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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검은 얼굴의 여우



작가 '미쓰다 신조'는 일상에 미스터리/오컬트를 접목한 소설을 자주 발표하는 것 같다. 많은 장편과 단편소설을 발표한 미쓰다 신조는 잔잔한 표현을 천천히 쌓아 올리는 형식에 강하다. 또한, 현실과 픽션을 교묘하게 섞어 '진짜' 있었던 일이라는 느낌을 준다. 꾸역꾸역 하나 더 말해보자면, 단편집의 경우 작품 하나하나 쌓아서 마지막에 큰 이야기로 묶어버린다. 그런데, 내용이 크게 이어지는 형태가 아니라 하나의 '미스터리'처럼 모호하게 이어버린다. 그래서 독자들은 책을 끝까지 읽으면 큰 이야기로 느끼는 경우가 있겠지만 때론 답답함을 느낄 가능도 있다. 아무튼 신조의 강점은 괴담을 현실과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어 버린다는 것이다. 



<검은 얼굴의 여우>는 조선의 슬픔과 일본 오컬트가 결합한 미스터리 추리 소설이다. 조선과 일본 오컬트의 조합은 흔하지 않다. 하지만, 주인공을 보면, 우리가 교과서에서 보던 무기력한 지식인 주인공이 떠오른다. 조금 더 말해보자면, 밑도 끝도 없이 무기력한 등장인물은 아니다. 무기력함에 빠져있지만, 스스로 알아보고자 하는 능동적인 주인공이기도 하다. 소설은 배경은 태평양전쟁 전후다. 주인공 '모토로이 하야타'는 만주에서 오족협화의 달콤함에 빠져 건국대학을 졸업한 명문 지식인이다. 그는 일본제국이 내세운 '대동아'를 긍정했던 인물이지만, 곧 제국의 위선을 깨우친 인물이기도 하다. 하야타는 망해버린 조국을 재건하려고 탄광에 지원한다. 소설의 재미 중의 하나는 근현대 탄광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는 것이다. 당시 조선인도 반강제적으로 많이 탄광에 갔다고 한다. 소설 속 주인공을 도와주던 '아이자토 미노루'는 전쟁 시절 강제로 한 조선인을 탄광에 밀어 넣은 사실에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 주인공은 탄광에 대해서 무지해서 아무것도 모른ㅜ채 탄광에 취업할 뻔했지만, 미노루가 그런 주인공을 보고 옛날 조선인이 생각나서 도와주게 된다. 그렇게 주인공은 미노루가 일하고 있는 탄광에 일하게 된다. 



소설은 탄광에서 주인공이 괴담을 듣게 되면서 긴장감이 갑작스레 증가하게 된다. 과거 식민지 조선인의 슬픔과 일본의 여우신 괴담은 어울리지 않으면서 묘하게 어울린다. 역사학자도 아니고 그저 일본 유명 미스터리 작가가 식민지 조선인의 역사를 다룬다는 것은 부담이 되는 작업이다. 조금만 긴장감을 놓게 되면 한국에서도 욕을 먹고, 일본에서도 욕을 먹기 때문이다. 필자는 미쓰다 신조의 <검은 얼굴의 여우>에게 호평을 남기고 싶다. 역사를 엄숙하게 다뤄야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신성시하면 안 된다. <검은 얼굴의 여우>는 일본 제국의 제국주의 행보를 옹호하지도 변명도 남기려고 하지 않는다. 그저, 이상을 좇았던 주인공의 무기력함과 조선인의 무도한 탄광 생활을 논하고 있을 뿐이다. 고작 탄광 생활을 논하냐고 누군가는 비판할 수 있겠지만, 누군가에게는 고작이지만, 개인에게는 죽음과도 같다. 한국에서도 이러한 역사 추리소설이 나왔으면 좋겠다. 현재 한국은 페미니즘/퀴어 문학이 득세해 다른 성격의 문학은 잘 보이지 않는다. 아무튼 <검은 얼굴의 여우>는 미쓰다 신조의 매력을 알고 싶다면 꼭 읽어 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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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노조키메



마을에 얽힌 미스터리는 슬프면서 추악하다. 한국에는 <이끼>, <곡성>이 마을에 둘러싼 어떤 미스터리를 다루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끼>는 영화로는 흥행하지 못했지만, 원작 만화는 크게 흥행했다. <곡성>은 크게 흥행했다. 개인적으로 <곡성>은 한국 미스터리/오컬트 영화 장르의 앞에 꽃길을 깔아줬다고 평가하고 싶다. 왜 이런 얘기를 하냐면, 이번 '미쓰다 신조'의 작품 <노조키메>는 마을을 둘러싼 저주의 내용이기 때문이다. 마을은 따뜻한 고향이기도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폐쇄적인 그들만의 '리그'의 성격도 가지고 있다. 한국 집성촌을 봐도 씨족이 모이면, 외부인을 탐탁 않게 여기는 경우도 있다. 그러한 곳에 만약 어떤 불문율 또는 저주가 있다면, 마을 전체가 모른척 하거나 두려워한다. 한국에도 유명한 얘기가 있지 않은가? 전라도 염전에서 학대받던 사람이 파출소로 도망쳤는데, 경찰이 보호하지 않고 다시 염전으로 데려간 사건. <노조키메>는 그러한 공포를 건드린 소설이 아닐까 싶다.



소설은 미쓰다 신조의 작품답게 어떤 작가가 괴담을 수집하는 데서 시작한다. 작가는 어떤 인물에게 하나의 괴담을 듣게 된다. 이야기는 크게 두 가지다. '엿보는 저택의 괴이', '종말 저택의 흉사' 서로 다른 단편으로 보이지만 읽으면 유기적으로 연결된 단편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조금 더 얘기해 보자면, 시간상 '종말 저택의 흉사'가 앞이고 '엿보는 저택의 괴이'가 뒤다. 혹시나 이 감상문을 보고, '종말 저택'부터 읽는 실수를 하지 않기를 바란다. 무조건 순서대로 읽으라고 말하고 싶다. 작가가 의도적으로 배치를 해서 소설을 완독하고 나면, 묘한 여운이 몰려온다. 실제로 '미쓰다 신조'의 작품은 파도처럼 몰려오는 공포보다 여름에 내리는 비처럼 추적추적 젖는 느낌이다. 주인공은 지인들과 산속 외진 곳에서 숙박업 아르바이트를 한다. 그곳은 여러 개의 민박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있었다. 주인공과 일행은 한 명씩 한 민박을 담당했다. 여기서 지인 중에 한 여성이 순례하러 온 모녀를 만나게 된다. 그녀는 모녀의 권유에 따라서 어떤 거대한 돌이 있는 곳으로 가게 된다. 그날 저녁, 모녀를 따라갔던 여성은 일행에게 말해, 다음 날 같이 거대한 돌을 찾으러 간다. 소설은 여기서부터 마지막까지 질주한다. 중간중간 등장하는 소름 끼치는 묘사는 발가락에 땀이 날 정도였다. 



인터넷에서 '미쓰다 신조'를 검색해 보면, 많은 사람들이 <노조키메>를 입문작으로 추천한다. 그만큼 초심자가 읽기도 좋고, 몰입도가 좋은 소설이다. 그저 피가 난무하는 그런 소설이 아니라, 계속 생각을 하고 '저것'의 정체가 무엇일까를 고민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생각했을 때도 <노조키메>는 미쓰다 신조의 입문작으로 적절하다. 책 전체가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있어 독자가 쉽게 몰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작품이 그렇겠지만 독자가 작품에 몰입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호러/미스터리/추리는 그 정도가 더욱 중요하다. 여름에 끄트머리에 다다르고 있지만, 늦게나마 더위를 날리고 싶다면 <노조키메>를 꼭 읽어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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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국문학 후기 시리즈처럼 시리즈 해보려고
나는 잡식 문학 시리즈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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