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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의 계몽철학자들은 신격을 배제한 인간성에 기초한 사회를 건설하고자 했다. 따라서 신격에 근거한 도덕 또한 인간성에 기초하여 새롭게 건설할 필요가 생겼다. 도덕의 기초란 도덕의 존재가능성을 의미한다. 계몽철학 전의 도덕은 하느님의 권위아래 존재했으나 근대사회에서는 인간성에 기초할 필요가 있었고 계몽철학자들은 이를 시도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인간성에 근거해 도덕에 기초를 새우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니체와 같은 비판철학자의 등장으로 인간성 같은 불완전한 기초에서는 도덕은 상대적 가치로서밖에 존재할 수 없음이 폭로되었다. 일정한 원리안에서 도덕의 체계적 정합성을 완성하는 것은 가능할 것이다. 다만 그 원리를 세움에 있어서 그어떤 근거도 일반명제화되는 메타명제의 공격을 버틸 수 없다.
마치 윤리와 사상 교과서에 나오는 롤즈나 J.S 밀의 논의를 보는 듯하다. 이들은 자유나 공리를 추구해야할 근거를 제시하지 않는다. 그걸 추구하는 것은 전제로 논의를 이어갈 뿐이다.
저자는 도덕의 기초를 세우기 위한 하나의 시조로 맹자의 철학과 계몽철학자의 철학을 수평적으로 비교한다. 밀그대로 비교하고 끝나기 때문에 공부는 될지언정 새로운 대답을 이뜰어내진 못한다. 물론 공부는 ㅈㄴ 잘되니까 꼭 읽어보길 바란다.
철학은 현실적으로 철학인것과 아닌 것의 구분을 포기했다. 그렇다면 도덕철학은 그 구분을 유지할 수 있을까? 맹자와 루소의 비교에서 가장 눈에 띠었던 지점은 주체와 대상의 이분법이 맹자를 비롯한 중국사상에서는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책에 나오는 부분은 아니지만 노자가 무위자연이라고 할때 자신은 아무것도 안하는 게 아니라 하던거 하라는 걸로 보인다. 주체의 행위가 세계의 이치와 분리되지 않기 때문에, 그러니까 인간은 자연의 바깥에 있지 않기 때문에 주체로서의 인간과 대상으로서의 자연의 이분법이 작동하지 않는다.
나는 진심으로 논리학이 도덕법칙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계속 써왔고 유용하기 때문에 존속하는 것일 뿐이지, 특별히 절대성이나 객관성을 담보한다고 보지 않는다. 수학자들이 구성주의니 뭐니 신경 안쓰는 것과 마찬가지다. 걍하던거 하는거지.
도덕의 기초를 위한 동서양의 비교는 역설적으로 도덕에 기초가 필요 없어보이기도 하다. 막말로 성리학의 나라인 조선도 백성의 풍족하고 평안한 삶을 명분으로 세워졌으나 꼭 그게 목적이여야할 절대적 이유는 없다. 그냥 그게 권력을 잡기 가장 좋은 명분이었을뿐이다.
책장정리하다 봐서 앞부분만 다시 읽어봄. 유익하니까 관심있으면 한 번 보도록.
뭔가 이치에 맞는 소리를 모으다보니까 논리학이 된 거 같기도 하고 이치에 맞는 행위란게 도덕같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