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필레보스



이번엔 에우티프론(ΕΥΘΥΦΡΩΝ, Euthyphro).
2a~3a까지의 내용.
서광사는 31p~35p, 정암은 아카넷 판본 23p~25p(주석은 61p~68p).


원래는 향연 등 더 할 생각도 있었는데, 눈깔 이슈로 여기까지만. ㅈㅅ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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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광


에우티프론: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겁니까, 소크라테스님? 자주 찾으시는 리케이온(1)의 그곳들을 그냥 두시고, 지금은 이곳 바실레우스 관아(官衙)(2)를 끼고 서성이고 계시니 말씀입니다. 어쨌든 선생님께서야 저에게처럼 바실레우스 관할의 어떤 송사(訟事)가 생긴 건 아닐 게 분명할 테니까요.

소크라테스: 아, 에우티프론! 실은 그걸 아테네 사람들은 송사라 하지 않고, 기소(起訴)(3)라고 한다오.

에우티프론: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누군가가 선생님을 기소한 것 같군요. 선생님께서 다른 사람을 기소한 것으로 제가 여기게 될 일은 없을 테니까요(4).

소크라테스: 물론 아니오.

에우티프론: 하지만 선생님을 다른 사람이 기소한 게로군요?

소크라테스: 바로 그렇소.

에우티프론: 그 사람이 누구입니까?

소크라테스: 아, 에우티프론! 나 자신도 그 사람을 아주 잘 알지는 못한다오. 젊고 무명한 사람인 것 같기 때문이오. 그렇지만 사람들이 그를 멜레토스(5)라 부르는 것으로 나는 생각하오. 한데, 그는 피트토스 출신(6)이라오. 혹시 피트토스 출신으로 곧은 머리칼에다 수염은 별로 볼품이 없으면서도 매부리코를 가진 멜레토스란 자를 기억하시는지.

에우티프론: 기억나지 않는군요, 소크라테스님! 그렇지만 그가 무슨 죄목으로 선생님을 기소했습니까?

소크라테스: 무슨 죄목으로요? 내 생각으로는 그게 예사로운 게 아닌 것 같소. 젊으면서도 그처럼 중요한 문제에 대해 아는 바가 있다는 건 평범한 일이 아니겠기 때문이오. 그 사람이 말하는 것은 젊은이들이 어떤 식으로 타락하게 되고 또 이들을 타락시키는 자들이 누구인지를 알고 있다는 게요. 그리고 그는 똑똑한 사람일 것 같으며, 자기와 같은 나이 또래의 젊은이들을 타락시키고 있는 나의 어리석음을 간파하고서는, 마치 어머니에게라도 이르듯(7), 나라에다 나를 고발하러 온 거요. 또한 내가 보기엔 그만이 나라 일을 시작함에 있어서 옳게 하는 것 같소. 왜냐하면 먼저 젊은이들이 최대한으로 훌륭하게 되게끔 그들을 돌보는 것은 옳게 시작하는 것이켔기 때문이오. 마치 훌륭한 농부가 먼저 어린 식물들을 돌보고, 그 다음으로 다른 것들도 돌보듯이 말이오. 더구나 멜레토스는 아마도, 그가 말하듯, 젊은 싹들을 타락시키고 있는 우리를 먼저 제거하고 있을 것이오(8). 그런 다음에는, 나이든 사람들을 돌보게 됨으로써, 나라에 하고많은 아주 좋은 일들이 생기게 하는 데 그가 이바지하게 될 게 분명하오. 적어도 이렇게 시작을 하는 사람이 으레 맞게 될 결과가 그렇겠듯이 말이오.

에우티프론: 제발 그렇게만 되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소크라테스님! 그러나 결과는 그 반대로 되지 않을까 두렵군요. 왜냐하면, 제가 생각하기에는, 그가 선생님을 해치려함으로써 나라를 그야말로 그 근본에서부터 잘못되게 하는 짓을 시작한 것 같기 때문입니다(9). 그래, 그자가 선생님께서 뭘 해서 젊은이들을 타락시키고 있다고 주장하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1: 아폴린 신에 대한 수식적 호칭으로 Apollōn Lykeios가 있는데, 리케이온(Lykeion)은 이 아폴론 신에 봉헌된 김나시온(gymnasion)의 이름이다. 아테네 성벽의 동쪽 외각에 위치한 이곳에는 가까이에 일리소스(Ilisos)의 지류가 흘렀다. 오늘날의 그리스 대통령 관저 근처의 거리 이름들 가운데 하나가 '리키온 거리'(Likiou [hodos])인데, 아마도 이 근처로부터 국립 공원의 일부분 지역에 걸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될 뿐, 그 정확한 위치는 확인할 길이 없다. 어쨌든 훗날 아리스토텔레스가 그의 학원을 이곳에 세우게 되어, 플라톤이 아카데미아(A k a d ē m i a, Akadēmia) 학원을 세운 터가 되는 김나시온과 함께 이곳이 더욱 유명해진다. 플라톤의 《리시스》편(203a)에는 소크라테스가 아카데미아에서 리케이온으로 향해서 가고 있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곳이 소크라테스가 여러 사람과 자주 대화를 갖던 곳임은 다른 대화편들에서도 언급되고 있다. 아테네의 김나시온들에 관해서는 《크리톤》편, 50d의 각주를 참조할 것.)


(2: 아테네는 클레이스테네스의 민주화 개혁[이에 대해서는 《소크라테스의 변론》편, 25a의 협의회에 대한 주석의 앞부분을 참고할 것] 이후 해마다 10개 부족 단위들에서 선출된 10명의 장군들(stratēgoi)이 영향력 있는 공직자들로 선출되었고, 나라의 통상적인 공무 수행은 역시 해마다 추첨에 의해서 뽑힌 아홉 명의 집정관들(행정관들: archontes, arkhontes) 및 1명의 서기로 구성된 위원회가 맡았다. 이들 집정관들 중에서 형식상으로 둘째 서열인 관직의 명칭이 바실레우스(basileus)이다. 원래 이 말은 '왕'을 뜻하는 것이었으나, 옛날의 신정(神政) 정치 시대의 왕이 관장하던 종교적인 업무를 사무적으로 주관하게 된 관직에 이 이름이 새삼 붙여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사법권과 관련해서는 살인 사건이나 종교, 특히 신들에 대한 불경죄와 관련되는 대부분의 사건들은 이 '바실레우스'가 관장했다. 이 집정관의 관아를 흔히 basileios stoa라 하는데, 그 위치로 짐작되는 곳은 책 뒤의 약도에 표시되어 있다. 소크라테스는 나라가 믿는 신들을 믿지 않는다는 죄목으로 기소되어 있어서, 이와 관련된 진술을 하기 위해 이 관아 근처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던 터였는데, 에우티프론이 독신(瀆神) 행위로 간주되는 살인 사건 때문에 이곳에 들려 용무를 끝내고 나오는 길에 그를 만나게 되었다.)


(3: 일반적으로 소송(訴訟) 또는 재판을 헬라스어 말로는 dikē라 하지만, 이 용어는 엄격히는 여기에서처럼 개인간의 '송사'(idia dikē)를 가리키고, 공소(公訴: dēmosia dikē)의 제기, 즉 기소는 graphē라 한다. 개인간의 송사는 피해자측이 소송을 제기할 수 있으나, 공소의 제기는, 당시에는 검사 제도가 없었으므로, 아테네의 성인 남자로서 공민권을 가진 사람이면 누구든 '원하는 사람'(ho boulomenos)이 할 수 있었는데, 이는 서면으로 해야 하므로, '글로 적은 것' 또는 '글로 적어서 하는 것'이라 해서 '그라페'(graphē)라 했던 것이다. 여기에서 소크라테스를 기소한 자가 누구인지는 곧 밝히게 되는데, 더 자세히는 《소크라테스의 변론》편 23e~24a에서 언급되고 있다.)


(4: 에우티프론의 이 말을 통해 그가 소크라테스의 숭배자임을 플라톤이 암시하고 있는 것으로 버넷은 말하고 있다.)


(5: Melētos는 여기에서 밝혀져 있듯, 아테네의 한 부락(巿區: dēmos)인 피트토스(Phitthos) 출신으로, 《소크라테스의 변론》편(23e)에서는 시인들 무리에 끼이는 것으로 언급되어 있다. 아리스토파네스의 《개구리》(1302)에서 풍자되고 있는 같은 이름의 시인과 동일 인물인지는 불명하다.)


(6: 다른 나라(polis)의 사람인 경우는 그 나라 이름을 밝히나, 아테네 시민의 경우에는 출신 부락(巿區: dēmos: 영어로는 deme)과 함께 아버지의 이름을 밝히는 것이 관례다.)


(7: 원문을 문자 그대로 옮기면, '마치 어머니에게처럼'으로 되겠으나, 문맥의 뜻을 살리는 쪽을 택했다.)


(8: 원문에서 쓰이고 있는 낱말들은 젊은이들이라는 '새싹들을 제대로 자라지 못하게 하는 잡초들을 뽑아내는' 행위를 연상케 하는 것들이다.)


(9: 소크라테스에 대한 에우티프론의 생각이 읽히는 대목이다. 그리고 '나라를 그 근본에서부터 잘못되게 하는 짓을 시작한 것'이라고 옮긴 문장에서 '근본에서부터'의 원어는 'aph hestias'(헤스티아로부터)인데, hestia는 영어로는 hearth로 옮기는 것으로서 각 가장에 있어서 불씨를 간직해 두는 '화로'나 '화덕' 구실을 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불을 쉽게 얻을 수 없었던 고대 사회에 있어서 hestia는 가정의 상징적 핵심이었던 데서 이런 표현을 쓰게 된 것이다. 헬라스 신화에 '헤스티아 여신'이 중요한 여신으로 등장하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같은 문장에서 '잘못되게 하는 짓'이란 kakourgein을 옮긴 말인데, 이 말은 일반적으로 '해친다'는 뜻으로 쓰이는 것이지만, 여기에서는 나라(polis)가 나라 구실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만든다는 뜻으로 본래의 말뜻을 살려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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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음


에우튀프론: 무슨 새로운 일(1)이 생겼나요, 소크라테스님? 으레 시간을 보내시던 뤼케이온 근방(2)을 벗어나 여기 왕 통치관(3)의 주랑건물(4) 근처에서 지금 시간을 보내시다니요. 설마 선생님도 저처럼 왕 통치관 앞에서 하게 되어 있는 무슨 소송이 있지는 않을 텐데요.

소크라테스: 에우튀프론, 사실 아테네인들은 그것을 소송이라고 부르지 않고 공소라고(5) 부른답니다.

에우튀프론: 무슨 말씀이세요? 누군가가 선생님에 대해 공소를 제기한 것 같군요. 선생님이 다른 사람에 대해 공소를 제기했다고는 생각할 수 없으니까요(6).
소크라테스: 물론 아닙니다.

에우튀프론: 다른 사람이 선생님에 대해 그랬다는 거지요?

소크라테스: 물론입니다.

에우튀프론: 그가 누군가요?

소크라테스: 나 자신도 그를 별로 잘 알지는 못합니다, 에우튀프론. 좀 어리고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사람으로 보입니다. 내 생각에 그 사람 이름은 멜레토스(7)라고 하는 것 같더군요. 그는 피트토스 구민(8)인데, 혹시 피트토스 사람으로 긴 생머리에 턱수염은 그리 많지 않고 매부리코인 멜레토스라는 사람을 아십니까?

에우튀프론: 모르겠습니다, 소크라테스님. 그런데 그가 선생님에 대해 어떤 공소를 제기했나요?

소크라테스: 어떤 공소냐고요? 내가 보기엔 범상치 않은 것입니다. 젊은이이면서 그만한 일을 알고 있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지요. 그 사람 말로는, 젊은이들이 어떤 방식으로 타락하게 되는지와 그들을 타락시키는 것은 누구인지를 자신이 안다는 겁니다. 그는 지혜로운 사람인 듯싶습니다. 자기 또래의 사람들을 타락시키는 나의 무지를 간파하고, 어머니한테 일러바치러 가듯이 나라에 나를 고소하러 가는 것이지요. 사실 내게는 그 사람만이 나랏일을 올바르게 시작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젊은이들이 가능한 한 가장 좋은 사람이 되도록 그들을 제일 먼저 돌보는(9) 것이 올바른 방식이니까요. 좋은 농부라면 이런 식물들을 제일 먼저 돌보고 그다음에 나머지 것들도 돌보기 마련이듯이 말이지요. 게다가 멜레토스는 아마도, 그 사람 주장으로는 젊은이들의 싹을 타락시킨다고 하는 우리를 말끔히 정화시키고 나서, 그다음에는 나이 든 사람들을 돌보아 나라에 더 없이 크고 많은 좋은 것들이 생기게 할 공로자가 분명합니다. 이런 식으로 시작한 사람은 으레 그렇게 되기 마련이지요.

에우튀프론: 소크라테스님, 그러면 좋겠습니다만 그 반대가 되지나 않을까 걱정이네요. 선생님께 부정의한 행동을 하려 함으로써 그는 나라를 그야말로 그 근간(10)에서부터 망쳐 놓기 시작하는 것으로 보이니까요. 제게 말씀을 좀 해 주시죠. 선생님께서 도대체 뭘 해서 젊은이들을 타락시킨다고 하는 겁니까?






(1: 무슨 새로운 일: '새로운 일'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neōteron은 관용적으로 예기치 못한 일이나 나쁜 일을 나타내는 뉘앙스를 갖는다. 그래서 '무슨 새로운 일이 생겼나요'라고 번역한 문장은 '무슨 일이라도 났나요'라는 식으로 번역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리고 표면적인 맥락을 고려하면, 후자의 번역이 더 어울려 보이기도 하다. 바로 뒤에 이어지는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이, 소크라테스가 왕 통치관의 주랑건물 근처에 오는 경우는 거의 없었기 때문에 에우튀프론이 여기에서 소크라테스를 만난 것은 그에게는 뜻밖의 일이었다. 또한 소크라테스가 공소 제기를 당했고 당대의 독자나 현재의 독자 모두가 알다시피 이후 재판에서 사형을 구형받게 되니, '네오테론'이라는 말이 나쁜 일을 나타내는 뉘앙스를 갖는 것도 여기에 직접적으로 적용된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무슨 새로운 일'이라는 표현이 『에우튀프론』을 시작하는 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저자인 플라톤이 보다 중층적인 의도를 가지고 이런 표현을 사용했을 가능성도 있다. 고대 그리스 문학 작품들 중에는 그 작품의 처음 몇 단어가 작품 전체의 분위기와 주제를 시사하는 경우들이 있다. "분노를 노래하라"로 시작하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가 아킬레우스의 분노를 주제로 하고 있다는 것이 비슷한 예라고 할 수 있겠다. 플라톤의 대화편들 중에서도 이와 비슷하게 처음 한두 단어가 작품 전체의 주제를 시사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경우들이 있다. 예를 들어, 영혼이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주제의 『파이돈』은 '자기 자신'이라는 말로 시작하고, 우주의 수학적 질서를 역설하는 『티마이오스』는 '하나, 둘, 셋'으로 시작하고, 정의로운 철학자들이 현실 참여를 위해 내려가도록 강제되어야 한다는 『국가』는 (소크라테스가) '내려갔다'는 말로 시작하는 식이다. 『에우튀프론』에서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전통적인 신화 속의 이야기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6a). '나라가 믿는 신들을 믿지 않고 새로운 신령스러운 것들을 도입한다'는 것이 소크라테스의 공식적인 기소 내용에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사실은 다소 의미심장한데, 정작 소크라테스가 재판정에서 제시한 변론 내용을 다루고 있는 『소크라테스의 변명』에는 이와 관련한 논의가 빠져 있다. 그리고 이와 관련한 변론은 어떤 의미에서는 『에우튀프론』에서 제시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소크라테스의 죄목인 불경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전통적인 신화들을 믿지 않는 것이 나라가 믿는 신들을 믿지 않는 것에 해당하는지, 또 거기에 해당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신들에 대한 불경인지가 먼저 밝혀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밝히는 것은 결국 '경건이란 무엇인가'의 문제를 밝히는 일이 되며, 『에우튀프론』은 바로 그 주제를 다루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분명 신들과 관련해서 전통적인 믿음과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의 생각이 어떤 점에서 다른지, 그리고 그의 생각과 삶이 불경스러운 것인지 아닌지 등을 살펴보는 것은 바로 그것이 '무슨 새로운 것(ti neōteron)'인지를 살펴보는 것이 된다.)


(2: 으레 시간을 보내시던 뤼케이온 근방: 아테네 성벽 밖에는 큰 신체단련장(gymnasion)이 셋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뤼케이온이었다. 나머지 두 곳은 플라톤이 나중에 자신의 학교를 세우게 되는 아카데메이아와 소크라테스의 제자들 중 플라톤의 라이벌 격이었던 안티스테네스가 주로 활동했던 퀴노사르게스였다. 뤼케이온은 물론 나중에 아리스토텔레스가 자신의 학교를 세우게 되는 장소이다. 소크라테스가 주로 뤼케이온 근방에서 젊은이들과 대화하면서 지냈다는 것은 플라톤의 『에우튀데모스』271a, 『향연』223d, 『뤼시스』203a 등에서도 볼 수 있다.)


(3: 왕 통치관: '통치관'이라고 번역한 archōn은 통치하는 사람을 뜻하는 말로 아테네에서는 통치를 담당하는 9명 관리의 명칭으로도 사용되었다. 음차해서 그냥 '아르콘'이라고 하거나 '집정관'이라는 번역어가 사용되기도 하지만, 여기에서는 '통치관'이라는 번역어를 사용하기로 한다. 소크라테스가 활동하던 기원전 5세기의 통치관 체제는 대략 기원전 7세기 정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 이전에는 통치관의 수도 더 적었고, 임기도 10년이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기원전 683년에 아테네는 임기가 1년인 9명의 통치관 체제를 도입한다. 아테네의 민주정이 공식적인 모습을 갖추게 되는 클레이스테네스의 개혁(기원전 508년) 이후 5세기에 들어서면 매년 투표를 통해 선출되는 10명의 장군들이 보다 큰 정치권력을 행사하게 되고, 이에 따라 487년 이후에는 통치관들이 투표가 아니라 추첨에 의해서 선출되게 된다. 9명의 통치관들은 3명의 주요 통치관과 6명의 부(副)통치관으로 이루어진다. 서열 1위의 통치관은 그냥 'archōn'이라고 불렸으며, 이 사람의 이름이 아테네에서 연도를 구별하는 연호의 역할을 했기 때문에 나중에는 'archōn eponymos'('명칭 통치관', 혹은 '연호 통치관' 정도로 번역할 수 있겠다)라고 불리기도 했다. 우리가 '왕 통치관'이라고 번역하고 있는 archōn basileus는 이름으로 보자면 서열 1위가 맞을 것 같지만 사실은 서열 2위였다. 서열 1위 통치관은 보통 단순히 '왕(basileus)'이라고 불렸고, 사실은 우리의 본문에서도 'archōn basileus'가 아니라 단순히 'basileus'라고 되어 있지만, 불필요한 혼란을 피하기 위해서 '왕'이 아니라 '왕 통치관'이라고 번역하였다. 왕 통치관은 종교 의례 등을 담당했으며 『에우튀프론』에서 볼 수 있듯이 살인죄를 비롯해서 종교적인 성격을 갖는 범죕(인간의 생명을 빼앗는 일은 절도죄와 같은 단순한 범죄와 달리 취급되었다)의 송사를 담당하기도 했다. 서열 3위는 'polemarchos'('전쟁 통치관' 정도로 번역될 수 있겠다)라고 불렸으며, 처음에는 이름대로 전쟁의 지휘관 역할을 수행했으나 나중에 장군들이 이 역할을 담당하게 되자 법률적인 일과 행정적인 일들만을 담당하게 된다. 예컨대, 이방인과 관련한 송사는 폴레마르코스가 담당하였다. 6명의 부통치관들은 'thesmothetēs'('법령제정자' 정도로 번역할 수 있는 말이다)라고 불렸으며, 주요 통치관들이 담당하지 않는 송사나 법률적인 일들은 이들이 담당했다.)


(4: 왕 통치관의 주랑건물: 왕 통치관이 집무를 보던 장소로 아고라의 북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아테네의 주요 법률이 돌에 새겨져 이 건물 앞에 놓여 있었고, 테미스 여신의 동상이 건물 앞에 세워져 있었다. 새로운 관리들은 이 건물에서 법률을 지키겠다는 서약을 했으며, 아레오파고스 평의회가 이곳에서 열리기도 했다. 도편추방 투표가 이 앞에서 이루어졌다는 설도 있다.)


(5: 소송이라고 부르지 않고 공소라고: '소송'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dikē는 원래 소송 일반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사적인 소송(dikē idia)만을 가리키는 좁은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피해 당사자만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사적인 소송과 달리, 공적인 소송(dikē demosia)은 성인 남성이면 누구든 소송을 제기할 수 있었다. 공적인 소송들 중에는 (그리고 어쩌면 사적인 소송들 중에도) 특수한 절차를 따르며, 특수한 명칭으로 불리는 다양한 소송절차가 있었다. 하지만 일반적인 절차를 따르는 공적인 소송은 'graphē'라고 불렸으며, 여기에 '공소'라고 번역한 그리스어가 바로 graphē이다. graphē는 원래 '쓰기' 혹은 '쓰여진 것'이라는 의미로, (특수한 절차가 마련되어 있지 않은) 공적인 사건에 대해 원하는 사람 누구나 서면을 통해 기소할 수 있는 제도를 기원전 6세기 초에 솔론이 도입하면서 이러한 소송에 이 명칭이 부여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후대에 가면 모든 소송에서 소송 제기가 서면으로 이루어지게 되기 때문에, 어원적 의미와 달리 서면 소송 제기는 그라페에 고유한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6: 생각할 수 없으니까요: 여기에서 '생각하다'라고 번역한 그리스어 katagignōskein은 '나쁜 일을 한 것으로 판단하다/비난하다'라는 부정적인 뉘앙스를 가진다. 그래서 해당 본문은 "선생님이 다른 누구에 대해 공소를 제기했다고 비난할 일은 없을 테니까요"라고 번역될 수도 있다. 아버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에우튀프론이, 누군가에게 공소를 제기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뉘앙스의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다소 의아한 일이다. (그리고 『에우튀프론』에 대한 주석가들이 여기에 대해 아무런 언급이 없는 것도 다소 의아한 일이다.) 에우튀프론의 의도(혹은 에우튀프론이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도록 만든 저자 플라톤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기란 어렵지만, 그 의도를 짐작하는 데 어쩌면 도움이 될지도 모르는 사실을 몇 가지만 이야기해 본다. 우선, 에우튀프론이 제기하는 소송은 공소(graphē)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 오늘날 살인과 관련한 재판은 민사 재판이 아니라 형사 재판이고 에우튀프론의 아버지 고발은 살인죄에 대한 고발이기 때문에, 오늘날의 독자는 에우튀프론의 소송이 당연히 공소였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당시 아테네에는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살인과 관련한 소송은 사적인 소솟(dikē idia)에 해당하였다. (사실 에우튀프론의 소송에는 몇 가지 특별한 점이 있어서 이 소송이 당시의 아테네 법에 따라 적법한 것인지 여부 자체가 논란거리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주 28을 참조하라.) 에우튀프론의 소송이 공소가 아니라면, 에우튀프론이 자기 자신은 소송을 제기하면서도 누군가가 공소를 제기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 특별한 문젯거리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물론 이 경우에도 그가 왜 적어도 공소를 제기하는 것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거리일 수 있겠다. 이와 관련해서 당시에 공소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어떤 사람들이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아테네에는 검사 제도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몇 가지 특수한 범죄와 관련해서 공적인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특별한 관리가 있었던 것을 제외하면, 일반적인 자원자가 공적인 소송을 제기해야 했다. 그리고 일반인들이 자원해서 공적 소송을 제기할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서, 많은 경우 공적 소송을 제기해서 승소한 사람에게 보상이 주어지는 제도가 있었다. 그런데 기원전 5세기 후반에 가면 이러한 제도를 악용하는 전문 고소꾼들이 등장하게 된다. 이들은 승소했을 때의 보상을 노리기도 했지만 소송을 제기하고 나서 뇌물을 받고 소송을 취하하는 식으로 사적 이득을 취하기도 했다. 이러한 전문 고소꾼을 지칭하는 sykophantēs라는 명칭이 만들어지기도 했으며(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들에는 쉬코판테스들에 대한 풍자가 종종 등장한다), 이런 사람들이 무고를 자행하는 것을 막기 위한 제도들이 도입되기도 한다. 에우튀프론이 공소를 제기하는 사람들에 대한 부정적인 인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


(7: 멜레토스: 우리는 멜레토스 외에도 아뉘토스와 뤼콘이 함께 소크라테스를 고소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 구절에서 볼 수 있듯이 소크라테스의 주 고소자는 멜레토스였다. 어쩌면 멜레토스는 '좀 어리고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어서 아뉘토스와 뤼콘을 보조 고소자로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소크라테스의 변명』23e에 멜레토스가 시인을 대변해서 소크라테스를 고소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아리스토파네스의 『개구리』에 멜레토스라는 비극시인이 풍자되는데, 이를 근거로 양자가 동일인물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소크라테스의 재판이 이루어질 당시에 '좀 어리고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 그보다 먼저 상연된 것이 분명한 작품에서 풍자까지 될 정도였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멜레토스가 시인을 대변했다는 이야기는 그의 가문에 시인이 있었다는 이야기일 수도 있고, 어쩌면 아리스토파네스가 풍자한 멜레토스는 소크라테스를 고소한 멜레토스의 아버지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 역시 분명한 것은 아니다. 한편, 소크라테스가 불경죄로 고소된 것과 같은 해(기원전 399년)에 안도키데스라는 사람을 불경죄로 고소한 멜레토스라는 사람이 또 있었다. 그리고 이 양자가 같은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정황상(예컨대, 안도키데스의 고발자 멜레토스는 소크라테스와 함께 레온을 체포하라는 명령을 받은 바 있는 사람이었다), 안도키데스의 고소자인 멜레토스가 소크라테스를 고소한 멜레토스와 같은 인물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


(8: 피트토스 구민: 아테네는 '데모스(dēmos)'라고 불리는 행정구역들로 나뉘어 있었다. 민주주의를 뜻하는 dēmokratia는 어원적으로 '데모스에 사는 사람들의 지배' 정도의 의미를 갖는다. 피트토스는 그러한 행정구역들 중 하나의 이름이다.)


(9: 돌보는: 여기서 '돌보다'라고 번역한 epimeleisthai의 과거 부정형인 epimelēthenai와 과거 분사형인 epimelētheis는 멜레토스(Melētos)와 발음이 비슷하다. 이 문장과 다음 문장들에서 '돌보다'의 과거 부정형과 분사형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일종의 언어유희이다. 플라톤의 대화편들에는 이런 식의 언어유희가 빈번하게 등장한다.)


(10: 근간: '근간'이라고 번역한 말은 hestia이다. 헤스티아는 원래 화덕을 나타내는 말이며, 그리스에서는 불씨를 보호하는 화덕이 가정의 중심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에 의미전성을 통해서 가정을 의미하는 말로 사용되기도 했다. 또한 가정마다 화덕을 가지고 있었던 것처럼 각 폴리스는 오늘날로 치면 정부 청사 정도에 해당하는 프뤼타네온(prytaneion) 안에 공공의 화덕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식민 도시를 건설할 경우에는 이 공공의 화덕으로부터 불씨를 식민 도시로 옮기는 의식을 거행할 정도로 당시 그리스인들은 공공의 화덕을 나라의 중심으로 간주했었다. 한편 헤스티아는 화덕의 여신 혹은 화덕 안의 불씨를 보호하는 여신의 이름이기도 하다. 헤스티아 여신은 크로노스와 레아 사이에서 태어난 첫 번째 자식으로 크로노스는 헤스티아를 제일 먼저 삼키고 제일 나중에 토해 내었다. 제우스가 크로노스와 레아 사이에서 마지막으로 태어난 자식이고 크로노스가 제우스 대신 삼킨 돌을 제일 먼저 토해 내기 때문에 제우스는 종종 첫 번째 자식이자 마지막 자식이라고 이야기된다. 그렇다면 헤스티아는 그 반대의 의미에서 첫 번째 자식이자 마지막 자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에서 모든 제사의 시작과 끝에는 헤스티아 여신에게 제주를 바쳤다고 한다. 제우스와 남매간이면서도 헤스티아는 올림포스산의 12신을 거론할 때 거기에 포함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올림포스 12신의 리스트는 그때그때마다 조금씩 다른데, 보통 헤스티아 대신 디오뉘소스를 포함시키는 것이 더 일반적이다.) 그 이유는 아마도 하데스가 저승의 신이어서 포함되지 않는 것과 비슷하게 헤스티아는 가정과 너무 가깝기 때문에 올림포스산에 거주하는 신들 중 하나로 간주되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그래서 헤스티아와 관련한 신화는 별로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인들의 실제 생활에서는 어떤 의미에서 가장 가까운 신이 헤스티아였을 수 있다. 우리의 번역에서 기본 텍스트로 삼고 있는 OCT는 본문에서 hestia를 소문자로 표기해서 화덕의 의미로 보고 있지만, 다른 텍스트들 중에는 대문자로 표기해서 헤스티아 여신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화덕으로 보든 헤스티아 여신으로 보든, 본문에서 전달되고 있는 의미가 그 나라를 그 근간에서부터 망쳐 놓는다는 것이라는 점에는 차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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