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현산의 프랑스 상징주의시 강의집인 <전위와 고전>을 보면 한국 최초의 번역시집이면서 최초의 현대 시집인 김억의 <오뇌의 무도> 얘기가 나오는데 여기에 베를렌의 시 10편이 실림
황은 이 베를렌 시 번역을 통해 한국의 시어가 그 전까지와는 다른 양상을 보여주게 됐다고 평가함
즉 번역이란 새로운 언어와의 조화를 통해 기존과는 다른 관념과 현대 문학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었다는 거고 소월도 베를렌의 시어에서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고
산문도 문학언어에 영향을 많이 끼쳤지만, 산문보다 시가 갈 수 있는 언어적 실험의 지점이 훨씬 높기에 전위적 측면에서 번역 시가 문학언어의 발달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 건 당연한 일이었던 것
물론 이때의 한국 번역은 대부분 일본어 중역이라는 한계는 있음
일본 또한 그러한 번역 과정과 정착을 통해 문학적으로 우리보다 앞서 나갈 수 있었던 건데 일본은 우리나라완 달리 번역 문학 번역 작업에 대한 비중과 평가가 매우 높음. 오래 전부터 번역문학에 주는 상이 따로 있을 정도고.
아쿠타가와 류노스케가 지적했듯 일본 문화의 큰 특징은 수용성과 자국 문화와의 조화라는 걸 보여주는 현상이지. 얼마전에 펀딩 얘기 올라왔던 나카하라 주야 시집들이 그런 특징을 잘 보여주는데 일본에서 시문학 쪽으로 가장 권위가 있는 게 나카하라 주야 상일 정도니까 뭐
번역이 의미 없는 거랑 안 읽는 것은 좀 다르지 않나? 소설에서도 번역 차이는 느껴지는데, 시는 더 심하면 심했지 덜하진 않을 테니 독자 입장에서는 좀 위험 부담감이 있지,,,
외국시 번역 타령 하는 애들은 그냥 단테의 신곡 번역 아무거나 주고 읽으라 그러면 됨. 어떤 번역으로 읽어도 압도적인 내용이라는 거에 이견이 없을 거임. 번역으로 내용이 후져지는 게 아니라 원래 후진 내용인 거임
번역된 문장으로는 라임이나 운율이 안 느껴지니까.. 시 번역이 의미 없다고 까진 못하겠지만 한계가 확실한 건 맞지 어쨌거나 산문 번역이랑은 다름 시어에는 번역이 포착 못하는 게 있단 거림~~
근데 이 글이 말하는 것처럼 외국어로 된 시어의 전위성이 ‘국문학’의 가능성을 확장했다는 건 일리 있는 말이라고 생각함 (그치만 이건 ‘번역된 시가 그 원어의 느낌을 전달하기에 충분한가’랑은 좀 포인트가 다른..
번역이 안 되고 자국어로 된 시도 본질은 결국 이렇기에 뭐 심각하게 과몰입할 필요없음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reading&no=655192
의미가 없진 않지만 읽는 재미가 훨씬 떨어지는 것도 어쩔 수 없지 저런 포인트도 시인이 아니면 느끼기 힘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