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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눈이 말랑말랑한 글이라면 달리는 말은 기괴함
하지만 미시마 유키오의 필력은 세계적으로도 탑급이다 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글이었습니다.


<달리는 말> 읽기 전에 <오후의 예항>은 꼭 읽고 읽는 걸 추천합니다. 사실상 주제적으로나 구성적으로 매우 비슷한 소설입니다. 주인공이 죽음과 관련된 이상을 추구하고, 죽음으로서 절대성을 완성한다는 전개입니다. 제가 느낀건 500페이지짜리 장편인데, 구성으로 보면 오후의예항이나 짐승들의유희처럼 더 짧은 소설과 비슷한 느낌이 남.


가장 큰 이유는 주인공 이사오의 성장과 변화가 없습니다. 금각사, 금색, 봄눈 요런 소설들은 주인공의 사상이 바뀌는 부분이 있고 그게 중요한 서사를 차지하는데, 달리는 말은 시종일관 이사오는 똑같고, 혼다는 바뀝니다. 그래서 그런지 봄눈이 재미의 저점과 고점을 오가면서 우상향한다면, 달리는 말은 상대적으로 플랫한 느낌이고 재미적으로는 봄눈이 더 재밌다고 봅니다.


오후의 예항의 절대성이 악과 죽음과 사랑의 이미지가 겹쳐져 있다면, 달리는 말은 죽음과 충성과 사상과 정의와 순수의 이미지가 겹쳐져 있지만, 전개는 비슷합니다. 오후의 예항 읽을 때는 몰랐는데 고양이 배 가르고 남자 해부하는 듯한 묘사가 할복의 은유였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오, 했습니다. 노보루가 패거리들이랑 작당모의하는 장면도 아이들이 쇼와 신풍련 계획하는거랑 비슷해요... 오후의 예항과 달리 달리는 말에서는 '순수'가 중요한 키워드인데, 사랑이나 환생이나 악같은 요소들이 외부로 분류되면서 순수성을 지키고 죽는 모습이 독특한 점이라고 볼 수 있죠... 둘다 소재도 그로테스크하고 유혈이 낭자한데, 주제도 끔찍한 사상을 그대로 묘사할 뿐 아무런 가치판단을 하지 않기 때문에 여러 가지로 기괴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중간에 삽입된 <신풍련사화>는 압도적입니다. 모리 오가이를 동경했던 미시마 유키오인데, 모리 오가이의 <아베 일족>과 거의 비슷한데 자기식의 해석을 더해서 쓴 훌륭한 파트죠... 아베 일족도 자기가 모시는 주인?이 죽으면 밑에 사람들이 순사(할복)하는데, 순사에서 빼가지고 명예를 더럽혔다해가지고, 어디 쳐들어가다가 다 죽는 그런 내용으로 기억합니다. 상당히 비슷한 전개인데 아베일족은 약간의 냉소가 들어간 소설이라고 느꼈는데, 신풍련사화는 그런거 없고 걍 순수성을 부각합니다. 미친놈이죠...


미시마 글은 읽다보면 다 비슷비슷한 얘기를 하고 있다는걸 알 수 있습니다... 행위와 인식을 대비시키는데, 항상 행위하는 인물이 등장하고, 이데아적인 절대성에 대한 동경이 드러나고, 삶은 악의 실현이고, 청춘을 보존하려고 하며, 마초적인 남자는 매력적이고, 바다와 배 관련된거 많이 나오고, 열대는 남성성과 이상성의 상징이고,,, 비슷한 얘기를 시점과 소재를 조금씩 다르게 조합해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는데, 3권 <새벽의 사원>에서는 어떤 내용이 펼쳐질 지 궁금합니다.

“하나의 사상이 다른 개체 속으로 시간을 뛰어넘어 계승되어 간다는 건 그대도 인정하겠지요. 그렇다면 같은 개체가 각기 다른 사상 속으로 시간을 뛰어넘어 이어지는 일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태국 왕족이 한 말로 봄눈에서 중요하게 나오는 문장인데, 새벽의 사원에서는 전생에 관련된 불교적 내용이 더 심화되서 제시되는것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