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피」
살구꽃철 가까운
동래 병원에
입원해 있는 고희의 노처(老妻)더러
"살구꽃이 좋지?" 하니
좋다고 해서,
"살구도 좋지?" 하니
또 좋다고 해서,
"남들이 먹고 버린 쌀구씨를 줏어모아
한약국(漢藥局)에 갖다주고
계피도 읃어먹어 봤오?" 하니
"일곱 살 때던가? 여덟 살 때던가?" 하며
꼭 그 일곱 살짜리같이 빙그레 웃는다.
그래 오늘은
온갖 것 다 접어두고
그 계피를 찾어 동래장으로 간다.
내 인생에선 이게 제일 좋은 일만 같어
이슬비 내리는 속을
동래장으로 간다.
- 『늙은 떠돌이의 시』(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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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주의 공적 행적에 대한 문제와는 별개로 그의 독자라면 누구건 좋게 보아 마지않는 것이 하나 있으니, 바로 애처가로서의 면모이다. 「내 아내」 같이 장년기에 씌어진 애송시가 있기도 하지만, 그의 아내에 대한 애착은 대체로 시적 화자가 곧 시인 자신이 되고 있는 노년기 시편에 포진하고 있다. 서정주의 아내 사랑이 독자에게 특히 귀감으로 보이게 되는 것은 이를 노래한 그의 작품에 실제 자신의 행적이 용케도 부응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그가 생전에 발표한 마지막 작품이 「겨울 어느 날의 늙은 아내와 나」였으며 그 해 아내가 죽자 자신도 거의 따라 죽듯이 생을 마감했다는 이야기는 거의 전설화되어 있을 정도다. 개인적으로 그는 김춘수와 함께 아내의 존재가 시작(詩作)과 상당히 긴밀하게 연결되었던 가장 대표적인 시인이 아닐까 생각된다.
반드시 아내에 대한 애착이 유다르기 때문은 아니겠지만 서정주의 노년기 시에서 아내를 다룬 시들은 다른 주제에 비해서는 대체로 작품적인 완성도가 좋은 편이다. 「계피」는 이러한 시들 가운데 가장 표준적인 작품에 해당한다. 말미가 다소 유치하지만 호소력을 발휘하고 있다. 자전적인 작품은 그 작가의 다른 자전적인 작품들을 생각하면서 읽었을 때 더 재미있게 느껴질 때가 많은데 서정주는 그 효과가 대단히 강하다. 가령 시인과 아내가 같은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 것은 아마도 그들의 유년 생활이 지근거리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일 것이다(「나의 결혼」). 이 아내는 혼수로 가져왔던 귀한 장롱을 가난 때문에 울음 참고 팔아 주기도 했던 이다(「꿩 대신에 닭」). 그걸 이미 아는 독자로서는 그걸 아는 남편인데 저 심정이 안 될 리가 없지 않겠는가 싶게 된다. 더더욱 실감이 되는 것이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인간적인 면모는 또 별개란 걸까
근데 그건 히틀러어게도 적용되는 거라 말하기가 미묘
그러니 기분이 이상해진단 거임...
내가 서정주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ㅋㅋ 갠적으로 그거는 이상하다기보다는 오히려 당연한 것 같다고 느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