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1장
6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 후로는 그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으리로다
-----
언어와 민족의 분열에 대한 탁월한 비유가 펼쳐집니다.
언어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외국어를 배우다 보면 묘한 직감 즉, 모든 언어의 뿌리는 하나였던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꽤 많은 언어권에서 아이들이 부모를 부르는 호칭은 가장 발음하기 쉬운 구순음(입술만 여닫으면 나는 소리)입니다. 엄마, 아빠, 마마, 파파. 심지어 뒤의 '마마, 파파'는 영어 뿐 아니라 프랑스어, 스페인어, 이탈리라와 러시아 등 인도-유럽어 계통의 셀 수 없이 많은 언어에서 거의 동일하게 쓰입니다.
이는 동물의 울음 소리 같은 의성어의 유사성과 비슷하게 인간의 조음 기관의 유사성, 소릴 듣는 감각 기관의 유사성에서 비롯된 현상에 불과하지만 창세기의 저자가 살았던 시대의 언어적 환경에선 더욱 직접적인 유사성을 찾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언어학적으로 본다면 히브리어는 기원 전 5만 년에서 2만 년 사이 다른 아프리카계의 원시어에서 분화되었고 후일 아람어, 페니키아어, 아랍어 등으로 계승 및 분화되었습니다.
(현대 언어학자들이 위의 네 언어를 모두 '셈어족'이라 부른다는 것도 재밌습니다. 하지만 이는 당연히 후대 독일의 역사, 언어학자들도 구약 성서를 읽은 이들이었기 때문에 생긴 일일 뿐입니다.)
현대의 셈어족, 혹은 셈어파 언어들은 '삼자음 어근' 즉 대부분의 단어가 3개의 자음으로 이뤄진 유사한 어근에서 파생되었으며, 유사한 문법 구조를 갖고 있고, 결과적으로 대단히 방대한 어휘적 유사성을 갖습니다. 고대에선 이 네 언어의 유사성은 당연히 훨씬 더 컸을 것입니다.
10절부터 다시 등장하는 셈에서부터 아브라함까지 이어지는 족보를 생각해보면, 창세기의 저자는 어쩌면 아브라함의 고향인 '갈데아 우르' 즉 수메르 문명이 기원 전 2000년 경 건축한 '지구라트'를 직접 보거나 전해 들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가장 꼭대기의 신전은 수메르 이후 이 지역을 통치한 다른 문명에 의해 약탈되고 훼손되었더라도, 하단의 3단 구조는 여전히 남아있었을 것이고, 현대인의 눈에 보기에도 분명 더 높고 거대한 구조의 기초처럼 보이는 이 유적의 스케일은 바벨탑의 설화를 상상하게 하기에 충분했을 것입니다.
농경으로 많은 인구를 먹여 살릴 수 없는 사막 기후의 특성, 아프리카와 아시아, 유럽을 잇는 교차로 같은 유라시아 서부 지역의 지리적 특성 상 잦을 수 밖에 없었을 전쟁과 침략. 지구라트나 피라미드 같은 거대한 건축물을 건설할 능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저 황량한 땅 위에 뿔뿔히 흩어져 사는 당대의 인류를 바라봤던 창세기의 저자는 유사한 언어를 쓰면서도 끝없이 반목하고 서로를 죽이고 죽는 현상의 원인을 오랜 시간 고민했을 것입니다.
결론은? 창세기의 저자가 보기엔 하와를 유혹한 것은 하와 내부의 의심과 호기심이 아니었고 아벨을 죽인 가인의 분노도 그의 내면에서 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뱀과 가인의 문 밖에 엎드린 외부의 악이 이런 일을 가능하게 했다고 그는 믿고 있죠. 이와 유사하게 인류의 분열도 신의 개입으로 일어난 현상이라고 해석합니다.
흥미로운 부분은 창세기의 저자는, 신의 계획과 어찌보면 변덕스러운 개입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하는 인간이, 이들을 분열시키지 않는다면 '이 후로는 그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을 만큼 위대한 힘과 가능성을 가진 존재라고 보고 있다는 점입니다.
바벨탑 이후 신의 직접적 개입이 없는 수백 년의 시간이 흐르고, 마침내 갈데아 우르 출신의 아브라함에게 신의 포커스가 맞춰지고 있습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