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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명출판 도서가 으레 그렇듯 읽기 쉽지 않은 책이었다. 저자 '조연정'은 한국문학을 통해 정치와 현실을 보려고 했다. 1, 2부는 특정 작품을 비평하기보다는 한국문학의 전체 비평장을 서술했다. 1부는 80년대 문학과 다른 90년 문학을 설명하도록 노력했다. 본인은 90년대생이라 80년대와 90년대의 차이점을 몸소 느껴보지 못했다. 군사정권의 맛도 못 봤고, 학생시위는 보지도 못했다. 저자는 1부에서 계간지 <문학동네>와 작가 '기형도'를 내세우며 90년대 비평장을 설명하려 했다.
2부에서는 계간지 시대 60-70년대 비평장을 조망했다. 과거에 잡지의 시대가 있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막상 그때를 돌아보는 비평을 읽어보니 놀라웠다. 잡지에 글을 실어서 어떤 '비평 운동'을 일으키려 하고, 어떤 '사상'을 톺아보려 하는 시도는 현재와 너무 달랐다. 과거는 책으로 지식을 얻고 사유를 했다면 현재는 다양한 대안매체로 대신한다. 그렇기에 세대 차이가 나는 것일까?
평론가 '조연정'의 박식한 지식과 엄청난 자료조사는 혀를 내두르게 했다. '아니, 어떻게 이렇게 읽을 수가 있지?'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그렇기에 교수/문학평론가가 되는구나 싶었다. 한편으로 <장정된 시간>을 읽으면서 독서(공부) 욕구가 불타올랐다. 저자는 아마 모든 시간을 문학 연구에 투자할 것이다.
저자 조연정은 시인 '김춘수'와 '김수영'의 시를 꼼꼼히 비평했다. 한국 현대시의 기반을 다졌다고 평가되는 두 시인은 80/90년대를 조망한 조연정에게는 조금 특별하게 다가왔던 것 같다. 물론 다양한 용어와 시를 깊게 비평하는 글을 읽는 것은 쉽지 않았다. 사실 본인은 시를 그렇게 즐겨 읽지 않는다. 읽는다고 해도 직관적인 시를 찾아 읽는다. 예를 들어 일본의 하이쿠나 한국의 손바닥 동시를 즐긴다. 짧기도 하고 계어(하이쿠에 들어가는 계절을 나타내는 단어)를 사용하는 하이쿠에 매력을 느꼈고, 하이쿠와 비슷한 짧은 동시의 재치에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특히 손바닥 동시는 침체하는 한국 전통 시의 진화를 보는 느낌이다. 아무튼 김수영 김춘수의 시를 살피며 정치까지 살피는 조연정의 비평은 가히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4부에서 반가운 작가를 만났다. 바로 '김동인'이다. 개인적으로 김동인의 작품들을 즐겨 읽었던 독자로서 그나마 부담이 덜한 글이었다. 하지만, '평양', '대동강'을 중심으로 비평을 전개하는 것을 보고, 정말 이것이 '비평'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평'은 또 다른 방향의 '창작'이라는 글을 본 적이 있는데, 틀린 말은 아니구나 싶었다. 글에서 조연정이 김동인의 '인형 조종술'을 잠깐 언급하는 부분이 있다. 예전에 봤던 '김동인의 문학론'이었는데, 조연정의 글을 읽고 깊이 있는 김동인을 다룬 비평을 읽어보고 싶어졌다. 한 번 찾아서 읽어보려 한다.
"···1990년대 문학이 처한 위기는 유토피아의 상실이 아닌 문학의 존재 이유의 상실에 있다. 그는 1980년대 작가들에게 요긴했던 질문이 '무엇을'과 '어떻게'에 관한 것이었다면 1990년대의 작가들에게는 '왜'라는 는 질문이 중요해졌다고 지적한다. 더구나 1990년대 이후, 문학에 대한 자본의 본격적 잠식은 물론 다양한 매체의 발달로 인한 문학의 주변화 등은 문학의 정체성에 관한 질문을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현실적 요인들이기도 했다.
그런데 문학이 자신의 정체성을 보장해주던 이념을 상실했으며, 설상가상으로 다양한 매체에 의해 주변화될 수밖에 없다는 위기론의 내용들은 엄밀히 말해 이제까지 문학이 누렸던 특별한 자리를 반증하는 것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당시의 문학이 누렸던 특별한 자리를 반증하는 것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생략)"
-'문학주의'의 자기동일성
"1980년대 문학의 공리주의와 결별하기 위해 1990년대 <문학동네>가 강조한 것이 '개인'과 '내면'이라는 개념임을 잘 알려져 있다. 황종연이 적극적으로 의미화한 1990년대 문학의 이같은 내면화 경향은 한국문학의 전통에서 익숙한 '자기정의적 주체'의 재등장으로 설명된다. 나아가 2000년대 이후 '문학의 종언', '탈정치', '무중력'의 시대에서 <문학동네>가 적극적으로 건져 올리고자 한 것은 정치성의 다른 이름인 문학의 윤리에 관한 것이다."
-'문학주의'의 자기동일성
"김병익이 말하는 '진정성'이란 '오늘의 자본주의 체제와 문화 산업 체제에 대항하여 인간의 인간다움을 위한 싸움을 벌이는 정신'으로 정의된다. 그것은 '인간의 품위와 인격의 진지성이 존속될 수 있는 정신'이며, 1980년대의 박노해로부터 1990년대의 배수아, 김영하 등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기존의 문학적 전통에서 보자면 상당한 이질성을 드러내는 경향의 작품들을 '문학사로 포용하는 가늠자'의 역할을 하는 것이기도 하다."
-'문학주의' 시대의 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은 1990년대 젊은 비평가 세대에게 왜 매력적인 이론이 되지 못했을까. 김병익의 글에서도 지적되듯 일차적으로는 그것이 아무리 국제적인 현상이라 해도 우리 문학에 직접 적용하기 힘들다는 판단이 강했기 때문이다. 상세히 말해 이는 이광호가 말하듯 근대적 매커니즘으로서의 '미적 자율성'이 그간의 한국문학사에서 일종의 억압된 개념으로 존재했기 때문에 '문학주의로의 회귀'라는 기치 아래 그것을 추구하는 일과 탈근대의 논리가 함께 진행될 수밖에 없는 모순된 자리에 1990년대 문학이 놓여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1990년대 비평의 당면 과제는 현실 정치와의 강력한 연동으로부터 독립한 문학의 독자적 자율성을 확인하는 일이었던 것이다."
-'문학주의' 시대의 포스트모더니즘
"재차 말해, 기형도의 시가 1980년대 쓰이고 출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시인의 죽음으로 인해 첫 시집으로 종결되었다는 점은 문학사적인 측면에서 1980년대와 1990년대의 관계설정과 관련하여 하나의 상징적 사건으로 이해될 수 있다. '포스트-80년대 청춘의 비가' 라는 적절한 명명이 환기하듯, 1990년대에 새롭게 갱신되지 못한 채로 1990년대에 더 많이 읽히게 된 기형도의 시는 1980년대에 대한 부채의식을, 혹은 완벽히 청산되지 못한 1980년대의 억압과 공포를 1990년대로 이월시키는 역할을 담당한 것으로 이해된다."
-기형도와 1990년대
"<문학과지성>가 중시한 이론은 두 가지 의미로 이해된다. 궁극적으로 그것은 단순한 '관념놀이'가 아니라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태도를 기르는 '훈련'으로서의 이론이다. 한편 실질적 의미로 그것은 비평을 위한 방법론으로서의 이론이다. 전자의 이론은 다양한 지식의 습득을 통해 자연스럽게 구비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논리적인 삶'을 추구하는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세속화하는 지성
"문학은 그 써먹지 못한다는 것을 써먹고 있다. 문학을 함으로써 우리는 서유럽의 한 위대한 지성이 탄식했든 배고픈 사람 하나 구하지 못하며, 물론 출세하지도, 큰 돈을 벌지도 못한다. 그러나 그것은 바로 그러한 점 때문에 인간을 억압하지 않는다. 인간에게 유용한 것은 대체로 그것이 유용하다는 것 때문에 인간을 억압한다. 유용한 것이 결핍되었을 때의 그 답답함을 생각하기 바란다. 억압된 욕망은 그것이 강력하게 억압되면 억압될수록 더욱 강하게 부정적으로 작용한다. 억압하지 않는 문학은 억압하는 모든 것이 인간에게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것을 보여준다. 인간은 문학을 통하여 억압하는 것과 억압당하는 것의 정체를 파악하고, 그 부정적 힘을 인지한다."
-김현, <한국문학의 전개와 좌표 1>- 저자가 김현의 문장을 인용함.
"경성 이북 제1의 도시 평양의 정체성을 설명할 수 있는 키워드는 여러가지이다. 굳이 문학 작품을 경유하여 확인하지 않더라도, 평양이 상업의 도시이자 기생이라는 심미화된 코드가 작동하는 공간이며 서북지역에 대한 오래된 차별로 인한 소외감과 역사적 우월감이 공존하는 공간이라는 점은 잘 알려져 있다. 이 글에서 주목한 것은 소외되 도시 평양의 역설적 자유와 우월감에 관한 것이다."
-평양의 경향, 김동인과 최명익의 소설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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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차고 좋잖냐 읽어볼만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