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계란


복잡계는 어떤 (체)계의 복잡성에 대한 개념입니다.

여기서 얘기하는 ‘복잡성’은 것은 단지 어렵거나 난해함을 이르는 게 아닌 그 (체)계 안의 요소들이 서로 연결되어 ‘유의미’한 상호작용을 낳고, 그런 요소간 정합성이 ‘유의미’한 (체)계를 만드는 바를 의미합니다.

복잡계를 도식화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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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도식을 잘 들여다보면 알겠지만 요소들이 서로 소통하는 식으로 연결되어, 하나의 요소가 하나의 연결만을 이루는데 그치지 않고 또 다른 갖은 요소와 ‘유의미한 소통’을 하는 방식으로 연결됩니다. 이런 작은 수준의 소통이(미시적인) 그 자체로 큰 의미를 가질 수 없을지 모르지만 이것이 확장되어 요소들의 전폭적인(거시적인) 연결을 이룬다면 독립적이고 큰 의미를 갖는 (체)계를 낳습니다.


요소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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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계 내부의 요소는 특정한 무엇이라고 ‘정확히’ 지칭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특정 (체)계를 어떻게 헤아릴 것이느냐에 따라 전제가 달라지며, 그 전제 하에 요소 또한 변모합니다. 요컨대 만화에서 컷과 컷의 연결성을 주안점으로 보고자 한다면(전제) 만화라는 (체)계에서 컷이 하나의 요소가 됩니다. 그리고 이 같은 컷(요소)이 다른 컷(요소)과 유기적으로 연결된다면 만화, 즉 체계는 복잡계가 되는 것입니다. 이 같은 전제를 설정하는 것은 판단 주체에게 있으며 만화의 점, 선, 면과 같은 단순한 시각 요소만을 헤아리고 싶다면 위의 경우와 다르게 컷은 고려 요소가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물론 컷까지를 시각 요소로 전제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 서평은 만화를 전반적인 수준에서 조망하려합니다. 그렇게되면 만화를 이루는 대사와 그림, 컷과 컷의 연결성, 서사의 완성도, 설정 모순 등이 ‘요소’로 포함됩니다.


난잡계란


저는 여기서 잠시 임의의 개념을 하나 정의하고자 합니다. 그 개념은 난잡계라 이르며, 난잡계는 복잡계에 반하는 개념입니다. 난잡계를 도식화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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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도식을 얼핏봐서는 일종의 ‘복잡계’처럼 보이지마는 (체)계 내 요소들의 연결성을 주목해보시면 요소들의 연결성이 아주 떨어진다는 사실을 아실 수 있습니다. 어떤 요소는 고립되어 있으며, 어떤 요소는 다른 요소를 반박하기도 합니다. ‘다른 요소를 반박’한다는 의미는, 이를테면 어떤 만화가 주요 등장인물이 특수한 능력을 발휘하는 데 어떤 대가를 치른다는 제약(수명이든 뭐든)을 하나의 요소로써 삽입했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런데 이 만화의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될수록 이같은 전제를 지키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만화 내의 ‘대가를 치른다는 요소’는 ‘대가를 치르지 않는다는 요소’로 반박된 셈입니다. 생각해보건대, 이같이 요소간 연결성이 와해된 경위는 만화가 상업 미술로서의 숙명을 타고난 데 있다고 생각됩니다. 이는 속되게 말하면 ‘작가 좆대로 하기 힘든 구조’라 이를 수 있습니다. 독자는 만화로부터 많을 기대를 하게 되는데, 만화가는 이에 호응해야 합니다. 그러하기 위해서 만화가는 이따금 위와 같은 난잡적인 속임수를 구사해야만 하며 ‘일회적이거나 단독적인 재미’를 추구하기위해 만들어지는 ‘숱한 요소’는 ‘고립’되거나 ‘다른 요소를 반박’합니다. 즉, 이런 속임수들은 요소간 연결성(정합성)을 해칩니다. 필자는 이를 근거로 해서 난잡계를 일종의 허우대 좋고 빼어난 용모를 가진 사기꾼이라 빗대기도 합니다.


난잡계는 나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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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잡하다는 낱말이 주는 부정성 때문에 혹자는 ‘그렇다면 난잡적인 만화는 모두 나쁜가’라는 의구를 제기하실 수 있습니다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난잡계는 복잡계의 상대적인 개념일 뿐이며 복잡계는 우수한 것이고 난잡계는 저열한 것이다는 생각은 아무렴 잘못된 것입니다. 만화적 복잡계에는 나쁜 복잡계의 사례가 충분히 마련돼있습니다. 이를테면 요소간의 높은 연결성을 충분히 갖춘 어떤 만화가 있다고 가정해봅니다. 그 만화는 컷과 컷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으며 어떤 설정(요소)이 다른 설정을 위협하거나 반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구조적 우수함’이 그 만화의 재미까지 증거하는 것은 아닙니다. 상술했듯 만화가 난잡적이 되는 숙명을 가졌다면 대체로 복잡적이 되는 창작 매체에는 문학(활자 매체)이 있다고 여겨집니다. 문학은 대체로 그것을 집필하는 문호들의 편집증적인 성격 덕택에 구조적 수준이 높습니다(즉 복잡계가 됩니다). 하지만 모든 문학이 살아남지는 아니합니다. 아주 적은 수의 문학만이 독자나 평론가로부터 ‘선택’되어 ‘고전’으로 거듭납니다. 이는 복잡성이 어떤 창작 매체의 일괄적인 우수함을 대변하지 않음을 보장합니다(인간이 다른 종과 다른 우수함을 가졌다는 착각과 다르게, 종 내의 인간 개개인들은 다양한 수준을 가집니다). 이는 난잡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서도 나쁜 난잡계의 사례와 좋은 난잡계의 사례를 들 수 있을 터이며, 저는 나쁜 난잡계의 사례를 여기서 일일이 언급하지 않으려 합니다. 나쁜 것보다는 좋은 게 낳다는(응애 응애) 덕담 때문입니다. 필자는 좋은 난잡계(만화)의 사례로 ‘아라키 히로히코의 죠죠의 기묘한 모험’과 ‘토가시 요시히로의 헌터 X 헌터’를 꼽고 싶습니다. 만약 두 작품을 사랑하여 마지않는 독자가 본 서평을 보고 계시다면 아주 비판적이고 서슬진 시각을 갖추고 이것들을 재독해보시기 바랍니다. 아마 지금껏 깨닫지 못한 ‘요소적 모순’이 엄청나게 많다는 것을 여실히 깨달으실겁니다. 상술했지만 재미를 추구하기 위해 창안된 ‘속임수적 요소(허우대 좋고 빼어난 용모를 가진 사기꾼)’가 그런 결함들을 감춘 셈입니다. 때문에 특정 만화에서 이런 결함들의 목록을 충분히 만드실 수 있으실겁니다. 한데, 이로부터 매우 역설적인 사실이 하나 관찰됩니다. 두 만화들이 퍽 난잡적인데도 불구하고 그것들은 독자와 무리없이 공명합니다(상호작용합니다). 기실 말하자면 만화에 한해서는 그 체계의 ‘복잡성’이나 ‘난잡성’이 재미를 보장하지 않을뿐더러, 만화는 복잡적이 되기 힘든 때문에 만화란 난잡계의 동의어라고 봐도 무방하다고 여겨집니다. 만화는 결국 시각 매체이고, 시각적인 비중이 큰 까닭에 만화가는 문학과 같은 ‘모든 요소간 정합성’을 주의할 수 없으며 독자들이 누리는 재미까지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바를 생각하면 더우기 그렇습니다. 더나아가 대개의 독자들은 그 만화가 난잡계인지 복잡계인지 일일이 신경 쓰지 않거나 거기에 큰 의미를 두지않을 터입니다(즉 관찰되지 않습니다). 재미만 있으면 그만인 것이 (어느정도는)만화의 숙명인 때문입니다.


던전밥, 복잡계로 이르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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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앞서 복잡계를 설명하고 난잡계를 정의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던전밥은 두 양자 가운데 어느 편에 있느냐에 대한 물음이 뒤따를 것입니다. 앞서 말했듯 우수한 복잡성을 가지고 있으나(내용의 모순이 없으나) 내용적으로 무미건조하기만 한 어떤 문학의 경우와 같이 던전밥이 단지 요소들의 복잡성만을 추구했다면 지금 같은 다자의 호응을 얻기는 어려웠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러므로 필자는 ‘(나쁜 의미이든 좋은 의미이든)난잡적 만화’가 도처에 널려있는 만화계에서 ‘던전밥’이란 작품이 가지는 함의는 과연 남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만화계에서 정말로 보기 드물고 훌륭한 복잡계의 사례라 일컫고 싶습니다. 이를테면 던전밥에 마련된 ‘모든 요소 요소’는 자신과 구분되는 ‘다른 요소 요소’를 위한 유의미한 장치이며, 이 요소와 요소의 연결이 또 다른 요소와 요소의 연결을 의미있게 합니다. 만화내에서 그다지 쓸모를 가지지 못한다고 생각되거나 ‘단지 시각적인 과장’이나 ‘일회적인 재미’를 배치되었다고 여겨지는 어떤 요소가 종래에 다른 요소를 돕고 또 다시 도움을 받는 호혜적 성향을 띱니다. 요소간의 연결성을 배재하더라도 만화의 미려한 작화로 하여 (시작적인) 요소 자체의 수준이 높아져 있는 상태인데, 여타의 요소들까지(서사적 재미, 등장인물드르이 매력) 우수한 연결성을 취하게 한다는 것이 만화가로서 매우 달성하기 힘든 과업이라는 바를 상기한다면 던전밥의 복잡성은 가히 놀라울 따름입니다. 속되게 말하면 이런 시도는 대가리가 터질 수도 있는 일입니다. 더구나 던전밥의 주제라 이를 수 있는 어떤 생태에는 ‘실재하는 생물학’이 기반이 되므로 만화 내 갖은 요소들이 다만 ‘허구적 상상’이나 ‘환상’, ‘환시’ 같게만 느껴지지 않습니다. ‘어느 수준의 실재’가 기반돼 있으므로 그것들이 세계에 응당 ‘자리할법한’ 당위까지 마련하게 합니다. 던전밥의 이런 ‘유의미한 얽힘’들은 단순히 만화가 완성도가 높다, 설정을 잘 짠다, 그림을 잘그린다와 같이 막연한 수준에서 파악되지 아니하며 우리가 자연계(복잡계)의 하나의 인간으로써(요소) 서로 상호작용하며 ‘유의미한 얽힘’을 생산해내는 바와 같습니다. 되려 우리가 사는 현실과 다르게 어떤 요소가 자신의 편의를 취득하기 위해 다른 요소를 배격하거나 해치지 않는다는 점을 주목해 볼 필요도 있을 것입니다. 사고실험이 특정한 전제를 설정하고나서 거기에 특정한 요소들을 배치하여(체계를 만들고) 그 요소들이 과연 어떻게 작동하거나 상호작용하는지를 ‘가상’으로 상상하는 일임을 상기해본다면 던전밥의 이같은 복잡성 추구는 만화를 일종의 사고실험이라 여기게 합니다.


마치며


저는 던전밥의 복잡적 우수성이 단지 설정이 깊다, 그림이 좋다, 완성도가 높다, 치밀하다 등의 구문으로 언어화 되는 것에 아쉬움을 느껴 이 만화가 전유하는 우수성을 저 나름의 언어 생태로 언어화해 보았습니다. 물론 감상이란 가히 자유로운 것이므로 위의 감상 등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본문은 전제하지 않음을 염두에 두시길 바랍니다.

필자가 근 이 년동안에 누렸던 창작 매체 가운데 해당 분야의 ‘통상적인 창작 매체’와 구분되는 독자성(개성)을 띠는 작품들로 디스코 엘리시움(게임)과 던전밥(만화)을 꼽을 수 있겠으며 이는 매우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