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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생기고 금발이라는 게 더 중요해. 넌 결혼하면 그 아이 같은, 녀 형제를 닮은 잘생긴 아이를 낳겠지. 넌 불구가 아닌 금발의 잘생긴 아이를 가지게 될 거야. 나는 루카스의 아들이 아니야. 나는 야스민의 아들이야. - 존재의 세가지 거짓말 p.362


빅토르의 에피소드에 뒤이은 마티아스의 이야기. 비극의 연속성. 태생적인 절망.



나는 소설을 읽으면서 못난 사람을 좋아한다. 단순히 외모만 못생긴 사람을 좋아하는 게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얼불노의 티리온 라니스터는 오히려 전형적인 주인공 레시피로 만들어진 요리라고 생각하며 좋아하지 않는다. 그에게는 열등한 외모를 상쇄시킬 두뇌와 가문의 힘이 있다. 물론 고난도 있지만 웨스테로드라는 무대에서 그는 항상 스포트라이트의 중심에 있다. 


추한 외모든 찌질한 성격이든 가난한 집안이든 폭력으로 점칠된 과거든간에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에는 추락하고 마는 존재. 그런 인물을 문학은 오랫동안 다루어왔다. 신화시대의 길가메쉬가 그러했고 사서시에서 오이디푸스가 그러했고 극에서는 햄릿이 그러했다. 우리는 왜 몰락하는 존재에 끌리는 걸까?


새벽감성임'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