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동생의 언니 줄거리
결말까지 다 다루기 때문에, 만화를 먼저 보시고 읽는 걸 추천합니다.
주인공의 누드화가 예고 현관에 1년이나 전시되어버리는 것으로 <여동생의 언니>는 시작한다.
이 그림은 주인공의 여동생이 상상해서 그린 것으로,
주인공은 자신의 누드화를 허락 없이 그렸다는 것에 화나,
여동생도 똑같이 당해보라고 옷을 벗으라고 시켜 누드화를 그리려고 한다.
주인공은 여동생이 그림을 늦게 시작했음에도 자신보다 훨씬 잘 그린다는 사실에
자신이 재능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취직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자신의 누드화를 뚫어져라 쳐다보던 주인공, 그때 여동생의 선생님이 다가와 한 가지 사실을 말해준다.
이 일을 계기로, 주인공은 필사적으로 노력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대망의 종업식 날,
정확한 자신의 알몸을 '언니'로서 동생에게 가르쳐주며, 만화는 끝이 난다.
- 백합은 어떻게 개화할 수 있었는가
백합은 분명 마이너한 장르였다.
그러나 현재는 나름 메이저한 장르로 자리매김하였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던 걸까?
백합물이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던 그 배경엔, 백합물이 태생적으로 지니는 세 가지 특성이 관계한다.
이 글에선 그 세 가지 특성을 파악하고 <여동생의 언니>에서 그 특성들이 작품과 맞물리면서 어떤 시너지를 발휘하는지 알아볼 것이다.
1. 밀집된 여성성
'와 보X가 두개'라는 표현을 들어본 적 있는가?
남자가 백합물을 보는 이유에 대한 대답으로 자주 쓰이는 표현이다.
이 표현은 그 상스러움 만큼, 백합물의 세일즈 포인트를 제대로 찝고 있다.
바로 여자가 많이 나온다는 것
<여동생의 언니>에서는 이 특성을 예술적 누드화와 연관 지으면서
자연스럽게 인물들의 누드를 제시한다.
여성의 누드화는 예술 작품들에서 자주 나타나는 소재이다.
이유는 시대, 작가마다 다르지만
보통 두 가지 이유로 귀속될 것이다.
1. 여성의 신체가 아름다워서
2. 여성의 나체를 공개하는 행위 자체가 파격적이어서
<여동생의 언니>에서 누드화를 차용한 목적은 아마 2번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작품 초반의 파격성은 물론, 언니의 성장을 보여주는 데도
'누드화'가 가지는 파격성은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다.
초반에 자신의 누드화가 걸린 것을 보고 당황하던 모습과,
후반에 직접 자신의 누드화를 그려서 공개하는 모습의 대비는 정말 인상적이다.
또한 여동생이 그린 누드화는 언니의 모습을 상상해서 그린 것인데,
이 그림이 실제 누드와 다르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도 특기할 만한 점이다.
여동생은 줄곧 언니의 등을 보고 자랐다.
그렇기에 여동생의 목표는 언니를 앞질러서, 언니의 정면을 바라보는 것,
즉 누드화를 그리는 것.
어쩌면 작품 말미의 누드화는 언니의 자포자기로 읽히기도 한다.
이미 여동생이 나를 따라잡은 지 오래니, 내 모습을 제대로 한번 봐 보라고,
관찰하고서 앞으로 더 나아가라고, 그림 그리기를 관둔 나보다 훨씬 앞으로.
언제나 언니를 따라가던 여동생이 이번에는 언니와 다른 길,
미대로 진학하는 길을 선택하는 것도, 이런 측면에서 보면 이해가 된다.
2. 성관념의 제거
이성애는 선천적인 성관념을 그 전제 조건으로 한다.
서로 다른 성별 간 사랑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몸의 차이로 인한 남성 쪽에서의 신체적 우위가 존재하고
결정적으로 실제 성관계 시에 각자의 선천적 성관념을 따른다.
가부장적 사회질서 아래에서는 경제적인 부분까지 선천적인 성관념에 귀속된다.
남자는 밖에 나가서 일하고, 여자는 집에서 살림살이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동성애는 이성애가 가진 선천적 성관념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그러나 동성애'물'은 사정이 좀 다르다.
BL물에서는 선천적 성관념은 없어졌지만, 선천적 성관념이 변형된 역할적 성관념이 존재한다.
흔히 공/수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이다.
그에 반해 백합물에서는 역할적 성관념도 상당히 모호해진다.
<여동생과 언니>를 만일 공/수로 나눈다면 어떻게 될까?
여동생이 마음대로 언니의 누드화를 그린 것이니 초반엔 여동생이 공,
그 다음엔 언니의 명령에 따라 벗었으니 수, 이런식으로?
이 작품을 바탕으로 창작된 <룩 백>과 같은 작품을 보면
공/수의 위치를 특정하기가 더욱 힘들어진다.
그래서 '플라토닉 러브'라는 말이 백합물에 자주 쓰인다.
육체적 관계, 성관념에 사로잡히지 않는 정신적인 교감이 대두되는 관계인 것이다.
그렇기에 백합물은 서로 연인이 되는 과정이 매우 험난하다.
남자다운 혹은 여자다운 모습에 반하는 것과 같은, 정석적인 로맨스물의 서사를 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곧 장점이 되기도 한다.
연애와 외부 사건, 그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균형 잡힌 서사를 전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시를 들어보자면, 겨울왕국은 분명 자매애라는 백합적 성격이 꽤 드러나는 작품이지만,
외부 사건들이 간과되지 않고, 오히려 외부 상황에 의해 자매애가 더욱 부각된다.
<여동생의 언니>도 언니의 성장 서사가 간과되지 않으며,
그것으로 인해 자매애가 더욱 부각되는 구조를 띄고 있다.
3. 보편성과 외부 관계 종속
성관념의 제거로 인해, 백합물은 남성향, 여성향의 틀에 갇히지 않는 보편적인 장르가 되었다.
그래서 백합물은 외부 관계에 종속된다.
성관념으로 형성된, 연인 사이의 내부 관계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자매애의 형태를 띈 백합물이 많은 이유도
이야기를 진행하기 위해 따로 외부 관계를 쌓아나갈 필요 없이,
이미 존재하는 언니-동생 관계를 그저 가져다 쓰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여동생과 언니>에선 이러한 특성을 매우 잘 활용한다.
'언니'로써 '동생'에게 자신의 누드를 제시하는 것이다.
- 마무리 및 여담
<룩 백>의 원형이 된 작품이라는 말과, 백합물로서의 성향이 강하다는 말을 듣고,
만화 대회로 리뷰하면 좋을 것 같아서 단편집을 샀는데
우연의 일치로, 현재 일어나고 있는 딥페이크 성착취물 사태와 정도의 차이만 있지, 거의 똑같은 일을 다루고 있는 만화를 보게 되었네요. 좀 놀랐습니다...
그리고 <룩 백>의 원형으로 보이는 작품이지만
마치 거울로 비춘 것처럼, 전체적인 구성 측면에서
완전한 대비 구도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 흥미로운 것 같습니다.
<여동생과 언니>에서는 처음부터 정면 누드화를 박고 시작하지만
<룩 백>에서는 제목처럼 계속해서 뒤를 보여줍니다.
<여동생과 언니>에서는 자매애라는 외부 관계가 이미 설정되어 있으나
<룩 백>에서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외부 관계를 쌓아 나가고 말이죠.
타츠키는 정말 단편의 악마가 맞는 것 같습니다...
분량도 별로 없는데 이렇게 할 얘기가 많을 줄은....
여기까지 읽어주신 여러분들께 감사하며, 그럼 전 이만
타츠키 만력 장편/단편 극단적으로 갈리는 것도 그렇고 계속 장편만 고집하는 것도 존나 웃김 ㅋㅋㅋㅋ
차라리 단편을 꾸준히 뽑아서 단편집만 내는 만확였으면 만신이 될 수 있었을지도
타츠키 장편작들도 개인적으로 좋아하기는 한데, 솔직히 단편에 타고난 만화가임
원래 룩 백 까지 이 글에서 다루려고 했는데 분량이 서너 배는 늘어날 것 같아서 관굼
장편도 잼슴요
잘읽엇다 재밋네
후지모토 타츠키 작품을 거의 다 싫어하고, 단편도 다 별로였는데 룩 백, 여동생의 언니 이 두 작품들만큼은 좋았음
보벼야 백합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