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읽고

몇일 뒤에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독본을 읽었는데,

일단 각 책의 목적성이 비슷할 수 있다는 점은 둘째치고, 아무리 하루키가 최대한 독창성을 유지하기 위해 미시마의 소설독본을 읽지 않았다고 해도, 미시마의 '소설독본'을 읽다보면 그 유사성과 의도에서 이것이 단순히 나의 억측이 아님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하루키가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주로 제시한 에피소드나 주제들이 있는데 , 이 주제들에 대해 굉장히 신박하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아무리 표절의 생각을 떨쳐내려고 해도, 하루키가 소설독본에서 소설가끼리 만났을 때 벌어지는 일이라던가,무엇을 위해 쓰는가, 현실과 가상의 경계에서 어떻게 생각하며 살아가는가, 쓰는 것에 대한 태도 등등에서 그 결이 크게 일치한다.

나는 감히 하루키가 미시마의 소설독본을 읽었다고 확신 할 수 있다. 두 책을 읽어보면 다들 무슨 말인지 알 수 있다. 하루키는 의식 안하면서 쓸려했겠지만 무의식에서 나오는 결이 너무 비슷하다.
하지만 얄팍한 대중들의 저속한 몰아세우기,꼬투리잡기에 이미 몸서리를 쳐서 사람도 잘 안 만나고 공개활동도 거부하는 하루키는 그것을 읽지 않았다고 부정할 것이다.

애초에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자체도 소설독본의 대항마, 나름대로 하루키 자신이 자신의 뛰어넘을 수 없었던, 항상 비교당하던 천재 미시마에게 대응하기 위해 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주제 자체도 너무 비슷하기에 굳이 이것을 안 볼 이유도 없다.

다만 하루키가 미시마 얘기만 나오면 무의식적으로 미시마를 별로라고 공격하는 모습에서 하루키의 심리적 열등감이 보여서 재밌기도 하다.

그런 열등감이 없던 시절 미시마의 나쓰코의 모험을 토대로 양을 쫓는 모험을 썼는데, 추후에 자신이 나름 거대한 위치에 오르면서 끊임 없이 비교당하다보니 아예 미시마 자체를 부정하고 공개석상에서도 미시마를 일문학 거장중에서 가장 별로라고 깠다.

하루키 특성상 남에 대해 평가하는 것에 염증을 느끼고 , 본인 스스로도 자신이 경쟁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하며 남 얘기 자체를 안 하는 사람인데 , 이상하게 미시마 얘기만 나오면 갑자기 뭐에 홀린 사람 마냥
"전 미시마 책을 읽지 않습니다. 외국 작가의 책만 읽어요. 외국에 나와 살 때 일본책을 집어본적이 없어서 뭐가 유행하는지도 모릅니다. 오에를 가장 높게치고 미시마가 가장 아래라고 생각합니다."
라고 하는 것도 참 재밌다고 생각한다.
하루키도 그 무의식 내면에는 깊은 열등감과 질투심,경쟁심이 있는데 그것에 사로잡히면 자신의 고통만 증가시키니 애써 그것을 피하고 자신에게 집중하는 컨셉을 잡은 것 같다.


추가로 소설독본 에서 가장 충격받았던 것은,
미시마가 봄눈 시리즈인 풍요의바다 3권까지 쓰고 소설독본을 써서 그 후기를 남겼는데, 3권을 쓰고나서 엄청난 인생의 고통을 느꼈고 4권까지 쓰고나면 어떻게 살아야될지 자신도 모른다는 식으로 썼다는 것이다.

작품에 너무 몰입하고 이미 현실과 가상을 같이 갖고 살아가다가 소설을 쓸 때는 완전히 가상에 몰입해서 뭐가 현실인지 뭐가 가상인지 분간이 안가기도하고,
그것이 그저 종이쪼가리로 남는 '현실'을 마주하는 것,
그리고 그저 작품을 남기고 작가가 사라져도 작품으로 남는 것을 통해 그의 죽음을 암시했다.

마지막으로 미시마의 소름 돋는 문장을 남기고 글을 마친다.
"새벽의 절을 탈고했을 때 내가 느낀 형언할 수 없는 불쾌감은 모두 나의 이런 심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러나 아직 한권이 남아 있다. '이 소설이 끝나면'이라는 말은 지금 내게 최대의 금기어다. 이소설이 끝난 뒤의 세계를 나는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며,그 세계를 상상하기 싫기도 하고 두렵다. 거기서 결정적으로  이 부유하는 두 현실이 결별하고 한쪽이 폐기되고 한쪽이 작품 속으로 감금된다면, 나의 자유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유일하게 남겨진 자유는 그 작품의 작가라 불리는 일일까. 마치 인연도 연고도 없는 사람한테 부탁을 받아, 어쩔 수 없이 그의 자식의 대부가 되듯이."


그리고 그는 마지막 권을 완성하고 할복자살 한다.

 

- dc official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