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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jpeg 二. 인도 대서사시(마하바라타, 라마야나) 짧은 후기


1. 마하바라타


그리스의 일리아스와 쌍벽을 이룬다는 인도의 고대 서사시. 제목은 직역하면 ‘위대한 바라타’ 라는 뜻인데 제목에 나온 이 바라타의 후손인 쿠루족과 판두족의 싸움에 대한 내용이 이 서사시의 주된 줄거리이다. 판본에 따라 다르지만 원전은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오디세이아를 합친 것에 대여섯 배나 된다고 한다. 그리고 당연히 이렇게나 긴 분량은 최초 마하바라타의 핵심 플롯이 형성된 후 시간이 지나면서 온갖 인도의 설화나 교훈서, 의례에 대한 설명들이 스토리에 합쳐진 결과이다. 한국어로 6종의 번역본이 있는데(원전 번역, 4권 축약본, 단권 축약본 4종) 원전 번역본만 처음에 가객이라 불리는 등장인물이 구술형식으로 천지창조 이야기를 시작하는 원전의 구성틀을 유지하고 나머지 축약본들은 그냥 소설 형식이라 당연하겠지만 고전 서사시 느낌이 전혀 안 난다(원전 번역은 1권만, 4권 축약본은 다 읽었고 단권짜리는 R. K. 나라얀이 쓴 책으로 읽었음). 또한 축약본들은 샤쿤탈라 이야기같은 덧붙여진 설화들이 다 빠져 있고 다 중심 스토리만 다루는데 단권짜리랑 네권짜리의 차이는 그 중심 스토리의 상세함만 차이가 나는 정도이다.(물론 당연히 1/4이니 그 상세함의 차이는 큼.) 예를 들어 판두(판다바) 5형제는 전부 다 드라우파디라는 같은 아내랑 결혼하는데 이 아내가 아르주나라는 셋째를 좀 편애하는 심리 서술이 네권짜리엔 나오는데 단권짜리엔 안 나온다거나 하는 식. 4권짜리는 품절돼서 말도 안되는 가격에 중고로 팔던데 다 읽어본 입장에선 개인적인 생각으론 어짜피 원전 번역 안 읽을꺼면(사실 원전 번역본도 미완역에 품절임) 단권짜리도 나쁘지 않다.




image.jpeg 二. 인도 대서사시(마하바라타, 라마야나) 짧은 후기


2.라마야나


마하바라타와 더불어 인도의 양대 산맥으로 평가되는 고대 서사시. 제목인 라마야나는 라마의 이야기(영웅담)라는 뜻이다. 마하바라타가 일리아스라면 라마야나는 오뒷세이아에 대응된다고 볼 수 있다. 다만 북부의 영웅이 남부의 마왕을 제압하는 이야기라 마하바라타랑은 다르게 지역 갈등의 소지가 있고 판본들도 지역에 따라 굉장히 다르게 재해석되는 경우가 있다. 또한 매우 도덕적이고 정의로운 영웅(물론 전근대의 관점에서)이라는 점 때문인지 정치적으로도 이용되는 경우가 많은데 예를 들어 태국 국왕들은 본인들을 신성시하기 위해 라마의 이름을 자신들에게 붙여서 동일시 하려고 했다고 한다. 그리고 태국의 국왕들이 사용했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라마야나는 동남아시아에서는 마하바라타보다 훨씬 더 인기가 있고 실제로 나도 마하바라타보다 더 재밌게 읽었다.(원전 번역은 1권만, 축약본은 R. K. 나라얀의 책을 읽음.) 한국어 번역본은 원전은 1권만 번역되어 있고 나머지는 모두 단권짜리 축약본들이다. 근데 개인적으론 나라얀이 마하바라타보다 라마야나를 훨씬 더 잘 쓴 것 같다. 특히 주인공 부부(라마와 시타)의 결혼식 과정을 묘사하는 장면은 인도의 발리우드 장면이 머릿속에서 그려지는 듯 했는데 원전은 더 쩔겠지 하고 보니 오히려 축약본이 초월축약(?)이었다. 아무튼 재밌게 읽고 이어서 라마야나를 원작으로 한 아디푸루시라는 인도영화까지 봤는데 이건 매우 재미없었음…




image.jpeg 二. 인도 대서사시(마하바라타, 라마야나) 짧은 후기


3. 바가바드 기타


바가바드 기타는 위의 대서사시 마하바라타에 속한 한 부분(6장 일부)이 독립되어 경전이 된 것이다. 인도 사람들의 성경이라는데 확실히 신분질서를 합리화하는 측면은 있다. 바가바드 기타의 주제는 결국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라고 볼 수 있는데 기타에서는 해답으로 세 가지 요가의 길(지의 요가, 행위의 요가, 신애의 요가)을 제시한다. 근데 이 방법들은 사실 당대의 인도철학들을 짬뽕해 놓은 것에 가깝다. 범아일여와 거짓된 환영과도 같은 현상세계와 무신론적 이원론과 요가와 유신론이 모두 함께 나온다. 따라서 서술이 모순적인 부분이 군데군데 존재한다. 요가의 세 가지 길 중에서 책은 신애의 요가(신에 대한 믿음과 사랑)를 제일이라고 보지만 기타의 의의는 무엇보다 행위의 요가라는 새로운 논리를 대중화시킨 데에 있다.(다만 기타가 만든 것은 아님.) 우파니샤드 시대 이후 해탈을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사회적인 지위와 의무를 포기하고 고행을 하러 출가하거나 불교 등 기존의 신분질서를 인정하지 않는 신흥종교들의 융성이 브라만교의 사회적 기반들을 위협하는 시기에 행위의 요가는 직업윤리나 지위에 맞는 사회적 의무를 하면서도 해탈이 가능하다는 새로운 타협점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바가바드 기타는 당대의 현실을 반영해 기존의 브라만교를 업데이트한 일종의 종교 철학적 텍스트이고 이후에도 인도 역사에서 힌두교의 이러한 개혁은 반복된다.(사실 신에 대한 믿음을 강조한 것도 일반 대중들에게 더 어필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당대의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행위하되 행위의 결과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행하라‘ 라는 언명이 현대에 이르러선 현대인들에게 기타의 내용 중 가장 어필하는 요소가 되었다는 것은 뭔가 아이러니컬하면서도 그것이 기타를 단순히 신분제를 합리화하는 구시대적인 텍스트라고 볼 수만은 없는 이유일 것이다. 고전이 고전인 이유는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는 삶의 근본문제에 대한 더 나은 통찰들을 제시하기 때문이고 바가바드 기타는 그러한 통찰이나 교훈들을 충분히 많이 담고 있는 고전 텍스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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