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너선 하이트가 말한 것처럼
확실히 많은 사람들에게,
일단 감정적으로, 직관적으로 판단을 내린 다음
사후에 이성적 근거를 갖다 붙이는 '경향'이 있기는 하다.
그리고 조너선 하이트가 또 말한 것처럼,
사람들이 공정성을 중시하는 자유주의자가 되느냐
그밖의 순수성, 권위, 충성 등등도 고루 중시하는 보수주의자가 되느냐에 있어
유전적인 요소들, 진화된 심리적 모듈들, 문화적인 요소들이 두루 영향을 미치긴 한다.
그래서 그러한 사회심리학적 사실들, 인간의 기본적인 취약성 등등을 알게 되면,
어쨌든 자기 의견을 고수한다 하더라도,
사람들이 의견이 다른 사람들을 너~무 미워하지 않게 될지도 모른다.
문제는
조너선 하이트가 위와 같은 사회심리학 실험 결과들을 가지고
서로 다른 도덕적 관점을 가진 사람들을 넘 미워하지 마세여~ 라는 말만 한 게 아니라는 거다.
해악 감소와 공정성을 엄청나게 강조하긴 하지만 순수, 복종, 충성심과 같은 요소들을 간과하고 있기 때문에
도덕성에 대한 축소된 개념을 갖고 있다고 말하며 하이트는 자유주의자들을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고로 자유주의자들은 더 광범위하게 보수적 가치를 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근데 왜 그래야 하는가?
자유주의자들이, 특히 존 롤즈, 로널드 드워킨, 토마스 스캔론, 위르겐 하버마스 같은 위대한 자유주의자들의 주장이
그냥 (객관적) 도덕의 기준에서 옳을 수도 있지 않은가?
왜 도덕적 판단에 있어 옳은 사람들이 그른 사람들의 사고 방식을 포용해야 하는가?
하이트는 객관적, 보편적인 도덕이 애초에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에게 사후합리화하는 그런 '경향'이 있다고 해서
도덕이라는 이성적이고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학문 자체가 성립할 수 없다고 할 순 없다.
그것은 극소수만이 리만 기하학을 제대로 이해한다고 해서
리만 기하학 자체가 성립할 수 없다고 말할 순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또 각각의 사람들이 느끼는 도덕적 직관들의 강렬함 정도에
임의적인 요소(유전, 환경, 문화 등등)들이 개입된다고 하더라도
도덕의 영역에서 사람들의 그런 직관 모두가 동등하게 중요한 것이라고 여길 필요는 없다.
가령 수학적 재능도 임의적인 유전적 소질, 어린 시절 환경, 문화의 영향을 받아서
어떤 사람은 더 수학을 잘 하고 어떤 사람은 수학을 더 못한다.
그래서 사람들 사이에 수학적 능력이 불균형하게 분포되어 있고
그런 불균형함의 연유가 우연적인 것이라고 해서
수학적 재능이 많은 사람들이 수포자들의 수학 실력을 본받거나 그들의 엉성한 사고방식을 포용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공정성을 더 잘 따지는 재능을 타고난 사람들이 있고,
그러한 재능을 타고나는 데 있어 온갖 임의적 요소가 영향을 미쳤다고 해서
그들이 공정성을 따져야 하는 문제를 풀 때 그런 재능이 없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포용하려고 들 필요는 없는 거다.
조너선 하이트는 자신이 상대주의자가 아니라 다원주의자라고 말하긴 하지만,
한 사회의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느냐와 별개로
독립적 판단기준을 가지고 그 사회의 다수 도덕적 견해와 무관한 결론을 내릴 수 있는 체계를 가진
객관적 도덕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일종의 도덕 상대주의자다.
시대에 따라 지역에 따라 '도덕'이 변해왔고,
도덕은 물리적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기에 객관적일 수 없다고 떠들어대는.
그러한 도덕 회의론자, 도덕 상대주의자들이 너무나 많다.
그들이 꼭 읽어야 할 책이 바로
(이민열˙김도균, 『헌법논증이론』, 한국방송통신대학교출판문화원, 2021)이다.
위 책의 (56-58면.)에서는, 그러한 도덕 상대주의자를 흥미로운 대화문을 통해 아작내고 있다.
해당 대화문에 등장하는 한 도덕 상대주의자는
한때 미국 남부에서 노예제가 도덕적으로 옳았다고 주장한다.
도덕의 명제들은 어떤 물리적 실체를 갖고 있어서 관측 도구를 통해 객관적으로 그 진리성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도덕이 만들어지는 것이며,
"남부인들은 노예제가 옳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남부에서는 노예제가 옳다"(위의 책, 57면.)라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곡률이 없는 평면에서는 평행한 직선은 만나지 않는다는 글자가 적힌 자연적 물체도 없다.
당신의 주장에 따르면 기하학에 관한 진리도 없을 것이다.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당신이 정말로 명제와 명제태도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애초에 나와 당신이 대화를 시작한 이유가 무엇인가? 왜냐하면 당신과 나는 남부 사람들이 노예제가 도덕적으로 옳다고 생각한다는
명제태도에 관한 사실 자체에는 전적으로 동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위의 책, 57면.)
조너선 하이트를 비롯한 수많은 '객관적 도덕에 대한 회의론자들'이 범하고 있는 오류가
바로 저것, 명제와 명제태도를 구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영철이는 미숙이만 보고 있고, 미숙이는 민철이만 보고 있고 민철이는 허공만 쳐다 보고 있는데
영철이는 결혼을 했고, 미숙이는 결혼을 했는지 안 했는지 모르고,
민철이는 결혼을 안 한 상황이라고 하자.
이 경우, <결혼한 사람이 결혼 안 한 사람을 보고 있는 경우가 있다>라는 명제는 참인가, 거짓인가? 또는 참인지 거짓인지 알 수 없는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참인지 거짓인지 알 수 없다고 답한다.
그러나 답은 참이다. 왜냐하면 미숙이가 결혼을 했다면 미숙이가 민철이를 보고 있기 때문에 참이 되고,
미숙이가 결혼을 안 했다면, 영철이가 미숙이를 보고 있기 때문에 참이 되므로
두 가지 가능한 경우 모두에서 참이 되기 때문에 저 명제는 참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저 문제에서 오답을 내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저 명제가 참이 아니게 되는 것은 아니다.
핵전쟁이 일어나 인류가 거의 전멸하게 되었고 지구상에 단 3명만이 살아남았는데
그 3명이 모두 저 명제, <결혼한 사람이 결혼 안 한 사람을 보고 있는 경우가 있다>가 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하더라도
저 명제는 참이다.
즉, 한 명제에 대해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느냐(명제태도)와 그 명제는 다른 것이다.
하이트는 사람들이 도덕적 문제에 대한 판단을 내릴 때,
(온갖 임의적인 진화적, 문화적 이유로) 중시하는 가치들이
서로 다르다는 '명제태도'에 관한 실험 결과들을 가지고
객관적 도덕 명제 자체에 대한 회의론에 빠졌다.
그러나
예를 들어,
587345734*4577653 이 문제에 대한 답을 5초 안에 제대로 답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실험 결과가 있다고 하더라도
아아 이 문제에 객관적인 답은 없다~ 라고 할 수는 없다.
콰인(W. V. Quine)이 말했듯이,
사람들이 가장 확실하다고 생각하는 수학, 과학을 비롯해
인간의 모든 지식 체계는,
잠정적 참(추후 다른 증거들과 상충하는 일이 벌어지면 언제든 폐기될 수 있는 명제들)의 지위를 지닌 신념들이
서로를 지지하는 그물망(web)이다.
도덕도 우리의 도덕적 직관들, 숙고된 판단들, 원리들을 정합적으로 짜맞춘 그러한 지식의 그물망인 것이다.
그러한 논리적 체계성을 가진 신념 체계의 명제들은 당연히 사람들의 이런저런 명제태도와 구별된다.
결국 조너선 하이트는 도덕 자체에 대해서는 개뿔도 모르고 있다.
히틀러와 그의 수천 만의 추종자들이 지구상에 나치 빼고 모든 인간을 다 죽여버렸다고 해도
<아리아인만 남겨두고 다른 인종은 다 쓸어버리는 게 옳다!>라는 그들이 공유하는 그 신념이 도덕적으로 옳은 게 되는 건 아니다.
조너선 하이트는 자가당착이기도 한 게
그의 말마따나
좌파 매트릭스, 우파 매트릭스, 아무개 매트릭스,
각자가 다 지들만의 매트릭스에 갇혀 있다면,
하이트도 지만의 매트릭스에 갇혀 가지고 지금 지껄이고 있는 거 아닌가?
지는 구름 위로 솟아 올라
좌파, 우파, 각 정파들을 두루 굽어 살피어
메타 입지를 잡고
<자, 내가 너희들 모두에게 바람직한 방향을 지도해주마!> 라고 선구자를 자처한다면,
다른 사람들 또한 자신들의 주장은 어느 한 매트릭스에 갇혀서 나온 게 아니라
보편적인 기준에 따라 하는 얘기라고 얼마든지 말할 수 있다.
즉, <자유주의자, 좌파 너희들 매트릭스에 갇혀서 주장하고 있어!> 이런 말에는
<아닌뎅 나도 너처럼 매트릭스 빠져나와서 주장하고 있는데? 왜 너만 매트릭스 빠져나올 수 있어? 뭔 너만 용가리 통뼈야?>
이렇게 얼마든지 말할 수 있다는 거다.
"(...) 국가 전체가 있고 이들이 구성원에게 더 나은 도덕적 행동을 원한다고 생각해보자.
도덕적 다양성의 문제는 일단 제쳐두고 이들이 목표하는 바를 명시해보면,
그것은 친사회적 행동의 '산출량'은 늘리고 반사회적 행동의 '산출량'은 줄이는 것이 될 것이다(해당 집단이 이 용어를 어떻게 정의하든 상관없이).
어떤 식의 도덕적 비전을 원하든 그것을 이루려면 높은 수준의 사회적 자본이 필요할 것이 거의 틀림없다."
(조너선 하이트, 『바른 마음 - 나의 옳음과 그들의 옳음은 왜 다른가』, 왕수민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2014, 515면.)
조너선 하이트도 어떤 정파든 상관없이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보편적인 원칙(친사회적 행동의 '산출량'은 늘리고 반사회적 행동의 '산출량'은 줄이는 것)을 제시하고 있다.
결국 하이트 자신도 지가 '보편타당한 당위'라고 생각하는 바에 기대서 좌파, 우파 다들 좀 더 친하게 지내보자~ 라고 떠들고 있지 않은가?
존 롤즈, 로널드 드워킨, 토마스 스캔론과 같은 위대한 자유주의자들은
하이트가 좌파, 우파 막론하고 누구든 동의할 만한 원칙이라고 기대고 있는 원칙 이상으로 보편적이고 확실해 보이는
객관적인 도덕 원칙, <국가는 그 구성원들 각각을 모두 평등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대원칙에 기초해 주장을 하고 있다.
그 대원칙을 위배하여 다른 구성원의 평등한 권리를 침해하는 것으로 여긴다.
그들은 '헤헤 내 취향은 공평성이야~ 공평성이 딴 거보다 더 맛있쪙 순수성 퉤퉤 노맛 ~ ' 이러고 주장하고 있는 게 아니다.
그래서 하이트가 자유주의자들한테 조금이라도 포용, 양보, 재고를 요구할 참이면,
그들의 체계적 도덕적 논증 자체와 정면으로 대결해야 한다.
그러니까 일상 언어인 '철학'과 학문을 의미하는 '철학'이 다르듯이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말하는 '도덕'은 학문으로서의 '도덕'과 다른 거겠죠. 개인의 도덕을 두고 학자들이 엄근진하게 "응, 그건 틀렸어! 사실은 말야..."라고 떠들어 봤자 논의의 전제부터 다르니까 의미가 없죠. 물론 그 반대도 마찬가지고요.
그렇지는 않다. 사람들이 '문화규범'이나 '전통예절' 따위를 도덕으로 여기거나 도덕 상대주의나 주관주의를 견지하는 이유는 객관적인 도덕이 애초에 없다고 잘못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도덕에 대한 회의론과 객관적인 학문으로서의 도덕을 전제한 학자들의 주장은 둘 다 (특정 맥락을 고정한 상태에서) 동일한 의미를 지닌 '도덕'이라는 개념에 대한 상충하는 명제들을 전제하고 있는 거고, 결국 서로 이견이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
객관적 명제가 있으니까 객관적 맹제가 있다는 소리하고 있노
그런 식의 순환논증을 한 게 아니라, 일종의 '귀류법'을 사용한 거다. 도덕의 명제들이 객관적이지 않고 명제태도와 독립적으로 참/거짓을 따질 수 없는 것이라면, 나치가 지들 빼고 다 죽인 다음에 모두가 <아리아인 짱짱맨 다른 인종은 다 디지는 게 도덕적으로 맞아~>이러면 그게 도덕적으로 옳게 된다는 소린데 너무나 터무니없다는 거다.
그런 귀류법이 상대랑 같은 개념을 공유하지 않기 때문에 공허하다는 거. 유신론자가 사실 모든 주장에는 신이 편재하고 있기 때문에 무신론자가 신이 없다는 주장을 할 때에도 사실 인정을 안할 뿐이지 모순이 나온다는 귀류법 쓰는 거랑 같음. 무신론자는 주장이 그런 개념이라 생각 안하거든. 만약 상대주의자가 남을 설득한다면 이건 자기 주장도 명제 abcd가 공유하는 플리토닉한 참이라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게 아니라 자기가 그렇게 생각하고 그 생각하는 걸 말하며 너도 그렇게 생각하기를 바란다는 거임. 안 믿으면 어쩔 수 없지만 포용 양보 재고는 현대의 감성적인 많은 사람들에게 성공적으로 호소하게 될 거임. 이걸 꺾으려면 귀류법이 아니라 정말로 참이라는 속성이 불가피하다는 걸 보여야지
도통 뭔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 유신론자가 <사실 모든 주장에는 신이 편재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면, 그 전제에 동의 안 하는 사람은 당연히 그들의 주장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없다. 근데 내가 위 본문에서나 여기에서 사용한 귀류법 논증에서는 하이트를 비롯해 상식적인 사람들이 동의하지 않을 수 없는 것들만 전제했다. 너는 그럼 하이트가 나랑 전제가 다르다고 하는데 그럼 걔는 나치가 지들 빼고 딴 사람들 다 죽이면 그들이 도덕적으로 옳다고 생각한다는 거냐? 확실한 전제를 깔고 지금 논증을 하고 있는데, 반대를 하려면 직접적으로 이 논증에서 뭐가 문제다, 라고 지적을 해야지 유신론자가 어떻고 저떻고 딴소리만 하면 어떡하나.
너는 이미 하이트가 객관적 도덕은 실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객관적 참이라고 보고 있다고 말하면서 다른 참 개념을 쓰고 있음. 그러니까 귀류법을 하는 거지. 근데 상대주의자에게 있어서 자신의 주장은 객관적 참의 속성을 가지는 게 아님. 나에게는 이렇게 보이고 느껴지고 생각되는데 너도 나처럼 되길 내가 바란다는 거지. 그렇게 만들기 위해 제시하는 것이 규범의 다양성과 주관성이지. 물론 상대주의자는 자신의 주장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할 수 없음. 단지 지금 이 시대 이 위치에서 내가 이런 이유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다는 걸 말하는 것이고 네가 그걸 믿게 될 때까지 힘쓸 준비가 됐다는 거임. 그런 사람에게 객관적 참의 관점에서 너는 틀렸다고 해봐야 내가 든 유신론자 예시처럼 서로 딴말하는 거임
아니 그러니까 네 말대로 그러한 상대주의자는 나치가 지들 빼고 딴 사람들 다 몰살 시킨 다음에 <어?! 이제 지구상의 사람들은 우리밖에 없고 우리들 모두 "아리아인 빼고 다 가스실 보내서 죽이는 건 옳다!"라고 생각하니까 이건 이제 도덕적으로 옳네?!>라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 ㅇㅇ 그거 맞음 이래야 된다니까? 이걸 진짜로 받아들일 수 있냐고?? 그러니까 상대주의자들도 애초에 지가 다원주의고 상대주의고 택하는 데 있어서 어떤 근본적 직관이나 숙고된 판단이 작용을 해서 그런 선택을 했을 텐데, 지금 내가 드는 사안, 도저히 직관적으로 용인할 수 없는 이런 사안에 맞부딪히게 되면 상대주의를 버릴 수밖에 없다는 거다. 걔가 무슨 본투비 상대주의자는 아닐 거 아녀.
그들은 그렇게 생각 안하겠지. 그게 객관적으로 도덕적이지 않아서가 아니라 현대 서구 사회에서 태어나서 인권 개념에 대해서 깊이 젖어들었으며 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현재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을 말하는데 그 생각은 그들의 생각과 다르다고 할 거야. 그런데 상대주의자에게 있어서 내 생각과 다른 사람의 생각이 동등한 건 아님. 왜 내가 다른 사람이 단지 그걸 믿는다는 것만으로 그들을 존중해야 할까? 나는 그걸 안 믿는데. 나에게 나치는 너무나 잔인해 보인다고 말할 때 나는 상대적-이유를 제시할 수 있음. 인권, 상호존중, 공감 등등. 나치가 지들 말고 다 죽여도 여전히 상대적 이유와 상대적 믿음을 가진 집단이 남지만 내가 거기에 동의할 이유가 전혀 없음. 나는 그걸 안 믿으니까
네 말에서, 상대주의자는 자기가 ‘절대적’으로 옳다고 생각 안 한다고 했는데 그럼 ‘절대적’으로 옳다고 생각 안 하고 ‘걍’ 옳다고 생각하는 거임? 절대적으로 옳다고 생각하는 거랑 걍 옳다고 생각하는 거랑 실질적으로 뭔 차이가 있는 거임? 그리고 단지 지가 이 시대 이 위치에 그런 이유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게 된 거고,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기 때문에 다른 사람 생각보다 더 낫다고 할 게 하나도 없다고 진정으로 믿는다면, 대체 어떻게 다른 사람도 자신의 생각을 믿도록 힘쓰는 거임?
네 말은 결국 아기를 재미로 고문하는 게 옳은지 그른지의 문제는 마치 블랙핑크가 좋냐, 뉴진스가 좋냐의 문제와 별반 다를 게 없는 취향의 문제에 불과하다는 소리밖에 안 되는 거다.
조너선 하이트 검색해봤다가 읽었는데 시간 낭비였네. 내가 하려던 말도 이미 한 사람이 있고.
좋은 글입니다. 잠시 20분만 기다려 주세요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 저자랑 동일인 이었네.. 나름 재밌게 읽었는데 저 책도 재밌을려나
ㅇㅇ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 재밌게 읽은 사람이면 저 책도 되게 흥미롭게 읽을 거 같다.
1. 조너선 하이트는 꼭 "자유주의"만을 공격한 것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이러한 "명제태도"라는 접근을 통해 자유지상주의를 포함한 모든 사상에 대해서 비판한 저작으로 보입니다. 이 내용은 주된 내용이 아니니 여기까지만 두고 끝내겠습니다. 2. 스캔론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드워킨에 대해서도 잘은 모르기 때문에 롤스만 두고 접근하겠습니다. 제가 보기엔 조너선 하이트의 이 명제태도적 주장은 그럼에도 잘 적용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자유주의자가 말하는 "명제"가 정말 그 명제적인 필연성이 있는지 잘 모르겠기 때문입니다.
수학을 살펴보면 그럴듯 합니다. 정말로 수학철학적인 "필연성"이 이 수학에 있는지는 논외로 하겠습니다. 문제는 수학 자체는 흔히 다른 곳에서 필연성이라 불리는 그런 것이 좀 부족한 면이 있습니다. "우리는 실수를 왜 써야 하는가" 같은 질문에 대한 답에서, 충분히 규약주의, convention - alism적인 접근이 가능합니다. 실수를 "옹호"하는 자들이 "실수의 가장 중요한 점인 완비성 공리는 볼차노-바이어슈트라스 정리, 하이네-보렐 정리, 코시 성질 + 아르키메데스 성질과 동치이고, 이 동치정리는 수학에서 엄청나게 많이 쓰이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한들,
이 규약주의자에게는 이것이 "실수가 굉장히 well-behaved하기 때문이다" 같은 규약주의적 관점으로만 보이게 될 수도 있습니다. 수학에서조차도 이러한 필연성은 약합니다. 그리고 수학자는 애초에 신경을 안 쓰는게, 수학을 하는 사람은 이런 "철학"에는 관심을 안 가지기 때문입니다. 오직 철학자들만이 관심을 가지죠. 콰인은 이 점을 전혀 몰랐습니다.
3. 자유주의를 지탱하고 있는 근본적인 "명제"는 실제로 "명제태도"적인 면이 있습니다. 존 롤스는 우리가 왜 민주주의를 채택해야 하는가에 대해 거의 논증을 한 적이 없습니다. 그의 정의론, 정치적 자유주의, 만민법과 같은 책은, 더 나은 접근이 "민주주의와 자유주의가 일단 주어졌을 경우 어떤 사회를 구축해야 하는가"에 대한 논증에 가깝습니다. 드워킨 또한 "고슴도치를 위한 정의론"에서 거의 비슷한 접근을 하고 있어요.
민주주의에 대해 직접 논증을 펼친 사람은 이사야 벌린에 더 가까운 것 같습니다. 공약불가능성을 주장하며, "다원주의"라고 불리는 것이 사회에게 내재되어 있다고 논증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원주의에서부터 꼭 민주주의가 나오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이 외에도 존 롤스의 사회계약론을 통한 주장 또한 문제가 있을 것입니다. 지성사적인 접근이나 푸코의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같은 책을 통해 사회계약론이 사회에 영향을 준 것은 극히 미미하며, 이것은 계속 "명제태도"와 같은 접근이었기 때문이다, 하는 주장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4.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 글에서 너무 많이 나오고 있는 "체계적 논증 자체와 대적해야 한다"라는 주장에 대해서 저는 의구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말 "명제"와 "명제태도"라는 이분법이 제대로 적용될 수 있는 것인지 저는 의문을 가집니다.
말테의 수기님은 <명제태도>가 무엇인지, <명제>와 <명제태도>가 어떻게 구별되는 것인지, 그리고 명제 자체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계신 것 같습니다. "명제적인 필연성" 같은 표현만 봐도 그렇습니다. 명제는 단지 참 또는 거짓으로 판별할 수 있는 진술로 표현되는 내용인 것입니다. 거짓인 명제가 있을 수 있으니 명제에는 당연히 필연성 같은 건 없습니다. 제가 여기서 지적하는 것은 자유주의 논자들의 주장, 논증, 명제들에 대해 반박을 하려고 할 때 그 명제에 대한 사람들의 이런저런 명제 태도를 들먹이는 거는 부적절하다는 겁니다.
<명제>와 <명제 태도>가 어떻게 구별되는지 알고 싶으시면 위에 제가 인용한 책인 <헌법논증이론>의 제3강을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명제"가 무엇인지 정의하는 것은 "참"이 무엇인지 정의하는 것만큼이나 어렵습니다.
네. 그 어려운 걸 저 책 3강에서 잘 하고 있으니까 한번 보시길 추천드려요.
아... 아뇨... 이민열이 얼마나 뛰어난 분인지는 저도 압니다. 하지만 이분 또한 이런 질문을 분석철학적 메타윤리로 환원을 해놓아야 하는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한 것이예요. 저도 책 하나 추천할게요. Peter smith의 괴델 책 정도면 좋을 거 같네요...
언제적 도덕 실재론이노 ㅋㅋ
ㄹㅇㅋㅋ
많은 현대인들에게 상대주의가 확산돼 있는 게 사실이지만, 실제로 전문 철학자들은 도덕 실재론자가 많음.
팩트는 도덕이 인간의 진화적 산물일 뿐이며 인간의 행동에 의해 나타나는 현상일 뿐 연역적으로 추론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는 것임
그럼 논리학이나 수학은 진화적 산물인 인간 뇌에서 나온 게 아님?
논리학이나 수학은 현상을 기술하는데 그치지만 도덕은 현상이 ~해야한다라는 당위로 나아가잖아. 당위를 제시하고 그에 따라 자신의 행동을 구속시키는 것이 인간 종이 가진 특성일 뿐, 당위가 실재하는 것이 아님.
<곡률이 없는 평면에서는 평행한 직선은 영~원히 만나지 않는다>는 글자가 적힌 자연적 물체도 없는데 그런 수학적 명제들이 왜 현상을 기술하는 데 그치는 거임? 동일률(A=A) 같은 논리법칙도 자연에 그런 논리 입자가 존재하는 것도 아닌데 이것도 걍 현상을 기술하는 데 그치는 거임?
그럼 님 말은 <곡률 어쩌고>나 동일률이 현상을 기술하는게 아니라 당위를 주장한다는 거임? 님의 반박은 <곡률 어쩌고>와 동일률이 참이냐 아니냐에 대한 논증일 순 있어도 당위냐 아니냐와는 아무관련이 없음
그게 어떤 자연 현상을 기술하는 게 아니더라도 우리의 지식 체계에서 진리로 받아들이고 있는 명제들이 있다는 거다. 도덕의 명제들도 그렇다는 거고. 니가 이때까지 도덕의 명제들은 객관적인 지식으로 여길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든 근거들(진화적 산물 어쩌고, 현상을 기술해야 되고 어쩌고) 다 반박됐잖아? 수학이나 논리학의 명제들을 우리의 지식으로 인정한다면 네가 든 그 기준들은 폐기되어야 하는 거지.
전혀 그렇지 않음. 체계 내에서 정합적인 것과 실재와 대응하는 것은 다르니까. 체계 내에서 정합적인 것은 실재와 무관하게 가상적인 전제와 공리에 의존해 참임을 주장할 수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임의적인 것일 뿐임. 도덕 실재론은 가상의 신 존재를 가정하고 기독교 신학을 전개한 스토아주의나 마찬가지임. 여기서는 당위 개념이 신에 해당하며 모든 절대주의 도덕은 당위가 실재한다는 무비판적 가정 위에 세워진 허공의 탑임
나는 도덕이 '객관적'이라고 주장했지, 무슨 세계에 도덕 입자 같은 '물리적 실체'가 있다는 주장을 한 게 아님. 여기서 도덕이 객관적이라는 건, 우리가 (명제태도와는 독립적으로) 그 명제들의 참/거짓에 대해 따질 수 있는 논의의 영역이 존재한다는 거임. 자유롭고 평등한 구성원들이 평화롭게 공존하고 협동하는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 이성적으로 판단했을 때 전제해야만 하는, 우리 이성적 인간들이 보편적으로 동의할 수 있는 근본적 명제들이 있고, 그러한 명제들과 그밖의 우리의 확고한 직관들, 숙고된 판단들, 도덕 원리들을 갖고 구성한 것이 객관적인 도덕 체계라는 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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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불가능함. 도덕은 객관적일 수 없음. 인간 구성원들의 논의에 따르는 것은 간주관적인 것이지 객관적인 것이 아님. 도덕체계는 의견들의 각축일 뿐 이성적 참 거짓이 아님.
그럼 너는 나치가 지들 빼고 딴 사람들 모조리 몰살시켜서, <나치를 제외한 모든 인간들은 죽이는 게 옳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만 남으면, 그 말이 도덕적으로 옳다고 생각하는 거임?
아니. 그건 그냥 그런 도덕적 신념을 가진 사람들만 남은거지.
그니까 사람들의 명제 태도와 독립적인 도덕 명제가 있네? 이런 의미에서 도덕 명제가 객관적이라는 거임.
아니? <나치를 제외한 모든 인간들은 죽이는게 옳다>라고 생각하는 명제태도를 가진 사람만 남더라도 그들이 옳지 않은 것은 <그건 나치를 제외한 모든 인간들은 죽이는게 옳다>라는 명제가 객관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명제 자체의 참이나 거짓을 답할 수 없기 때문이야. 즉 지금까지 방편상 명제라는 표현을 써왔지만 당위는 애초에 명제가 될 수 없어. 그건 "이 연필은 짧다"와 같이 답하는 사람에 따라 yes/no가 갈리는 문장일 뿐이지
1. 뭔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으려고 무진장 애를 쓰는 편인데 진짜 해도해도 너무 한다 싶다. 대체 뭔 소릴 하는지 모르겠다. 일단 <이 연필은 짧다>는 명제다. 그게 화자에 따라서 참/거짓이 바뀌는 것처럼 보이긴 하지만, 특정 하나의 명제의 참/거짓이 바뀌는 건 아니다. 예를 들어, 100명의 화자가 각각 그 문장을 발화하는 경우, 100개의 명제(길동이에게 이 연필은 짧다. 미진이에게 이 연필은 짧다. 민석이에게 이 연필은 짧다......)가 표현되어서 각각 진리값이 할당되는 것이지, 특정 하나의 명제의 참/거짓이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건 아니다.
2. 그럼 네 주장은, 당위 문장은 그런 식으로 <아무개에게 나치의 학살 행위는 그른 것이다>라는 특정 1인에 대한 명제를 표현할 뿐이지,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명제는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인가? 이런 주장이면 너무나 터무니없다. <길동이에게 나치의 학살 행위는 그른 것이다>라는 문장은 참/거짓을 판별할 수 있는 명제인데, <모든 사람들에게 나치의 학살 행위는 그른 것이다>라는 문장은 명제가 아니라는 주장은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이게 아니라면, <모든 사람들에게 나치의 학살 행위는 그른 것이다>는 문장은 참/거짓을 판별할 수 있는 명제이기는 하나, 보편적인 규범적 진리는 없기에, 그 명제의 진리값은 <거짓>이라는 말을 하고 싶은 건가?
초졸이냐? 명제라는 건 보편적으로 참/거짓을 판별할 수 있는 문장을 일컫는 것이지, 읽는 사람마다 진리값이 변하면 그건 명제가 아니다. 기초 논리학 서적만 펴봐도 아는 내용이다. <이 연필은 짧다>는 명제가 아니다. 더이상의 논쟁은 불필요하다 사료된다.
읽는 사람마다 진리값이 변한다는 게 아니라, <이 연필이 짧다>는 네가 제시한 문장은 < ______에게 이 연필이 짧다>라는 명제인데, 여기서 ______에 들어가는 대상이 누구인지에 따라 진리값이 달라질 수 있다는 거다. 그리고 그렇게 명확하게 표현된 명제의 진리값은 당연히 보편적으로 참/거짓이 판별되는 것이다. 명제의 참/거짓을 판별할 때, 그 맥락상 문장의 생략된 부분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명료히 드러내서 사고해야 한다.
웃기고 있네ㅋㅋ 누구 맘대로 맥락상 생략이냐 ㅋㅋ "이 연필은 짧다"라는 문장은 얼마든지 만들 수 있는거고 ____에게가 아니라 그냥 연필이 짧느냐를 물을 수 있는건데 ㅋㅋㅋ
<그건 "이 연필은 짧다"와 같이 답하는 사람에 따라 yes/no가 갈리는 문장일 뿐이지>라고 지가 지입으로 말해놓고 이제와서 딴소리냐. 니 말한 맥락에 맞춰가지고 해석해줬더만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니가 니 입으로 한 말 애써서 찰떡 같이 해석해주면 그 문장은 <답하는 아무개에게 있어서 이 연필은 짧다>라는 명제가 된다는 말이다.
아니? 나는 <이 연필은 짧다>가 답하는 사람에 따라 답이 달라지므로 명제가 아니라고 한거지, <답하는 사람에게 이 연필은 짧다>라는 문장이 상황에 따라 참 거짓이 달라진다고 한게 아닌데? 전혀 다른 두 문장을 가지고 호도하노
<이 연필은 짧다>가 답하는 사람에 따라 답이 달라진다는 게 대체 뭔 소리임? 좀 설명을 또띠또띠 해봐라. 그니까 A가 B,C,D한테 어떤 연필 들이대면서 <이 연필 짧냐?> 했을 때 B나 C나 D가 yes 또는 no라고 답한다는 얘기임? 대체 뭔 상황임?
ㅇㅇ 맞음. 그리고 도덕 또한 그렇다는 거임. A가 옳으냐? 하고 물으면 각자 다 답이 다르다고. 이건 명제태도라서가 아니라 애당초 옳으냐는 물음이 주관적이기 때문에 참 거짓이 없는 거라고. 연필이 짧다 그르다에 대해 각자가 yes/no를 말하는 것 역시 명제태도가 아니라 주관적 진술일 뿐이라고.
1. <이 연필은 짧다>라는 말은 이해되기 위한 필수 요소가 생략된 문장이다. “그냥 짧다” 이러고 있는데 그냥 그런 건 없다. 즉, <너가 보기에> 짧은지 아니면 <일반 사람들이 보기에> 짧은지, 그 짧다는 기준을 제시해야 비로소 의미를 이해할 수 있고 답할 수 있는 거다. 자꾸 난 ‘그냥’ 짧냐고 한 거야~ 이러는데 일상 대화에선 그러한 생략된 문장이 오갈 때 서로 그 생략된 부분, 논리적 필수 요소를 자연스럽게 맥락에 맞게 채워 넣어서 답하는 것뿐이다. 물론 각자가 생각하는 게 달라서 오해는 생길 수 있겠지만 어쨌든 물어보는 사람이나 답하는 사람이나 적어도 머릿속으론 그 필수 요소를 넣어서 생각하고 답해야 된다. 그래야 이해 가능한 말이 된다.
2. 그럼 <이 연필은 짧다>는 어쨌든 그 필수 요소, 생략된 부분을 채워서 생각하면 명제가 된다. (그래서 최대한 말이 되게 해석해서) <이 연필은 일반적으로 보기에 짧다>라는 명제에 대해 사람들마다 답이 갈리는 상황이라고 하자. 이 경우 <이 연필은 일반적으로 보기에 짧다>라는 명제를 제시한 출제자가 상정한 <일반적>이라는 기준이 있을 거고 그에 따라 저 명제의 참/거짓은 정해진다. 다만 사람들은 그걸 정확히 모르니 정답을 맞히는 사람도 있고 틀리는 사람도 있을 거다. 니 말마따나 규범의 경우에도 그렇다면, 예를 들어 <나치의 학살 행위는 그르다>라는 명제에 대해 사람들이 각자 참/거짓을 말한다고 한다면, 정답을 말하는 사람도 있고 틀리는 사람도 있을 거다. 네 설명에 따르면 이렇게밖에 해석이 안 된다
3. 물론 니가 이런 '사소하고 당연한' 얘길 하고 싶었던 건 아닌 거 같지만, <이 연필은 짧다>라는 명제를 이용해 설명한 장본인이 바로 너기 때문에 이렇게 밖에 해석이 안 된다. 너는 명제가 무엇인지에 대한 이해가 매우 부족한 거다.
논리적 토론이 아니라 견강부회가 되고 있으므로 더이상 답글달지 않겠음. 일상언어를 형식논리로 바꿀 때 생략된 부분을 고려해야하는건 맞지만, 그건 <소크라테스는 죽는다>를 <임의의 X에 대해 X는 소크라테스인 동시에 죽는다>로 바꾸는 그런걸 말하는 거지, <이 연필은 짧다>가 <홍길동에게 이 연필은 짧다>가 되는게 아님. <이 연필은 짧다>도 임의의 X에 대해 X는 이 연필인 동시에 짧다>가 되는거고 여기서 문제되는건 짧다 라는 술어임. 모르겠으면 기초논리학부터 다시공부하고오셈
그니까 그 문제되는 술어인 <짧다> 가 구체적으로 무슨 뜻인지를 당연히 알아야 된다는 거다. <죽는다>도 롤을 하는 맥락이었으면 소크라테스라는 닉네임을 가진 유저가 사용하는 챔프가 죽었다는 뜻이 될 수도 있는 거다. 이렇게 당연히 그 맥락을 고려해서 그 술어가 구체적으로 무슨 뜻인지를 파악해야 하는 거다. 연필이 짧다라고 할 때도 내가 쓰기에 짧다는 건지 일반적으로 짧다는 건지 10cm보다 작아서 짧다는 건지 그 의미를 당연히 파악해야 되는거고.
<짧다>에 무슨 하나님이 부여한 절대적인 의미 하나가 고정적으로 붙어 있는 게 아니란 거다.
유동이 쓴 댓글에서 하나만 말하자면 도덕은 객관적일 수 없음 여기서는 객관적이라는 단어보단 다른 단어를 사용하는게 좋을듯. 위 대화를 철학적 논쟁이라고 부를 수 없고 님 말대로 논리적 토론이라 하기도 그런 민망한 대화지만 객관적일 수 없다는 말은 참이 아니라고 하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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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분석적, 메타윤리학적 접근은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내 성향이랑 안맞아서 읽다보면 현타오더라
분석철학 공부하면서 가장 경계해야 할 태도가, 이제껏 아무도 한 적 없는 걸 자기들이 처음 시도한다는 착각이 아닐까 싶다. 이런 글 보면.
뭔 공부를 하든 간에 제대로 반박도 못 하면서 한 줄 찍 갈기며 비아냥대는 태도를 제일 경계해야 될 거 같다.
수학 많이 언급하는데, 수학도 괴델 불완정성 정리 이후로 완전하고 모순없는 체계는 있을 수 없고, 공리를 어떤걸 택하느냐에 따라 체계가 바뀌는거잖아 수학이든 도덕이든 모든 논리든 임의의 약속 위에서 전개되고 심화되는걸 가지고, 절대성이나 객관성이 있다고 하는 건 억지 아니면 눈가리고 아웅 아닌가
월급이 300인데 200만 주고 수학도 절대적이거나 객관적이지 않다~ 이러는 거나 길 가다가 냅다 뺨 후린 다음에 도덕에는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답은 없지요~ 저는 남의 뺨 후리는 게 도덕적으로 옳다고 생각합니다~ 하는 거나 둘 다 어이없는 건 매한가지라는 거다.
별로 어이없진 않은데... 본인의 직관과 느낌을 절대적이고 보편적인걸로 취급하는게 맞나싶음
아 그럼 월급 300인 사람 200줘도 되고, 길가다가 모르는 사람 뺨 후려도 됨?
베너타야 너는 지금 하나의 규칙을 따르는 것과 명제의 의미를 이해하고 사용하는걸 혼동하고 있음. 가령 어떤 직원 월급 급여에 300만원이 아닌 200만원을 입금한 경리가 있다고 한들, 그 경리한테 수학의 외연공리를 따르거나 수학의 절대성을 말하는건 터무니없는거임. 실수나 다른 의도를 살펴보는게 더 자연스럽지.
118.32야 넌 내 비유의 요점을 파악 못하고 있음. 돈가스 말마따나 밑도끝도 없이 수학이 객관적이지 않다고 하면 사람들이 확실하다고 생각하는 일상적인 산수부터 주관적으로 개판이 나서 저렇게 황당무계한 일들이 일상에서 속출할 터이니 그런 주장은 너무나 터무니없다는 거다. 뜬금없이 경리는 왜 찾나?
즉, 상대가 기이한 주장을 했을 때 그 주장을 전제하면 얼마나 터무니없는 결론이 도출되는지를 보여주어 그 주장이 잘못된 것이라는 걸 보여주려고 한 거다. 이걸 귀류법이라고 하는 거다.
1) 수학이 객관적이든 객관적이지 않든 산수를 사용하는 사람은 여전히 사용할거고, 일상의 문제는 그들의 실천에 달려있을거 같다고 말해주고 싶네. 수학이 객관적이라서 일상에서 문제가 안일어나고, 그렇지 않으면 개판이 된다고 말하는 니 주장은 반사실적인데다, 터무니없는 논리적 비약임. 2) 귀류법을 사용한다는건 적어도 니가 여기서 제시하는 형태의 모든 논증들이 배중률을 따른다는 것을 전제해야 하고, 이건 터무니없을 정도로 강한 주장이라는걸 니가 모르는거 같네. 위에서 니 논의가 공허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네, 내가 하고싶은 말도 비슷해.
1) 수학이 객관적이지 않으면 당장에 10억 빚쟁이들 은행가서 1원 입금하면서 10억 - 1원 = 0 다 갚았다 ~ 이럼 되네. 대체 뭔 소릴 하는 거임? 수학이 객관적이지 않으면 사회가 무너지고 경제가 무너지는 거지. 불에 손을 꼭 넣어봐야 뜨거운지 알 수 있냐? 2) 배중률은 사고의 근본 법칙이다. 뭐가 터무니없을 정도로 강한 주장이라는 거임? 오히려 <배중률 전제하는 게 터무니없이 강한 주장이다>라는 주장이 바로 터무니없이 강한 주장이다.
1) 니 유사-논리적 망상이랑 현실이 구분이 안되는데, 그것만큼 위험하고 과장된 생각이 있겠음? 배중률은 사고의 근본 법칙이 아니라, 형식논리학에서 쓰는 단순한 도구 이상도 이하도 아님. 그것도 아주 제한적으로 특정한 학문분야에서만 사용되고, 아무튼 니가 그 주장을 정당화하고싶으면, 배중률이 어떻게 일반화될 수 있는지 입증해. 배중률 자기자신에게 배중률이 적용되는지도 입증못할거다.
2) 위에서 경리이야기 한거랑 니 빚쟁이 이야기가 비슷하다는걸 아직도 못느낌? 사람들이 수학을 객관적이라고 정의하든 그렇게하지않든 사람들은 산수나 기존의 계산방법을 사용할거고, 그게 옳은지 틀린지는 결과에 따라 판단이 될거다.
그리고 니가 말하는 명제와 명제태도의 구분에 대해 덧붙이자면, 내일 비가 오거나 오지 않을것이라는 문장은 명제에, 내일 비가 온다라는 문장은 명제태도라고 말할수도 있을거임. 그리고 전자에 해당하는 명제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 있더라도 공허한 논리적 기호가 할당된 문장일 뿐임. 너는 조너선 하이트가 이러한 명제들을 논증하고 연역하는 학자들과 맞서야한다고 말하는데, (하이트가 내 생각에 동의할지 모르겠지만) 저런 명제들은 애초에 비현실적인 것들이기 때문에, 저기에서 현실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주장이나 결론을 도출하는것 자체가 넌센스다. 그러니까 우리는 저런 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맥락에서 하이트의 입장을 지지할수도 있다. 그럼 감정적이고 직관적인 판단력을 가꿔서 좋은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도와줄수는 있겠지.
아무튼 니가 쓴것들이나 댓글을 읽어보니 논리학의 자명함에 강하게 경도된것 같은데, 나도 그래본적이 있어서 공감은 감. 그렇지만
'산출량'을 정하든 '배중률', '논리' 그외 다수의 개념어들과 일상과 교묘하게 연관된 어휘들을 사용해서 아무리 논증을 한들, 사람들의 일상적 판단과 괴리되거나 그것들을 터무니없게 단순화하는 논의들로 이어질거고, 무엇이 도덕적인 삶인지 논하기 전에 논리에 빌어 도덕을 논하는게 부도덕하다고 말할 수 있다는건 분명해보임. 아무튼 너랑 논리철학논고 쓸때의 비트겐슈타인보다 맹목적인 사유를 하고있다는걸 염두해두길 바람.
1) <수학이 객관적이지 않다는 것>이 정말 진리가 된다면, 세상에 혼란이 찾아온다는 거다. 너는 자꾸 엉뚱한 소리만 하고 있는 게 <누가 수학이 객관적이지 않다~>라고 선언해도 다른 사람들은 걍 계속 객관적으로 수학을 쓸 거고, 수학 계산 결과도 객관적으로 나올 테니까 혼란은 안 온다~ 이러고 있다. 그건 오히려 내 주장을 지지해주는 거다. 내 말이 바로 그거다. 수학이 객관적이라는 거다. 수학이 객관적이지 않다는 걸 정말 진리라고 전제를 하면 혼란이 온다고 하는데 자꾸 어떤 미친 사람 1명이 수학이 객관적이지 않다고 떠들어봐야 세상은 안 바뀐다~ 수학 계산 결과 객관적으로 나오니까 결과로 보여주면 된다~ 이러고 있다.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다.
2) 배중률은 A V ~A 가 항상 참이라는 소리다. 이걸 부정하면 그냥 지가 이성적인 생각이나 의사소통을 안 하겠다는 소리와 다를 바 없다.
그래 뭐 니 생각은 잘 알겠고, 근데 니가 믿는 허깨비에 책임을 지고, 적어도 너는 논리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이 논리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만들지는 않았으면 좋겠네.
님들 객관적인거랑 절대적인거랑 엄청 다른거임 그리고, 객관이 빠진다고 해도 사회적 합의가 남지
이 대화 자체가 진짜 웃긴다 아니 ㅋㅋ 이게 뭐야? 이걸 보고 무슨 생각이 나냐면 바로 물음표 기호가 떠오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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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중간에 영철,미숙,민철이 얘기도 틀린 말이야... 미숙이가 결혼을 했다고 가정하면, 결혼한 영철이는 결혼한 미숙이를 보고 있는건데, 어떻게 결혼한 사람은 모두 결혼 안한 사람을 보고 있다는 말이 참이라는거임?
결혼한 사람 <모두가> 결혼 안 한 사람을 보고 있다는 말이 아니라, 결혼한 사람이 결혼 안 사람을 보고 있는 '경우가 있냐'는 의미였음. 그러게.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겄네.
어떤 사람이 '산 이란 건 없다. 내가 여기서 다 보았다', 라고 외친다면, 밑에 있는 사람들은 '그러면 네가 올라선 건 뭐냐'라고 물을 겁니다. 여기서 합의된 개념들이 절대적으로 중요해지고 그 외의 진짜 객관적인 사실들은 합의란 '주관' 아래에 두어지게 됩니다. 개인적으로 절대적인 도덕적 기준이란 존재한다고 보지만, 그 '합의'가 이에 절대적으로 근접할 수 있는가에 대해선 좀 회의적이네요. 방향성을 따질 순 있겠지만 사회란 어느정도 고착화 되지 않고는(개개인이 그만큼 숭고하고 현명해지지 않는다면) 존속하기 힘들기 때문에 결국 흐름에 거스르게 될 날이 올 겁니다. 이 합의에 대한 메타적 태도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상대성과 객관성은 평행한 울타리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결국 따지고 보자면 '곡률'이 존재하느냐에 대한 담론일까요? 믿음과 종교가 결코 인간과 분리될 수 없는 건 그렇기 때문이지 않을까 합니다.
동의합니다. 비유도 와닿네요
혹시
https://m.dcinside.com/board/reading/335348
내가 쓴 이 글 읽어줄 수 있어? 나는 이 글에서 윌리엄 레인 크레이그를 비판하지만, 정확히 베너타와도 같은 입장을 취하는 글이 될 거임.
이 글 잘 썼더라 이거 보고 바로ㅠ생각나던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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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멍충이라서 잘 모르겠는데...댓글에 자꾸 쓰는 나치어쩌구가 이해가 잘 안돼. 지금 지구에 남아있는 인류가 나치집단같이 다같이 미쳐있는 상태일리는 없는거야 그러면?
ㅇㅇ 인류가 다같이 미쳐있는 상태는 아닌거야.
인류의 구성원은 시간만 흘러도 계속 변하잖아. 전쟁이나 전염병으로 구성원 중 특정 집단만이 사라지더라도 인류는 계속 변하지 않고 미치지 않을 수 있어??
미친 거 맞는 거 같애
실체는 똥이다
근데 하이트 좌파임ㅋㅋ
저도 님의 의견에 어느 정도 동의합니다. 그런데 님이 사람들과 대화하는 태도 자체가 설득보다는 상대방을 깨부수고자 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는, 하이트가 그렇게 지양한 도발적이고 공격적인 태도로 보입니다. 결국 이런 글을 쓰는 것은 싸우기 위함이 아니라 함께 더 생산적인 대화를 하기 위함이잖아요. 우리한테는 키배보다 토론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이 사람들 왜 객관적이란 단어를 이렇게 쓰지? 가나다부터 배워야지
어떤 개념(ex.객관성)이 맥락에 따라 여러 가지 서로 다른 뜻으로 사용된다는 점을 모르는 것은, 가나다가 아니라, ㄱ,ㄴ,ㄷ 도 모르는 거다. 심지어 "과학적 객관성"이라는 용어도 여러 뜻을 갖고 있다(참고:
https://plato.stanford.edu/entries/scientific-objectivity/)
나는 여기서 "객관성"을, 하버마스가 의사소통주체들의 합리적 대화와 상호작용을 통해 도출된 규범은 보편타당하다고 할 때의 그 보편타당성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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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로티처럼 수학과 문학 사이의 경계를 아예 무너뜨려버리면 어케됨
수문학이 되는것이지요. 그거시 아이러니
리처드 로티의 아이러니 타령을 개박살낸 로널드 드워킨의 논문을 읽어보길 추천한다. "Objectivity and truth: You'd better believe it." Philosophy & Public Affairs 25.2 (1996): 87-139.
역시 자유주의자들은 그렇게 응수하는가
스스로 자, 흐를 유. 자유주의는 결국 수문학 (hydrology)이라는것이지요. 이거시 우연성입니다. 여기서 자유주의가 수문학과 만나니 말입니다.
헌법 잘 몰라도 저 책 읽을 수 있음? - dc App
ㅇㅇ 개꿀잼 철학책임.
도덕은 수학이 아니잖아 - dc App
콰인 << 이 사람 책 추천 가능?
번역된 <인식론>, <논리적 관점에서> 다 좋은데 둘 다 절판이긴 함. 큰 도서관에는 있을 거 같은데
공정성을 중시하는 보수주의자는 없나
헌법...베네타...크아아악!!!!!!
애초에 도덕이라는 것 자체가 객관적인 사실로 존재하는 것인지조차 분명하지 않은데 절대적인 도덕이 존재한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도덕의 명제들은 객관적이다. 다음의 글을 참고해라.
https://civiledu.org/m/1538
늘 궁금했던 주제인데 잘 읽어보겠음 ㄱㅅㄱ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