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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0장

7 이제 그 사람의 아내를 돌려보내라 그는 선지자라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네가 살려니와 네가 돌려보내지 아니하면 너와 네게 속한 자가 다 반드시 죽을 줄 알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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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2장과 비슷한 아브라함의 소심함과 믿음 없음에서 비롯된 거짓말이 반복됩니다. 여전히 중동 지역을 방랑하는 아브라함은 그랄(현대의 이스라엘 남부 지역)을 다스리는 왕인 아비멜렉 앞에서 한번 더 아내 사라를 누이동생이라고 말합니다. 똑같은 이유로 이집트에 큰 재앙을 내렸던 여호와는 아비멜렉의 꿈에 나타나 그를 꾸짖고 왕비를 포함한 모든 왕의 여성들의 출산을 막습니다. 왕들은 모두 여호와의 권능에 굴복하고 아브라함에게 많은 재산을 줍니다. 


성경 서사의 여러 특징 중 하나는 의외로 영웅적 인물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미성년자용 위인전의 미화처럼, 다른 전설이나 경전 혹은 영웅담 속엔 비범함과 승리와 완벽함만을 가진 인물이 무수히 등장합니다. 한반도의 건국 신화나 전설 속에도 하늘에서 내려오고, 알에서 깨어나며, 솔방울로 수류탄을 만드는 인물이 그득하죠.


하지만 이스라엘 역사 상 가장 위대한 왕이었던 다윗은 충신 우리아의 아내와 불륜을 벌이고 그녀가 임신하자 우리아를 일부러 가장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는 장소로 보내 죽여 버립니다. 솔로몬 역시 지혜의 왕으로 칭송 받고 건축물 형태의 제1의 성전을 완성한 자이지만 말년에는 이방 여자들을 왕비로 들이고 그녀들이 믿는 우상을 숭배했던 사실 역시 성서에 그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유다 지파의 시조인 '유다'는 며느리 다말과 관계를 맺어 예수의 족보의 한자릴 차지하는 베레스를 낳았고, 매춘부였던 라합 역시 예수의 조상입니다. 구약 성서에서 가장 유명하고 대표적인 의인으로 인정받는 사례만 가져와도 이 정도 입니다. 


공과를 공정하게 다룬다는 이해 가능한 범주를 넘어선 이런 냉엄한 서술의 이유는 무엇일까요? 수천번 혹은 수만번 이런 성서를 옮겨 썼을 수많은 유대인 혹은 기독교 신자들이 이 믿음의 선조들의 치부를 수정하거나 정당화하지 않고 내버려뒀던 이유는 또 무엇일까요? 


보수적 신학자나 목회자들은 치부를 감추지 않는 엄밀한 서술방식이 곧 성서의 모든 내용이 진실임을 반증하는 근거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무리한 주장이긴 하지만 설득력이 전혀 없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그리고 이 질문은 지금 성경을 다시 한 번 정독하며 모든 장마다 일종의 독후감을 쓰려고 마음 먹은 제가 답을 얻고자 하는 몇 가지 핵심적 의문 중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두 번째로 주목할 것은 여호와가 아비멜렉왕에게 아브라함을 소개하며 사용한 '선지자'라는 단어입니다. '나비((נביא)'라고 읽히는 히브리어 단어는 구약 전체 및 이사야, 예레미아 등 대표적 선지자들을 지칭하던 단어와 똑같습니다. 선지자들의 시대 한참 전에 아브라함이 여호와에 의해 선지자로 불렸다는 점, 게다가 그는 자기 민족만이 아닌 아비멜렉 같은 이방인들을 위해서도 기도할 의무를 가진 존재였다는 점은 무척 의외입니다. 


후에 읽게 될 '여호수아' 시대와 그 이후의 세계관, 그러니까 이방인들을 위해 기도하기는 커녕 어린아이와 가축 한 마리까지 모조리 학살하라고 명령하는 여호와와 이를 충실히 실천하는 이스라엘 민족의 모습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입니다. 이방 민족까지 포용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던 여호와와 그의 신도들이 어떻게 피에 굶주린 인종청소를 감행하고 이를 자랑스런 승리의 연대기마냥 기록하도록 변했는지도 앞으로 생각해봐야 할 질문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