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행위로는 곧바로 이해하고 앎이 되어 뇌에 축적되지 않아.
이 얘기는 인간의 `기억'에 관해서 탐구해야 할 문제라서 일단 넘어가고
본론을 조금 겉돌면서 말하자면,
나는, 좋은 책이란 자주 덮이는 책이란 말을 믿는다.
독서란 단순하게 기호를 읽어내는 연산 작용이 아니라
이해를 하고 삶에 적용하며 경험에 대입하는 과정을 거쳐서
내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보거든.
따라서 읽은 만큼 덮고, 서고 걷고 움직이면서 사색하는 게 더 좋은 독서라고 믿는다.
비유를 지적하는 건 비겁하고 무의미한 거라 생각하지만
독서왕의 비유가 본론을 아우르고 있으므로 지적하고 비판하지 않을 수 없어
최대한 본론에 근접하여 말할게. 본론을 말하자면,
나비가 되기 위해 번데기 과정을 거치듯 독서를 할 때 외부와 단절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정말로 그게 이로울까? 자신이 책을 제대로 읽은 건지 아닌지는 어떻게 알 수 있지?
다 읽고 나비가 되어 세상에 나왔을 때 비로소 자신이 읽은 게 틀렸다는 걸 깨닫게 된다면?
나비는 번데기나 애벌레로 다시 되돌아가지 못해.
차라리 번데기에서 세상 궁금해 잠깐 나온들 그때 세상을 보고, 부딪치기도 하며
세상을 알고, 다시 번데기가 되는 과정으로 돌아가 나비로 우화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내 생각에 독서는 애벌레가 나비로 변하기 위한 번데기 과정이 아니라
애벌레가 나비로 우화하기 위한 영양 공급이라고 생각한다. 즉 식사와 같은 거지.
독서는 밥이야. 음미하고, 즐기고, 나누기도 하면서, 영양을 보충하고,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하는 밥.
그래서 좋은 책은 영양가 있는 밥이지. 간식도 있고 가끔은 군것질을 하는 것도 나쁘지마는 않지.
추가)
갤질을 어떻게 이용해야 한다는 절대 원칙 같은 건 없어 모두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고 떠드는 거지
자기 양심에 맡기면 돼. 어차피 책임은 자기가 져야 하는 거고 갤질을 하면서 자멸을 하든지 발전을 하든지
다 자기가 하는 만큼 자신에게 돌아가는 거니까.
공감합니다. 독서라는 행위 즉 밀실에서의 사유와 사색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광장이라는 현실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얽히고 섥힘으로써 이 두 가지가 유기적으로 상호작용을 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 인간에겐 밀실과 광장 모두가 필요합니다.
비유는 비유일 뿐이지 내가 하려던 말은 책 조금 읽고 아는 척하는 걸로 시간을 낭비하지 말란 거다. 이해는 완전히 못하더라도 책은 다 읽고 떠들라는 거지.
알기 쉽도록 비유를 했는데 오히려 혼선을 만든다면 좋은 비유란 생각이 들지 않아. 비유에 관한 건 본론이 아니니 넘어가자. 책 조금 읽고 아는 척하는 게 어때서 그래? `책 조금 읽고 아는 척 한다'는 말에는 상대를 깔보는 뉘앙스가 있는 거 같은데? 상대방이 정말 책을 조금 읽었는지 어떤지는 페이지를 근거로 들 수는 있지만, 그의 깊이와 넓이는 어떻게 잴 수 있을까.
말하는 걸 보면 알지 대화를 해봐도 알 수 있고 너도 "읽는 행위로 바로 뇌에 축적되지 않는다. 독서는 단순히 기호를 읽는 연산 작용이 아니다"고 했듯. 책 조금 읽고 아는 척? 그게 제대로 읽은 걸까?
아는 척하는 과정은, 삶에 적용하여 경험에 대입해보는 과정이라 할 수 있어. 세상과 부딪쳐보는 거며 세상을 알아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지. 대답이 됐을까?
ㄴ아는 척에 대해서 긍정적인 관점으로 보는 거 같은데 대부분의 아는 척하는 사람들은 허세에 가득 차 자신이 얻은 지식에만 목메고 새로운 정보는 거부함. 그런 아는 척이라면 비난 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
배고픈독린이/ 그렇게 비난할 수 밖에 없는 각종 조건을 덧붙이면 비난이 마땅할 수 밖에 없지. 그건 단순히 `아는 척하는 사람`이 아니라 `허세에 가득 차 자신이 얻은 지식에만 목메고 새로운 정보는 거부하는 사람' 인 거니까. `아는 척을 한다'는 공통점을 갖더라도 두 사람은 다른 경우인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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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사실이 그렇다. 학부생 꼬꼬마 때 지가 엄청 많이 아는 것처럼 착각하고 꼴값떨다 뒤지게 처맞는 과정을 수없이 거쳐야만 깝칠 때 안 깝칠 때 분간하는 능력도 생기는 거지. 수련하면서 뚜까맞는 과정 없이 고수가 되겠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