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농촌 근처」
정치도 외교도 이미 시시껄렁하여져
내버려 두는 것이 겨우 매력이어서,
쇠고기 1킬로에 한화 7백원씩의
수출길도 접어두고도 묵히는 나라.
농사가 풍년이 들면 들수록
자꾸만 곡가(穀價)는 떨어져만 나려서
풍년이면 농촌거지가 더 불른 나라에 와서,
아미테스의 얘기책에 나오는
『엄마 찾아 삼만리』 속의 소년같이
도시락 하나 싸들고
수풀 속에 가 먹고 있노라니,
내 정신연령보다도 한살쯤 더 어린
푸른 눈의 어린 아들 손을 이끈
손 큰 양키농부 아저씨가 하나 엉금엉금 걸어와서
"풋고추를 사라"데.
"먹다가 남는 것 있건 우리한테 주구서
이 풋고추 몇개 골라 가지라"데.
"어무니를 찾아서 여기까지 왔다" 하니
"살았어도 결국 나 같을 것이다.
그러니,
풋고추나 어서 먹고 딴데로 가봐라"데.
- 『서으로 가는 달처럼…』(1980)
-
대체로 여행이라고 하는 것은 명승지로 가거나 오지로 가거나, 둘 중의 하나인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실질적인 정보를 얻으러 다니는 것이 아닌 여행에는 흥미가 없어서 후자에는 별 관심이 없는 편이다. 간혹 일부러 후자에 해당하는 여행을 다녀왔다는 사람을 접할 때가 있는데 느낀 바가 대단히 많았다고 소감을 밝히는 경우가 태반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야말로 가지 않은 사람에게는 설명이 안 되는 것이어서 듣는 입장에서는 별로 설득되지가 않는다. 흔히 얘기하는 '독만권서 행만리로'의 '행만리로'가 아마도 전자에 해당할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해서 내가 뭔가를 놓치고 있다는 생각은 안 들지만 그것이 여행자가 느끼는 묘미의 하나일 것이라고는 생각한다.
위의 시는 오지로 떠난 여행자가 으레 느끼는 어떤 씁쓸한 감상을 노래한 것이다. 『떠돌며 머흘며 무엇을 보려느뇨』에 위의 시의 모티프가 되는 일화가 적혀 있다. 풋고추를 파는 가족의 일화는 시인이 실제로 경험한 것이지만 '엄마 찾아 삼만 리'와의 연결과 마지막 연의 대화는 그가 덧붙인 것이다. 서두의 아르헨티나에 대한 서술은 한국전쟁 때 유치환이 외국군의 입을 빌려 읊었던 '뉴-기니아보다도 나쁜 나라/ 적을 골탕먹이게 진정 적에게 내주고 싶은 나라'(「나의 모국」)라는 구절을 연상케 하는데 이 시에서는 입장이 역전된 셈이다. '엄마 찾아 삼만리'의 주인공이 엄마를 찾듯이 여행자는 무언가의 교훈을 찾고자 오지로 여행을 온다. '살았어도 결국 나 같을 것'이라는 답에는 해석의 여지가 열려 있다. 오지에서 얻는 여행자의 감흥이래야 실제 오지살이와는 유리된 것일 뿐이라는 뜻일까, 아니면 오지에서 얻는 감흥은 양지에서의 그것보다 영양가가 없다는 뜻일까?
이런 냉소적인 시도 썼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