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카인 이야기에 대해 다른 시각으로 접근하는 것은
종교, 기독교를 진리가 아닌 실생활적인 측면에서 바라보며 해체하는 일(카인은 사람들의 이해에 의해 이렇게 쓰여졌을 것이다)
신비를 벗겨내면 종교는 선악 모두를 책임지고 있지 않다는 것.
설명이 가능한 영역만 책임지고 (그외엔 사탄의 일로 떠넘겨버린다든지) 충분한 설명을 제공하지 않는다.
이런 부족한 설명으로 만족하지 못하면 종교의 그늘에서 벗어나게 되는데
이때부터 자신만의 길, 도덕을 벗어나 본능적으로 느끼는 가치들.
그것들을 알을 깨는 과정으로 거치게 된다.
2. 나의 본질을 깨닫는 길
이때 나를 돕는 것은 진화가 덜된 기능들. (여기서 진화가 덜 되었다는 것은 긍정적 의미이다. 사람들은 도덕에 생각이 길들여지게끔 진화되었다)
자연이 내게 부여한 본연의 모습. 덜 인간/도덕화된 옛 기능들이다.
이때 어떤 마음이 들더라도 도덕화하지 말라. 높은 존재에 충족되기 위한 욕구에 자신을 맞추지 말고(ex: 하나님이 보시기에 내 이런 생각이 적절할까?)
(자연이 나를 박쥐로 창조했는데 타조가 되려하지 말고) 내 스스로의 본질에 따라라.
3. 바깥의 사물은 나의 마음
우리가 보는 것은 우리 마음에 있는 것.
누군갈 미워하는 마음을 갖는 건 그 대상을 보고 내 마음에 들어선 무언가를 미워하기 때문이다.
작가가 불교 영향을 많이 받은 티가 난다.
4. 본질을 깨닫는 과정에서 유의할 점
외부의 사물에 묶이지 말아야 하고
자신의 생각, 의도에 기반한 판단도 하지 말것.
5. 비록 인간이 만들어낸 신이라 해도 유익한 측면은 있다.
”우린 인간이야. 우린 신을 만들고 신들과 싸우지. 그러면 신들이 우리를 축복해“
이 문장은 두 가지 해석을 해보았다.
먼저, 인간들은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는 신을 만들어내고, 허상인 그들에게 갈구하며 싸운다. 그리고 신들이 축복을 내린다고 착각한다.(실제로는 그저 자연스러운 이치에 따른 것인데) 그리고 인간은 이 복을 얻고선 신의 축복이라며 기뻐하는 멍청한 존재라는 의미. 여기서 신은 일반적인 종교의 신일 것.
두 번째. 인간들은 신을 만들어내고, 허상인 그들에게 갈구하며 싸운다. 그러면 신이라는 것이 실제론 존재하지 않는다 해도, 그 투쟁의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더 유익한 길을 찾기도 하고, 다른 신(아브락사스)을 발견하게 되고 그로부터 유익을 얻는다. 여기서 신은 아브락사스인데, 인간 개개인이 저마다 만들어낸, 그러나 만들어내야만 하는 신이다.
인간이 만들어낸 신=꼭 나쁜 의미는 아니라는 것이고, 더 깊은 탐구로의 기회를 의미한다. 투쟁하면 유익을 주는 신이고 긍정적 의미.
6. 데미안이란 먼치킨이 존재하기에...
피스토리우스와의 서열정리는 좀 뻔했던듯
그치만 그 장면은 몹시 흡입력있었고, 피스토리우스라는 인물도 충분히 멋진 인물로 그려냈다.
7. 진솔함의 가치
싱클레어가 어줍잖게 데미안에게 허세를 떨다가 손절당한 장면. 혹은 솔직하게 굴지 않는 인물들을 보며 싱클레어가 눈치채고 질려하는 모습을 보며
언행은 진실되고 솔직하게 갖는 것이 좋다고 느꼈다.
그러지 않는 것은 내가 상대를 속일 수 있다는 오만함.
얄팍한 의도, 현학적인 표현, 입장을 고려한 부자연스러운 배려는 부작용을 낳는다.
8. 단 하나의 의무
자신 속에서 확고해지는 것 외에 인간에겐 어떤 의무도 없다.
자신에게 주어진 하나의 직분이 있고, 그것을 자의로 택하고 고칠 수 없다.
9. 패거리의 이상: 그렇게 살지 못하는 이들이 도피하는 곳
“자신의 운명을 찾고 그것을 굴절없이 사는 것이 모두의 직분.
이를 벗어나는 일은 ‘패거리의 이상’으로의 재도피이고, 자기 자신에 대한 무비판적 적응이자 두려움“이라는 문장이 참 좋다.
+ 읽고서 뭔 느낌인지는 알겠는데 갠적으론 좀 거품낀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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