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5장
17 해가 져서 어두울 때에 연기 나는 화로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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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사회에서 자녀, 정확히는 아들을 출산하지 못했다는 것은 어떤 의미였을까요.
문득 시편 127편의 비유가 떠오릅니다.
4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5 이것이 그의 화살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그들이 성문에서 그들의 원수와 담판할 때에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
부족 및 가족 단위의 충돌과 살육이 빈번했으며, 농경이든 목축이든 노동력 및 전투력이 필수적인 산업이 유일한 생존 수단이었을 시대에 가족 특히 아들의 중요성은 현대인은 쉽게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컸을 것입니다.
다시 아브람 앞에 나타난 여호와 앞에서 아브람은 자신의 가장 심각한 결핍을 고백하고 신은 그에게 후손을 약속합니다.
다음 장면에서 여호와는 아브람을 이끌어 밤하늘을 보여줍니다.
해가 지면 그것 외엔 쳐다볼 것이 없었을, 위험과 혼란이 가득한 어둠뿐인 세상을 비추나 당연히 손에 닿지 않을 정도로 머나먼 별들을 밤마다 바라보았을 아브람, 혹은 히브리 민족의 마음을 상상해 봅니다.
현실에 만족하지 못한 자들은 하늘을 바라봅니다. 비구름이나 바람의 향방처럼 현실에도 쓸모있는 전조가 아닌, 현실이 충족해 줄 수 없는 결핍과 공허를 가진 이들은 밤하늘을 바라봅니다.
만약 아들을 낳는 것이 아브람의 가장 큰 소망이었다면 아마도 그는 대도시를 떠나지 않았거나 사라 외의 후처를 이미 두고 지상에서의 풍요와 복을 약속하는 다신교 문화권 안에 적당히 안주하여 살아갔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브람, 혹은 그로 상징되는 가나안 출신임에도 수천 년째 나머지 중동 문화권에 섞이지 않는 이 특이한 민족은 다소 비극적인 인간 조건에 대한 깊은 성찰과 비관적인 현실관을 바탕으로 유독 까다롭고 어려운 도덕과 이상을 추구하는 삶에 대한 갈망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다신교는 풍족한 자연 속에서 다양한 동식물과 기후 같은 자연의 삼라만상이 서로 조화를 이루는 모습을 볼 수 있는 환경에서 비롯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중동, 그것도 선주민에게 비옥한 지역을 빼앗긴 떠돌이 소수 민족이 겨우 자릴 잡은 황량한 사막이나 우기에 의존하는 초원에서 살았던 민족이 보는 자연과 현실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혹독한 환경, 낮에는 살을 태우는 태양으로, 밤엔 하늘을 가득히 채운 별들로 존재감을 강력히 드러내는 절대적 의지와 힘. 하지만 하늘과 땅의 거리만큼 인간과 절대자의 거리는 멀기만 합니다. 절대자가 자신을 방관하는 이유를 찾으려던 인간이 인류의 큰 죄악으로 인한 절대자의 분노를 상상하는 것은 자연스럽습니다. 부모가 이유를 설명하지 않고 어린 자녀를 집 밖으로 내쫒는다면, 아이는 문 밖에서 떨며 자신의 조악한 죄악들을 수없이 상기하고 반성할 것입니다.
다신교 문화권에서는 믿던 신이 풍년과 복을 주지 못하면 변절해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은 흔한 일입니다. 애니미즘이나 샤머니즘의 신도 비슷하게 자연물이든 천체든 동물이든 먼저 그 힘이나 숭배자에게 주는 효용성이 증명되야 인간은 그를 숭배했습니다.
하지만 아무 것도 증명하지 못한 신. 거창하고 가슴 뛰지만 가능성은 희박한 공수표 같은 약속만 제시한 신에게 이끌려 아브람은 지금 황야의 밤하늘 아래 있습니다. 그 신이 완벽하고 절대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아브람과 그의 민족의 가슴 속 이상과 염원이 그토록 강하기 때문입니다.
아브람은 아직 자신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은 신을 믿었고,
신은 그런 아브람의 믿음 자체를 '의'로 여깁니다.
대가 없는 믿음을 보인 인간과, 역시 행위나 업적이 아닌 마음가짐 자체를 '의'로 여기는 신의 만남.
그리고 레위기 시기에 정립된 번제와는 전혀 다른 특이한 방식의 제사 겸 언약식이 치뤄집니다.
큰 흑암과 어둠으로 표현된 망아와 두려움, 둘로 쪼개진 동물 사체 사이를 오가는 불의 형상을 한 신. 누구나 볼 수 있는 나무나 돌로 만든 우상이 아닌 횃불, 떨기나무를 사르지 않는 불, 불기둥 등의 간접적 형태로만 나타나는 신.
당시 중동은 물론 전세계적으로 동물의 사체를 태워 바치는 제사는 흔했습니다. 하지만 동물 사체를 둘로 가르고 그 사이를 걷는 것은 제사보단 동등한 주체 사이의 약속의 의례였습니다. 우리가 서로에게 한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우리도 이 동물처럼 죽어 쪼개지는 것을 감수하겠다는 엄숙한 맹세.
저는 이 장면이 아브람에게도 신이 간절히 필요했지만, 여호와에게도 아브람이 간절히 필요했다는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기원 전 15세기 무렵의 조로아스터교, 기원전 14세기 무렵 이집트의 파라오였던 아케나텐에 의한 다신교에서 태양신 라만 섬기는 유일신교로의 종교개혁 등 세계적으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유일신 종교의 명맥은 신기하게도 중동지역에서만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조로아스터교는 토착 신앙을 가진 이민족까지 쉽게 포용하고 지배하려던 새로운 왕조의 출현 때문에, 이집트 아케나텐의 개혁 역시 다신교에 익숙했던 대중과 사제 집단의 반발로 쇠락합니다.
숭배자가 없어 외로웠던 유일신 여호와가
외롭고 높은 삶의 이상을 고집하는 아브람과 동등한 입장에서 계약을 맺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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