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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교회 선생님이라는 명목으로, 매년 열리는 교단 주최 교사 세미나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우선 내 스스로 자진해서 갔다는 말은 차마 자신 있게 못하겠고 교회 교사를 맡는 노릇이니 그에 대한 교육을 위해 참석하였다는 사실이 필요하였다는 정도로 일러둔다. 그런 내키지 않지만 어쩔 도리 없이 간 그곳에서, 강사들의 나름대로 인문?학적인 말을 들었다. 내가 철학을 전공해 공부도 했으니, 나름대로 그와 관련 있는 얘기는 어느 정도 귀를 기울이는 편이지만, 끝에 가서 기대는커녕 내가 여기를 왜 왔을까 싶은 비탄이 들었다. 특히 강사들 중의 한 명은 '포스트 모더니즘'을 참 싫어한다는 얘기까지 잘 알겠는데, 이에 대한 고찰이나 그 정의를 그리 진중하지는 않아 보였다. 포모 그 자체에 집중할 뿐이지 그 맥락 자체를 숙지하지 않은 모양새였다. 그러니까 결국에 포모가 모에 기반함을 제대로 숙지 못한 것이다. 포모를 제대로 알려면 그 이전이 근대(정신)에 대한 고찰은 필시 수반할 수밖에 없다. 그리해 나는 소위 포모 철학의 정의 자체보다, 근대에 대한 어떠한 비판적인 의식으로 철학을 전개해 나가는지를 위주로 파악한다. 그러니 기본적으로 철학사와 더불어 그 배경이 되는 세계사 전반을 어느 정도 알아야 겨우 파악이 되고 이해할 수 있는 사조가 포모다. 근데 그러한 맥락을 알고서 강연하기를 기대하고 세미나에 갈 사람은 없을 것이고, 나 역시 그리 기대하지 않았지만, 결국에 낭설로 거진 판명난 푸코의 소아성애를 들먹이는 강사의 말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흔히 과학 유튜버들이 개신교도의 창조설을 비판하며 과학의 적인 양 굴던데, 이제는 철학의 적도 생겼으니 편 먹으면 될 일인가?
이래저래 모태신앙이지만 술 담배 하는 개신교도인이어도, 그래도 꼴에 개신교도이기에 특히 같은 교단이 어떻게 좋게 봐주려고 하지만, 기어코 나는 약간의 환멸이 느껴졌다. 내가 그리 신앙이 강한 편은 아니지만, 신학에서 파생된 해석학을 좋아하니 신학의 해석학을 관심이 가는 나로서, 현대 신학 저서를 좀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던 참이었다. 다만 목사 출신 저서는 가급적이면 잘 손이 가지 않지만, 이번 건은 여기서 추천한 글을 통해 흔쾌히 알라딘 중고 서점에서 집어들어 구매해 거진 7개월만에 다 읽었다. 취업 준비와 같은 여러 번다한 일을 하다가 이제서야 다 읽으니 그래도 보람은 찼다. 그리고 나와 비슷한 생각을 품으면서도,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정의 자체는 그리 동감은 가지 않았지만 그래도 여러 목사들 중에서 그나마 낫게 내린다. 거기에 더불어 거듭 흥미로운 점은, 우리나라의 토속 신앙인 민중 신학의 창시자인 안병무 목사의 제자인 저자가 말하는 민중신학, 그리고 해체신학의 목적(서구 정전화의 해체)은 인상 깊었다. 서구 기득권적인 정전 독해 방식에서 탈피해, 해당 정전의 폭을 넓힘으로써 개신교도와 비개신교도 구별을 타파한다는 목적은 무척 감탄스럽지만, 내가 들은 강연을 상기하자니 썩 쉽지는 않아 보였다.
해체의 아이콘은 데리다는 어떠한 특별한 언급도 없지만(색인에 가다머는 있어도 데리다가 없다), 발터 벤야민 얘기는 의외로 신학에서 상당 부분 중요한 참고 대상이다. 발터 벤야민의 '지금 여기(Jetztzeit)를 전유함으로써 안병무가 제창한 단(斷)으로 이어지는 맥락은, 구태여 신학이 아니어도 철학 한 요소로서 눈이 가는 대목이었다. 그외 서구 기득권적인 기존 정전 독해 방식을 탈피하여, 고정된 정전이 아닌 정전의 범주를 확징함으로써, 폭 넓은 해석의 기반을 마련하려는 논지는, 흡사 이전에 읽은 박상륭의 『죽음의 한 연구』가 떠오른다. 주인공인 나(이름이 언급되나 스포일 수 있음)가 마을 장로 집에서 설교한 대목은 잊을 수가 없다. 불교 동양철학 개념(채용론)으로 성경의 내용을 풀이하는 과정과 더불어, 성경의 범주를 불경 및 동양 철학까지 확장하려는 심산은 참 대범하였다. 어쩌면 김진호 목사가 의도하려는 탈-경전화의 실례가 이미 국문학계에서 이뤄진 셈일지도 모를 일이다. 아님 말고.
그외 여러 대중메채를 접하며 그와 관련한 글을 풀어 쓴다는 점에서 기승전 하나님 믿음을 귀결되는 구조로 이어지지 않는다. 적어도 현실의 문제를 가까이 붙잡으며 이를 어떠한 문제점을 제기할지를 조목조목 서술하는 점은, 반드시 목사의 역량으로서가 아닌 저자 자체의 역량으로 비춰진다. 더군다나 한국 근대사를 거치며 대두되는 문제점이 현재에 이르러 더욱이 부각되는 점은 참 처연한 심정이었다.
이 책을 독갤에서 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