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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추천을 받아 가벼운 마음으로 펼쳐본 소설. 나름대로 읽을만한 신화 기반 소설이었다. 110화 정도 되는 짧은 분량이라 처음부터 끝까지 완독한 시간은 대략 6시간 정도. 소설의 배경은 영국 신화. 아더왕의 이야기로부터 한참 뒤의 이야기를 다룬다. 서술방식이 그렇게 세련되지는 않았다. 고전문학에서 볼 수 있는 고풍스런 전개들을 그대로 답습한다는 점이 눈에 띈다.
그래도 고풍스런 서사만큼 문장들도 그대로 갖고와서 문장들을 하나씩 즐기며 감상할 수는 있었다. 사실 전개를 살피는 것보다도 문장을 즐기는데 더 집중했던 것 같다. 이 소설에서는 주변의 풍경을 아름답게 묘사하거나, 폭력적인 풍경을 날카롭게 묘사하거나. 두 가지 문장을 때에따라 바꿔가며 쓴다. 문장 중 예시를 하나 들자면 다음과 같다.
위에 보이는 것처럼 이 소설은 문장 하나하나에 상당히 집중한다. 소설 배경이 영국이라는 것을 어필하는 것처럼, 문장조차 영미문학의 그것과 닮아있다. 문장들을 살펴보다보면 18세기 영미문학의 수려한 문장과 상당히 닮아있다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아름다운 문장 속에 음영이 짙게 깔려있다는 점도 흡족한 부분이다.
극이 진행되는 동안 어두워지는 배경을 따라 문체 또한 날카롭게 변모한다. 특히 그 경향은 기사들에게 시련이 주어질때 더 두드러지는데, 이 부분에서 고통을 표현하는 글의 표현력은 훌륭하다고 표현할 수 있겠다. 감정이 무너질 때, 크나큰 고통이 찾아올 때 긴 호흡을 유지하던 문장은 그 규격에서 탈피하여 거칠게 숨을 몰아쉰다. 작가는 그 부분에 주저함이 없다.
작가는 독자들에게 "고통"이라는 감정을 여과없이 내보인다. 표면적으로는 고통의 감정을 뱉어내는데 인색할지언정, 서술은 아픔을 그러모아 비탄한다. 작가는 이를 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폭력적인 문장 또한 감수한다. 한 인물이 다른 인물에게 폭력을 선사할 때, 혹은 잔혹함을 표현해야 할 때는 마치 사드 후작이 빙의한 것마냥 글을 써내려간다. 다음의 문장은 그 예시 중 하나다.
작가는 문장들을 날카롭게 쓸 줄 안다. 생생한 문장들이 긴장의 끈을 팽팽하게 당긴다. 이런 무대 앞에서 작가는 온갖 종류의 폭력을 쏟아낸다. 그건 단순한 칼부림의 수준을 넘어서는 정신적인 폭력을 표현하기 위함이다. 극의 주인공인 에델레르를 경멸하고, 조롱하기 위한 장치.
내가 소설을 소개하는 글에서 거두절미하고 문장들을 나열한 건 이 소설의 서사가 아주 형편없어서는 아니다. 하지만 이 예리한 문장이 없었다면 소설의 서사는 거의 대부분은 의미없어질 종류의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한 거름망이기도 하다. 문장 서술을 즐기는데 익숙하지 않다면 이 소설에서 재미를 느끼기엔 요원하다. 하여튼 서사만을 보자면 아주 큰 줄기를 하나 깔아두고, 빠른 템포로 그 줄기를 따라가는 형식을 띠고 있다. 모든 답은 1화에 있다.
보기에는 허세처럼 보이는 문장들을 이곳저곳에 꽂아두고 뜬구름 잡는 소리나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느 순간 그 복선들은 모두 회수된다. 그게 개연성 있는지 없는지는 차치하고 "하여간" 회수되긴 한다. 치밀한 전개를 바라는 사람이 있다면 역시 읽다가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기본적으로 신화의 전개방식을 따르고 있어서, 상당수 부분은 신비스런 현상에 따라 진행된다. 그에 대한 명확한 설명은 없다.
말하자면, 그게 왜 일어났는지에 대한 설명은 거의 반드시 하지만, "어떻게" 일어났는지에 대한 설명은 신비로운 현상이었다, 라는 문장에 설명을 기댄다. 그래서 전 화와 다음화의 장소가 다르고, 내용이 다르지만 일언반구의 언급도 없이 넘어가기도 한다. 이 부분은 읽으면서 상당히 불만스러웠다. 아주 문장이 훌륭하지만, 동시에 글이 문장에 먹혀 설득력을 부여하는데 실패한 부분이 군데군데 눈에 띄었다.
요컨대 살은 희고 고우나, 뼈대는 골다골증이 있었다. 그런 소리다. 그래도 전체적으로 보면 완성도 자체는 그렇게 나쁘지 않은 편이다. 1화에서 뿌린 강력한 떡밥을 마지막 화에서 진정으로 풀어내면서 그 여운을 더한다. 한순간도 자기 의견에서 벗어나지 않고 꿋꿋이 하려는 말을 이어나가는 자세는 감탄이 나왔다. 그걸 보면서 독자들이 피로감을 느낀다는게 문제긴 하지만.
(긴 얘기를 하지만 결국 이 소설이 말하는 건 위 내용이 끝이다)
슬슬 요약하자면, 이 소설의 포인트는 3가지 정도다. 수려한 문장, 일관성 있는 메세지, 훌륭한 떡밥 회수. 여기에서 치명적인 결함은 서사 간의 개연성이 없고, 가볍게 읽기에는 너무 무거우며, 인물 간의 대화 또한 중세 문학에 가깝다는 것이다.
신화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나름대로 재미포인트를 찾아가며 읽을 수 있긴 하겠다. 두꺼운 책 한 권 분량 정도 되는 양이니 주말, 느긋할 때 날 잡고 한 번 읽으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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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간이 길면 흔히 개연성이 없다고 느끼기도 하는데 고수들은 그런걸 자주 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