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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 Bloody Project
Graeme Macrae Burnet

이번 달 제일 재밌게 읽은 책이다. 첫 타잔데.
무슨 말인지 앎? 하락세의 달이었다는 거임, 8월은

살인 미스터리 장르지만,
-로드릭 맥레이(aka 로디) 가 라클란 브로드를 죽였다- 란 사실을 초반부터 드러낸 상태로 책은 시작된다.
그럼 책의 미스터리함이 어떻게 유지될까?
육하원칙 중 '왜' 에 독자를 집중시킴으로 긴장감을 유지한다.
로디가 왜, 어째서 살인을 저질렀을까?
더불어 버넷은 '언제'와 '어디'에 굉장한 공을 들여 글을 썼다.
19세기 스코트랜드 시골에 가본 적이 없어 구현의 정확도를 확신할 순 없지만,
버넷은 적어도 굉장히 설득력 있게 19세기 스코틀랜드 시골을 그려냈다.

책은 크게 두 파트로 나뉘어 있다.
첫번째 파트는 로디의 자서전이다.
감옥에 갇힌 로디는 자신이 살인자가 되기까지의 삶을 적어낸다.
깡시골의 십대 소년, 로디 맥레이.
조금은 아둔한 아버지를 둔 소년, 로디.
21세기 기준으로, 고등학교도 끝마치지 않은 로디.
아무렴, 점잖은 도시의 신사보단 풀어둔 짐승 같은 로디 같은 자들이 살인자가 되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로디가 써내는 글은 이 소년의 꼬리표를 모조리 떼어낸다.
로디가 써낸 축축하고 푸르스름한 촌동네.
담담하게 적어나간 처참한 수준의 가난함.
곳곳에 묻어있는 우울함.
십대 소년만의 방황과 첫사랑의 쓰라림까지.
소년의 글력은 웬만한 소설가의 뺨을 사정없이 때리는 수준이었다.
짐승이 아니었다. 멍청한 시골 소년도 아니었다.
로디는 원석이었다. 이대로 사형대에 오르기엔 너무 아까운 재능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왜'라는 질문이 계속해서 튀어나올 수밖에 없다.
우리의 로디가 살인자가 된 데엔 분명 타당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아니나 다를까, 자서전을 다 읽고 나면 독자는 어느 정도 로디의 입장을 이해하게 된다.
17살 로디에겐 연장을 드는 것 말곤 다른 해법이 없었다,
라클란 브로드는 일진놀이하는 다 큰 어른이자, 원수라 불러도 손색없을 개새끼였으니.
미래가 기대되는 로디의 손에 피가 묻게 된 건 안타까운 비극이라는 인상을 가진 채 두 번째 파트로 들어간다.

로디가 자서전에서 '말하지 않았던' 부분을 하나씩 드러내는 치명적인 증거들을 늘어놓은 두번째 파트로.
검시관의 보고서, 톰슨 박사(당시 유행하던 범죄자 관상학? 골상학? 전문 박사)의 기록, 재판 기록
코 앞에 살인자 로디에 관한 서류들이 차근차근히 놓인다.
시니컬하고 경우 바르던 소년 로디는 점차 악마 로디로 변해간다.

새로운 관점으로 다시 로디의 자서전의 내용을 되짚어 보면, 이젠 로디가 고의로 숨긴 이야기들이 눈에 띈다.
그리고 로디의 모든 행적이.
피를 뒤집어쓰고 자신의 죄를 자백하던 살인 직후의 모습부터, 감옥에서 제 변호사와 호형호제하며 진심을 듬뿍 담은 것처럼 보이던 자서전을 써 나가는 모습이 다르게 받아들여진다.
로디는 생각보다 더 똑똑했구나. 고지능 변태 사이코패스였구나.
로디에 대한 결론이 생기지만, 책을 덮어도 미스터리는 끝나지 않는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로디의 설계였을까.

내 취향에는 잘 맞았다. 로디의 자서전부터 (소설속) 자료들까지, 탐정이 된 기분으로 읽었다.
진짜 그 당시의 문서들을 보는 기분이 들었다.
근데 다른 사람들 취향에 맞을진 몰루겠다
지루할지도...

처음엔 이게 실제 사건을 기반으로 한 책인줄 알았음.
초반에 페이크 작가의 말이 있는데 거기서 작가가 로디는 자신의 먼 조상이란 구라를 깔고 감.
작가 이름: 그레임 맥레이 버넷
로디 이름: 로드릭 맥레이
속을 만하지 않음?
부커상 후보에 논픽션이 오르기도 하던가? 머리 긁적이면서 처음 30장 정도 읽음
종이에 적힌 글자는 무작정 믿고 보는 저의 부족한 비판적 사고... 어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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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f Ants and Dinosaurs
Cixin Liu (류츠신)

올림픽 광고 시간에 틈틈이 읽은 책이라 빡독을 했다고는 못한다.

책은 인간이 지구에 등장하기 이전의 세상을,
인간 이전의 문명사회를 그려낸다.
개미와 공룡의 사회를.

본래 개미와 공룡의 사회는 접점 없이(무심코 공룡의 발에 깔려 죽어나간 개미들을 제외한다면) 지구 위에서 존재해 왔다.

개미는 섬세한 세공을 할 줄 아는 재주가 있고 결속력이 뛰어났으나, 새로운 발견을 해 나가는 지능은 부족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특출난 천재의 부재라고 볼 수 있다.
책에선 개미 사회엔 아인슈타인같은 인재가 태어나질 않는다는 비유를 했다, 그런 인재의 필요를 느끼지도 않고. 개미의 사회는 인간 사회로 치자면, 새로운 발명, 발견을 이뤄낸, 꿈을 먹고 살았던 위인들이 단 한명도 없는, 범부들로만 이루어진 사회라고 볼 수 있다. 지능이 되게 떨어지는 건 아닌데, 발전보단 현상 유지를 좇는 그런 사람들로만 이뤄진.

공룡은 아이디어 뱅크형 생물이었다. 상상력, 호기심이 뛰어났고, 거침없는 태도까지 가지고 있었다. 다만, 공룡의 짧은 팔과, 둔한 손은 머릿속 구상을 현실로 옮기는 데에 부적합했다.

두 사회의 접점은 어느 날, 한 개미 집단이 한 공룡의 충치를 치료하며 생겨나게 된다.
신체적 한계로 인해 존재하지 않았던 구강보건이 공룡 역사상 처음으로 이뤄진 것이었다.
개미는 노동의 대가로 식량을 얻게 된다(기억이 흐릿해 정확하진 않음ㅈㅅ)
하나의 작은 접촉으로 두개의 사회는 서로가 필요함을 깨닫고, 곧이어 공생하며 살아가기 시작한다.
단지 살아가는 것뿐이 아니라, 두 종족은 모두 가파른 성장을 보게 된다.
공룡의 아이디어를 실현할 수 있는 개미란 수단이 생겼으니.
성장을 거듭해 이들은 원자력 시대 너머까지 도달하게 된다.

공룡은 최상위 포식자다. 때문에 거만하고, 호승심이 세다.
본인들이 개미-공룡 사회의 수뇌부라는 인식이 뼛속까지 박혀있다.
실제로 두 종족의 총회 테이블에도 개미 측 의자는 여왕개미를 위한 자리 하나밖에 없지만, 공룡의 자리는 여러개가 있다.
공룡에게 개미는 쓸모있는 도구일 뿐.
반대로 개미는 공룡의 단점을 전부 직시하고 있다.
저새끼들 우리 없인 아무것도 못해.
끝없이 펼쳐지는 미래를 보느라 현재가 무너지고 있는 건 볼 줄 몰라.
강한 자들 특유의 (본인들 한정의) 낙관주의가 우리 모두의 몰락을 부를 거야.
두 종족 다 자신의 크기에 기대 자만한다.
크기 때문에/작기 때문에 우리가 쟤들보다 뛰어나.
거슬리면 잘라내도 상관없어.

우화 같은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뭘까, 고민 하며 읽었다.
개미가 인간을 뜻하고, 공룡은 인간이 넘어야 할 무자비하고 거대한 자연을 뜻하는 건가?
아니면 공룡이 인간을 뜻하고, 개미는 우리가 지배한다고 믿는 "하찮은" 것들을 뜻하는 건가?
혹은 개미가 나같은 평범한 사람들을 뜻하고,
공룡이 권력자들을 뜻하는 걸까?
아니면 개미는 약소국을 뜻하고
공룡은 강대국을 뜻하는 걸까?
뭐 하나로 딱 정의하기엔 공룡에게서도 개미에게서도 인간의 복합적인 모습이 보인다.
류츠신의 의도가 정확히 뭔진 모르겠으나, 난 이 책이 그저 공생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고 느꼈다.
뒷간 문 두들길 때랑 나올 때랑 마음가짐이 다르다더니,
화합, 건전한 공생이 화장실 취급을 받으면 어떤 결과를 불러들일수 있는지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인간, 지구상의 모든 존재들은 다른 존재들과의 공생 없이 살아갈 수 없으니.
공생하는 다른 존재는 정복하거나, 더 나아가, 제거해도 살아갈 수 있다는 자만을 가진 사람들에게 전하는 경고성 우화가 아닐까? 아님 말구

많이들 재밌게 가볍게 읽을 만한 짧은 책이니, 궁금하면 읽어보셈
특히나 롤이나 발같은 화목한 팀겜을 즐기는 사람들이 읽어보면 좋을 것 같음

근데 전 사실 두 종족 사이 유전자 결합이 있을 줄 알았어요...
인간을 뛰어넘은 과학 발전이 있는 사횐데 개미-공룡 하이브리드 정돈 나와야 하지 않나, 기대했는데 안나오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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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wer Systems
Noam Chomsky

현재 존재하는 (특히 미국에서의) 힘의 균영을 재구성해야 한다는 내용의 책이다.
그러나 인터뷰/문답 형식의 책이라 그런지 몰라도, '힘/권력'이라는 주제에서 굉장히 자주 벗어난다...
게다가 2010년 초반에 쓰인 책이라, 당연한 말이지만, 모든 주제가 그 당시에 머물러 있다.
요즘이라고 딱히 상황이 달라진 것으로 보이진 않지만, 아무래도 이런 류의 책은 최근 몇년 사이에 출판된 걸 읽는 게 좋지 않나, 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재밌다.
'lil촘스키의 미국과 오바마 정권 디스 트랙'이란 제목으로 출간하는 게 현재 제목보다 더 잘 어울린다.
신랄한 꾸짖음 플로우가 대단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미국을 표현할 때, '다 가지지 못하면 다 잃었다는 괴상한 사고방식을 가진 나라'라 말한 것이다.

촘스키는 주장한다, 힘의 불균형은 일개 '우리' 가 결속함으로 뒤집을 수 있다고.
원자화 되어가는 현재 사회에 순응하지 말라고 말한다.
한자리씩 차지하고 있는 돈많은 권력자들에 맞서는 건 우리 개개인이 아닌, 똘똘 뭉친 '우리'라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힘을 깨닫길 바란다고.
애니 주인공 조력자가 할 법한 말을 한다.
똘똘 뭉치라는 게 비유 같지만, 아님. 촘스키는 '우리'가 피켓을 집어 들고 길거리로 나가 대규모 장기 데모를 하길 바란다는 의사를 비친다.
물론, 똘똘 뭉치라는 말엔 데모만 포함되는 건 아니다.
시니컬한 말투 뒤엔 디즈니 장편에서 흔히 등장하는 주제들이 숨겨져 있다.
공감 능력, 포용력, 친절, 서로에 대한 관심이 건강한 사회에 얼마나 필요한지를 말한다.
타인이 우리의 사회에서 맞이하는 문제들에 대해 개인적인 시선을 갖게 되려면 나와는 완전히 다른 타인들과의 직접적인 교감이 얼마나 필요한지에 대해서도.
그렇게 '우린' 함께 결론을 내야 한다, '같이 잘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가자.'
이런 결속력이 없다면, 우린 평생을 '나만 잘 살면 돼' 마인드인 권력자 개인들의 장기 말로 살아가게 될 뿐이니.

희망회로를 무지하게 태우는 뻔한 말들이긴한데, 재밌게 읽었다.
나 또한 개인주의를 향해 질주하는 세상에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어서 더 집중해서 읽을 수 있던 것 같다.

근데 사실 책에서 제일 흥미로웠던 부분은 촘스키가 자신이 연구한 언어학에 대해 간략히 말하는 부분이었다. 파워에 대한 내용이라고 볼 순 없었지만... 역시 자기 전문인 분야라 조리있게 잘 설명한다.
때때로 인터뷰어 질문에 뜬금없는 답을 내놓는 모습도 웃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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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끝의 달
정연희

읽은 책 랭킹 하위권에 등극한 책이다. 8월, 올해 랭킹이 아니라, 평생 읽어온 책 랭킹 하위권을 말하는 거임.
이 말이 여러분에겐 큰 울림을 주진 못하겠지만 제 맘속 세상에선 굉장히 파격적인 선언이다.
읽는 게 습관이다. 걍 뭐든 읽음.
라노벨 인소 양판소 웹소 YA 와패드 말만 하셈. 누군가에겐 불쏘시개일지 몰라도 저에겐 명작인 이야기가 수두룩함. 수두룩해질 정도라면 그 밑에 깔린 글이 얼만큼일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아무튼 이렇게 지천으로 깔린 투드급 소?설들을 뚫고 신규 하위 랭킹을 차지한다는 거, 이거 진짜 오랜만이거든요...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다른 말 필요 없고 이 책이 이야기를 전하는 방식을 대충 흉내 내 보겠다.

영희는 말한다, "올해는 유난히 더운 것 같아....."
영희는..... 쓰러지고 만다....
철수는 처절하게 쓰러진 영희를 업고 달린다.
집에 뛰어 들어가 에어컨 리모컨을 집어 드는 순간, 힘없이 감겨있던 영희의 눈이 번쩍 뜨인다.
뭐에 씐 것 처럼 말한다, "틀지마렴..... 철수 너 이녀석, 너 에어컨이 얼마나 많은 펭귄들을 죽이는 지 아니? 매년 에어컨 사용으로 인해 뜨거워진 공기로 12345마리의 펭귄이 죽어.
(환경 문제에 대한 존나 자세한 에세이 2~3 페이지 이어짐. ""사인데)"
철수는 답한다.
"(또다시 한번 환경 문제에 대한 "말(aka 에세이)" 벽돌)"
띵동-
택배가 왔다.
택배 기사가 손부채질하며 말한다.
"(또다시 한번 환경 문제에 대한 "말(aka 에세이)" 벽돌)"
건너편 집 문이 열리더니 젊고 아리따운 여인이 택배 기사를 향해 손짓한다.
"요즘.... 잠을 설쳤어요..... 더워지는 지구.... 빨대를 문 거북이...... 아아... 인간은 어째서.... 어째서...! 견딜 수 없어..!!! 하나님이 선물해 준 지구가 망가지고 있어......
아저씨, 바다가 보고 싶어요.... 데려다 줄래요.....??"
택배 기사는 손가락에 끼워둔 결혼반지를 은밀히 빼고 자신과 30살 차이나는 여자와 함께 석양을 향해 떠난다.

참고로 영희와 철수는 숫자를 100까지 겨우 셀 줄 아는 유치원생들이고,
택배 기사 아저씨는 글을 읽을 줄 모른다.

단편집인데 매 단편이 복붙임
그나마 가장 괜찮았던 단편(그나마 복붙이 아니라서)은 책의 마지막에 실린 이야기다.
성경 팬픽임. 예수가 눈먼 장님 눈 뜨게 했을 때에 대한.

보통 별로인 소설을 읽을땐 시간이 아깝다는 느낌을 강렬하게 받으며 불쾌한 마음이 생기곤 하는데,
이건 뭐랄까, 경이로울 정도로 별로였다.
이 정도 경지의 별로면 불쾌함 그 너머의 감정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어느샌가 대유쾌 마운틴을 오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웃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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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Kraken W.akes
John Wyndham

'크라켄, 깨어나다'란 의미를 가진 제목이지만, 책 속에서 크라켄이 등장하진 않는다.
그렇다면 왜 제목에서 크라켄이란 괴수가 언급되었을까?
중세 지도엔 크라켄같은 무시무시한 괴수들이 그려져 있는 걸 볼 수 있다. 미지의 영역, 험악한 바닷길을 나타내기 위해.
항해술이 발전할수록, 지도 위의 크라켄은 사라진다.
이제 지도 위에서 바다는 푸른빛 색깔로만 표기된다.
인간은 드디어 바다를 정복했다-고 믿었다.
하늘에서 수십, 수백개의 유성(외계인)이 떨어져 지구의 수면 아래로 파고들기 전까진.
그 뒤로 지구의 바다는 변하게 됐다.
바다는 다시 죽음의 영역이 되고 말았다. 범접해선 안되는 부분이 되었다.
이제 다시 지도 위에 크라켄을 그려야 할 때가 왔다-이런 의미로 책 제목이 지어졌다고 난 받아들였다.

외계인들이 직접적으로 등장하진 않는다. 정체가 뭔지, 어떻게 생겼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일절 쓰이지 않는다.
하지만 짐작해 보자면,
외계인들은 어떤 연유로 지구 오게 돼서, 인간들이 살지 않는 지역이자 자신들에겐 딱 알맞은 바다 밑바닥에 자리를 잡았고, '이 땅은 이제 제 겁니다'를 시전했다.
이제 지들 땅이니 지들 영역에 발을 딛으면 응징을 해 줬고, 귀찮게만 안굴면 공생까지도 생각했으나, 인간은 외계인들의 지능과 능력을 얕잡아봤고, 따라서 정복할 수 있을 거란 오만함에 외계인들의 심기를 계속해서 건드렸다.
잠자코 있을 수도 있었으나, 인간은 이 '크라켄'을 '깨우고'야 말았다.
외계인들은 깨닫는다. 쟤들은 이 땅을 우리에게 내 줄 생각이 없구나.
우리 두 종족이 공생하는 미래는 없구나.
그래서 인간세상을 정복하자는 마인드를 장착하게 된다.

외계인들이 인간을 어떻게 정복할까?
느낀 바로는, 두 종족은 비슷한 수준의 지능을 가진 설정인 것 같다. 근데 발전 테크 트리가 근본부터 다른 느낌.
인간한테 핵폭탄이 있다면 저쪽엔 극강의 유전자 제작? 생물 개조? 능력이 있는 느낌.
두 종족 모두 서로의 영역에 침투해 서로를 지배하려는 시도를 보였지만,
인간은 깊은 물 속에 들어갈 수 있는 기술이 없고, 외계인들은 뭍에 나올 수 없기 때문에,
둘 다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인간은 저들의 실패를 우리의 축배의 이유로 삼기 바빴으나,
외계인은 제 실패를 되새기며 지구를 독차지할 방법을 모색했다.
결국 외계인들은 남극 북극의 얼음을 녹여 뭍을 물에 잠기게 만들겠다는 기발한 방법을 찾고야 만다.
인간은 대응할 방법을 찾지 못한 채 천천히 밀려오는 물살을 바라만 보며 멸종을 향해 간다.
조치를 제때 취했더라면 멸종을 면할 수 있었을까?
글쎄. 하지만 중요한 건, 인간은 살아남기 위한 시도조차 하지 않았단 것이다.
사태의 심각성을 토로하는 과학자에게 '찐따 진지충 새끼ㅋㅋ' 란 말로 비웃음을 내비치고,
무책임한 낙관론으로 사태가 알아서 해결되길 바라는 모습도 보였다.
다 잠기고 나면 쓸모 없어질 가치들을 놓지 못하는 모습도 보이고,
심지어 '모든 건 다 소련 탓' 이란 음모론을 신봉하는 자들도 생겨난다.

1950년대에 쓰인 소설이다.
21세기의 우리의 눈엔 이게 당연히 지구 온난화를 뜻하는 책이겠거니, 싶지만, '지구 온난화'란 표현은 1975년에서야 공식적으로 쓰이기 시작한다.
사실 인간이 지구의 기후에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는 가설은 19세기부터 제기 되어 왔기 때문에 50년대의 윈덤이 '녹은 빙하로 인해 물로 뒤덮인 지구' 아이디어를 어디선가 충분히 얻어낼 수 있었던 건 맞다.
그러나 내 추측으론, 이 책은 그냥 작가의 순수 공상력에서 태어난 것 같다. 현재의 지구온난화 디스토피아 장르와 근접하게 된건 순전 우연이라고 생각한다.
느낌상, (이건 진짜 아닐 수도 있는데) 냉전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개의 슈퍼파워, 용납할 수 없는 공존, 무섭게 따라붙는 기술/지식, 들여다볼 수 없는 속내.
아님 말구..
아무튼 이 책은 환경 문제에 관한 책이 아닌, 디스토피아 장르계의 할아버지라 보면 될 것 같다.
디스토피아 장르 중에서도 특히나 인류의 종말이 다가오는데 종말에 집중 못하는 인류를 다루는 류.
디카프리오랑 로렌스 주연의 넷플 영화 '돈 룩 업' 같은 장르의 프로토타입이라고 보면 됨.

왜 자꾸 그냥 디스토피아가 아니라, '할아버지' 나 '프로토타입'이라고 하냐면...
책의 줄거리는 세련됐다. 엔딩까지도 세련됐다고 느껴진다. 다루는 주제 또한 세련됐다. 그저 디스토피아가 아닌, 망할 수도 있는 세상을 인간 스스로 '망함 확정'으로 이끌고 가는 모습은 굉장히 힙하다.
다만, 직접 책을 읽어보면...
무한 수박 겉핥기 중인 느낌을 받게 된다.
주인공 부부가 일단 문제다.
존나 필사적으로 재치있는 척 하는, 유쾌한 척 하는 두 사람을 보는 느낌이다.
부부가 서로에게만 위트 있는 대화를 계속해서 나누는데, 진짜로 책 속으로 들어가서 입 좀 다물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전개 방식도 문제다.
답답하다. 책 속 상황이 아니라, 글이 답답하다. 글자 수 당 돈이 들어오기라도 하는지, 핵심 하나를 말하는데 쓸데없는 문장을 30개씩 눌러 붙인 느낌이 든다.
어떤 느낌이냐면, 뼛속까지 순문학파인 사람이 쓴 웹소설같음.
상당히 늘어지고, 지루함.
흥미로운 소재지만 실망스러운 전개였다.
사실 50년대 sf 의 주제로썬 신박하지만, 21세기엔 이런 주제의 이야기들이 흔하다.
더 우리의 입맛에 맞게, 맛있게 발전한 이후 세대의 책들을 두고 굳이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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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카디아에도 나는 있었다
듀나

SF 미스터리 장르임. 감정보단 서사에 무게를 싣기 때문에 소프트보단 하드 SF에 속하는 것 같지만...
와 진짜 기억 안남. 특색 없는 무매력 SF들의 문제점임. 읽고 나서도 기억이 안남.
먼 미래, 아르키디아라는 양로원이 있음. 가상현실인데 여긴 죽어가는 사람이 자기 뇌 데이터를 운영자, '마더'에게 넘기는.. 어.. 재미없죠?
간단히 정리하자면(내 기억이 맞다면),
vr 챗 세상이 일종의 나라/도시/평행세계 취급받는 미래라고 보면 됨.
가상 현실 안에서 살아가는 npc들은 인공지능 ai 이거나, 인간의 창작물(영화, 책, 게임, 등등) 캐릭터들의 데이터를 긁어와 구현해 둠.
이런 가상 캐릭터들이 인간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자기들만의 세상을 구축해 나가고 있음. 본인들이 속했던 스토리에 따라, 혹은 자신의 캐릭터 설정에 따라.
이 npc들이 인간보다 더 인간다워진다는 내용임.
내용이 진부한 건 둘째치고, 글이 별로다.

일단 SF란 장르는 배경을 잘 깔아두고 이야기를 진행시켜야 맛있다고 생각함. 설정놀이를 하는 구간을 잘 써야 한다는 의견임.
미스터리/추리 장르도 마찬가지임. 셜록홈즈만 봐도 그럼. 홈즈 왓슨 듀오가 도일의 고담스러운 런던에서 추리를 펼치기 때문에 재밌다고 생각함.
배경, 분위기가 중요한 장르인데, 이걸 이상하게 풀어나감. 이해 안가게 쓰는게 아니라, 눈살 찌푸려지게 쓴다고 해야 하나...
먼 미래의 인류인데, 등장하는 인물들이 하나같이 21세기 사람들이 알아볼 법한 문화 인용을 쓰고 있음. 배경이나 등장인물이나 그냥 뭐든 설명하는 방식이 오로지 레퍼런스로만 이뤄짐.
뭔 느낌이냐면... 흉내를 내 보겠다.
주인공이 어떤 npc를 봤을때 "쟨 마치 1970년대 스파게티 웨스턴 영화에서 제일 먼저 총 맞고 퇴장하는 등장인물처럼 생겼다," 같은 생각을 한다든지,
어떤 건물을 설명하면서 쓰는 게, "색감이 마치 캔디 크러쉬같았다," 라고 표현한다든지,
어떤 다른 npc 종족을 설명하면서, "그 왜, 2000년도 초반 시즌 15까지 우려먹은 시트콤에서 나왔던 범생이 아들래미가 친구들하고 맨날 모여서 했던 우주정복 롤플레잉 게임의 파생 비주류 팬픽 만화에서 등장하는 종족임," 같은 말을 한다든지.
본인의 힘으로 뭔가를 설명하려고를 안 한다. 독자의 머릿속의 지식에 도박을 계속해서 걸고 있다.
한두번이면 재치 있겠지. 근데 모든 대사, 모든 설명이 이런 식이라면 작가가 이야기를 쓰고 싶은 건지, 아니면 자신과 비슷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을 향해 inside joke를 건네고 싶은 건지 헷갈리게 된다.
20, 21 세기 문화에 조예가 깊다는 설정의 인물 하나가 이런 식의 인용을 남발하는 것 까진 자연스럽다고 볼 수 있는데,
모든 인물들, 그냥 입 여는 사람 족족 다 이러면 이게 자연스럽겠냐고요
근데 심지어 이 레퍼런스를 쓰는 방식도.. 어딘지 어설프다. 뭘 보고 따라하는 느낌임.
약간 '그릇된 k-sf 판에 찐 sf 전문가인 본인 강림. 본고장의 맛을 보여주마,' 라고 선언하는 것만 같다. 근데 이제 외국인이 잡채를 밥도 없이 포크로 돌돌 말아 먹는 걸 보는 것처럼 뭔가.. 뭔가임.
걍.. 글을 읽는데 세계에 몰입이 안되고 자꾸 작가가 보인다.

아니, 그리고 한국에서 출판된 한국 독자를 위한 한국 책인데, 하는 인용마다 서양 쪽을 가져다 쓴다. 대체 누굴 위한 책인지 모르겠다.
'스파게티 웨스턴 클리셰를 몰라서 등장인물이 어떤 인물인지 감이 안 잡힌다고? 문찐쉨ㅋ'
작가가 은근히 독자를 배척하고 있다, 세상 진부한 이야기를 쓰면서...
사실 영어권 픽션에선 레퍼런스를 적극적으로 쓰는 경우가 많다.
특히 코미디쪽으로 장르가 기울수록 더 그런 향이 두드러진다.
데드풀, 심슨, 사우스파크
그렇게까지 레퍼런스 범벅 책을 쓰고 싶었다면, 덜 진지한 글을 썼어야 한다.
실제로 읽으면서 코미디 제거 릭앤모티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게 재밌을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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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oneliest Polar Bear
Kale Williams

동물원에서 태어난 북극곰 '노라' 에 관한 책이다.
노라가 누군지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사진을 첨부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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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엽죠?

그냥 귀엽게만 생긴 것 같은 노라는, 사실 굉장히 특별한 북극곰이다.
일단, 북극곰이란 동물은 짝짓기부터 출산까지의 과정이 굉장히 까다롭다.
자연 서식지에서도 쉽지 않은 출산이 동물원이란 환경에서 제대로 이뤄질 리가 없다.
실제로 동물원 출생 북극곰은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다고 한다. 하지만 노라는 이 극악의 확률을 뚫고 기적적으로 탄생했다.
그러나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어미에게 방치되고 만다.
큰 문제다, 새끼 북극곰에겐 스스로 온도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반드시 어미의 품에 붙어 있어야 생존의 가능성이 높아지는데 어미는 아직 눈을 뜨지도 못한 노라의 곁으로 돌아올 생각이 없어 보인다.
이대로라면 노라는 식어서 죽거나, 아니면 사람의 손을 타게 된다.
어느 쪽이나 생존율은 낮았다.
버려진 새끼 북극곰을 사람이 인공적으로 보살피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새끼 북극곰이 살아남기 위해선 어미의 젖이 필수적이고, 사육사들은 북극곰의 젖을 완벽히 구현하는 법을 모른다.
모든 역경을 극복하고 노라는 과연 살아 남을 수 있을까?

이런 내용의 책이다.
하지만 예상할 수 있듯이, 노라만을 위한 책은 아니다.
책은 북극곰에 연관된 많은 주제들을 가볍게 다루고 있다.
녹고 있는 북극(지구 온난화), 북극곰 사육사들, 먼 옛날부터 북극곰과 함께 살아온 이누이트 민족, 동물원 속 북극곰의 삶, 동물원의 존재 이유 그리고, '북극곰 개체수 오히려 증가, 멸종 위기종 맞나?' 반박.

영어권에선 꽤 예전부터, 한국에선 최근 몇년 사이, '북극곰은 멸종 위기종이 아니다'란 주장이 인터넷에서 정론처럼 돌아다녔다.
윌리엄스는 이 주장이 헛소리라는 걸 설득하기 위해 애를 쓴다.
'북극곰 멸종 위기종 아님.' 이 주장에 언제나 따라오는 '북극곰 개체수 증가 수치'가 있다.
1950년도에 5,000여 마리의 북극곰이 현재엔 20,000 ~ 30,000 마리까지 증가했다는.
윌리엄스는 주장한다,
북극곰의 멸종을 논할 때 꺼내야 하는 수치는 북극곰의 숫자가 아니라고.
왜냐면,
a) 근본 없는 숫자라 신뢰해선 안되기 때문이다.
b) 북극곰이 멸종 위기 종이 된 건 생태계의 복구 가능성이 낮서이지, 개체수 숫자완 큰 관련이 없다. 실제로 북극곰 멸종 예상 시기와 북극 빙하 소멸 예상 시기가 비슷한 시기(2040~2050)로 점쳐지는 걸 볼 수 있다.
c) 핀트가 어긋난 수치를 포용한 '개체수 증가 그래프'를 퍼뜨리는 "공식 기관"들을 유심히 살펴봐야 한다. 석유 회사에서 기부금을 받는 '지구 온난화는 거짓'을 주장하는 기관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흔히 "리서치"의 출처로 쓰이는 기관, 'The Global W.arming Policy Foundation' 만 봐도 딱 그렇다.

북극 멸망=북극곰 멸종인 게 확신이 안 간다면 북극곰의 사냥 방식과 북극곰의 번식에 고칼로리 물개 식단의 필요성에 대해 찾아보길 권한다. 싫음 말고..
물론 판단은 알아서 하는 거지만

이 외에도 흥미로운 주제들이 등장한다. 윌리엄스는 '노라' 같은 거대 맹수가 동물원에서 나고 자라는 데에 있어, 그리고 동물원이란 기관 자체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보인다.
이누이트와 북극곰의 평행이론을 제시하기도 하고.
그러나, 엄청 잘 쓴 책이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리서치가 덜 된 것 같다는 말이 아님.
반복적인 부분이 많다. 특히나 노라에게 얼마나 팬이 많다느니, 노라 영상에 댓글이 얼마나 많았느니, 이런 말을 지나치게 많이 반복하는데... 어쩌라고.. 란 생각이 계속 들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사실 난 표지의 노라가 귀여워서 책을 읽게 됐다. 노라에 대한 책일 줄 알고.
근데 노라가 등장하는 페이지 수가 아마 80장도 안될 거임.
환경, 북극에 대한 내용이 있을 건 어느 정도 예상하긴 했지만, 노라가 주고 나머지가 곁가지일 줄 알았다.. 반대인 줄 알았으면 안 읽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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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uest
Emma Cline

스트레스를 받고 싶을 때 읽으면 좋은 책이다.
별다른 이유 없이 계속해서 좋지 못한 선택을 반복해서 인생이 수렁에 빠진 젊은 여자, 알렉스는 일생일대의 기회를 얻게 된다. 부자 미중년의 정실 애인 자리를 꿰차게 됐다.
미중년 남친은 두 사람이 여름 동안 자신의 별장에서 함께 거주하며 시간을 보내길 바란다.
알렉스로선 덥석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제안이었다.
돈이 모자라 렌트비가 밀린 지가 벌써 몇주째고, 게다가.. 알렉스는 도시(뉴욕)에서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야 한다. 매시간 핸드폰이 울려댄다. 문자도 쌓여만 간다. 돔이 알렉스를 찾고 있다.

알렉스는 롱 아일랜드 거대 별장에서 한가로운 여름을 보낸다.
상류층의 일상은 뻗으면 닿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호화로운 파티, 완벽한 피부의 중장년들, 고급진 저택들.
알렉스는 애인의 부속품처럼 따라다니며 언젠가 자신도 이들 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을 갖게 된다. 어디에서든 완벽하게 녹아들 수 있다는 자신이 있으니.
미중년 남자친구의 수많은 '젊고 예쁜 전 애인' 들과 자신은 달랐다. 자신은 예외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알렉스도 결국 듣고야 만다. '우리 떨어져서 시간을 보내자'는 말을. 집에서 나가달라는 통보를.

평범한 사람이라면 그 길로 ㅈㅈ를 쳤겠지만, 우리의 주인공 알렉스는 맛이 간 상태라서 이별을 한사코 부정한다.
'일주일 뒤에 다시 찾아가면 마음이 풀려 있을 거야. 그니까 일주일 동안 애인 집 근처에서 노숙하다가 짜잔-하고 복귀해야지' 이런 범상찮은 위험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책의 대부분은 알렉스의 일주일 노숙기를 다루고 있다.

미스터리 스릴러로 분류가 되는 책인데, 줄거리를 보고 대체 어디에 미스터리와 스릴이 있는지 궁금할지도 모른다.
미스터리는 알렉스를 안절부절못하게 만드는 '돔'이란 남자의 정체고,
스릴은.. 알렉스가 또 어떻게 지 인생을 말아먹는 실수/결정을 할까를 보는 독자의 불안정한 마음속에 존재한다고 보면 된다.
'돔'의 정체는 싱겁고,
스릴러라고 이곳저곳 뿌려놓은 장치들은 저렴하고 답답하기만 했다.
알렉스는 '믿을 수 없는 화자'로 표현된다, 심각한 마약 문제나 정신병이 있는 식으로 - 플롯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중독자나 정신병을 흉내내는 느낌이다.
섹스와 마약이 자주 등장한다 - 그냥 플롯이 늘어질 때마다 독자더러 '어 집중집중, 여기 자극적인거 보여줄게' 식으로 끼워 넣는다.
작가는 점차 수렁에 빠지는 주인공의 삶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 그래, 여덟살 짜리를 어른 세상에 데려다 놓으면 당연히 인생이 수렁에 빠지지
정신/지능 연령이 열살 미만임. 이십대 초반인데. 책 속에서 살고 있는 현재를 제외한 이전 인생 경험이 없는지, 그 어떤 판단력도 존재하지 않음. '마시멜로 이야기'에서 지탄받을 법한 처참한 자제력 또한 겸비하고 있음.
진짜 멍청함 그 이하임. 작가가 의도한 건 '어리석음' 정도인 것 같은데, 읽을 때 보이는 건, 알렉스가 과연 20년, 아니, 10년 이상의 삶을 산 게 맞는지, 의심이 계속됨.
근데 웃긴 건, 알렉스는 상류층의 삶을 동경하면서도 그들을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비꼬는데, 이럴 때마다 쓰는 표현이나 느낌이 냉소적인 4~50 대의 중년같다.

의도적으로 비호감형 주인공을 쓴 건 알겠다.
근데 '어 나 이제부터 비호감 주인공 될 거야~ 아무튼 멍청함 투척~' 식인 주인공을 맞닥뜨리면, 글 자체에 비호감을 표할 수밖에 없어진다.
그래도 에마 클라인이 글을 아주 못 쓰는 것 같진 않았다.
여름의 불쾌함을 자주 묘사하는데, 읽다보면 덩달아 찝찝해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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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vilized to Death
Christopher Ryan

라이언은 자신이 젊을 적 가봤던 아주 열악한 수준의 동물원을 묘사한다.
쇠창살 우리, 좁디좁은 공간에 여러 마리 우겨져 넣어져 있는 동물들. 사납고, 예민한 짐승들.
최첨단 동물원 또한 묘사한다.
넓은 우리. 서식지를 최대한 흉내 낸 거처에서 느긋하게 식사를 즐기는 짐승들(우울증 약 복용 중이긴 하지만).
라이언은 주장한다, 우리의 도시가 전자에 해당하는 동물원이라고.

그렇다면 인류는 어떻게 인간 친화적인 동물원을 만들 수 있을까?
라이언은 이 주제에 답하기 위해 먼저, 인간이란 종에 대한 고찰을 먼저 쓴다.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는 수렵채집에 특화된 동물이기 때문에 인류를 문명으로 이끌고 나간 '농업'이 사실 축복이 아닌 저주였다는 말을 한다.
땅을 소유하지 않고 자연과 더불어 살던 동물이었는데,
농업으로 인해 인간은 땅을 소유하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자연과 대척점에 서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자연 = 인간' 공식이 '자연 vs 인간' 으로 변화했다.
신생아 생존율이나 늘어난 수명을 보며, 수렵채집을 하던 야만적인 때와는 다르게 현재의 문명 속에서 사는 인간은 더 나은 삶을 살고 있다는 주장이 있으나, 사실 그런 수치와 인간의 행복은 관련이 없다고 말한다. 오히려 문명이란 명목하에 인간은 야만스럽고 게걸스러워 진다고 주장한다. 소유해선 안 되는 걸 소유함으로 인간은 노예제도, 식민주의, 인종 차별 같은 것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한다.
그리고 라이언은 호모 사피엔스x2가 세간의 인식과는 다르게, 선한 본성의 동물이라고 말한다.
선함이란, 타인과 조화롭게 살아가고 싶다는 본능을 말한다.
왜냐면 인간은 홀로서는 절대로 살아갈 수 없는 약한 신체를 가졌기 때문이다.
서로를 돕고 살아야만 생존이 가능하기 때문에, 서로의 온기를 고파하고, 이기적이기보단 서로를 관심하는 게 바로 인간이란 종의 생존본능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현재의 문명은 그런 인간들을 서로 경쟁하게 만드는 사회니 대다수의 사람들이 행복보단 불행에 잠겨 살 수 밖에 없다고 한다.

여기까진 흥미로웠으나 끝을 향해 가면 갈 수록 별로였다. 'Civilized to Death'를 쓰다가 '히피101'으로 노선을 바꾼다.
마약과 난교에 친절하지 않은 현대 사회에 불평을 늘어놓는 지점에서 크리스토퍼 라이언의 나이를 검색해 봤다. 1962년생이다. 이상하다, 히피 세대는 아닌데. 왜 이렇게 6,70년대에 와일드한 청춘을 보낸 사람 같지?
또 죽음에 관한 두려움을 인간에게 심어주는 사회의 시스템에 결함이 있다고 말한다. 인간은 죽음을 두려워해선 안된다며. '죽는 게 대수임? 길어봤자 몇분 컷인 죽음에 왤케 목멤 다들?' 라이언은 말한다.
아니, 인간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걸 문명의 세뇌로 연관시킨다고? 지나치세요 라이언씨.
아무튼 그러면서 이상적인 죽음의 예시로 과거 수렵채집인들은 노인들을 자기들 손으로 죽인다는 말을 한다.
크리스토퍼 라이언의 부모에게 속히 아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도심 속이면 더 좋다) 도망가는 게 좋겠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진다.
미드소마가 이제보니 호러가 아니었다. 인간이 살아가야 하는 방식을 제시해주던 건데, 착각했네.
또한 현재 문명에 깊이 뿌리박은 종교는 무조건 나쁘지만, 과거인들(아즈텍... 마야..)의 종교나 샤머니즘은 무해하다는 주장을 한다. 잠깐만요, 아까 죽음을 두려워하는 인간은 잘못된 거라고 하셨잖아요. 그럼 모든 종교가 세뇌라고 말해야죠..
인도의 어디 마이너한 컬트적 종교에 심취한 안티백서 버섯 중독자 백인들의 사고방식을 살짝 엿본 것만 같았다.

게다가 이런 식의 책이 언제나 그렇듯, 결론이 약하다. '성공적인 인간 동물원 구축'에 대한 정확한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킥스타터같은 크라우드펀딩류의 플랫폼의 번성이 인간의 밝은 미래와 연관이 있다는 말을 한다. 예 뭐... 크라우드펀딩이 뭐 혁신적인 거라고 호들갑인지 모르겠다. 인간은 구걸이나 사기라는 이름으로 긴 시간동안 이미 '크라우드펀딩'을 해 왔는데
인터넷이 인간 문명의 몇 안 되는 이점 중 하나라고 말한다. 아니 여태까지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가 무슨 동물인지, 어떤 환경에서 살아야 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자라나야 하는지에 대해 열심히 설명하셨잖아요. 여태까지 설명한 인간이란 종과 인터넷이란 환경이 진짜로 어울린다고 생각하세요?
암호화폐에 인류의 미래가 달렸다고 한다.. 어... 진짜 뭐지??

스티븐 핑커(특히나 핑커가 쓴 천사어쩌고 책), 홉스의 '리바이어던' 그리고 '이기적 유전자'에 대한 비판이 곳곳에 있다.
해당 책들의 팬들은 아마도 이 책을 싫어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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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bird, Bluebird
Attica Locke

인구수가 200도 안되는 미국 남부의 작은 마을.
두 구의 시체가 며칠 간격으로 발견된다.
첫 번째 시체는 흑인 남성. 마을 강가에서 익사한 걸로 추정되었다. 외부인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시체는 백인 여성. 명백한 살인의 흔적이 보였다. 마을 출신이었다.
이 사건엔 이상한 점이 하나 있다.
흑인이 먼저 죽고, 백인이 나중에 죽었다는 것이다.
보통이라면, 순서는 반대여야 한다.
백인이 죽으면, 흑인의 시체가 발생한다.
백인의 죽음 뒤의 실체가 뭔지도 모른 채, 흑인은 보복성 살해를 당하곤 한다.
그게 남부였다.

이런 살인 사건을 텍사스 출신 흑인 보안관, 데런이 수사하는 과정을 담은 미스터리 수사극이다.
남부 전역에 깔린 인종차별에 관한 이야기를 전할 때 로크의 글이 빛을 발한다.
악질 백인 우월주의 집단(kkk류)을 다룰 때나, 흑인의 죽음엔 무심한 언론과 대중에 대해 쓸 때나, 위험한 남부 땅을 떠나지 않는 흑인들의 심정을 얘기할 때도, 다 굉장히 잘 쓴다고 느껴졌다.
가르친다거나 감성팔이를 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고, 그저 있는 그대로의 상황을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이렇게 묵직하게 이야기의 배경을 잘 깔아 둔 것관 별개로,
이야기의 핵심인 살인사건과, 수사극을 펼치는 등장인물들이 너무나도 흥미롭지 못했다.
일단 이 책을 읽으며 가장 거슬렸던 건, 데런의 이유없는 독고다이 옹고집이다.
지 혼자만 정의롭고 지 혼자만 해결사라고 믿는 친구다.
데런에겐 백인 FBI 친구가 있는데, 이 친구가 '수사 도와줄까?' 라 물었을 때, '이새끼가 어디 숟가락을 얹으려고' 란 마인드로 거절한다. 저 새낀 하등 필요가 없을 거란 이유를 대며. 왜냐면 자신은 이미 마을 외부에서 온 흑인 보안관이라 마을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할 때 넘어야 할 벽이 만리장성인데, FBI 에이전트가 합세한다? 온 마을 사람을 합죽이로 만들 듀오가 탄생한다, 란 이유를 댄다.
여기서 잠시 데런의 수사 방식을 보여주겠다.
일단 데런은 마을 이곳저곳을 누비며 이사람 저사람과 나누는 대화만으로 모든 추리의 턴을 마치는 스타일이다. 흑인이라서 백인들이 입꾹닫을 한다고? 별 모양 보안관 배지를 반짝이기만 하면 다들 홀린 것 마냥 이말 저말을 술술 흘려준다.
한마디로 데런은 인간 대 인간의 교감으로 이뤄지는 소통 보단 권력 행사를 우선시하는 캐릭터란 설정인 것이다.
게다가 데런은 무죄추정의 원칙을 따르지 않는다. 초반부터 이 이중 살인사건의 배후엔 클랜이 있을 거란 확신을 가지고 수사를 시작한다. 뭐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레드넥이 살인범이란 확신을 가졌더라면, 백인 FBI 에이전트만큼 데런의 수사 방식과 일치하는 도구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심지어, 데런은 다른 (전문가)사람의 도움은 마다했으나, 그래도 남부 깡촌에서 혼자 다니긴 무서웠는지 사이드킥을 하나 데리고 다니긴 한다... 살해된 흑인 남성의 와이프(흑인, 민간인, 피해자 가족, 여리고 작고 예쁨)를 수사 파트너로 데리고 다님.
데런의 수사방식부터 모순되는 행보까지, 그냥 다 이해가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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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
김훈

정약용의 형 정약전이 흑산에 유배를 가게 되는 배경(신유박해)에 대해 다룬다.
그 외에도 신유박해와 연관된 여러 인물들의 나날을 그려낸다.

초등학생 때 남한산성을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기대를 많이 했다.
한국 조경의 핵심은 자연과 어우러지는 것이라는 말을 어디선가 주워들었다.
이 책이 그런 느낌이다.
근데 이제 자연이 운치~푸릇함~만 있는 게 아니라 질척이고 짐승적인.. 똥 오줌 성욕 이런게 다 포함 된
잘 만들긴 했다. 근데 뭔가 심심하다. 재미가 좀 많이 없다.

집중해서 읽다보면 작가가 써 내는 당시의 조선시대가 생생하게 그려진다.
내 상상력의 뛰어남이 아닌 작가의 뛰어난 글 실력 덕에 독자는 미니 시간여행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기껏 흥미로운 사건사고가 발생하고 있는 생동감 있는 조선시대로 독자를 데려다 놓고서 김훈은 명령한다,
'누구하고도 말 한마디 섞으려 하지 말고, 멀리서 지켜보기만 하셈.'
마치 지구 탐사 하러 온 외계인처럼 당시 사람들을 몰래 구경하는 것 밖에 할 수 없다.
아니면 진짜 잘 만든 오픈 월드 게임을 하는데, 사이드퀘만 무한 반복하는 느낌이다.

김훈 작가 팬들이나, 이 책에 호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들으면 뒷목을 잡을 만한 말이지만..
이 배경에 미스터리 스릴러 스토리를 집어넣었더라면 얼마나 재밌을까
칙칙하고 꾸릿꾸릿한 느낌의 조선시대를 이렇게 기가 막히게 깔고 갈 줄 아는 작가인데...
여기에 딱 굵직한 미스터리 한 사발만 추가하면...
작가 특색에 k-드라마 한방울만..
진짜 맛있을 것 같은데..

내 취향과는 별개로 진짜 별로라고 느꼈던 부분은,
모든 챕터가 반복적이라는 것이다.
양반, 천것, 누구든, 어디서든 먹고 싸고 마시고 발정하고 비릿한 냄새나고.
이런 생활과 표현의 반복이다. 의도한 거겠지? 근데 400장 반복재생은 심하잖아요
남한산성도 이 책이랑 비슷한가? 왜 좋아했지
입맛에 안 맞아도 너무 안 맞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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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ked Lunch
William S. Burroughs

뇌를 이상하게 개조하고 싶다면 읽는 걸 추천한다.
저처럼 아무것도 모르고 읽었다간 굉장히 혼란스러워 질 수도 있다. 무슨 상황인지, 이건 누군지, 지금 뭐하자는 건지
천둥번개를 보며 제우스를 만들어내고, 떨어지는 사과를 보며 중력을 깨닫는 게 우리네 머리가 돌아가는 방식이지 않던가?
이렇게 이유, 추론, 연관성 이런 걸 만들길 좋아하는 인간의 뇌를 깔끔하게 배반하는 책이다.
하지만 한 50장 정도 읽으면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감이 어느정도 잡힌다. 읽고 싶은 사람들은 초반에 포기하지 말고 꾹 참고 계속 읽어보셈.
'들판에 나무가 있다.' 란 문장을 읽을 때, 보통 소설을 읽을 떈 이 나무와 들판과 관련된 상황, 이야기를 기대하기 마련인데,
이 책을 읽을 땐 그냥 들판에 자리잡은 나무를 상상하면서 읽으면 됨.
갑자기 '나무가 벌거벗은 인간을 엮어 만든 훌라후프를 유혹적이게 돌린다.' 이런 문장을 봐도, 사람들은 왜 벌거벗었지...? 나무가 훌라후프를 돌릴 줄 아는 세계관인 거임..? 언제부터?? 이런 평범하고 합리적인 질문을 해선 안된다.
맥락을 잡으려 하지 말고 그냥 눈 앞에 펼쳐진 글에 '아~ 그렇구나!' 하면서 읽으면 그제야 읽어짐.
이제 문제는 버로스가 뭘 적었느냐 인데... 이게 상상하기가 쉽지가 않거든요... 뇌에서 거부감을 느껴서..
책에서 가장 큰 논란거리가 된 한 부분이 있는데.. 버로스 말로는 미국의 사형제도를 비판하기 위해 썼다고 하거든요... 근데 제 눈에는 그냥 미친 것처럼 보여요...
맛보기로 몇 자 실어주고 싶지만... 어..

웃기다. 올해 읽은 책 중에서 유머력 1위 후보감이다.
거의 2페이지마다 한번씩은 웃게 만드는 부분들이 있다. 어이없어서 웃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뭐가 웃긴지 설명해주고 싶지만 하나같이 내용이.. 어..
책은 반납했지만 웃겨서 사진 찍어둔 페이지가 많긴 함. 다시 읽어보는데 하나같이 참..
버로스와 달리 전 제정신인 사람이라 아무래도 제 손으로 저 내용을 적기엔 거부감이 드네요..

마약, 섹스, 성기, 난교, 배설물, 가학, 엉덩이, 이 외에도 금기시 되는 여러 주제들. 뭐 이런 게 매 문단마다 등장한다고 보면 된다.

예술계에 큰 영향을 준 소설로 알고 있다.
왜 그럴까, 내가 예술가라면 여기서 뭘 보고 영감을 받을까. 고민을 하며 책을 읽었다.
버로스는 글을 잘 쓴다. 위트있고, 어딘지 남다르다. 무언가의 뉘앙스를 담아낸 설명을 하는 데에 재주가 있다. 비유도 기발하고. 매사에 진지하지 못한 익살스러움/능청스러움도 좋았다. 이렇게 글을 쓸 줄 아는 사람이 싼 똥인 셈이다. 똥은 너무 심한가, 난장판 정도?
난장판을 살피면, 이 엉망인 방의 주인이 누구인지, 깨어진 물건의 쓰임새가 원랜 뭐였는지가 유추된다.
마약과 쾌락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그 사이사이에 녹슨 주삿바늘과 썩은 혈관이 있다. 쾌락은 이어지다 못해 두고 보기 힘들 정도로 멈추질 않는다. 도덕, 생사 모든 게 다 의미가 없다. 유일한 건 더 큰 쾌락 뿐. 사시사철 행복과 충만함이 지속되는 천국이 아닌, 끝도 없는 즐거움과 찌듦이 공존하는 지옥.
전염병 환자라도 되는 듯, 커다란 구덩이에 약쟁이들을 다 생매장 시켰는데 그 속에서 서로 교접하고 있는 맛간 사람들을 보는 것만 같다.
멀리서 봤을 땐 기존의 억압을 다 집어 던진 난장판, 가까이 가서 봤을 땐 흑염룡
20세기 미국 예술계(보위는 영국인이지만 넘어가자)에서 이런 내용이 안 먹힐 리가.
나한텐 먹히지 않았다. 힙스터이고 싶어서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정상인이고 여기에 영감받은 사람들이 힙스터 아닐까.
다만 그래도 (내가 만약 예술가라면) 감명을 받을 법한 부분이 있긴 했다.
이렇게 뚝뚝 끊어지는 이야기가 어지럽게 반복되는 스타일의 책은 '콜라주' 나 '몽타주'로 구분을 지을 수 있다.
이런 저런 문장들과 이야기들을 짜집기해서 만들어내는 분위기란 풍경, 어떤 대략적인 감각을 자아내는 핀터레스트 무드 보드 계열의 '콜라주',
토막난 이야기를 다 모아 보니 하나의 정확한 주제나 줄거리가 나타나는, 롤 매드무비 계열의 '몽타주'.
이 책은 확실히 '콜라주'다.
마약 중독자의 묘한 환상, 감각을 이렇게 저렇게 핥는다.
(이상한) 소설, 영화의 도입부가 계속해서 시작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들었다.
뭔가가 시작됐다가 끊기는 느낌. 아니면 끊긴 채로 시작되는 느낌. 오고 싶지 않은 곳에 억지로 끌려 들어가는 느낌. 눈을 떠보니 사건 한 가운데에 있는 느낌.
약물 중독자가 보는 현실을 느끼게 해 주고 싶던걸까
200장 가량 헛소리만 읽은 줄 알았는데 어렴풋한 느낌이 전달된 경험에 영감을 받을 법도 하다고 생각하긴 했다.

근데 이건 버로스가 글을 쓰는 방식이고 버로스가 그려내는 세계에 심취하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다.
게다가 난 스토리가 있어야 디테일에 눈이 뜨이는 편인지라, 도입부는 설렁설렁 읽는 나쁜 습관이 있다. 근데 끊임없는 도입부? 지친다.

시간 낭비란 생각은 안 들었다.
하지만 내 뇌에게 이 책의 내용물을 노출했다는 사실이 딱히 반갑지도 않다.
이게 과장 같지만 진짜로 이 책을 읽고 나서 머리가 이상해졌다.
이거랑 병행 독서 한(지금도 하고 있는) 책, 이안 모티머의 'Time Traveller's Guide to Restoration Britain'을 자기 전에 읽고 있었다.
제목으로 유추할 수 있듯이, 해당 책은 17세기 중후반 영국의 일상생활을 다루는 역사책이다.
매우 건전하다.
근데 이 책을 읽으며 언제 어디서 엉덩이랑 난교가 튀어나올지 몰라 긴장하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구라 같죠? 진짜임

결론: rehab에 가둬져 있는 예술가 약쟁이가 아니라면 안 읽는 게 오히려 이로우니 추천하지 않는다.


이상 8월 결산입니당
마음 속에 화가 많았는지 불평불만이 많네요 ㅈㅅ
초등학교 1학년때부터 숙제를 미루던 경력이 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