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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오토 나오키의 ‘잘 그리기 금지!’>


위의 도서는 제가 저번에 리뷰했던 그림 작법서, 사오토 나오키의 잘그리기 금지입니다.

이 책은 저자가 상업 미술에 종사해오면서 사고했던 바를 범주화하고, 그 범주에 사고적 근거항(1항, 2항, 3항)을 기우는 식으로 저 자신의 작법에 대해 기술한 책입니다.


실제로 그림 자료가 첨부되는 경우는 적은 때문에 저서는 이론서라기 보다 '저자가 사고한 바'의 연쇄라 이를 수 있습니다.


생각건데 '사고한 바'란, 행위로 하여 관찰되는 인과의 가운데에 위치한 내용, 즉 ‘객체로부터 쉽게 관찰 불가능한 마음 상태, 의도, 개인 이야기'로 이를 수 있을 터입니다.

독갤에서 그림 작법서(이는 만화, 삽화, 애니메이팅과 같은 상업 미술에 한함, 순수예술 분야의 작법서는 어떠한지 잘 모르겠음)를 몇 권 구매해보셨던 분들은 이 같은 바에 공감하시겠지만, 그림 작법서는 대체로 인과의 연쇄입니다.


예컨대 그 저서는 '이렇게 그리면 이렇게 됩니다. 이런 경우에는 이렇게 하시면 돼요' 따위로 구성돼있는데, 그 때문에 내용의 상세는 대개 (그게 무슨 관례라는 듯이)거세되기 마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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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분야에는 만화에 대한 인과적 이론과 그에 대해 내용적으로 설명하는 명저, 스콧 맥클라우드의 만화의 이해가 있다>


구매자들이 작법서에 대한 기대는 갖은 지식들을 섭렵하여 ‘잘 그리는 데’ 있는 것이지 어떤 시각 이론에 ‘구문적으로 정통해지는 데’ 있지 않다고 여겨집니다.

구문적으로만(또는 발화적으로) 정통해진다는 것은 누군가 그리는 주체에게 신체 해부학에 대한 지식을 설명해달라고 요구하였을 때 그것에 대해 얘기해줄 수 있으나(마치 앵무처럼) 직접 그려보라는 요구를 받았을 때는 그리지 못하는 바를 일컫습니다.


상업 미술 또한 시각 요소 요소가 합을 이루는 ‘시각적 복잡계’이고 작법서에서 다루어지는 이론들 즉 인체 비례, 해부학 지식, 색 온도(색의 감응), 도형화 따위는 분명 어떤 시각적 형상을 구성(표상)하는 데 도움이 되는 ‘시각 요소’들이겠지만 그 자체로는 자주성을 가지지 못 하며 이것들이 자주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그리는 주체의 능력에 전적으로 의존됩니다.


한데, ‘요소에 대한 내용’을 아는 건 그 요소에 자주성을 부여하는데다 ‘그리는 주체’에 시각적 이해를 돕습니다(쉽게 말해 내용은 가장 작은 단위의 각 요소들을 끝내주는 방식으로 ‘연결’하는 설명서라 이를 수 있습니다).

내용을 아는 것, 즉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은 어떤 시각적인 개념을 발화하거나 구문화할 수 없는들 그것을 능히 시각화만 할 수 있다면 그만이라 여기겠죠.


그렇다면 이와 반대로 내용없음으로 비롯되는 낮은 이해에 대한 설명을 보강해보자면, 특정 언어를 제 2, 3언어로 배우고자하는 외국인이 그 언어를 제 1언어로 삼고 있는 당신(원어민)에게 해당 언어의 문장과 그 억양을 배우려 한다고 가정해봅시다.


당신이 피교육자인 외국인에게 “당신은 ‘아슈데 보 피루타 스 피세니앙’을 발음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군요. 자, 따라하세요 ‘으아시우드에우 브오 피우리우우테이아 시우 피우으시에니으이아앙’” 따위를 일러주는 것으로(발화하거나 구문화하여) 하여 정보적 결과(인과)를 제공한들 외국인이 그 해당 언어에 능통해지는 게 아닙니다.

아마도 피교육자인 외국인은 어떤 언어를 배우는 데 지속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것입니다.


결국 이 같은 이해의 빈 부분을 보강하는 데 쓰이는 학습 도구는 개념의 반복숙달인데, 문제는 이 같은 반복숙달은 학습자의 선천적인 능력에 전적으로 의존된다는 것입니다. 문일지십(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안다)이라는 발효적 가치가 누군가에 문천지일이라는 부패적 가치로 격하될 수 있는 셈입니다.


헤이우치 나츠코 (만화가)

고등학생 2~3학년때

미대 입시를 위해 뎃셍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요코하마의 키쿠나 쪽 개인화실을 고3 여름방학 40일 정도 다녔습니다

뭐 오늘도 내일도 그리는거죠. '좋아' 라는 말이 나올때까지 종이를 바꾸는게 용납되지 않는다.

한결같이 한장의 그림을 그린다.. '다시 그리고 싶어요~' 시꺼멓게 되,서 아무것도 알아보지 못할때까지 그린다.


모리타 켄지 (만화가)

미친듯이 베끼는것.

처음 시작할때는 이런저런 만화가의 그림을 되는데로 베끼는 것이

능숙해지기 위한 하나의 방법입니다.


와타나베 시즈무 (만화가)

그림이 능숙하게 늘기 위해서 추천하는 방법은? 이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목표로 하는 만화가의 그림을 계속 베낍니다'

'전 이걸 배끼고 또 배껴요~' 라고 부릅니다


무라타 유스케 (만화가)

무라타 '그림 연습법을 알고싶어? 방법이고 뭐고 그림이 능숙해지기 위해선

계속 그리는 것 밖에 없어. 그린 양으로 밖에 말할수 없는걸 '

사이토 '음... 잘 모르겠는데요. 그거, 무라타 씨라면 그림을 즐겁게 그리는 테크닉 같은게 없을까요?'


<숱한 만화가들이 ‘반복 숙달'을 강조하고 있음을 상기하라. {경고!경고!}더불어 이들이 ‘교육자의 위치에서 이 같은 조언을 한 것이 아님’을 상기하라’>


그러므로 어떤 습득에는 반복 숙달만으로 충분치 않습니다. ‘어떤 개념을 능히 구사하게 하고, 조작하게 돕는 개념적 내용’의 적시가 있어야만 이 같은 반복숙달에 할애되는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겠습니다(반복숙달이 필요없다는 게 아니라)

더불어 반복숙달로 획득한 (비의식적)지식이 이따금 휘발성을 띠는 것으로 슬럼프를 야기한다는 바를 상기하면 내용의 중요도(이해로 이르는 길!)는 우리의 통념보다 더우기 격상된다고 생각됩니다.


위의 주장은 우리는 시각적이거나 구문적인 인과의 섭렵만으로 ‘그림을 잘 그릴 수 있음’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바를 설명합니다.

그로부터 비롯되는 제 입장은 다소 과격한 편인데, 그렇다면 (사오토 나오키와 같은 소수의 그림 교육자와 다르게)교육자가 내용을 설명할 수 없다면 그 교육자는 과연 ‘그만한 대우와 금전적 대가’를 받을만한 가치가 있는가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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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고자 하는 바의 내용을 설명하였으나 그 내용적 실패{환각}로 끝장이 난, 스콧 맥클라우드의 만화의 미래>


더우기 어떤 내용의 설명이 교육자의 환각(그와 같은 내용으로 인해 자신의 그림 실력이 발돋움했다고 믿음)이라면, 그리고 그런 환각이 피교육자로 전파되어 되려 이해를 해치는 장치로써 기능한다면 이 교육자의 역할은 무엇인가를 추궁할 수 있다구 생각됩니다.


<께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