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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한국과학문학상 총집편


https://gall.dcinside.com/m/reading/653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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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과상 마지막 수상작이다. 사실 이 작품에 대한 설명은 김필산, 조서월을 잇는 한과상에서 "서사와 재미" TO를 맡고 있는 소설이라고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딱 한 자리만 남는 그 자리에 치열한 경쟁을 뚫고 오로지 서사와 재미만으로 오른 만큼 다른 네 작품과 비교할 수 없는 꿀잼력을 가지고 있다.


이는 단순히 자극과 도파민 분비에 최적화된 스토리를 따라가기 때문이 아니라, 문장의 완성도나 필력, 구성, 반전, 설정 등에 있어서 다른 네 작품보다 월등한 완성도를 보이는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잘 쓴 소설이라고.


내용은 심히 직관적이다. 배경은 서부극으로 투손이란 지방에 귀족 한 명, 보안관 한 명, 그리고 아시아계 이민노동자 한 명이 마차 하나를 얻어타고 가다가 마차에 문제가 생겨서 하루 정도 황야에서 자고 가게 생겼다.


그래서 귀족은 심심함을 달래고자 보안관에게 투손으로 가는 이유를 물었고, 이야기의 정당한 거래를 위해 본인부터 얘기를 풀기 시작했다. 귀족은 어느 장인이 유작으로 남긴 바이올린의 행방을 쫓아 투손에 있다는 소식을 접해 바이올린의 구매를 위해 은밀히 이동하고 있던 것이고, 보안관은 투손에서 일어난 대규모 소요 사태에 대한 법리적 자문을 요청 받아 지원차 가는 길이었다.


문제는 투손에서 일어난 대규모 소요 사태라는 게 가축이 자꾸만 사라져 가축 도둑에 대한 범인을 투손에 머물고 있던 아시아계 이민노동자들을 지목했었는데, 간밤에 가축이 5마리나 한꺼번에 사라지는 바람에 제대로 빡친 마을 주민들이 보안관과 함께 이민노동자들이 있는 곳을 찾아갔고, 말이 잘 안 통하는 통에 오해와 우발적인 사고로 인해 보안관이 죽고 아수라장이 펼쳐져 이민노동자들을 대거 잡아다가 사형을 집행하게 생긴 것이다.


그 얘기를 다 들은 귀족은 일행 중 한 명인 이민노동자를 의심하기 시작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에게 투손으로 가는 이유를 물으니 대답을 안 하려 하고, 지닌 물품은 따로 없는지 추궁하니 오히려 더 숨기려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보안관과 함께 그를 덮치려고 하자 그는 급하게 불길로 무언가를 던져놓고는 순순하게 항복한다.


그에게 발견한 것은 어떤 버튼이 달린 물건인데, 버튼을 누르자 불길이 나오는 것이 아닌가. 그는 자신을 박형수라고 소개하면서 다중우주 관광회사 직원임을 밝힌다. 질량 등가교환을 이용한 다중우주 관광 상품은 엄연히 정부의 눈을 피해 운영되는 불법적인 사업인데 최근에 문제가 생겨 조사차 가던 도중 보안관과 귀족에게 매뉴얼을 들킬 위험에 처하자 매뉴얼부터 불태워버린 것이다.


결국 박형수는 하늘에서 홀연히 나타난(정확히는 마차의 말을 등가교환해서 나타난) 빛덩어리에 의해 잡혀가게 되고, 빛덩어리들은 보안관과 귀족에게 오늘 일은 그냥 없었던 일로 하라며 잊어버리라는 충고를 남긴 채 박형수와 함께 사라진다.


그렇게 사라진 박형수를 빼고 투손에 도착한 보안관과 귀족은 간밤의 일로 인해 상당한 충격을 받아버린 뒤였다. 거기에 투손에선 이미 사형 집행을 모조리 해버린 터라 보안관에게 도움을 요청할 것도 없었고, 보안관은 그대로 은퇴해버린다. 귀족은 조금 더 아이러니한데, 바이올린을 가지고 있다는 사람을 찾아가보니 그 사람도 바이올린을 찾아서 이곳에 온 것이었고, 그는 이미 바이올린의 가치를 알아본 비서에게 통수를 맞아 비서를 찾으려고 한 것이다.


바이올린을 사려고 가져온 돈이 무쓸모해지자 귀족은 아예 이 돈으로 교회를 세우자고 다짐하게 되고, 그대로 투손에 요크 교회를 설립하니 1980년대까지 가장 큰 교회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고 한다. 비록 아무도 그 교회에 새겨진 '쿨리(이민노종자들을 지칭하는 은어)들을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문구를 이해하진 못하겠지만 말이다.


이 서사에서 겉절이 SF 특유의 주제의식이 느껴지는가? 아니다. 이 소설에는 그저 SF 특유의 설정이 반전처럼 나타나 서부극에서 깊은 아이러니를 남겼을 뿐이다. 그런즉 강조되는 건 서사 그 자체고, 인물들의 개성과 그를 이끄는 필력이다.


소설의 전반부는 귀족이 썰을 풀고 보안관의 이야기가 제3자 서술로 제시되는데, 귀족의 썰풀기는 겉절이 특유의 회상체가 나오지 않는다는 점에서 호감이다. 애초에 귀족과 보안관의 말투 역시 제법 훌륭하게 짜여져 서부극 시대의 느낌을 잘 살려냈다. 보안관의 이야기 역시 투손이란 지역과 쿨리들과의 관계를 잘 표현한 건 물론이고 추후에 밝혀질 반전에 대한 복선 역시 잘 깔렸다.


박형수라는 뜬금없는 한국인의 등장과 함께 나타나는 다중우주 관광 상품 역시 '질량 등가교환 이동'이란 설정을 제시함으로 투손에서 일어난 기묘한 사태를 단번에 이해시켰다. 결국 박형수를 비롯한 불법 다중우주 관광 상품으로 인해 죄없는 쿨리들이 범인으로 지목받아 사형당한 것이다.


이를 두고 귀족이 박형수 때문에 쿨리들이 죽었다고 지적하는데, 초반에 쿨리를 업신여기며 없는 사람 취급했던 귀족의 행태와 비교하면 정말 아이러니하기 그지없다. 특히 그가 결국 교회를 세우고 교회에 '쿨리들을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문구를 새긴 결말은 그런 아이러니의 극을 달려 나의 마음에 여운을 짙게 남겼다.


여러모로 김필산의 '책이 된 남자'가 떠오르긴 했다. 우선 SF가 나오기 힘든 배경(중세 유럽/서부극)을 전면에 내세우고 반전으로 SF적 설정을 제시한 점인데, 김필산은 시대 배경 내에서 핍진성을 가득하게 끌어모았다면 최우준은 아예 대놓고 다중우주를 제시해버린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건 김필산이 철저한 조사에 입각해 쓴 이과적 글쓰기 스타일을 가진 것과 최우준은 문창과 출신이란 점에서 빚은 차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중요한 건 둘 모두 '시대배경'을 살리는데 집중했고, 그 시도가 매우 훌륭하게 성공했다는 것이다. 현대를 벗어난 시대 속 인물들이 현대적 어투를 구사하지 않는 건 물론이고 묘사와 서술에서도 신경 쓴 것이 보였다. 복선이 깔리고 그것이 매끄럽게 회수된 건 두말할 것도 없었거니와, 대사 센스 역시 다른 작품에 비해서 월등하다고 해도 될 수준이었다.(진지하게 나는 김필산/조서월/최우준(feat 김쿠만)을 제외하고 다른 겉절이들은 대사가 다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한다)


심사평은 총집편에서도 언급할 예정이지만, 이렇게 주제의식이 딱히 강조되지도 않은 이 소설은 심사평에서 어떻게든 '재미'를 빼고 칭찬하려고 아득바득 노력하는 게 참 웃길 노릇이다.


2024 한국과학문학상은 이걸 위해 읽어도 손해는 안 본다...라는 느낌. 그만한 가치가 있는 재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