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그러면 죽은 사람에 대한 그리움과 미련 이런 감정적인 것도 주제가 될 수 있는 건가. 어렵네 - dc App
익명(zktma641107)2024-09-07 19:23
애초에 주제라는게 교훈이나 깨달음이 아니라, 소설이 그리는 이미지, 설계도, 방향 혹은 글 이상이 제시하는 형이상학적인 무언가로 봐야함
돈까스(10ehxnm6zvxp)2024-09-07 19:20
답글
아하 ㄱㅅㄱㄱ - dc App
익명(zktma641107)2024-09-07 19:23
답글
보르헤스 <피에르 메나르 돈키호테의 저자>같은 소설보면 돈키호테와 한 글자도 다르지 않은 소설을 쓰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피에르 메나르라는 작가를 소개하고 설명하는게 내용의 전부인데, 거기에 무슨 교훈이 있겠음
다만 상대주의적이고 소우주적이고 무한한 의미의 장이 펼쳐지는 그런 작품 세계를 표현하고자 함과 작가의 통찰력이 글의 주제가 되는거징
돈까스(10ehxnm6zvxp)2024-09-07 19:27
답글
아 주제라는 개념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넓은 거구나. 고맙다. - dc App
익명(zktma641107)2024-09-07 19:32
플로베르가 평생 쓰고 싶어 했던 게 '무(無)의 소설'이긴 했지. 그 비유가 기가 막힘. 지구가 스스로의 힘만으로 우주 공간에 떠 있는 것처럼, 외부와 전혀 연결되지 않고 작품의 자체적인 힘만으로 존재하는 그런 작품을 쓰고 싶다, 뭐 그런 얘기였음. 사실 지구는 우주 공간에 스스로의 힘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태양의 중력에 붙들려 있는 거지만 ㅋ 그냥 일종의 비유니까 어떤 느낌인지 알 거임. 플로베르 작품 읽어보면 ㄹㅇ 그런 작품을 쓰려고 추구했다는 걸 알 수 있음. 불가능한 도전이긴 했지만 ㄹㅇ 멋지지
익명(220.74)2024-09-07 19:27
답글
뭔가 탈소설? 같네. 틀에서 벗어난 느낌이다. 꼭 한번 읽어 볼게. 고마워 - dc App
익명(zktma641107)2024-09-07 19:33
답글
오히려 반대임... 탈소설은 읽기 ㅈ같은 모더니즘이나 포스트모더니즘 소설들이 그런거고, 플로베르의 저 말은 소설이 소설이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은 무엇인가?에 대한 고찰로 보는게 맞음... 글이 소설이 될 수 있는 기본적인 전형, 뼈대 혹은 틀이 있다면 부수적인 걸 다 덜어내고 그것만 남긴 순수한 소설을 쓰고 싶어한 욕구에 가까움. 틀을 벗어난게 아니라, 틀 그자체를 탐구한 작가지... 그 답이 문체(스타일)이기도 하고
돈까스(10ehxnm6zvxp)2024-09-07 19:42
어떻게 보면 오스카 와일드의 말하고도 연결되는 측면이 있음. "세상에는 옳고 그른 책이 있는 게 아니라 잘 쓴 글과 못 쓴 글이 있을 뿐이다." 나도 이렇게 생각함. 주제나 교훈이 소설에 주입되면 자칫하면 윤리적 판단으로 넘어가게 되지만 순전히 재미 혹은 예술을 위한 예술 풍의 소설인 경우 문장의 유희라던가 느낀대로 즐거우면 그만이라던가 하는 효과를 추구하니까
익명(124.58)2024-09-07 19:35
답글
'잘 쓴 글과 못 쓴 글이 있을 뿐이다.' 진짜 맞는 말인 듯. - dc App
익명(zktma641107)2024-09-07 19:37
인물의 내면세계가 소설의 주제 그 자체지. 나도 인간과 세계에 대한 경험의 폭을 늘리는 것이 소설의 목적이라고 생각함
그건 소설의 주재가 아니라 교훈 아니냐 본문에서 하는 말은
아 그러면 죽은 사람에 대한 그리움과 미련 이런 감정적인 것도 주제가 될 수 있는 건가. 어렵네 - dc App
애초에 주제라는게 교훈이나 깨달음이 아니라, 소설이 그리는 이미지, 설계도, 방향 혹은 글 이상이 제시하는 형이상학적인 무언가로 봐야함
아하 ㄱㅅㄱㄱ - dc App
보르헤스 <피에르 메나르 돈키호테의 저자>같은 소설보면 돈키호테와 한 글자도 다르지 않은 소설을 쓰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피에르 메나르라는 작가를 소개하고 설명하는게 내용의 전부인데, 거기에 무슨 교훈이 있겠음 다만 상대주의적이고 소우주적이고 무한한 의미의 장이 펼쳐지는 그런 작품 세계를 표현하고자 함과 작가의 통찰력이 글의 주제가 되는거징
아 주제라는 개념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넓은 거구나. 고맙다. - dc App
플로베르가 평생 쓰고 싶어 했던 게 '무(無)의 소설'이긴 했지. 그 비유가 기가 막힘. 지구가 스스로의 힘만으로 우주 공간에 떠 있는 것처럼, 외부와 전혀 연결되지 않고 작품의 자체적인 힘만으로 존재하는 그런 작품을 쓰고 싶다, 뭐 그런 얘기였음. 사실 지구는 우주 공간에 스스로의 힘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태양의 중력에 붙들려 있는 거지만 ㅋ 그냥 일종의 비유니까 어떤 느낌인지 알 거임. 플로베르 작품 읽어보면 ㄹㅇ 그런 작품을 쓰려고 추구했다는 걸 알 수 있음. 불가능한 도전이긴 했지만 ㄹㅇ 멋지지
뭔가 탈소설? 같네. 틀에서 벗어난 느낌이다. 꼭 한번 읽어 볼게. 고마워 - dc App
오히려 반대임... 탈소설은 읽기 ㅈ같은 모더니즘이나 포스트모더니즘 소설들이 그런거고, 플로베르의 저 말은 소설이 소설이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은 무엇인가?에 대한 고찰로 보는게 맞음... 글이 소설이 될 수 있는 기본적인 전형, 뼈대 혹은 틀이 있다면 부수적인 걸 다 덜어내고 그것만 남긴 순수한 소설을 쓰고 싶어한 욕구에 가까움. 틀을 벗어난게 아니라, 틀 그자체를 탐구한 작가지... 그 답이 문체(스타일)이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오스카 와일드의 말하고도 연결되는 측면이 있음. "세상에는 옳고 그른 책이 있는 게 아니라 잘 쓴 글과 못 쓴 글이 있을 뿐이다." 나도 이렇게 생각함. 주제나 교훈이 소설에 주입되면 자칫하면 윤리적 판단으로 넘어가게 되지만 순전히 재미 혹은 예술을 위한 예술 풍의 소설인 경우 문장의 유희라던가 느낀대로 즐거우면 그만이라던가 하는 효과를 추구하니까
'잘 쓴 글과 못 쓴 글이 있을 뿐이다.' 진짜 맞는 말인 듯. - dc App
인물의 내면세계가 소설의 주제 그 자체지. 나도 인간과 세계에 대한 경험의 폭을 늘리는 것이 소설의 목적이라고 생각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