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요약: 작가가 하드SF 썼다 하면 그 작품은 하드SF라고 인정하는 게 맞지 않나 싶다.
위래 - 마젠타 C. 세레스의 사랑과 혁명
우주와 우주선과 황제나 성계 전쟁에 대한 스페이스 오페라적인 설정이 나옴. 눈여겨볼 설정이라면 인격을 자유롭게 업로드/다운로드가 가능하다는 것, 그리고 전쟁에 아주 뛰어난 인격이 일종의 오픈소스화되어 있어서, 누구나 자유롭게 육체에 다운로드받아서 뛰어난 장군으로 그 인간을 전쟁에 써먹을 수 있다는 것. 설정 자체는 매우 독특하며 (하드SF적인 설정인지는 의문의 여지가 있지만) 이것만으로도 괜찮은 작품이 나올 가능성이 충분히 있음.
그런데 솔직히 플롯이 이해하기에 좀 복잡시러워서 무슨 얘기를 하는 건지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음 ㅠㅠ 특히 승천과 은총이라는 특별한 시술에 대한 설정이 나오는데 플롯 상에서 두 개의 차이가 명확히 뭔지 잘 모르겠다는. (애초에 이에 대해 자세한 (하드SF적) 설명은 나오지도 않음) 내가 멍청이라서 이해를 못하는 거일 수 있으니 플롯이 망했다거나 하는 평가는 내리지 않겠음.
작가의 말에, 특별히 하드SF 장르에 왜 이렇게 훈수두는 사람이 많은가! 하고 언급했는데 뭐 나는 1편에서 밝힌 대로 기본적으로 작가가 하드SF라고 자신의 작품을 정의한다면 그걸 인정해 줘야 한다는 입장인지라 이 작품의 장르에 대한 특별한 훈수는 두지 않겠음. 또 작가가 특별히 피터 와츠를 인용하면서 "하드SF는 독자와의 게임이다"라고 말하는데 (피터 와츠가 말 그대로 이렇게 말하진 않고 작가가 나름대로 해석한 것임), 이 작품에 한해서는 작가가 게임 난이도를 너무 어렵게 설정한 거 아닌지 하는 아쉬움이 남음. 설정보다는 플롯이 너무 복잡스러웠고, 그에 따라 하드SF적인 게임을 즐기러 온 독자가 보스도 아닌 쫄의 이상한 얍삽이 패턴에 좌절해서 게임을 꺼버리지 않을까 우려됨.
남세오 - 벨의 고리
정통 하드SF. 그렇슴. 이것은 정통임. 이 책에서 가장 괜찮았던 작품이었고, 어쩌면 척박한 한국 SF문학에서 '하드SF'로만 장르를 제한한다면 (그럼 작품 수 자체가 얼마 안 남겠지만) 손에 꼽을 만한 수작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음.
양자역학과 그에 반대한 아인슈타인의 주장, 그리고 그가 반대논지를 위해 만들어 낸 EPR역설에 관한 배경지식이 필요함. 그리고 제목에 드러난 대로 EPR역설을 실험적으로 검증한 벨의 부등식에 대한 내용이 나옴. 줄거리는 주인공이 아인슈타인의 주장을 피켓에 써넣고 데모하는 어떤 여자가 자신의 실험실 동료인 것 같아서 그녀에게 왜 그랬냐고 물어보는데 그 여자는 자기가 아니라고 말하는 데에서부터 시작함. 미스테리 추리물로서도 괜찮은 플롯을 가지고 있고, 또 결말 부분에서 단순 미스테리가 아닌 하드SF적인 설정이 꼭 필요한 반전을 드러냄. 그리고 드러나는 결말은, 개인의 신변이나 사회의 구조 따위의 작은 부분이 아닌, 철학적이면서도 우주적인 진실의 일면을 드러내는 거대한 스케일을 자랑함. 그러면서도 앞서 말한 '내 동료의 와 피켓녀의 정체는 무엇인가?"에 대한 궁금증을 푸는 동시에, 그 정체를 통해 은유적으로도 양자역학의 일면을 재치있게 연결지음.
내가 1편에서 "SF 설정이 결말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야만 하드SF다"라고 말했는데 이 공식에 딱 들어맞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음.
해도연 - 거대한 화구
해도연 작가의 '위대한 침묵' 읽어본 적은 있는데, 그 때는 꽤 괜찮은 하드SF를 쓰는 작가라는 생각은 들었음.
등장인물들이 전부 외계인이고, 지구인이 남긴 구조물을 통해 지구의 운명을 역추적해 나가는 이야기. 주인공 일행은 물 행성에 사는 외계인. 그들은 지구인이 남긴 구조물과 우주선, 포털을 발견하고, 포털을 통해 지구로 가는데 거기에서 하늘에 떠 있는 거대한 화구를 발견하고 죽음의 위협에 처한다는 내용. 화구의 정체나 외계인의 정체에 관해서는 반전이 있으나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반전이라는. 외계인의 입장에서 지구를 역으로 탐사한다는 이야기는 어디에서 들어본 적 있고 많은 사람들이 쉽게 생각할 수 있는 평범한 이야기라 그랬던 것 같음. 대단하지도 그렇다고 못쓰지도 않았던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음.
이하진 - 지오의 의지
달에 건설한 거대 입자 가속기와, 그것을 컨트롤하는 AI에 대한 설정. 남세오 '벨의 고리'처럼 물리학의 이론에 바탕을 둔 하드SF라고 할 수 있지만, 이야기가 너무 큰데 반해 분량이 작은 게 패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작품임. 일단 입자가속기가 시간을 과거로 돌릴 수 있는 '시간의 화살'을 쌓아놓는다는 설정이 나오는데, 시간의 화살이라는 걸 '입자-반입자 쌍생성'이라는 현실 이론에 바탕을 두고 '반입자로 이루어 진 거울 세계가 있다'는 가상 이론으로 설명을 하고 있는데 이 설명이 그렇게 충분히 만족스럽지는 않음. 또 시간의 화살이란 걸 '쌓아놓는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시간의 화살이 일종의 장인지, 에너지인지, 시공간의 왜곡인지)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지 않음. 그래서 하드SF의 묘미라고 할 수 있는 디테일하게 파고 드는 이론적 설명을 좀 건너뛴 것 같은 느낌이 듬. 그리고 인공지능이 시간의 화살을 한꺼번에 방출해 시간을 과거로 되돌리고, 인과율에 크게 영향을 끼치는 인물이 따로 있으며, 다른 인물이 아닌 바로 인과율에 영향을 끼치는 인물이 죽어야 과거를 되돌릴 수 있다는 거창한 가상 이론의 연쇄들이 줄줄줄 나오는데, 이게 단편 분량에서 감당할 만한 수준이 아니라는 생각이 듬.
'과거로 돌아가 전쟁을 막는다'는 흔한 결말로 끝맺는데, 설정이 디테일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인해 이 흔한 결말은 결국 그냥 어디서 많이 들어본 타임리프물에 지나지 않는 결말로 느껴지게 됨.
최의택 - 아니디우스 레푼도
기후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인간이 개발한 오픈소스 드론이 나오는데, 이게 대기를 휘젓고 다니며 지구온난화를 해결해 준다는 설정(심지어 번식도 함) 그런데 인간은 (이 기후위기 해결 드론과 상관 있는 이유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폐와 피부 수술을 받고 새 인간으로 변신한다는 설정. 설정부터 일단 이해가 잘 안되고...(대기를 휘젓고 다니는데 어떻게 기후위기가 해결된다는 건지, 인간기 폐와 피부를 개조하고 하늘을 날아다니면 온실효과로 뜨거워진 기후에서 잘 살 수 있는 건지? 기후위기는 인간 폐와 피부의 문제라기보단 식량과 생태계의 문제 아님?)
뭐 물론 '대기를 휘젓고 다니며 탄소포집을 하고 그 부산물을 딱딱하게 만들어 땅으로 떨어뜨리고 인간이 그걸 잘 모아서 땅에 파묻어 기후위기 해결'이라는 설정일 수도 있지만...그 디테일한 설정을 알고 싶어서 읽는 게 하드SF인데 그걸 이렇게 대충 넘기면 쓰나. 게다가 주인공이 인공 드론의 멸종을 막기위해 노력한다니, 그걸 왜 노력하는 건지도 이해가 가지 않음. 오픈소스 드론이라고 했으면서 또 유전자나 번식능력, 진화한다는 설정까지 있고. 애초에 기후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로봇 드론이면 번식, 진화 능력은 전혀 필요치도 않은데 그런 기능을 왜 만들어놓은거?
이처럼 여러 SF설정들이 거미줄처럼 얽혀 서로의 설정을 반박하는 지경이라, 두 번 읽어봤는데도 무슨 이야기를 하는 지 알 수 없는 작품이었음. 중후반부에 '시간을 되돌리도록 진화한 드론'까지 나올 때는, 이젠 SF설정의 정합성에 대해 신경쓰지 않기로 결심하고 읽게 되는 지경에 이름. 그러니 뭐 이야기 자체의 몰입도가 왕창 깨져버렸음.
이산화 - 마법사 에티올의 트루 엔딩 퀘스트
어떤 고전게임을 좋아해 그 안의 주인공에 몰입한 인물이, 2편에서 그 게임의 등장인물이 병에 걸려 죽어서 나오지 않는다는 걸 알고 개빡침. 그리고 1편에서 등장인물들이 왜 죽는지에 대해 마치 하우스 드라마의 닥터 하우스처럼 병리학적으로 파고들어 본다는 이야기. 일단 SF도 아닐 뿐더러 왜 하드SF인지도 잘 모르겠음 (아차차, 이런 이야기 안하기로 했지) 작가는 병을 설명하기 위해 온갖 참고문헌과 전문용어에 대한 설명을 늘어놓는데, 이 부분이 바로 하드SF적인 장치라고 작가는 여기는 것 같음.
하지만 글쎄다? 하드하긴 한데 SF라는 생각은 잘 안 듬. 왜이렇게 이 작품에 대해서 이질감이 느껴질까 곰곰히 생각해 봤는데, 역시나 SF라는 장르(하드SF 말고)의 경계선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짐. 작가도 하우스의 예를 들었으니 하우스라는 미드에 대해 생각해 보자면, 이 드라마는 (과학이라고 할 수 있는)의학에 대한 전문 지식을 기반으로 하는 이야기임. 하지만 하우스를 SF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임. 왜냐하면 SF는 과학을 소재로 하기만 해서는 성립하지 않으니까. 어쩌면 SF엔 과학에 대한 한 발 나간 허구적 설정까지 도달해야만 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듬. (SF장르를 정의하는 데 꽤 논의된 '외삽에 의한 미래 예측'이라는 게 이거랑 비슷한 거 아닐까 생각도 해봄)
이 작품에 대해 말하자면, 작가가 늘어놓는 여러 의학 지식들은 허구에 바탕을 두고 있지 않은 현실 있는 그대로의 과학 이론일 뿐임. 그래서 나는 이 작품을 SF라고 부르는 데 큰 위화감을 느꼈음.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내 기조는 "작가가 SF를 썼다면 쓴 거고, 하드SF를 썼다면 쓴거다"이기 때문에 "이건 SF가 아니다"라고 얘기하지는 않을 것임. 다만 '위화감'이라는 표현으로 에둘러 말하는 걸로 그치기로 함. 다만 위래의 작품이나 최의택의 작품에 비해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건지는 명확히 이해할 수 있어서 그나마 나음
시도는 좋았다 정도인가 보네
남세오 작품은 읽어볼 만 하니, '시도는 좋았다'는 평가보다는 좀 더 점수를 주고 싶음.
좀더 천천히 읽어봐야지
결국 하드SF라고 하지만 감상을 보니 만족스러운 하드 SF는 절반도 안 된다는 거군... 역시 김필산이 집필진으로 참여했어야 했다
결국 한두 작품 건지는 점에선 한과상이랑 별 차이도 없어보이기도 하고ㅋㅋㅋㅋ
K-SF에서 한 권당 단편 하나둘 건지면 만족스럽다고 보는 내 기준이 너무 낮은 건지...흑흑
애초에 그 기준 자체가 굉장히 비정상적이긴 한데 순문보다는 타율이 좋으니까 난 (그나마) 희망적으로 봄
단편집에서 하나 둘 건지는게 타율이 좋은거라니 대체 무슨 싸움을 하고 계신겁니까
김필산 조서월 최우준 읽으실?
김필산 조서월 최우준 읽어보겠습니다~! 추천 감사
2022 2023 2024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들임 다 개인 작품 없어서 수상작품집 사서 읽어야 해
이름치니까 다 수상작만 나오네 싸긴한데 단편 하나 읽자고 저걸 다사는건 좀....
결론은 빌려보자!
리디 셀렉트에 다 있어서 나는 구독하고 있는 김에 다 봤음ㅋㅋ
오 리디에 있다고? 뒤져봐야지
2022부터 중단편/장편 한과상 수상작들 다 있고 최근에 2024 한과상 장편 수상작 출간됐으니 리디셀렉에도 조만간 나올 거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