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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형기, 낙화



1.예술가 소설로 <재능>읽기

<재능>의 줄거리를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러시아의 젊은 망명자 표도르 고두노프 체르딘체프가 자신의 예술적 재능을 그를 펼치고자 하는 전형적인 예술가 소설이다. 이 분야에서 가장 유명한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 <젊은 예술가의 초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뭘 해야할지 모르겠는 젊은 예술가가 방황하며 예술적 소양을 쌓다가 뮤즈나 예술적 계기를 통해 진정한 예술가가 되고자하는 소설 말이다. 그러나 <젊은 예술가의 초상>이 단순한 예술가 소설이 아니듯이, <재능>도 단순한 예술가 소설이 아니다.



2.러시아 망명자들의 사회 소설로 <재능> 읽기

<재능>의 배경은 베를린이지만 독일인이 등장하지 않는다. 오직 베를린 내의 러시아 망명자들의 사회만이 묘사된다. 본래 엘리트, 귀족, 부르주아였던 러시아 망명자들은 새로운 나라에 적응하지 못한다. 그리고 망명자들은 잃어버린 조국 러시아에 대한 향수에 젖어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지 않는다. 끊임없이 러시아에 새롭게 들어선 소비에트 정권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지만, 현실적인 시각으로 정치와 군대를 통해 소비에트를 전복하고자 하는 사람은 없다. 이들은 현실 감각을 상실해버린지 오래다. 작중의 인물들은 대부분 망상에 젖어있다. 체르니셰프스키 부부는 고두노프에게 고두노프와 닮은 점이 없는 그들의 죽은 아들 야사를 투영하며, 고두노프의 어머니인 체르딘체프 부인은 오래전에 죽은 그의 남편이 살아있다는 착각을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망상에 젖은 사람들에게 20세기의 현실은 가혹하다. 주인공인 고두노프는 끊임없이 생활난에 시달리고 여주인공 지나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차별받는다. 러시아 망명자 사회 내부에서도 점점 러시아의 수복이 불가능하고 소비에트 정권이 러시아를 다스린다는 사실을 뒤집지 못한다는 절망감이 주류를 차지한다. 그리고 소설의 마지막 장인 5장은 아돌프 히틀러가 독일의 총통으로 취임하는 해인 1933년으로, 망명 러시아인들이 독일을 떠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나보코프의 이전 작품들인 <절망>과 <사형장으로의 초대>에서 보여줬던 어두움은 <재능>에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 고두노프의 불안과 짜증으로 나타난다.


3.러시아 문학으로 <재능> 읽기

<재능>은 소비에트 문학과 다르게 자신이 러시아 작가들의 계보를 이어가는 러시아 문학의 장자임을 대담하게 주장한다. <재능>은 이전 러시아 문학을 패러디하는 방식으로 정통성을 드러낸다. <재능>의 1장은 레르몬토프의 <우리 시대의 영웅>을 오마주한 것이다. 2장은 푸쉬킨의 서술 방식에 푸쉬킨의 작품이 폭풍처럼 쏟아지고, 3장은 고골에 대해서 일언반구도 하지 않지만 고골의 서술 스타일이다. 4장은 미하일 살티코프셰드린. 그리고 5장은 푸시킨의 <예브게니 오네긴>의 대단원이다.


여기서 나보코프는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간다. <재능>에서는 안드레이 벨르이, 마야콥스키, 불가코프, 고르키, 구밀레프, 이반 부닌,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러시아 망명 작가, 체호프,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투르게네프, 네크라소프, 곤차로프, 레르몬토프, 고골, 푸시킨, 솔로비요프, 레닌, 플레하노프 등등...과 이들의 저작이 아주 자연스럽게 언급된다. 사실상 러시아 문학사 전체를 조명하며 소설은 앞으로 나아간다. 당연히 평범한 독자는 <재능>을 절대 주석 없이 이해할 수 없어 번역가가 130페이지에 달하는 각주를 붙였지만 번역가 본인도 인정했듯이, <재능>의 한국어 번역본의 주석은 <재능>이 숨기고 있는 러시아 문학을 드러내기에 부족하다.


그렇기에 <재능>을 읽기전에는 러시아 문학에 대한 헌신이 요구된다. 기본적으로 레르몬토프, 고골, 푸슈킨은 읽어야한다.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와 투르게네프는 기본 상식이다. 이러한 고된 과정을 거쳐 러시아 문학에 정통하게된 독자는 <재능>을 다시 읽었을 때 희열을 감추지 못할것이라 단언한다.


4.모더니즘 문학으로 <재능> 읽기

<재능>은 모더니즘 소설로써도 완벽한 면모를 지니고 있다. 고두노프가 반드시 언젠가는 쓰겠다 말하는 위대한 소설은 마지막 장에서 <재능>으로 밝혀진다. 위 사실을 인지하고 <재능>을 재독하면 1장에서 과도할 정도로 ‘소설’에 대한 언급이 많이 나오며 화자가 ‘우리’와 ‘나’를 혼용하다가 장이 진행되어 고두노프가 성숙해질수록 ‘우리’의 언급 빈도를 줄이는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고두노프가 작성한 4장, <체르니솁스키의 생애>의 구조가 <재능>과 완전히 같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모더니즘적 요소는 <재능>의 구조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재능>에서 모더니즘 소설이라면 한번씩은 해줘야하는 의식의 흐름과 시공간의 비직선적 이동은 독자 몰래 자주 이루어진다. 특히 러시아와 아버지에 대한 회상시에 강력하게 나타난다. 고두노프의 추억이 시작될 때마다 독자는 고두노프의 의식의 흐름을 따라 먼저 러시아와 유년시절로 이동한다. 그리고 그가 기억과 현실이 합치하는 순간이 되서야 다시 현재 시간대로 돌아온다. 그 사이에 고두노프는 이미 시공간을 이동했다.


또한 조용히 상징들을 통해 책의 주제를 고요히 암시한다. <재능>의 원제 Дар가 장황하고 긴 서술들 사이에 고개를 뻐끔 내밀고 사라지는 것은 일상다반사다. 나비, 체스, 열쇠, 빛, 물 등등…의 상징들이 4장, <체르니솁스키의 생애>에서 그랬듯이 알게모르게 고두노프의 운명을 알려주며 등장인물들의 이름은 그리스어로 아예 대놓고 ‘재능’과 ‘뮤즈’이다.


마지막으로. <재능>에서는 허구와 사실이 쉼없이 교차된다. 2장에서는 푸시킨이 살아있다는 상상, 3장에서는 아버지가 살아있다는 망상, 4장에서는 전기를 위해 사용된 작가들과 학자와 저작물이 허구다. 허구와 사실의 혼동 혹은, 의도적인 합체 속에서 <예브네기 오네긴>을 읽어본 독자는 무언가를 눈치 챘을 것이다.


5.나보코프의 <재능> 읽기


자. 이제 1933년의 베를린에 거주하는 러시아의 젊은 망명작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에게 돌아가보자. 그는 유대인 아내를 두고 있으며 자신의 예술적 재능을 모더니즘 소설과 러시아 소설을 통해 드러내고자한다. 그리고 러시아 망명자 사회에 불만을 가지고 있지만 그들과 마찬가지로 러시아에 대한 추억에 젖어 불안에 떤다. 그는 점점 자신의 기억과 현실 속에서 러시아 문학과 추억이 깃든 러시아가 사라진다는 사실을 알지만 부정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를 억세게 조여오고 히틀러로 인해서 독일을 떠날 입장에 처해있다. 그는 사랑하는 것들이 사라지기 이전에 작별 인사를 보내야만 한다.


하지만 모두 잘알듯이 작별인사를 입에서 내뱉는 순간 그와는 반드시 이별해야만 한다. 떠나보낸 후에 우리는 반드시 그를 점점 잊어버리고 종극에는 기억 속에서 소멸시켜버린다. 그렇기에 어떻게든 추억을 떠올리고 상상을 하면서 헤어짐의 순간을 늦추고자한다. 그러나 결국 이별의 때가 오면 그를 울면서 보내주는 수 밖에 없다. 더 녹아내리기 이전에 보내주면서 좋았던 기억만을 남기고자하는 시도가 가장 최선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보코프는 자신이 사랑하는 것들이 사라져버리기 이전에 '재능'있는 예술가만의 방식으로 작별인사를 시작한다. 완벽한 작품을 적어내 사랑하는 것들을 불멸로 남기는 예술만이 가능한 작별인사를 말이다. <재능>의 '재능'있는 예술가 고두노프처럼.


<재능>에는 그가 사랑했던 과거와 그 자신이 들어가있다. 예술가, 러시아 망명자, 러시아 문학가, 모더니스트… 사실상 유럽인이던 과거의 자기 자신과 작별하고 새롭게 미국에서 시작해야하는 나보코프는 <재능>을 통해 완벽한 작별 인사를 보낸다.


그렇게 <재능>이라는 작별인사를 보내 성숙해진 나보코프는 나비처럼 마침내 번데기를 벗고 돌로레스와 젬블라, 아다가 기다리는 드넓은 하늘로 날아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