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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디킨스의 소설을 읽는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작년 11월 「데이비드 코퍼필드」를 읽은 후로 오랫동안 그의 작품을 읽지 않았다. 그때 「데이비드 코퍼필드」를 정말 재밌게 읽었다. 데이비드의 모든 순간이 행복하지는 않았지만, 행복을 향해 달려가는 그의 여정과 로맨스, 그리고 싸움을 보는 재미가 풍성했다. 이번에 「위대한 유산」을 읽으며 「데이비드 코퍼필드」보다 더 큰 재미를 느꼈다. 단역조차도 개성이 뚜렷했다. 모든 인물들이 당대 세태를 풍자하기 위해 우스꽝스럽게 설계돼있었음에도 현실의 문제들을 날카롭게 꼬집어서, 모든 인물들로부터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사실 전문가가 아닌 일반 독자에게 소설의 최고의 덕목은 재미다. 그리고 「위대한 유산」은 재미 면에서 지금까지 읽은 작품들 중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위대하다고 생각한다.


「위대한 유산」은 성장 소설이다. 주인공 핍은 우연찮게 신분 상승의 기회를 얻지만, 그 대가로 마음을 잃어간다. 나는 핍의 변화에 화가 나지는 않았다. 다만 가슴이 정말 아팠다. 핍이 당대로 치면 천한 계급의 삶을 살았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핍은 그 환경 안에서, 누나가 '따끔이'로 그를 호되게 때리더라도, 행복했다. 분명 세상에 통하는 교양은 없지만 핍을 온정으로 보듬어주고 핍이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조와 비디가 있기 때문이었다. 핍이 상류층 에스텔러에게 반하며 자신의 주변 환경을 장애처럼 여기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최대한 눈높이를 맞추고 싶은 욕심은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핍이 어떤 모습이든 핍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들을 잠시 눈이 멀어 스스로 저버리게 된 것은 너무도 아쉬운 일이었다. 핍이 상류 사회에서 얻은 것이라고는 사교회에서의 공허한 관계들과 사치를 지탱하기 위한 빚뿐이었다. 사실 핍만의 문제는 아니었지만, 기회비용을 생각하면 핍의 헛된 욕망과 공허함이 더 안타깝게 보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최대한 많은 돈을 썼다. 그리고 지불한 그 돈의 대가로, 사람들이 우리에게 주고자 마음먹을 수 있는 최소한의 것밖에 받지 못했다. 우리는 언제나 다소간 비참한 기분이었으며, 우리가 알고 지내는 사람들도 대부분 똑같은 기분이었다. 우리들에게는 우리가 인생을 끊임없이 즐기고 있다는 허구적인 유쾌함과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은밀한 자각이 공존하고 있었다."


그래도 핍은 연애 운은 없어도 인복을 타고 나서 다행이었다. 핍이 만나는 모든 사람이 호인인 것은 아니었다. 당장 아부쟁이 기회주의자 펌블추크를 내 손으로 때리는 상상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이 부과하는 무게를 만회할 만큼 훌륭한 조력자들이 곁에 있었다. 조는 변해버린 핍의 마음을 알면서도 끝까지 지극정성을 다했다. 허버트는 핍의 상류층 동료로서 핍이 위기에 있을 때마다 함께 자리를 지켰고, 웨믹은 사무실 밖에서 마음을 터놓고 핍의 멘토가 돼주었다. 재거스 씨는 기계적이고 냉혈한 사람이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의외로 인간적인 면모를 보이며 핍에게 도움을 주었다. 해비셤 부인도 정신이상자였지만 나름대로 뜻이 있어서 핍에게 활로를 열어주었다. 결정적으로 이 모든 사건의 발단이 된 프로비스의 온정은 잊을 수 없다. 그는 타고난 환경 때문에 죄인으로 살아야 했지만, 자신이 이룰 수 없는 선을 핍에게 집약해서 물려주고 최선을 다해 서로를 지켜주었다. 핍이 시련을 겪고도 사람의 마음을 되찾은 것은 이들의 고생 덕분이었다. 옆에서 지극정성으로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기에, 신분과 관계없이 사랑이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핍의 가파른 상승과 추락은 정말 중요한 바를 시사한다. 철자법도 잘 모르는 조가 말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문장이 있다. "네가 만약 똑바른 길을 가는 걸로 비범하게 될 수 없다면, 비뚤어진 길을 가는 걸로는 더더욱 그렇게 될 수 없을 거다." 핍의 벼락출세는 어찌 보면 운명이 핍의 본성을 바꾸도록 강요한 경우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현재 가진 능력을 기르지 않고 다른 길을 찾다 보면, 결국 이도 저도 아닌 길로 새서 행복을 뜻대로 이루지 못하기 마련이다. 조는 무식하고 아내에게 무시당하지만, 한편으로 대장장이로서 일을 충실히 하는 덕에 작게나마 인망도 갖고 있고 호감을 살 수 있었다. 이렇게 보면 중요한 것은 사람의 위치가 아니라, 사람의 본성임을 알 수 있다. 신분이 아니라 본분을 다하는 삶이 호감을 얻고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이다. 조가 나름대로 차려입고 화려한 삶을 시작한 핍을 방문해서 한 말이 떠오른다. "인생이란 서로 나뉜 수없이 많은 부분들의 접합으로 이루어져 있단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대장장이고 어떤 사람은 양철공이고 어떤 사람은 금 세공업자고, 또 어떤 사람은 구리 세공업자이게끔 되어 있지. 사람들 사이에 그런 구분은 생길 수밖에 없고 또 생기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법이지. 난 이런 옷차림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아. 난 대장간과 우리 집 부엌과 늪지를 벗어나면 전혀 어울리지 않아." 세상에는 각양각색의 직업과 신분이 있다. 하지만 이들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은 이들의 관계와 본분이지, 그들의 옷매무새나 식사 예절 따위가 아니다. 그 정체성에 충실하여 지금 있는 자리에서 지금의 능력대로 최선을 다하는 것, 이것이 인생을 사는 모범적인 태도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한편 핍이 인간성을 회복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준 두 사람인 조와 프로비스로부터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이들이 나오는 장면마다 어찌나 큰 감동을 느꼈는지 헤아릴 수 없다. 핍을 향한 조의 사심 없는 충고와 프로비스의 조건 없는 사랑이 얼마나 슬프게 느껴지던지! 그들은 천한 사람이지만 높은 사람들보다 정신적으로 우월하다. 특히 프로비스는 범죄자였지만 오히려 죄가 없는 펌블추크보다 훨씬 나은 사람이다. 두 사람은 사랑하는 핍을 위해 자신의 몫을 망설임 없이 희생한다. 돈 많은 사람들에게는 돈을 빨아먹으려는 모기가 달라붙기 마련이다. 하지만 핍에게는 자신의 피를 내주려는 선인들이 있었다. 목숨을 구하는 수혈에서 피의 주인은 중요하지 않다. 결국 사랑만이 사람다운 삶을 만들어 낸다.


"뭣보다도 기쁜 건 말이다... 넌 내가 어두운 구름에 뒤덮인 이래로 오히려 날 더 편하게 잘 대해줬다. 태양이 비칠 때보다도 말이다. 그게 뭣보다도 기쁜 점이다." 프로비스의 유언 중 하나다. 프로비스에 관한 어두운 비화를 알고도 핍은 결국 마음이 이끄는 올바른 일을 해냈다. 프로비스는 소원대로 신사를 만들어냈다. 여기서 말하는 신사는 신분이 높은 사람이 아니라, 사람을 사랑으로 대하는 신사 정신을 가진 사람이다. 핍은 막대한 유산을 놓쳤지만 정신 속에 프로비스의 위대한 유산을 받았다. 부자가 되는 여정이 아니라 사람이 되는 여정. 이것이 핍이 모두와 함께 완성한 여정이자 모두가 걸어야 할 여정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프로비스와 조에게서 핍한테 물려진 위대한 유산을 핍으로부터 똑같이 물려받고 싶다.


단순히 재미로 읽으려 했는데 정말 큰 감동을 느꼈다. 지금도 머릿속으로 핍의 여정을 삽화처럼 상상하며 글을 쓰고 있다. 「위대한 유산」은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고 생각한다. 지위와 재산에 눈이 멀어 진정 소중한 것을 놓치고 있는 사람들에게, 진정한 신사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라고 디킨스가 들려주는 동화 같다. 어린 시절 좋아하는 동화를 외우고 다녔듯이 이 소설도 기억 속에 오랫동안 머무를 것 같다. 핍의 이야기는 나에게 내 자리에서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하며 최선을 다하라고 내게 끝없이 조언해 줄 것이다. 온정으로 바라보는 조와 프로비스의 시선을 핍과 함께 받으며 이 세상에 사랑을 실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