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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본질은 무엇인가? 이 작품을 꿰뚫는 질문이다. 카브레는 이 악을 표현하는 상징으로 바이올린을 사용한다. 바이올린 “비알”과 관련히여 일어나는 모든 비극적 서사를 통해 우리는 작품속 잠재된 악을 감지한다. 주인공 아드리아의 회상으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줄거리만 보면 아드리아가 성장함에 따라 주변의 영향을 받아 악에 물들어가고 결국 타락하는 것…으로 보일수 있지만 사실 이 메인 테마인 악과 더불어 다른 중요한 주제가 존재한다. 바로 사랑이다. 악은 사랑과 대비됨에도 카브레는 이 두가지를 비선형적 구조로 변주해나간다. 

하지만 앞서 던진 질문과 다르게 이 작품 안에서는 악에 대한 답을 발견 할 수 없다. 우선 이 작품이 미완성이라는 말을 해야할거 같다. 3권 뒷편에 작가가 “나는 이 소설을 완성하지 않고 아우슈비츠 석방 기념일인 2011년 1월 27일부로 더 이상의 집필을 완전히 그만두었다” 라고 작성하고 있다… 물론 2차 대전의 참혹함과 나치와 유대인이 중요하게 다뤄지는 작픔이지만 결말에 이르러서 모든 비밀들이 풀리고 사이드 플롯들 간의 완결성을 보여주는것을 기대한 나로서는 굉장히 아쉽다고 말할수 밖에 없을거 같다.

형식적인 측면을 살펴보자면 치매를 겪는 노년의 아드리아의 시점의 경우 모호하고 장황한 묘사들이 주를 이룬다. 아드리아의 회상이 가장 비중이 많지만 그외 과거,현재 가리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시점도 마구 난입해서 특정 화자가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회상과 현재를 볼드체로 구분해 놓았는데 현재에서는 과거 속 천재였던 아드리아가 모든것을 잃고 퇴화하고 몰락한 모습을 노골적으로 보여줘서 처연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서사는 바이올린의 제작부터 소유자들을 거치는 과정을 모두 보여주므로 <나는 고백한다>는 과거 중세 유럽부터 2차 대전까지의 역사를 아우르면서 진행되지만 구조가 뒤죽박죽이다보니 시대극이라고 판단하기는 어렵다.

보면서 생각이 든거지만 소설 속 인물들이 저지르는 행동을 과연 악이라고 규정할 수 있을까? 단순히 악이라고 보기에는 애매한 사건들이 존재한다. 악보다는 욕망에의 이끌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일들이 대부분이다. 실체라고는 보이지 않고 너무나 상대적인 악들만 등장한다. 예를 들어 불륜과 생체 실험은 둘다 현실에 존재하는 악의 형태이지만 이것이 동일시될수 있는가? 후반부에 주인공인 아드리아가 <악의 역사>라는 책을 쓰는게 나오는데 만약 이 책과 관련해서 악과 연관된 관념을 좀더 표현했다면 좋았을거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단순히 악에 대해 탐구하는 소설은 아니다. 주인공 아드리아와 친구 베르나트의 성장 소설이라고도 생각되는 작품이다. 유년기의 압박과 그로 인한 억압된 충동들, 청년기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의 한 인간의 일생이 담겨있다. 가족과 친구에 대해서, 사랑 그리고 우정과 인간 관계를 끊임없이 고찰한다. 서사나 관념보다는 개개인의 과거와 그 과거 속 일들이 현재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인과적인 사건들을 중심으로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이어지는 플롯들의 연결성을 찾아볼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