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9장
5 내가 반드시 너희의 피 곧 너희의 생명의 피를 찾으리니 짐승이면 그 짐승에게서, 사람이나 사람의 형제면 그에게서 그의 생명을 찾으리라
6 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면 그 사람의 피도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음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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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이들이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라는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과 존재 의의의 규정이 아담과 하와를 향한 것이었다고 잘못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 말씀은 대홍수가 끝난 후 아라랏 산 위에 내린 노아와 그의 자녀들에게 주신 말씀이었습니다.
- 하나님은 인간 이하의 모든 생명체를 인간의 지배 하에 두었고,
- 그들을 먹고 지배하되 '피를 먹지 말 것'을 특히 강조하고 있으며,
- 같은 맥락으로 동물의 피를 흘리는 것을 주의하듯, 인간의 피를 흘리는 행위에 대해서도 엄금하며
- 되풀이해 하나님이 자신의 민족에게 위의 내용과 다시는 홍수로 인한 대멸종의 재앙을 내리지 않을 것을 '무지개'와 함께 약속했습니다.
원시 시대, 혹은 창세기를 포함한 오경의 기반이 된 문서들의 저작 시기로 알려진 기원 전 1000년 경의 다수 인간들은 가축이나 동물을 생식하거나 피를 나눠 마셨을 것입니다. 애.미니즘이란 원시적 세계관 속에서 그들은 강한 맹수나 동물을 신으로 섬겼고, 이는 그들이 맹수가 가진 강함과 흉폭함을 미덕으로 숭배하며 그들처럼 강해지길 소망했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동물은 물론 인간마저 무차별적으로 살육하는 것을 꺼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거리낌 없이 동물을 죽이고 그들의 피를 마시며, 그들의 동물적 흉포함과 본능을 경외하며, 때론 동물처럼 되길 갈망했던 인간들.
다시 한 번 반복되는 창세기 속 '하나님의 언약'의 핵심은 위와 같은 당대의 세계관, 종교관과의 확실한 구분과 절연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도 결국 동물일 뿐이라는 참으로 오래되었으며 지금 현대 사회 속에서도 어렵잖게 찾아볼 수 있는 퇴행이죠.
무지개의 약속 후 이어지는 장면이 술에 취한 노아의 방종과 그런 아버지를 비웃는 차남의 죄라는 서술도 참 많은 것들을 깨닫게 합니다.
신과 같은 이성과 분별, 양심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얼마나 쉽게 타락하는가?
대홍수를 통한 절멸로도 인간이 가진 죄의 본성은 얼마나 박멸하기 어려운 것인가?
어쩌면 창세기는, 나아가 성서 전체는 위와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위대한 정신들의 고뇌와 모색일 것입니다.
창세기 저자의 시대에는 대홍수라는 것이 역사적 사실이랑 설화의 중간즈음으로 인식되지 않았나 싶은데, 그렇게 보면 저자는 그러한 기이한 일에 대한 원인이 분명 야훼의 직접적인 개입에 있다고 생각하며 이 부분을 저술하지 않았나 싶네요 그리고 그 해결책이, 자신들이 살아가는 세상을 봤을 때, 본질적으로는 이러한 "정화"가 미봉책이었다고 본 거 같기도 하고. 창세기에는 수많은 신화의 흔적이 있는 만큼 그 신화들이 공유하는 궁금증 - "우리는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가?"도 여러모로 묻어있는데 그걸 자신들의 세상을 종착지로 보고 대답하는 게 재미있죠. 아 그리고 댓글은 그냥 어디까지 읽었다고 표시할 겸 다는 거라 굳이 신경쓰지 않으셔도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