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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4장

18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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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람의 군사 지도자로서의 역량과 종교 지도자로서의 정통성을

모두 보여주는 두 가지 이야기가 대단한 속도감으로 펼쳐 집니다.

다소 차분하고 관조적이며 새로운 인물의 등장 전엔 반드시 족보와 내력을 설명하던 형식과는 달라,

냉정히 읽어보면 이질감이 심합니다. 매 절마다 낯선 인물들이 앞을 다투어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14장 전반부는 모두 '왕' 이라고 표현된 이들이 이끄는 여러 세력 사이의 전투가 벌어집니다.

이 전쟁에서 패한 소돔 땅에 살던 롯은 포로가 되고 재산까지 모두 빼앗겨 인질이 되지만,

이 소식을 들은 아브람이 소돔을 적대한 '왕'들과 전투를 벌여

'모든 빼앗겼던 재물과 자신의 조카 롯과 그의 재물과 또 부녀와 친척을 다 찾아' 옵니다.


아브람의 병력은 '집에서 길리고 훈련된 자 318명'이었다고 확실히 쓰여있어

우선 그가 맞서 싸운 '왕'들은 부족 이상의 규모는 아니었음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또한 여러 왕이 다스리는 지역은 현대로 보면 터키부터 이란, 이라크, 요르단, 사해 인근의 소돔과 고모라까지 다양합니다.

반경 수백 km를 넘나드는 지역에 거주하던 왕들이 서로 동맹을 맺고 배신할 정도로 이해관계가 얽힐 가능성,

또 이렇게 작은 규모의 민족들이 소돔 인근에 모여 전투를 하기 위해 필요할 기동력과 보급 능력을 갖출 확률은 어느 정도일까요.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이 전쟁은 과장되었거나

아예 존재하지 않은 사건을 창작한 것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일 것입니다.

아브람이 동원한 전쟁을 할 수 있는 성인 남성은 318 명이었으니

가족까지 포함해도 천 명 내외일 무리를 이끄는 아브람에게 진 왕들은

창세기 14장 이후 부분 어디에서도 보복 전쟁을 일으키거나 서사의 배경으로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이 전쟁이 만약 사실이었다면 아브람은 중동 지역 전체를 통일한 제국이나,

적어도 떠돌이 생활은 할 필요가 없는 국가를 세운 태조가 되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아브람이 왕들을 이긴 가장 중요한 공간적 배경인 '단'이라는 지명이,

최소 사사들의 시대 이후에 붙여진 지명이란 사실은 특히 치명적입니다.



이 안타까운 가공의 군담 설화 뒤에 등장하는 '멜기세덱' 역시 갑작스럽긴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14장 17절 이후는 18~20절을 빼고 읽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렇게 읽으면 소돔 왕이 강탈당한 백성과 재산을 되찾아온 아브람을 환대하고

그에게 전리품을 가질 것을 제안하는 자연스러운 장면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외한 부분을 포함해 읽는다면 군사극의 맥락이 다시 훼손되어,

앞서 말했듯 그간의 서술방식이던 족보나 배경 설명 없이 갑자기 등장한 '멜기세덱'의 부자연스러움이 도드라집니다.


멜기세덱의 정체는 유대교, 기독교를 통틀어 많은 이에게 의문이었기에

차후 예루살렘이 될 지역을 다스리던 왕이었다, 천사 미카엘이었다, 신약의 그리스도를 예언하거나

심지어 예수와 동일한 존재였다 등 무수한 이론이 다수설 없이 난립하고 있습니다.

성서의 많은 부분이 그렇듯 합리적인 추론을 도울 고고학적, 문헌학적 근거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해당 부분을 차후에 끼워 넣은 인물의 정체는 파악하기 어려우나,

그가 이 위작적 삽입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목적이 무엇이었는지는 이야기 속의 효용과

이후 성서 속 멜기세덱을 인용한 부분을 통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일어난 강력 범죄의 용의자를 찾는 것이 아닌 다음에야,

위작의 범인이 아닌 위작의 이유를 먼저 생각하는 접근이 '멜기세덱' 삽화의 의미를 파악하는데 더욱 효과적인 접근 방법일 것입니다.



평범한 군사적 승리담이었던 창세기 14장은, 멜기세덱의 이야기를 통해

1. 출애굽기 28장에서야 등장하는 '제사장'이라는 단어를 먼저 사용해서,

여호와가 아론과 그의 자손들에게 부여한 자격보다 더 정통성이 있는 제사장이 이미 존재했음을 보여줌

2. 그리고 아브람은 위와 같이 더 유서 깊은 제사장의 축복과 인정을 받은 존재이며,

3. 그런 제사장에게 아브람은 십일조를 바쳐, 십일조을 내고 받는 행위와 그것을 받는 주체의 정당성을 부여함.


등의 목적을 이루려 하고 있습니다.

이는 창세기가 작성된 시기를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의해 멸망한 시기(기원 전 6~5세기),

혹은 이스라엘과 유다로 분열되었을 때(기원 전 9~8세기)로 보는 다수설에 비춰보면 더욱 큰 설득력을 가집니다.


이제 멜기세덱을 인용한 창세기 이후의 성서 속 멜기세덱을 살펴 봅시다.

성경 중 멜기세덱이 등장하는 것은 지금 논의 중인 창세기 14장, 시편 110편, 히브리서 5장부터 8장의 단 3곳 뿐입니다.


시편 107편부터 150편 까지가 바벨론에 잡혀간 유대 민족이 이스라엘로 귀환하던 시기에 지어졌다는 것은 공인된 사실입니다.

노래의 내용도 대부분 국가적 재난과 고난을 극복하고 이겨내겠다는 각오나 감사로 이뤄졌습니다.

이 시편 속에서 멜기세덱이 인용된 맥락 또한 당연히 위의 1, 3을 반복해,

귀환 후 재건된 '제2 성전'과 새로운 제사장의 정당성을 강변합니다.


히브리서 역시 '예수 그리스도' 라는 유대인 입장에선 낯선 존재가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 이며,

창세기부터 예언된 메시아임을 무려 4장의 긴 설교로 설득하고 있습니다.

차후에 이야기하겠지만 이는 사도가 아니었던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활용한 기초 논리 중 아주 중요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절도 피해를 넘어 도둑에게 인질로 잡혀갔거나,

혹은 깊은 갈등 끝에 분열된 가족의 재결합과 부흥을 위해 할 수 있는,

혹은 방치 속에 고통받던 자신들 앞에 갑자기 나타난 낯선 구원자를 의심하는 나머지 구성원 앞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우선 훼손된 족보와 설화를 재구성해 자신의 가문과 집안이 얼마나 위대하고

대단한 이상 위에 이어져 내려온 근본있고 능력있는 혈통인지를 증명하는 것입니다.

혹은 처음 보는 이 구원자가 사실은 의외로 가까운 촌수와 대단한 능력을 가진 사람임을 설득하는 것일 겁니다.


논의의 범위를 다시 창세기만으로 한정해 봅시다.

창세기 14장에서의 갑작스런 멜기세덱의 등장으로 인해 히브리인의 시조인 아브람은

중동의 거의 모든 국가의 왕들을 300명 남짓한 병력으로도 무찔렀던 강력한 군장이 되었습니다.


여전히 적대적인 이민족들에게 둘러쌓여 그들과 싸우며 이스라엘을 재건할 어려운 과업을 앞에 둔

이스라엘 민족에게 용기를 줄 수 있을만한 윤색입니다.

게다가 재건되어 가는 성전 안팍에서 불리는 시편의 노래는

지금 이 찬양을 인도하는 새로운 제사장들이 이미 명맥을 잃은 레위-아론 후손보다

더 전통성있는 멜기세덱의 적통임을 강조합니다.


이 논리라면 재건기의 이스라엘 백성은 이 새로운 제사장들에게 십일조를 바쳐야 합니다.

그래야 다시 종교가 중심인 국가, 혹은 유다와 이스라엘의 분열을 이겨낸 통일 국가의 재건이 가능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시대적 필요성과 절박함을 가진 저자에 의한 위작적 삽입은, 그 서툰 솜씨로 인해 저자의 의도를 투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개인적 추측을 하나만 더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앞선 부분에서 멜기세덱의 등장 부분을 제외하면 14장의 이야기의 흐름이 더 자연스러워 진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아예 14장 자체를 제외한다면 13장에서 아브람이 헤브론에 자리를 잡고 단을 쌓아 제사를 드린 후,

15장에서 여호와가 아브람에게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라는

유명한 축복을 내리는 이야기가 더욱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그리고 조금 더 과감하게 나아가 14장 전체가 후대의 위작 삽입임을 인정한다면,

19장에서 다시 등장하는 롯이 여전히 소돔의 주민이었던 오류도 자연스럽게 해소됩니다.

14장 전반부의 전쟁이 사실이라면, 물질적 축복과 안정을 얻으려 소돔 땅을 택했다 전쟁 포로가 되는 치명적인 위험을 겪었던 롯이,

소돔의 적대국을 모두 이길 정도로 강력했던 아브람에게 구원을 받은 후

다시 삼촌을 떠나 다시 삼촌보다 약한 소돔의 주민이 된 이유를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