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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그는 전생에 트라클이었던지, 아니면 아마도 먼 옛날에 살았던 오스트리아 작가처럼 아직도 너무나도 절망적인 시를 쓰려고 마음먹은 사람 같았다. 그리고 그는 이론의 여지 없이 대작보다는 소품이라 할 수 있는 작품을 선호했다. 그는 『소송』 대신 『변신을 『모비딕』 대신 필경사 바틀비』를, 『부바르와 페퀴셰』 대신 『순박한 마음』을, 『두 도시 이야기』나 『피크위크 페이퍼스』 대신 『크리스마스 캐럴』을 골랐다. 너무나 슬픈 역설이야. 아말피타노는 생각했다. 이제는 심지어 책을 좋아하는 약사조차도 위대하고 불완전하며 압도적인 작품들, 즉 미지의 세계 속에서 길을 열어 주는 작품들을 읽기 두려워해. 사람들은 위대한 스승들의 완벽한 연습 작품만 골라서 읽고 있어. 마찬가지 이야기지만, 그들은 위대한 스승들이 연습 경기 하는 걸 보고 싶어해. 하지만 위대한 스승들이 무언가와 맞서 싸울 때, 그러니까 피를 흘리며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 악취를 풍기면서 우리 모두를 위협하고 두려움으로 사로잡는 것과 맞서 싸울때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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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4분기는 잃시찾을 읽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