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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단편 <짐>에서는 ‘나’는 친구인 전직 군인 짐이 길거리에서 불을 내뿜는 묘기에 점점 빠져드는 과정을 목격한다. 서서히 불꽃 속으로 침식되어 가는 짐은 마치 광기에 물든것처럼 묘사된다. 불이 만들어내는 빛과 그로 인해 생기는 그림자, 불쇼 하는 사내의 웃음을 띤 얼굴과 그 불을 관조하면서 울고 있는 짐의 대비는 다소 섬뜩하면서도 괴이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결국 ’나‘는 짐을 끌어들이는 매혹적인 불길 속에서 그를 구해내지만 그 행동은 짐을 위한 구원이 아니었다. 짐의 이해 할 수 없는, 불쇼를 쳐다보면서 무언가 그 너머의 것을 직시하는듯한 행동과 다소 위선적으로 느껴지지만 정상이라고 판단되는 ’나‘의 행동 사이에서 느껴지는 미묘함은 과연 무엇일까? 화염이란 짐이 추구하는 바, 가상 안에서 파멸의 여로를 바라보는 그의 즐거움이자 위로가 되는 어떤 상징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나‘의 행동은 짐이 느끼는 비현실 속 혼란스러운 감정과 따뜻한 실체와의 관계를 단절하고 다시 무자비한, 고통의 현실로 그를 끌어내린다는 점에서 잔인하게 느껴진다. 이후 충격에 휩싸인듯한 짐과 ‘나‘는 헤어진다. 그 후 ‘나‘는 짐을 다시는 보지 못한다.
불을 소재로 한 문학 작품들은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불의 타오르는 모습과 무더운 분위기에서 나는 포크너의 <헛간 불태우다>가 떠올랐다. 헛간 불태우다 에서의 불은 아버지의 증오와 계획적인 방화에 의해 탄생한다. 몰락하는 남부를 불타는 헛간에 비유한 이 작품은 <짐>과 달리 불길에 휩싸인 헛간을 바라보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소년은 자신의 정체성을 아버지의 범행과 불을 통해 발견하고 단지 몰락한 자신들의 운명을 부정하지 않고 이를 발판 삼아 앞으로 나아갈 것을 암시하면서 단편은 마무리된다. <짐>에서의 불은 작품 외적으로 아마 볼라뇨가 부정적으로 바라본 그 시절의 남미 문학계를 표현한게 아닐까 싶다. 불, 즉 혼돈을 암시하는 장면들은 문학에 애정을 가지고 있는 볼라뇨로서는 슬픈 상황이다. 다만 남부의 방향성과 미래를 설정한 포크너와 달리 볼라뇨는 참을 수 없는 가우초 이 단편집에서는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는다. 미쳐버린, 하지만 지극히 정상인 변호사의 이야기 <참을 수 없는 가우초>, 카프카의 패러디 <경찰 쥐>, 표절을 둘러싼 증오와 애정의 모험 <알바로 루셀로트의 여행>, 사건의 진실성을 역설하는 <두 편의 가톨릭 이야기>, 그리고 두편의 문학 관련 에세이에서 볼라뇨가 보이는 태도는 현 상황을 비판적으로 생각하지만 수긍 할 수 밖에 없는 현실에 대한 체념 뿐이다. 변화는 일어나지 않고 모든것은 그대로 유지된다. 우리는 과연 변화를 바라는 것일까? 그저 잔혹한 현실에 길들여진 노예들로서 살아가는것이 아닐까?
조이스의 작품을 열심히 공부했는데, 해답은 베스트셀러에 있더군요.
이 작품이 나온 20년 전과 비교했을때 상황은 과연 변화했는가? 소설은 이미 출구가 없어진지 오래다. 쿤데라 말대로 현재의 소설들은 소설의 역사 바깥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 상황을 우리는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가 앞으로의 관건이라고 생각한다. 포크너처럼 새로운 방향을 개척해 나갈지 아니면 볼라뇨처럼 이 슬픈 현실에 체념하고 종말을 기다릴지…
지금 서술한 볼라뇨의 관점은 오직 이 작품속에서의 스탠스만을 바탕으로 작성한 것이기 때문에 그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기는 어렵다. 볼라뇨의 문학에 대한 애정은 대단히 크고 거의 모든 라틴아메리카 작가들이 그의 작품 세계 속에 녹아들어있기 때문에 붕괴하는 문학계에서 마지막 폭탄과도 같았던 볼라뇨의 입장에서 바라보자면 현 상황이 너무나도 안타까울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끝으로 최근 볼라뇨를 연속으로 읽고 느낀 점은 볼라뇨의 작품들은 애매모호하다는 것이다. 작품 속 어떤 포인트에 집중하느냐에 따라 장면들의 흐름, 그 밑에 숨겨진 진실된 의미들을 즐기면서 찾을 수도 있고 아니면 그저 미완성적이라고 느낄수도 있다. 간결하면서도 흐릿한 문체로 구사하는, 안개 속 길을 잃은 듯한 분위기 속, 볼라뇨가 감춰둔 과거의 그리움과 현재의 상실, 그리고 문학의 즐거움과 특수성을 찾아떠나는 여정은 고난하지만 잠재되어있는 새로운 문학의 길을 보여준다.
잘 읽었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