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에는 안나 카레니나에만 몰빵해서 3권을 읽었던 것과 달리 각자 다른 작품으로 3권을 읽었다. 어째 독서량이 3권대로 제자리 걸음이긴 하지만 앞으로 조금씩 더 읽어볼 것을 다짐하며 지난 8월 동안 읽은 책을 정리해 보겠다.
1. 달과 6펜스 (The Moon and Sixpence)
“그림을 그릴 거라고 얘기했잖소. 나 자신조차 주체할 수 없지. 사람이 물에 빠졌을 땐 수영을 잘하느냐 못하느냐 따위는 중요하지 않소. 물에서 빠져 나오느냐 빠져 죽느냐가 관건이지. (I tell you I’ve got to paint. I can’t help myself. When a man falls into the water it doesn’t matter how he swims, well or badly: he’s got to get out or else he’ll drown.)”
- 달과 6펜스 中 -
1874년 파리 태생의 영국인 소설가 윌리엄 서머싯 몸(William Somerset Maugham)의 대표작 중 하나인 달과 6펜스를 영어 원서로 읽어봤다. 그는 파리에서 잘나가는 변호사 아버지와 프랑스에서 줄곧 자랐던 어머니 슬하에서 태어나 파리에서 유복한 유년시절을 보냈으나, 이른 나이에 양친을 여의고 만다. 이후 성공회 목사였던 삼촌에게 거두어져 영국에 있는 학교로 진학했으나, 주위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급우들에게도 따돌림을 받았다. 그렇게 순탄치 않은 학창시절을 보내던 와중 몸은 잠깐 반년 정도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에서 유학하며 문학을 배웠는데, 그때부터 그는 문학의 매력에 푹 빠진다. 이후 영국으로 돌아왔지만 현실적인 이유로 킹스 칼리지 런던 의대에 진학하여 의사 면허까지 취득한다. 하지만 문학가로서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던 몸은 의사로서의 삶을 마다하고 집필활동을 시작한다. 그는 처음 10년 동안은 무명작가 신세를 면치 못했지만, 그의 작품 중 오스카 와일드의 영향을 받은 희극인 프레데릭 부인(Lady Frederick)과 자전적 소설인 인간의 굴레에서(Of Human Bondage)가 인기를 얻으며 작가로서의 명성과 부를 얻게 된다. 문학을 가장 좋아하긴 했지만 미술 애호가이기도 했던 몸은 1916년 남태평양에 있는 타히티를 여행하게 되는데, 프랑스의 문제적 화가였던 폴 고갱(Paul Gauguin)이 대부분의 그림을 그리고 만년을 보낸 곳이었던 만큼 여행을 통해 많은 영감을 얻는다. 그리고 증권 중개인으로 일하여 평범한 중산층의 생활을 영위하다가 돌연 처자식을 내팽게 치고 화가의 길을 걷는 고갱의 개인사를 바탕으로 장편소설을 하나 쓰는데, 그게 바로 본작인 달과 6펜스이다. 1919년 출간된 본작은 당대에도 평단과 대중들의 찬사를 받으며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고, 몸의 대표작 중 하나로 자리 잡는다. 그닥 특별하진 않지만 내가 이 책을 읽어보게 된 계기를 얘기해보자면, 보통 고전 명작하면 이 책이 꽤나 많이 추천되고 읽어본 사람들도 대부분 반응 괜찮은 편이어서 호기심이 동하였다. 또 영어 문장도 그렇게 어렵지 않다던 풍문도 있어서, 언젠가 서점 나들이를 하던 중 책장에 이 책이 꼽혀 있길래 냉큼 집어와서 읽어봤다.
본작은 이야기의 화자이자 소설가인 ‘나’의 시선에서 찰스 스트릭랜드라고 하는 한 미술가의 삶을 조망하고 있다. 스트릭랜드는 모티브가 된 실존인물인 폴 고갱처럼 주식중개인으로 일하면서 런던에서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었고, 아내와 자식이 있던 가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여름 휴가를 보내던 와중 돌연 그는 아내에게 파리로 떠날터이니 자신을 쭉 찾지 말라는 편지 하나만 덜렁 남겨놓고는 가정을 떠나버린다. 세간에서는 바람이 나서 저리 됐다는 소문이 돌자 화자가 수소문을 해 파리로 가서 스트릭랜드를 만나보지만, 그는 고작 사랑을 좇아 가출을 감행한 게 아니라 오직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런던을 떠났다고 화자에게 털어놓는다. 이를 뒷받침이라도 하려는 듯이 그는 화자를 비롯한 세간 사람들이 뭐라하던 간에 그림을 그리는데만 골몰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줄창 그림을 그려대는데도 불구하고 스트릭랜드는 자신의 작품을 공공연히 보여주지도 않고, 심지어는 작품을 팔 생각도 없어 보였다. 또 성격도 괴팍하기 짝이 없어 타인이 자신을 어떻게 대하거나 생각하건 노상 무심해하고, 한 발짝 더 나아가서는 그나마 자신에게 호의를 보이는 사람에게도 감사조차 하지 않고 오히려 파멸의 구렁텅이로 밀어넣기도 한다.
이렇듯 인간 스트릭랜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광인인데다 정이라고는 눈꼽만큼도 붙일 수 없는 소시오패스가 따로 없다. 하지만 예술가로서의 스트릭랜드는 단순히 괴팍한 천재를 넘어서,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예술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볼 만큼 치열하고 숭고한 삶을 살아온 인물이다. 전술하였듯이 스트릭랜드는 예술에 모든 것에 투신을 하지만, 자신의 작품으로 부와 명성을 누리는데는 통 관심이 없다. 오히려 그림을 그리는 과정과 행위에만 모든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자신이 그림을 그리는데 방해가 된다면 자신이 이전에 무엇을 가지고 있던 간에 모조리 내던져 버리고, 어떤 사람과 관계를 갖고 있던 간에 서슴없이 절교하고 훌쩍 떠나버리는 사람이다. 이는 사회적 지위, 예의범절, 물질적인 성공에 목을 매던 에드워드 시대(Edwardian era, 1901-1910년대)의 사람들과는 확연한 대조를 이룬다. 또 스트릭랜드가 불태우는 예술혼은 단순히 굳은 결심이라기 보다는 악마에 씌이기라도 한듯한 초자연적인 집착이자 야성적인 본능으로 묘사되는 점도 꽤나 흥미로웠는데, 마찬가지로 주어진 관습과 법률엔 맞춰서 살아가는 근대적인 인물상하고는 완벽한 대구를 이룬다. 관습과 물질적인 제약에서 벗어나 자신이 원하는 예술을 하기 위해 세상에서 가장 호젓한 곳까지 달아날 각오를 하는 스트릭랜드의 치열한 여정은 작품이 출간된지 100년이 훌쩍넘은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도 강렬한 인상을 안겨준다.성공과 사회적 지위 따위는 상관하지 않고 예술을 하는 스트릭랜드는 물질적인 풍요를 제일로 여기고, 창작물을 단순히 유희거리로 소비하고, 돈벌이 수단으로만 여기는 많은 현대인들에게 자신이 살고 있는 방식이 과연 알맞는 방향으로 가는 길이 맞는지 다시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원서로 읽어봤던 개인적인 소감을 밝혀보자면, 제법 쉬운 문장 구성을 갖췄다는 소문과는 달리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꽤나 골머리를 썩혔다. 이 책이 1910년대 말에 출간됐다는 점과 내가 영어를 원어민 수준으로 구사하지 못한다는 점을 간과한 나머지, 불쑥불쑥 찾아드는 생소한 어휘와 약간 꼬아진 문장 구성 덕분에 읽는데 제법 애를 먹었다. 더불어, 영어 문장을 머릿속에서 한국어로 재구성해야 되는 입장에서 부정표현을 부정문에 갖다 붙이는 문장을 볼때마다 새삼 서머싯 몸이 얄밉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힘을 내서 머릿속에서 이어붙인 문장을 되새겨보면, 지나치게 화려하지는 않지만 적당히 기교가 있으면서도 울림을 주는 문장들이었고, 그때마다 고생해서 읽었던 보람이 있었던 것 같았다. 그 덕분에 영어로 읽었던 책들 중에서는 실로 오랜만에 감동을 느꼈던 책이었다. 이에 혹시라도 영어에 나름 자신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나만 당할 수 없으니 원서로 한 번 정도 읽어보시는 것을 추천하고, 영어에 자신이 없더라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에 번역본이 있으니 일독을 권장한다.
2. 거장과 마르가리타 (Мастер и Маргарита)
“원고는 불타지 않아요.”
- 거장과 마르가리타 中 -
1891년 당시엔 러시아 제국의 영토였던 키이우 태생의 의사이자 극작가, 소설가인 미하일 불가코프(Михаил Булгаков)의 장편소설인 거장과 마르가리타를 읽어봤다. 불가코프는 신학자였던 아버지와 신학자 집안 출신이었던 어머니 슬하에서 자랐고, 장성해서는 키이우 대학교에 진학해 의학을 전공하여 의사가 되었다. 그러던 중 러시아 혁명이 발발하여 러시아 제정이 전복된 후 제정 잔당인 백군과 블라디미르 레닌이 이끄는 볼셰비키 공산당의 적군이 서로 내전을 벌이고, 전쟁은 우크라이나 땅에도 번진다. 불가코프는 이때 백군 측의 군의관으로 징집되어 참전했는데, 전장에서 꽤나 치명상을 입은 바람에 말 그대로 죽다 살아남는다. 이후에 불가코프는 부상 후유증으로 인한 고통을 잊고자 마약성 진통제인 모르핀에도 손을 대고 마는데, 약에 중독되어 마찬가지로 고생을 하다가 겨우겨우 끊게 된다. 전쟁이 끝나고 나서 그는 한동안 키이우에서 개업의로 일을 하다가 카프카스로 거처를 옮기면서 저널리스트로 일을 했었다. 그렇게 불가코프는 저널리스트 생활을 하면서 키운 필력과 이전에 군의관으로 복무하던 시절 경험을 바탕으로 소설인 젊은 의사의 수기(Записки юного врача), 모르핀(Морфий), 백위군(Белая гвардия)를 출간하며 작가로서의 명성을 얻는다. 또 그가 직접 집필하거나 이전에 출간한 소설을 각색한 희곡들도 모스크바 예술극장에서 성황리 상연되면서 소련 시절 예술가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영광의 순간도 잠시였고, 블라디미르 레닌이 세상을 뜨고 이오시프 스탈린이 소련의 최고 권력자로 등극하며 불가코프는 위기를 맞게 된다.
스탈린은 집권하면서 소련 전 사회 분야에 걸쳐 검열과 통제를 강화했는데, 불가코프가 몸담던 문학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당시 소련에서 주류였던 미학관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는 작품을 내놓는 작가가 있다면, 소비에트 작가협회를 위시로 한 문단권력이 그 작가에게 비난을 퍼부었다. 아예 반체제적인 작가로 여겨지는 사람이 있다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거나 수용소에 끌려가 끔찍한 노역에 시달렸다. 불가코프의 경우에도 그가 집필한 작품들이 반소비에트적인 작품으로 매도되어 문단계에서 가공할 수준의 비판과 비난을 받으며 고난을 겪었다. 불행 중 다행이게도 스탈린이 불가코프가 쓴 희곡의 팬인 덕분에 더이상 험한 꼴은 당하지 않았고, 오히려 스탈린의 주선으로 국립국장에서 연출직으로 일을 한 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내놓는 작품들은 족족 검열을 당하거나 출판을 금지당했고, 실의에 빠진 불가코프는 병을 얻어 시름시름 앓다가 1940년 서른여덟이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다. 이번에 읽어본 책인 거장과 마르가리타는 그가 1928년부터 초고를 작성하여 10년 뒤 와병 생활을 하면서 까지도 집필하면서 완성해낸 역작이지만, 상기한 소련의 탄압으로 생전에는 출간되지 못했다. 그러나 훗날 불가코프와 사별한 부인 옐레나 실롭스카야의 노력 덕분에 본 작품은 1967년 검열본이 출간되고 1973년 무삭제본이 출간되면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우여곡절 끝에 선보인 이 작품은 20세기 러시아 문학을 넘어 세계문학에 길이 남을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고인이 된 작가의 한을 풀어주었다.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계기에는 사소하면서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 원래도 불가코프에 관심이 있어 그의 작품을 읽어볼 생각은 있었지만, 당장 읽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는 없었다. 그러다 몇달 전 노어노문학과를 전공했었던 지인이랑 점심을 먹으면서 러시아 문학을 얘기를 한창 하면서 불가코프 얘기도 잠깐 했었다. 그때 지인이 이 책이 정말 재밌다고 하면서 일독을 강력히 추천했었는데, 전공자가 재밌다고 하는 게 꽤나 믿음이 가서 이 책을 잘 기억해두었다가 주문해서 읽어보게 되었다.
본 작품은 크게 두 가지 내용으로 나뉜다. 하나는 초월적인 권능을 휘두르는 악마 볼란트와 그의 일당이 서슬퍼런 소비에트 감시체제 하의 모스크바에서 흑마법을 부려 이런저런 소동을 벌이는 내용이다. 다른 하나는 이름을 버린 채 '거장'이라고만 불리우는 소설가와 그를 연모하는 여인 마르가리타와 거장이 쓴 고대 예루살렘이 배경이자 본디오 빌라도 총독의 시선에서 재해석한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을 다룬 소설이 주가 되는 내용이다. 이것도 그나마 크게 뭉뚱그려서 두 개를 나눠본 것이지 실제로 보면 되게 많은 등장인물이 나오는 군상극의 성격을 띄고 1장 단위로 주요 인물이 바뀌는데다 각 장의 분위기도 서로서로 다른 편이다. 플롯도 요약을 해보라고 하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난감해질 정도로 이야기가 맥락없이 진행되고, 과연 개연성이라는 게 이 작품에 존재는 할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 정도로 말 안되고 엉뚱한 일들이 아무렇지 않게 벌어진다. 이렇게 일견 난잡해 보이는 구성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등장인물들에게 저마다의 개성을 확실히 부여해서 독자들의 뇌리에 확실히 각인시키며 가끔 이름이 헷갈리는 건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어지간해선 한 번 등장한 인물은 독자들이 잊지 않게끔 만들었다. 또 엉뚱하고 넌센스로만 가득해 보이는 각 장의 이야기들도 책을 끝까지 읽어보면 굉장히 치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 작품에서 어처구니 없이 벌어지는 초자연적인 현상은 삭막하고 군내나는 1930년대 소련의 생활상과 맞닿으면서 꽤나 흥미로운 아이러니를 연출한다. 볼란트와 그의 수하인 코로비요프, 베헤모트, 아자젤로, 헬라가 모스크바를 들쑤시면서 부리는 흑마술은 작품 내에서도 어지간해선 벌어지지 않는 비현실적인 일처럼 여겨지지만 분명하게 실제로 벌어진 일로 작품 내에서 묘사된다. 또 작품의 도입부를 장식하는 장면인 총주교 연못가에서 모스크바 작가연맹 회장 미하일 베를리오즈와 연맹 소속의 시인 이반 베즈돔니가 예수의 실존 여부를 두고 설전을 벌인 장면도 이와 일맥상통하는데, 소련이 무신론을 국시로 내건 나라였던 만큼 예수를 상상 속으로 치부하는 게 지배적인 분위기였음에도 불구하고 볼란드는 자신이 직접 본 적이 있다며 예수의 존재를 장담한다. 그리고 거장의 소설로 옮겨졌던 바가 있던 유대 총독 본디오 빌라도의 경험을 볼란트가 일목요연히 설명하면서 작품 내에서는 확실히 사실이었다는 점을 어느 정도 증명해낸다. 이와 같이 허무맹랑해 보이는 현상들을 작품 내에서 실제로 벌어진 일들이라는 점을 작품 내에서 강조하면서, 반대로 현실의 군내가 물씬 묻어나는 1930년대 소련의 생활상은 얼마나 더 황당하고 비상식적인 일이 벌어졌는지도 같이 조명하고 있다. 가령 예를 들면 악마 일당이 부리는 흑마술처럼 놀라울 수준의 강력한 감시와 사회 통제, 밀고로 인해 감쪽같이 사라져 신원이 불명이 된 사람들이라던지, 주택난에 시달리고 있는 초기 소련에서 방 한칸을 칸막이를 세워 방 두개 딸린 아파트로 둔갑시키고, 이렇게 불려진 부동산을 다른 주택이나 아파트로 교환한 다음 앞의 행위를 반복하여 순식간에 주택 수를 불려버린 투기꾼의 사례와 같은 사례가 있다. 불가코프는 이처럼 겉은 번지르르하고 원리원칙으로 돌아가는 것 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비상식에 의해 통제되던 소련의 실상을 환상적인 방식으로 멋들어지게 풍자하였다. 어찌보면 본 작품은 숨막힐듯이 꿉꿉한 사회상을 실감나게 재현하며 소련의 전체주의를 비판했던 조지 오웰의 1984와는 결이 비슷하면서도 명백히 다른 방법으로 스탈린 치하의 소련을 조소한 작품이라 볼 수 있겠다.
마지막으로 개인적인 감상을 조금 더 보태자면 상술한 바와 같이 본작은 흥미로운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이야기의 구성이 복잡다난한 편이라서 독자들의 입장에서는 꽤나 지칠만한 요소들이 제법 산재하는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에서 손을 떼지 않게끔 분위기를 환기시켜준 점이 하나 있는데 다름 아닌 작가의 유머 감각이다. 1930년대에 씌여지고 1970년대에 출간된 작품에 무슨 유머를 찾을 수 있는지 의문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지금봐도 손색이 없는 작가의 유머 감각 덕분에 지칠 만할 때쯤에 여러번 피식되면서 읽었다. 내가 여태까지 읽었던 러시아 문학 작품의 작가는 도스토옙스키랑 톨스토이가 있는데, 두 사람 모두 작품 톤 자체가 사뭇 진지하고 사실주의를 표방하다 보니 작품 내에서 가끔씩 지루하고 딱딱한 부분들이 없잖아 있었다. 그러나 불가코프의 경우에는 제법 세련된 유머 감각을 갖추고 이야기를 쓴 덕에 너무 지루할 틈 없이 재밌게 읽었던 것 같다. 비록 적잖은 분량을 자랑하고 구성도 꽤 복잡한 편이긴 하지만, 고전답지 않은 재미를 자랑하면서도 고전다운 풍미를 갖춘 걸작이니만큼 기회가 되면 한 번 읽어보는 것을 강력히 추천한다.
3. 용의자 X의 헌신 (容疑者Xの献身)
“남이 만든 해법을 검정한다는 것은 단순히 발굴 루트를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일인듯이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잘못된 루트로 들어서서 가짜 보물을 찾고 말았을 경우, 그 보물이 가짜인 것을 증명한다는 것이 때로 진짜 보물을 찾는 것보다 더 어려울 수도 있다.”
- 용의자 X의 헌신 中 -
1958년 오사카 태생의 일본 소설가인 히가시노 게이고(東野圭吾)의 장편소설이자 그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히는 용의자 X의 헌신을 읽어봤다. 원래 히가시노는 어렸을 때까지만 해도 책 읽기를 무척이나 싫어하던 사람이었다. 이는 또래 아이 중에서도 독보적인 수준이었고, 만화책조차도 읽기 싫어할 정도였다. 그러다 중학교 시절 독서를 지나치게 싫어하는 그의 부모가 학교 담임 선생님에게 상담을 청하자, 선생님은 히가시노에게 만화책부터 차근차근 읽혀보라는 권유를 합니다. 이런 권유가 통한 모양인지 그는 독서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고, 훗날 소설이랑 상관이 없어 보이는 오사카부립대학 전기공학과에 진학하면서도 소설가의 꿈을 키우게 되었다. 그렇게 1985년 장편소설 방과 후(放課後)를 출간하며 소설가로서 데뷔하였고, 그 작품이 일본 추리 소설계에서는 명성있는 상인 에도가와 란포상을 수상하며 이름을 알린다. 이후로도 1990년에는 가면산장 살인사건(仮面山荘殺人事件), 1996년에는 악의(悪意), 1998년에는 비밀(秘密), 1999년에는 백야행(白夜行)을 출간해서 선풍적인 히트를 쳤고, 그는 일본에서 가장 핫한 작가 중 하나로 자리매김한다. 최근 들어서도 왕성한 작품활동을 이어나가고 있어서 2024년 현재에 이르러서는 무려 101편의 장편소설을 출간하였다. 2006년에 출간한 본 작품 또한 꽤나 크게 흥행하면서 영상화도 이루어졌는데, 대중소설 나오키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룩하며 비평적인 성과도 거두었다. 내가 이 작품을 읽어보게 된 계기도 평소 알고 지내는 지인의 추천 덕분이었다. 근데 그 지인분의 경우에는 독서를 하더라도 주요 관심분야가 자기계발이나 비문학이어서 소설에는 도통 큰 흥미를 느끼지 않은 편이었지만 유독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이 재밌다고 하면서 강력 추천했었다. 나도 여기에 호기심이 동했고, 그중에서도 히가시노의 대표작으로 여겨지는 본작을 골라서 읽어보게 되었다.
본 작품은 하나오카 야스코라는 전직 호스티스가 이전부터 자신을 스토킹하며 괴롭히던 전 남편 도시가미 신지로부터 시달리다가 우발적으로 그를 죽이게 되는 사건이 벌어지며 시작된다. 비록 대화를 많이 나누지는 못했지만 이웃인 야스코를 연모했던 천재 수학자 이시가미 데츠야가 살인사건이 벌어진 걸 알아차리고 그녀를 돕고자 치밀한 알리바이를 세워서 사건을 은폐한다. 하지만 사건을 담당하게 된 형사인 구사나기 슌페이는 딱 맞아 떨어져 보이는 사건 정황에도 무언가 찜찜함을 느끼고 계속 사건을 파본다. 거기에다 구사나기 형사의 절친한 친구이자 천재적인 물리학자인 유가와 마나부도 친구로부터 사건을 전해 듣고는 굉장한 흥미를 살인사건의 전모를 파헤쳐 보는 것이 이야기의 핵심 내용이다. 앞서 얘기하였듯이 사건을 은폐하고 재설계하는 사람이 수학자이면서 고등학교 교사다 보니 작중 주인공들이 사건을 둘러싼 미스터리를 풀어나가는 과정을 수학 문제를 푸는 과정에 빗대어 진다. 작품의 제목인 용의자 X의 헌신만 하더라도 X가 수학의 방정식에서 몫을 풀어내야 하는 미지수라는 점을 미루어본다면 이는 다분히 작품의 성격을 의식한 작명이다. 작중 이시가미는 학생들에게 문제를 내면서 기하학 문제인듯 보이지만 사실은 함수 문제를 내는 식으로 난이도를 높이는 방식을 쓰는데, 본작의 사건 또한 굉장히 간단하지만 예상 밖의 방법으로 사건을 위장하면서 경찰의 수사에 혼란을 유발한다. 미스테리가 풀리는 방식도 곱씹어 보면 흥미로운 점이 있는데, 진상을 파악하게 되는 단서도 뜻밖에서 부분에서 튀어나오지만, 이게 적당히 변용된 클리셰에서 비롯되고 또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알 수 있다. 이렇게 신선해보이면서 친숙한 방식을 통해 작가는 독자들로 하여금 단번에 반전에 전율하도록 만들어 재미를 선사한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의 장점이자 단점이 되는 요소 때문에 전반적으로 이 책을 읽는 게 그리 만족스럽지 않았다. 바로 너무 지나치게 독자들에게 친절한 문장과 스토리텔링입니다. 이전 문단에도 상술하였듯이 작가 본인인 히가시노는 어렸을 때만 해도 책 읽기를 무척이나 싫어했던 사람이다. 그래서 한때 자기처럼 독서를 좋아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문장 자체를 간단하게 쓰고 독자들이 헤매지 않도록 서사를 꼬아 놓지는 않았다. 분명 이 부분은 독서 초심자에게는 꽤나 큰 장점이 될 수 있지만 저에게는 그닥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문장 자체가 단순한 건 그렇다 치더라도, 문장이 너무 눈앞에 펼쳐진 사실과 풍경만을 묘사하다보니 소위 말하는 글맛이 전혀 없고 밋밋하기 짝이 없었다. 스토리텔링 방식도 평이하다보니 개인적으로는 후반에 반전을 터뜨리기 전까지만 해도 전개가 늘어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상기한 바와 같은 요소들 때문에 저에게는 작품 자체가 몰개성하고 얄팍하다는 인상만이 남아서 썩 만족스럽진 못했다. 하지만 제가 단점으로 꼽은 부분은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취향을 기준으로 한 평이므로 꼭 이 책을 읽는데 고민해야 만큼의 결격 사유는 아니다. 분명히 서사적인 재미는 어느 정도 보장이 되어 있고, 쉽게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니 만큼, 혹시라도 이번 기회의 독서를 시작해보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을 독서 입문작으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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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과 마르가리타 마녀가 빗자루 타고 다니면서 망치로 창문 다 깨고 고양이가 쌍권총난사하고 죽은 귀신들이랑 무도회하는 소재만 보면 ㅈㄴ재밌을것같은데, 뭔가 소재만큼 글이 재밌진 않은 느낌 그래도 재밌긴 함
보르헤스처럼 기발한 상상력으로 이뤄진 세계관이나 가르시아 마르케스처럼 흡인력 있는 서사를 갖춘 건 아니지만 톡톡 쏘는 맛이 있는 불가코프표 마술적 사실주의도 분명히 매력이 있는듯. 개인적으론 입맛에 맞아서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읽어볼 생각이야. - dc App
잘 읽었습니다 - dc App
용의자 X의 헌신이 조금 기대치에 못 미치긴 했지만 다들 재밌었던 책이었어요 - dc App
달과6펜스 원서 처음 보는데, 문장이 그렇게 어려워 보이지 않네 원서로 함 읽어봅까 - dc App
예스러운 어휘들이나 가끔 좀 늘여쓴 문장만 유의하면 원서로 읽기 괜찮은 작품임 - dc App
네 결산 조용히 보는 사람인데 네 꾸준함은 정말 보기 좋다
글솜씨도 부족하고 읽은 책도 별로 안되는데 좋게 봐줘서 고마워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