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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시작
왜 영원을 포기해야 하는가?
왜 사람이 죽어야만 하는가?
캐서린은 죽었다.
하지만 캐런은 죽지 않을 것이다.
영원히.
-5권
때로 사람은 영원불멸을 꿈꾸기도 한다.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멈춰서서 젊음의 기쁨을 마음껏 만끽하길 바란다. 그러나 정말로, 정말로 젊음을 박제 당한 채 불멸한다면 당신은 즐거워할 수 있을까? <리셋팅 레이디>는 그렇게 화두를 던진다.
I. 1회차
<리셋팅 레이디>는 분명 호불호가 갈릴 작품이다. 로맨스 판타지의 탈을 썼지만 막상 로맨스의 비중은 극히 적기 때문이다. 외전을 제외하면 연애파트로 볼 수 있는 부분이 기껏해야 4권 중후반쯤인데, 생각보다 무미건조하고 지루한 탓에 극을 늘어뜨린다. 이 작품이 지루하다는 평을 받는 건 전적으로 이 부분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말하면 <리셋팅 레이디>는 맛있는 로맨스가 없다. 다만 사건과 사랑이 있을 뿐이다. 치밀하게 깔린 복선들,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는 사건, 그리고 그 모든 사건들을 관통하는 사랑이라는 주제. 이게 작품을 움직이는 원동력이다. 마치 러시아 고전문학처럼 사랑에서 시작하여, 사랑으로 끝나는 식이다.
이 작품에서 사랑은 남녀 간의 애정에 국한되지 않는다. 여기서의 사랑은 불특정 다수를 향한 사랑으로까지 번져나간다. 흔히들 말하는 ‘인류애’라고 할 수 있겠다. 너무 거창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작품의 구성은 분명 이 흐름을 따르고 있다.
작중 주인공인 캐런은 소설 첫 장에서 이렇게 말한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건, 세상을 변화시키는 건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처음에 읽고 행했고 다른 사람을 만나고 그걸 반복했다. 사랑을 해야 했다. 100년간 사랑을 찾아 떠돌았다. 지루한 나날이었다. 의미 없는 나날이었다.
사랑은 답이 아니었다. 문자들은 지긋지긋해졌다. 이제는 복수의 시간이다. 재미없는 문자들은, 답이 없는 문자들은 독자의 복수를 받야아 한다.
-1권
캐런은 무려 100년 동안이나 사랑을 찾아 헤맸다. 17살의 생에 갇힌 그녀는 책 밖으로 나가기 위해 자신을 구원할 “남자 주인공”을 찾고 있었다. 그러나 어떤 사람도, 어떤 사랑도 자신을 책 밖으로 내보내주지 않는다. 다만 그녀는 책 속의 인물로서 살아갈 뿐이다. 자신을 제외한 모든 인물은 한낱 활자에 불과하다. 그녀가 사랑할 수 있는 건 동등한 사람뿐이다. 그리고 활자는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캐런은 살인을 결심할 수 있었다. 그녀에게 있어 그건 살인이 아니라 활자를 지우개로 지워버리는 것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죽음은 어떤 의미도 없다. 심지어 그녀 자신에게도 죽음은 가볍다. 17살이 지나면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오니까. 따라서 그녀의 삶은 연속성이 없으며, 어떤 관계도 연속되지 않는다. 모든 사랑은 어느 순간 단절돼 처음으로 되돌아 온다.
그녀가 겪은 관계와 사랑들은 오롯이 그녀만이 기억하는 삶이다. 절망할 수밖에 없다. 자포자기할 수밖에 없다. 그녀는 모든 살인이 끝나고서야 고백하듯 말한다.
“그래도 난 그를 사랑할 수 없어.”
이제 조금 후에는 그도 캐런을 잊어버릴 테니까.
“그게 무슨 소용이란 말이야…”
다시 글자는 흩어지고 시간은 처음으로 돌아간다. 노력도, 애정도, 증오도. 그 모든 것이 다 사라지고 모든 관계는 사라진다. 그래서 캐런은 사랑할 수 없다.
절대로.
세월은 쌓이지 않는다. 결국 끝까지 아무도 그녀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녀와 반복되는 생을 살지 못할 것이다. 그녀는 앞으로도 영원히 혼자일 것이다.
-3권
그리고, 여기 반대편에 레이몬드가 있다. 항상, 거의 모든 생애에서 캐런을 구하러 오는 남자 주인공. 그에게 있어 인생은 단 한 번 뿐이다. 전장에서 많은 사람을 죽인 사내로서 그에게 죽음은 무겁다. 다음번 생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캐런이 삶을 반복하고 있다고 말해도 믿을 수 없다. 또한 생을 가볍게 여기는 캐런을 이해할 수도 없다. 그는 캐런에게 말한다.
“삶이… 당신에게는 너무나 가볍군요.”
“죽음도 가볍죠.”
“…왜 나보고 당신을 사랑하라고 했습니까?”
“죽고 싶어서요.”
레이몬드는 물었다.
“그래서 이제 만족합니까?”
캐런은 눈을 동그랗게 뜬다. 레이몬드의 얼굴을 본다. 레이몬드는 자신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참담한 기분이 들었다.
“레이몬드 경, 화내시나요?”
“캐런, 최소한 살려고 노력하십시오. 삶을 모독하지 마십시오.”
-3권
그는 항상 온 힘을 다해서 캐런을 사랑해왔다. 단 한 번 뿐인 인생을 걸고, 자신의 지위를 잃고, 목숨을 잃고, 모든 것을 잃을지라도 캐런을 향한 사랑을 멈추지 않았다. 캐런이 그를 사랑하지 않고, “도구”로써 이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지라도 말이다.
그런 그가 분노하고 있는 부분은 단 하나다. 캐런이 삶에 진지하게 임하지 않는다는 점. 그건 캐런 자기 자신의 삶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삶 또한 진지하게 보지 않고 있다는 걸 눈치챘기 때문이다.
그는 인간적인 사내다. 자신의 삶을 저당잡은 베르딕에게 분노할지언정 그를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미워하는데 그친다. 또한 자신을 팔아넘긴 형 또한 아픈 기억으로 묻어둘 뿐이다. 누군가의 생을 도구로 이용하려고 하지도, 그럴 생각도 없는 정의로운 사내. 그게 레이몬드다.
3권까지 이어지는 1회차는 이러한 대립을 도드라지게 표현한다. 절박할 정도로 캐런을 몰아붙이고 레이몬드를 비참하게 만든다.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사건은 가속도를 붙여가며 흘러간다. 캐런과 레이몬드에게 있어서 이 모든 사건은 사랑의 시험이다. 연속성이 보장되지 않은 사랑은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 그들은 100번의 시험을 치뤘고, 마침내 인정받는다.
이제 캐런과 레이몬드는 영생한다.
II. 2회차
어떻게 알았어요? 지금 어디까지 기억하고 있어요? 지금 당신은 누구에요? 지금 왜 여기에, 왜 이제야, 캐런은 몇 번이나 소용돌이치는 질문을 잊어버렸다. 그리고 자신을 끌어안은 레이몬드에게 팔을 둘렀다. 서로가 서로의 몸이 부서질 것처럼 끌어안았다.
더 이상 말은 필요하지 않았다. 아찔한 슬픔과 감격이 칼날처럼 온몸을 찔렀다.
암호는 필요없다. 시험은 필요 없다. 확인은 필요 없다. 사랑은 시험하는 것이 아니다. 세월은 그 무엇으로도 감출 수 없다. 언어조차 필요하지 않다. 어떤 말도 이 순간에는 필요하지 않다. 그냥 보면 알 수 있었다. 눈물만이 존재했다.
활자로 만든 세상에 사람이 둘 서 있었다.
-4권
사랑의 시험 끝에 그들은 마침내 사랑의 연속성을 획득했다. 그들의 삶은 이제 단절되지 않는다. 두 사람만은 영원 속에서 서로의 기억을 공유할 수 있다. 여주인공과 그런 여주인공을 굳건하게 사랑하는 남자 주인공. 연애소설의 주인공들은 불멸하고, 영원히 사랑하게 됐다.
그러나 그게 해피엔딩일까?
전반적인 설명, 복선, 암시. 가장 큰 분량이 담긴 1회차가 지나갔다. 2회차 이후는 “왜 영원을 포기해야 하는지, 왜 사람은 죽어야만 하는지”에 대한 답을 내는데 주력한다. <리셋팅 레이디>에서 사랑이란 이제 연인 간의 애정이 됐다. 캐런에게 있어 사랑할 수 있는 건 이제 레이몬드 뿐이다. 사랑을 쏟아도 기억하는 건 오직 그밖에 없으니까.
이제 레이몬드 또한 그녀밖에 사랑할 수 없다. 삶은 이제 단 한 번뿐인 기회가 아니다. 다음번에도 사랑은 연속되며, 자신이 쏟은 사랑을 캐런이 기억한다. 다른 인물들은 활자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캐런이 그랬던 것처럼, 활자에게는 사랑을 쏟을 수 없다. 타인에 대한 사랑은 무감각해지고, 인간의 삶은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변했다.
아무리 끝나지 않는 책처럼 반복된다 하더라도, 시작은 캐런이다. 레이몬드는 휘말린 것이다. 캐런은 그가 기억을 하게 된 이유가, 저렇게 변하게 된 이유가 자신 때문이라는 것을 안다.
레이몬드는 변했다.
그가 아무리 사랑을 말하고, 복수를 읊조리고, 조심스럽게 행동하더라도 본질적으로 변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물론 캐런이 그렇다고 레이몬드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어떻게 그를 사랑하지 않는다 하겠는가. 그의 변화가 자신 때문인데 어찌 사랑스럽지 않을까. 하지만 그만큼 점점 더 속에서 불안감이 쌓여갔다.
캐런은 아무에게도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었지만 그에게는 죄책감을 느껴야 했다.
-5권
레이몬드는 캐런을 조금 더 빨리 저택에 데려오기 위해 형을 죽이고 작위를 이어받는다. 또한 캐런을 괴롭혔던 상인 베르딕에게 복수하기 위해 그의 딸을 납치해 고문한다. 아니, 고문할 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베르딕에게 미끼를 던져 그가 영영 딸을 찾아 헤매게 만든다. 모든 건 캐런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다.
그는 여전히 캐런을 사랑하고, 그녀를 살리기 위해, 혹은 죽이기 위해 온 힘을 다한다. 죽음은 더 이상 무겁지 않다. 타인의 삶은 깃털처럼 가벼울 뿐이다.
캐런은 그런 그에게 부채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레이몬드는 그녀가 괴물이 된 과정을 그대로 따라오고 있었다. 모든 것에 대한 사랑을 잃고 있었다. 레이몬드는 결코 꺾이지 않을만큼 그녀를 사랑하기에 영생에 만족하지만, 캐런은 그게 옳은 방향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다. 그들이 영원히 사랑한다 해도, 결국 그들은 단둘이서 영원히 종이 위를 걷는 사람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 해를 넘기기 전에 캐런은 다시 첫 장으로 되돌아갔고, 레이몬드 또한 느린 걸음으로 그녀를 좇았다.
III. 3회차
만약 캐런과 이셀라가 친구가 된다면 어떨까. 이제까지 이셀라의 친구가 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캐런이 레이몬드를 철저히 무시하고 이셀라의 시녀로 수그리고 들어갈 때만 이셀라는 만족했다. 그들은 실로 한 번도 친구였던 적이 없다.
원수를 사랑하라.
그것은 굉장히 새로운 일이었다.
캐런은 한번 이번 생에는 그것도 시도해 보기로 결심했다.
-5권
마침내 캐런은 활자를 사랑해보기로 결심한다. 그들을 극 위에 올라와 있는 배우가 아닌, 하나의 인격체로 대우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사랑이라는 주제는 이제 연인 간의 사랑을 넘어섰다. 마치 인생이 단 한 번인 것처럼, 그 생이 만들어 낸 관계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삶에 충실하기로 그녀는 결심한다.
그건 일차적으로 레이몬드에 대한 부채감에서 비롯된 것이었으나, 사람들에게서 “변화”의 가능성을 엿봤기 때문이기도 했다. 캐런과 레이몬드의 행동에 따라 삶은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항상 원수였던 관계가 친구 사이로 바뀌기도 하고, 죽었어야 할 사람이 살아나기도 한다. 심지어는 역사가 바뀌기도 한다.
그녀는 많은 변화를 보고 즐거움을 느낀다. 1년이 지나면 단절될 삶, 다시는 되돌아오지 않을 삶이라 해도 캐런 그녀에게는 그 삶들이 소중해진 것이다. 소중하기에 이제 더는 놓치고 싶지 않아진다. 삶을 더 이어 나갔으면 좋겠다, 혹은 이 관계들이 처음으로 되돌아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녀는 이제 진정으로 죽길 바란다. 죽음 또한 삶의 단절이지만, 그녀가 이뤄온 모든 성과를 무너뜨리지는 않는다. 그녀는 해방되고 다른 이들은 “사람”으로서 삶을 살아갈 것이다. 레이몬드는 그런 그녀에게 죽음을 약속한다. 반드시 죽음을 찾아주겠노라고, 기사로서 맹세한다. 그리고 종막에 다다른 끝에 그는 마침내 그녀에게 죽음을 선사한다.
“당신의 말이 맞았습니다. 당신이 저보다 더 저를 잘 알았습니다. 저 하나로는 당신의 삶에 드릴 수 있는 것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순간이 되어서야 깨달았습니다.
레이몬드는 무너진 성벽 위에서 오열했다. 자신이, 캐런이 일궈 낸 결과를 보면서 통탄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이 모든 것이 결국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괴로웠다.
우리는 도무지 우리의 인생을 포기할 수가 없었다.
그것이 그들이 내린 결론이었다.
-6권
그들은 많은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사랑의 결과를 옳은 쪽으로 이끌 수 있다. 그건 그들의 인생이다. 17살의 삶을 누군가 박제시켜 빼앗아 간다 하더라도, 그건 그들의 것이다. 캐런과 레이몬드는 그런 인생을 포기할 수 없다. 사랑을 포기할 수 없다.
그와 그녀의 삶을 박제한 사람 또한 그 인생의 무게를 느껴야만 한다. 하나뿐이어야 할 삶을 모독해서는 안 된다. 영원불멸은 없다. 삶은 연속성을 띠어야만 한다.
이야기는 마침내 종막에 이른다.
IV. 맺음
”더 이상 도망가지 마십시오.“
자신은 이제까지 도망갈 수 있었다. 자살이라는 수단으로 그 다음의 인생으로 도망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었다. 자신은 기필코 살아야 했다.
-6권
리셋. 매혹적인 단어다. 모든 것들은 제자리도 돌아가고, 인간은 다시 한 번 삶을 개변할 기회를 얻는다. 장르소설에서 회귀는 지금껏 편리한 장치로 쓰여왔다. 잘못된 삶을 살아가던 사람이 우연한 기회로 돌아가, 자신의 역사를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꾼다.
이 작품 또한 여러 회차를 반복하면서 더 나은 성과를 얻는다. 그러나 당사자들은 그걸 원하지 않았다. 그들은 도망가고 싶지 않았다. 결점이 있는 인생, 조금의 후회가 있는 인생이라도 품고 살아가길 원했다. 무엇이라도 고칠 수 있는 삶에서 대체 무엇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 사랑 없는 삶은 지옥일 뿐이다.
<리셋팅 레이디>는 이런 부분을 아주 집요하게 파고든다. 그것도 회차를 나눠가면서, 인물 심리 하나하나를 세세하게 설명하면서 그 차이점을 제시한다. 그 덕에 소설은 때때로 늘어지고 지루해진다. 특히나 4, 5권은 읽는 게 고역일 정도로.
하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완성도가 아주 뛰어난 작품이다. 무엇을 말하려고 했는지, 그걸 어떻게 표현하고자 했는지 명확하게 나타낸다. 전체적인 부분에서 복선을 뿌리고 집요하게 떡밥을 회수하는 부분 또한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리뷰를 쓰기 전에 두 번째로 훑어봤는데, 1회차에 생각지도 못했던 떡밥들이 감춰져 있는걸 보고 새삼 놀랐다. 짧은 글도 아닌데 어떻게 구성을 이렇게 촘촘하게 짰을까.
이북으로만 존재한다는게 흠이긴 하지만, 이정도 소설이면 찾아볼 가치가 있지 않나 싶다.
3줄 요약좀 이걸 누가 다읽음
17살에서 18살 될때마다 다시 17살으로 되돌아가는 삶 무한반복한 여주가 온갖고생하다가 18살 되는 이야기
로맨스 소설 쪼가리 홍보하느라 애쓴다 애써ㅋㅋ 불쏘시개로도 안쓸걸
그야 전자책이니까
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
리디 독점작인가보네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