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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람은 심연 위에서 흔들거린다. 그리고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건대, 우리는 단지 영원이라는 두 어둠 사이 잠시 갈라진 틈을 통해 새어나오는 빛과 같은 존재다. 비록 두 어둠이 각자의 생김새가 똑같은 쌍둥이와 같다고는 하나, 인간이란 대개 그가 (한 시간당 사천오백 번 정도의 심박수로) 향해 가고 있는 쪽의 어둠보다는 태어나기 이전의 심연을 더 침착하게 받아들이기 마련이다. 그러나 나는 시간공포증을 잃고 있는 한 젊은이에 대해 알고 있는데, 그는 자신이 태어나기 몇 주 전 집에서 촬영된 비디오를 처음 보았을 때 일종의 공황상태를 경험했다고 한다. 그가 본 것은 똑같은 집, 똑같은 사람들이었으며, 실제로는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는 세계였다. 그런 뒤에 그는 자신이 그곳에 전혀 존재하고 있지 않으며, 또 누구도 자신이 없음에 대해 슬퍼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이층 창문에서 손을 흔드는 어머니의 모습을 흘끗 보았는데, 그 낯선 손짓은 마치 어느 신비로운 작별인사처럼 그의 마음을 괴롭혔다. 그러나 그가 정말로 두려움을 느낀 것은 바로 그 집 현관에 서 있는 새 유모차를 보았을 때였다. 말쑥한 모양의 그것은 시간을 앗아가는 관(棺)처럼 보였으며, 심지어 마치 일이 거꾸로 돌아가 그 자신의 뼈가 흩어져 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비어 있기까지 했다.
이와 같은 공상은 어린 생명들에겐 낯설지 않다. 다른 말로 하자면, 처음과 마지막이란 혹 숭엄하고도 엄격한 종교를 따르는 것이 아닌 경우엔 종종 사춘기적 특성이 되곤 한다. 자연은 한 성숙한 인간이 그의 앞뒤에 있는 두 어두운 허공들을 대하면서, 그 허공들 사이의 특별한 환영을 받아들이듯 그것들을 무디게 받아들일 것을 기대한다. 불사(不死)의 존재, 미숙한 존재가 누리는 최상의 기쁨인 상상력은 제한 되어야만 한다. 삶을 즐기기 위해, 지나친 상상력은 금물이다.

가을 되면 창백한 불꽃 읽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