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자 위에 현재, 과거, 미래가 모두 쓰이고, 단자가 도표, 곧 코드 위에 쓰인다. 단자가 코드화된다. 이처럼 세계의 창조는 여러 목소리로 이야기된다. 세계, 별, 땅과 바다가 문제이냐, 이것들의 첫새벽이 문제이냐는 우리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 우리는 단순히 일반적인 관점에서 체계의 형성이 문제라는 것을, 선결 문제로서의 알파벳, 그리고 초보적인 조합의 결과인 심플렉스들이 문제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다. 이러한 조합은 일반적으로 가장 단순한 관계를 통해 묘사된다. 여러 목소리로, 이는 분야에 따라 어휘가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초의 보유고, 저장소에는 문자들, 원소들, 원자들, 가능한 것들, 분자들 등이 있다. 이 음표들은 일반적으로 유한한 무한한, 연속적인, 불연속적인⋯⋯ 도표 위에서 다양한 계통에 따라 차이가 나게 된다. 이것들은 내가 구름이라 부르는 것을 형성한다. 구름은 코드에 따른 조직 이전의 체계, 클리나멘 이전의 스토이케이아(음소(音素) 또는 원소를 뜻하는 그리스어 '스토이케온'의 복수 - 옮긴이)의 비, 선별 이전의 혼돈스러운 무질서, 로고스에 의해 담론이 구성되기 이전의 문자 등이다. 다수, 우리에게 아무런 정보도 드러내지 않는 다수, 다양한 복합체, 현실이다. 그리고 현실은 합리적이지 않다. 현실은 제어되지 않은 집합들의 잠재태이다. 또는 잠재태 집합들이다."
"민중의 앎은 민중의 동요에서, 이론과 에로스의 불가피한 혼합에서 확인된다. 어떤 체계에서 오류와 에로스, 동요와 망설임을 낳는 두 요소가 제거될 때부터, 체계는 어떤 지배 계급의 산물이다. 잘못 생각할 리가 없는 병든 이성은 파토스에 빈틈을 주지 않는다. 파토스, 병리적인 것(le patho-logique)은 인식의 건강성이다. 민중을 바보같은 짓이나 교의로써 짓누르는 대신에 민중에서 앎을 열어젖힌다면, 지배력은 감정의 홍수 속에 녹아 버릴 것이다. 당신들, 정념을 노예 상태와 비슷한 것으로 생각하는 당신들은 이 점을 잘 알고 있다. 노예는 정열적이기 때문이다. 당신들은 정열적이지 않다. 그래서 나는 너 앞에, 뜨거운 정념을 품을 줄 아는 너 앞에 꿇어 엎드린다. 카라마조프의 이 말은 인식론을 내포한다. 앎을 죽음 곁에, 공포와 죽음 가까이에 위치시키는 철학자, 부유해진 부르주아, 그리고 정치 공론가, 완강하고 무정한 괴물. 앎은 기쁨과 눈물 곁에 있다. 나는 미슐레를 비웃는다. 그러나 정오까지만 비웃는다. 왜냐하면, 고백건대 나는 부분 도함수를 포함하는 방정식에 마음이 동요되었으며, 그때 나는 조수의 리듬을 계산하기에 앞서 진동하는 하나의 현(絃)이었기 때문이다. 빈정대는 이들에게 말하고 싶다. 수학을 공부하라, 그리고 배에 타라."
─<헤르메스>
초기작이라고 하길래 막연하게 이론적일거라 예상했는데 솔직히 <기식자>보다 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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