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으로서의 철학에 대해 제대로 공부하기 위해서는,
"언어에 관한 분석 능력이 있어야 한다. (...)
상대방의 철학적 주장에 대한 이해는 결국 그 사람이 논증에 사용하는 문장과 낱말에 관한 이해다. (...)
철학하는 사람은 문장의 의미와 그에 함축된 내용, 용어의 (글자 그대로의) 의미와 더불어 여러 가지 뉘앙스를 예민하게 구별하는 능력뿐만 아니라
추상적 낱말을 능숙하게 다루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이명숙 · 곽강제, 『철학과 학문의 노하우』, 서광사, 2014, 171-172면.)
위에서 설명하고 있는 '언어 분석 능력'을 기르는 데 있어서 정말 좋은 책이
바로 (존 호스퍼스, 『철학적 분석은 어떻게 하는가』, 이재훈 옮김, 서광사, 2016.)이다.
이러한 언어 분석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이 정말 많다.
그런데도 그에 대해 공부해야 한다는 필요성도 못 느낀다.
그래서 심오한 철학적 논쟁을 하고 있다고 자기들끼리는 생각하지만
실은 그냥 서로 원래 다양한 맥락에서 여러 가지 뜻으로 사용되는 낱말을 갖고
자기가 지금 밀고 있는 뜻만 맞는다고 우기는 것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위의 책, 26-27면.)에서는 다음과 같은 예를 든다.
나무가 쓰러질 때 그것이 쓰러지는 소리를 아무도 듣지 못했다면, 소리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이 경우 그에 반대하는 사람이,
소리는 음파이고 "음파는 공기 입자의 응축과 희박이 번갈아 발생하는 것이므로, 그것을 듣는 사람이 주위에 있든 없든 상관없이 발생한다"(위의 책, 27면.)라고
했다고 해보자.
그에 대해 처음에 소리가 없다고 주장한 사람은 다음과 같이 대응한다.
"소리"라는 단어는 '인간이 소리를 감각하는 것'을 지칭하는 것이다! 어떠한 사람도 그 소리를 감각하지 못했다면, 소리는 없는 것이다!
이러한 논쟁은 너무나 사소한 것이다.
소리가 음파라고 주장한 사람은 더 싸울 필요도 없이 이렇게 말하면 된다.
아 그래? 네가 말한 그러한 감각에 대해서만 "소리"라고 지칭해야 네 직성이 풀리겠다면 그러렴.
(근데 말이란 건 언중들이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뜻을 갖는 거 아냐? 암튼 이건 넘어가자.)
그럼 음파는 존재하지만, 소리 감각은 안 존재한다고 하면 되네. 논쟁 끝~
디씨를 비롯해 온갖 커뮤니티 키배나 술자리 논쟁들을 들여다보면 결국 저런 허무한 문제인 경우가 많다.
다음의 예도 한번 보자.
"먼저 '절대성'이라는 속성은 아무런 제약이나 조건이 붙지 않음을 의미한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맞는 말이다.
진리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에 반드시 제약이나 조건이 붙지 않아야만 하는 것은 사실이다.
예를 들어 신을 진리라고 가정해보자.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신에는 조건이 붙는다. 낮에는 신인 것이 확실한데 밤이 되면 신의 구실을 못한다.
만약 이러한 신을 만난다면, 우리는 이 신을 진리라 부를 수 있을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차라리 이렇게 제한적인 신 대신에, 그의 능력이 발현되고 제한되는 조건과 제약으로서의 운행 원리를 더 근원적인 진리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즉, 특정 제약이나 조건이 붙지 않는다는 의미에서의 절대성은 진리의 속성이 되기에 타당하다."
(채사장,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2』, 웨일북, 2020, 26면.)
신이라는 '의지'를 갖고 있는 주체가 어떠한 제약도 없이 자신의 의지를 모두 관철시킨다, 라는 말을 하는 맥락에서의 '절대성'이랑
지식의 영역에서 "원리"나 옳은 명제가 보편적이고 절대적이라는 말을 하는 맥락에서의 '절대성'은 서로 다르다.
신이 거칠 것 없이 전지전능한 능력을 발휘하는 것에 대해 절대적이다, 진리다, 라고 말을 하는 맥락에서 사용하는 '절대', '진리'라는 말들은
학문과 지식의 영역에서 참인 명제들을 가리켜 '진리'라고 할 때의 그것과 서로 다른 뜻을 갖고 있는 거다.
똑같은 글자로 된 낱말도 다른 맥락에서 사용되면 다른 뜻을 가질 수 있다.
근데 위의 책에서는 서로 다른 맥락에서 다르게 사용되는 '진리'라는 말들의 의미들을 그냥 뒤섞어버린 거다.
그래서 저런 소리는
<굴은 어패류이고 또 지형이다. 굴은 땅이나 바위가 안으로 깊숙이 패어 들어가고,
또 영양이 풍부하고 풍미가 강하다.
굴은 짱짱맨이다!>
이런 헛소리랑 하나 다를 게 없다.
사람들이 신에 대해 '진리'라고 하기도 하고,
학문의 영역에서 참인 명제를 가리켜 '진리'라고 하기도 한다고 해서
아아 진리는 신적으로 절대적이면서 보편적이면서 참이다~라고
어떤 맥락도 고정하지 않은 채 여러 뜻을 뒤섞어 잡동사니 개념을 만들 필요가 없다. 소꿉장난을 하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자, 다들 『철학적 분석은 어떻게 하는가』을 읽고 미몽에서 깨어나자!
콰인슨상님 말마따나 철학함과 철학사는 구분해야한다 이기
한 번 읽어보고 싶네요 바로 구매했습니다!
철학 안 해야겠다 ㅇㅇ
ㄹㅇㅋㅋ
오 가독성이 좋네요! 『철학과 학문의 노하우』란 책은 어떤가요?
그 책도 좋아요. 근데 <철학적 분석은 어떻게 하는가>가 더 재밌고 알차요ㅋㅋ
가격도 살벌한거봐
철학의 본령은 아무렇게나 심오한 듯이 글을 휘갈겨 놓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 신념들의 논리적 검토에 있다는 것을 명료하고 상세히 알려주는 명저
이거보고 논리철학논고 펴러 감
맞는 말임 솔직히 철학적인 주제로 떠들려고 자리를 마련해도 다들 언어가 명료하지 않아서 개념부터 짚어야 하는 게 태반임 정치는 가난한 자들을 선동한다 뭐 이런 주장을 하려고 해도 여기서 말하는 가난이란 어떤 건가 떠들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음… - dc App
땡기네
바이럴 당했다. 사야겠다
뎃 품절인 데스
오 장바구니on
의미를 명료하게 해야 한다는건 맞는데 그 개념을 자의적으로 서로 다르게 규정한다고 논의가 끝나는건 아니지. 그것 자체가 논쟁거리인데. 설명 쉽게 하려고 쓴거 같긴 하다만
<음파는 존재하고 소리 감각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명제에 두 사람 모두 동의하고 있다는 점을 명료하게 드러내면 서로 이견이 없다는 점이 확실해진다는 거다. "소리"라는 개념의 외연을 어디까지로 봐야하는지는 철학적 문제가 아니다. 관례적으로 또는 특정 맥락에서 어떤 단어를 사전적 의미와 다르게 외연을 확장하거나 축소해서 사용하는 이들과 도대체 어떤 논쟁을 하겠단 건지? 그들은 그냥 개념을 그렇게 쓰는 맥락과 관례가 있다고 보여주면 되는데 이게 대순가.
둘 다 맞는데 여기 댓글은 명료하게 개념을 동의해도 논의가 끝나진 않는다는 거임. 개념하고 주장은 구분해야 함
<"소리"라는 단어의 외연은 무엇인가?> 라는 '국어' 문제에는 이견이 없는 상황, 즉, 본문에서 특정된 맥락에서는, 본문에서 쓴 것처럼, 그 두 사람 간에 '철학적으로' 이견이 없다는 점을 명료하게 드러내면, 더 이상 '철학적' 논쟁이 이어지지 않는다, 아니 애초에 시작될 필요도 없었단 점이 분명해진다는 거다. 본문에 나온 상황이 구체적으로 어떤 맥락인지를 제대로 파악하지도 않고 왜 엉뚱한 소리들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우리대학에서 철학하는 교수가 토론에 관해 이야기할 때, 이런 말을 하더라.
아니지 철학이 아니라 북한학 교수였지. 여튼 엄마의 아침밥과 자식의 아침밥은 서로 달라서, 아들은 우유 한 컵만 먹어도 아침을 먹었다 하고, 어미는 간단한 밥에 국이라도 말아먹어야 아침밥을 먹었다 말한다고. 아침밥이라는 동일한 사전적 의미의 단어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서로 다른 잣대를 갖고 사용하기에 누군가와 명확한 정보교환이나 건설적 대화를 나누기 위해선 중요 단어의 맥락상 의미를 짐작하고 정의해야만 한다고. 일상은 물론 옳고 그름-미와 추를 판단하는 학문인 철학을 공부함에 있어 매우 핵심적인 정신이란 생각이 들더라.
좋은 글 감사합니다 뒤늦게 추천 받고 갑니다
정확히는 '분석 철학' 입문서임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