 나타난다면 그의 진영에 합류하여 그의 바로 뒤에서 깃발을 들어 올리리라. 책을 읽고 얻은 교훈을 말하는 것치고는 미적지근한 선언이지만, 내 심경을 솔직히 표현했을 뿐이다.


이로써 「감정 교육」을 다시 책꽂이에 돌려놓으려 한다. 종종 삶에 찌들어 마음에도 없는 일을 벌였을 때 「감정 교육」의 책등과 내 눈이 마주치면 나는 다시 순수함에 대한 열망을 마음속으로 일깨울 것이다. 세상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내 삶에는 아무 변화가 없겠지만, 자면서 꾸는 단꿈을 즐기듯이 순수함에 대한 환상에 파묻혀서 잠시 머리를 식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