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철학 체계가 즉시, 그리고 직접 적용되어야 한다고 말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다음 둘 중 하나는 필요하다. 하나는 이 체계들이 우리 내부에 있으며, 우리는 삶의 관점에서 그 체계들에 젖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에게 책들이 무슨 쓸모가 있을까) 또 하나는 우리는 그 체계들에 젖어 있지 않으며, 따라서 체계들은 우리의 삶에서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체계의 소멸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리는 연극에 의해 새로워진 삶의 의미를 믿어야 한다. 그러면 인간은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담대한 지배자가 되고 다시 태어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단순히 등록되어 있는 유기체로 만족하지 않는 한, 지금까지 태어나지 않은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 여전히 태어나게 할 수 있다.
우리가 삶이라는 단어를 발음할 때는 사실들의 겉모습으로 인지된 삶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형상들이 건들지 않은 허약하고 요동치는 중심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이 시대에 진정으로 저주스럽고 지옥 같은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은 장작더미에서 기호들을 만들어 내는 불타는 화형수처럼 존재하는 대신에 형상들을 예술적으로 머물게 하는 것이다.
들뢰즈가 왜 그리 아르토를 빨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음
프루스트론에서 선보인 사유의 폭력성과 의도된 파편을 향한 예찬부터 시네마 2에서 논한 믿음의 문제까지 아르토의 단락에 배아 상태로 담겨 있음
음... 얼마 전에 읽은 르네 샤르도 그렇고 약간 돌아버린 프랑스인들의 글뭉치를 대체할 수 있는 건 별로 없다는 생각(아르토는 정말 돌아버린 인간이긴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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